만 18세의 참언론을 위한 준비

2006년 여름 시사저널은 사장에 의해 한 기사가 광고지면으로 바뀌었다.

그 사태에 대한 여러 증거들을 모아놓은 블로그가 바로 시사저널 거리 편집국이다. 이 곳은 시사저널에서 나온 기자들이 신 매체 창간을 위한 준비까지의 활동사항들을 작성해 놓은 곳이다. 지금도 활동이 완전히 멈춰진 것은 아닌데, 글이 대략 뜸한 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난 기록들은 어떻게 그것들이 진행되어왔고,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들이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띄엄 띄엄 알고 있던 사건의 진행 사항들에 대한 정보들을 이를 통해 얻고 있다.

그러면서 시사저널이 18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런 시점에서 삼성기사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한국에서의 성인은 만 18세를 기준으로 구분되어지는데, 이것은 성인영화를 볼 수 있는 능력 – 한 사람으로 자신에게 이로울지 해로울지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 – 을 지녔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어진다.

시사저널이 그 대상이 되어 언론의 탄압되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18세의 한국인들이 스스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어떤 일을 할 지 무엇을 좋아하고 행복해 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평균적인 나이일 것이다.

이런 것이 생각나게 된 동기는 시사저널 거리 편집국의 다음의 한 부분이다.

독립정신이 훼손되고 유린당한 매체,
기자다운 기자들이 떠나버린 <시사저널>은 더 이상 <시사저널>이 아닙니다. 알맹이는 가고 껍데기만 남은,
죽은 매체일 뿐입니다. 우리 전직들은 시사저널을 사랑했기에 시사저널로 돌아가지 않은 파업 기자들의 결단을 지지하면서 이제 정든
그 이름, 아름다운 과거와 작별을 고하고자 합니다. 굿바이 시사저널!

위의 인용문은 전 시사저널 기자들의 참 언론 실천 시사기자단의 성명서의 마지막 부분인데,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있었지만, 그런 부분들을 읽을 때에는 아무런 감정이나 특별한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왜 위의 부분에서 그런 생각이 들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들의 행보가 드디어 가속되기 때문이 아닐까. 크게 진실을 향한 한 걸음 내 딛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18년 동안 자라온 나무의 열매가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병충해를 이겨내어오면서 무르익은 열매라서 그런것이리라.

사진은 찍는 사람의 감정도 담는다.

한 동안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를 보면 “사진은 사진을 찍는 사람의 감정이 투영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표정 정말 맞는 표현이다.

사진은 사진을 찍는 사람의 감정이 투영된다고 한다.

또한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어떤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 대상과 어떠한 형태로 교류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중략)

상황이 끝나고 임시 편집실에 오자마자 안선배가 찍어 온 사진을 보았다.
사진이 나빴다. 안선배 사진 답지않게 사진이 너무 나빴다.
대부분 초점이 맞지 않았고, 구도도 심하게 불안정했다.

출처 : 시사저널 거리 편집국 – 한 동안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원래 사진을 시작하게 된 것은 중학교 때 특활시간에 사진부 활동을 시작하면서, 세상을 다 담고 싶다는 소망에서부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저런 소소한 사진들을 주제에 상관없이 찍어왔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들조차 피사체가 될 수 있었다. 다시 사진기를 잡기 시작한 것이 처음 디지털 카메라를 샀던 때였는데, 그 때는 풍경사진을 찍기를 좋아했다.

정말 똑딱이(COOLPIX E775)로 좋은 사진을 많이 찍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올해 초에 행사사진을 찍으면서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들이 잔뜩 생기기 시작했다. 초점은 물론이고 구도도 엉망이었다. 심지어는 화밸[note]화이트 밸런스[/note]조차 맞지 않은 사진이 있었다.

카메라는 분명 처음 사용했던 똑딱이보다 좋은 카메라(D70)인데도, 결과물은 엉망인게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결과물들이 말해주는 필자를 들을 수 있었다.

행사사진이라고 해 봐야 소속해 있는 집단에서 하는 집회 정도뿐인데, 그들과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들이 필자에게 어떤 해코지나 괴롭힘을 행한것도 아닌데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전처럼 다가가서 말하고 인사조차도 하기 힘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필자뿐이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것을 그만 둘 수는 없었고, 그 집단에서도 필자의 사진을 좋아하고 원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깨닫고 난 뒤로부터는 다시 그들에 대해 애정을 갖기를 노력했다. 사람 마음이라는게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경험이었다.

최근에도 초점이 맞지 않는다거나 자동초점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는 기능상의 이유로 사진품질이 좀 떨어졌지만, 그래도 그들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인지 이전에 그 때보다 더 좋은 사진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는 사진들이 나온다.

이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시사저널 거리 편집국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져와서 씁쓸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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