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사리법

올해는 겨울의 꼬리가 유난히 길어 추위가 얼른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벼 씨를 판에 뿌려 놓고 자라는데 작년보다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덕분에 모 심기도 한 주일 늦춰졌고, 피사리 역시 한 주가 미뤄졌습니다.

이번 주부터 피 사리를 시작했는데, 그 양이 작년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적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피 반 모 반
이건 뭐 잔디구장도 아니구….

그래도 계속 계시는 분들의 매 년 줄어들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 안심이 된달까요?

지금 지내고 있는 곳에서는 자체적으로 생산 가능한 것들은 밭과 논을 갈아 씨를 뿌려서 직접 수확하여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도 이전엔 농약을 사용하고 화학비료를 사용해 오다가 몇 년 전부터 유기농 관련 단체에서 인증을 받기 위해 문의도 많이 하고 권유에 따라 농약을 아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약으로 간단히 해결될 문제도 사람이 거의 해결해야 합니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피사리 입니다.

피사리를 해 주는 기계가 있지만 대체하기가 힘듭니다. 모를 심을 때 기계로 심는다고 해도 일정하지가 않아 피사리 기계로 하기가 여간 힘듭니다. 게다가 피사리 기계로 모 사이에 있는 피를 제거하더라도 모와 함께 자라는 피는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 곳에 온 지도 2년이 조금 더 됐는데요, 첫 해에는 도무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던 피와 모가 올 해에는 조금 구분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작성합니다. 이 곳에서는 앞으로도 농약 처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피사리가 계속 될 것이고 혹여 그 기간 중에 이 곳에 방문하실 분이 자원하여 봉사 하고자 하실 때 도움이 되시라고 기록하여 둡니다.

피사리는 모 사이에 있는 잡초를 구분하여 제거주는 것을 말합니다. 오픈사전에 보니 피발작업이라고도 한다네요. 어원도 있으니 참고하시면 되겠구요.

풀어 놓은 우렁이

피사리를 하기 전에 이렇게 우렁이를 넣어서 먹도록 합니다만 우렁이가 먹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피사리하는 것은

피사리의 기본 자세

이런 자세로 모 사이를 눈으로 살피면서
골라냅니다. 처음에는 허리가 매우 아픕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 듯 하루 정도하면 익숙해져서 괜찮아 지겠지요? 보통 20명이 한 배미 – 논을 셈 하는 단위 – 를 하는 데 약 6~8시간 가량 걸립니다.

집단활동 피사리

사람을 기준으로 앞 뒤가 다르지요?

자! 다음 사진을 보시고 피와 모를 구분할 수 있으시겠어요?

구분할 수 있으세요?

자! 조금 더 가까이 찍어 봤습니다.

이런 정도면 구분할 수 있으세요?

이젠 각각 찍은 사진을 보고 구분해 보시겠습니다.

이것이 피구요

이것이 모 입니다.

이제 구분이 좀 가시나요? 피와 모는 언뜻보기엔 거의 비슷해 보입니다. 그래서 처음 하는 사람은 모를 피인 줄 알고 뽑기도하고요, 피를 모라고 생각해서 뽑았다가도 다시 자리잡아 심어주기도 합니다.

사진을 잘 보시면 피에는 잎 중간에 은빛나는 줄이 더욱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피를 모와 구분하여 뽑아주지요.

또 한 가지 구분법은 모 뿌리를 손으로 훑으면서 넘어지는 것을 골라내는 것인데요, 그러다보면 넘어지는 것을 보기 전에 손에서 느껴지는 것이 다른 뿌리가 느껴집니다. 피가 벼 모보다 성장이 빠르지만 대체로 벼 모 쪽이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입니다. 이런 방법은 결국 좀 더 자란 후에는 불가능한 방법이지요.

또 뿌리를 보고 구분하신다는 분도 계시던데 전 아직 잘 모르겠더라고요. ^^

이렇게 골라낸 피 뭉텅이는 손에 어느 정도가 모이면 모 사이 바닥에 발로 깊숙하게 집어넣어버립니다. 다시 자라지 못하도록 말이죠.
이것도 어설프게 넣어두면 다시 물 위로 떠 오르는데요, 모인 피 포기를 말아서 발 끝으로 대각선 앞쪽으로 밀어 넣어야 확실하게 들어갑니다.

구분이 가능하시겠지요? 일단 기회가 있으시면 해 보시면 금새 잘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혹여 제가 잘 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덧글 달아주세요!! 그럼 이 정도로 줄입니다.

어깨가 빠져버릴지도…

요즘은 날이 좋아져서 한 여름에 접어들고 있는 기상이어서 해는 내리쬐고 공기는 후덥지근하다.

심어놓은 벼들은 잘 자라고 있어서 파릇 파릇 피들을 품고 잘 자라주고 있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유기농으로 벼를 재배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모를 심어놓은 중간 중간 피들이 자라고 있는데, 사람이 매일 한 배미1씩 들어가 피사리를 하는데, 모 사이에 숨어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것도 일이지만 허리를 숙이고 장시간 있어야 하기 때문에 허리에 오는 통증이 더욱 심하다.

다른 사람들은 피사리를 하러 간 사이 예초기로 밭 근방에 자라 있는 잡초들을 없애고 있는데, 한 번 시켜보고는 이전에 하던 사람보다 몇 배나 빠른(-_-) 처리속도를 보더니 고정이 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날까지 일주일을 매일같이 풀들을 없애고 있는데, 전에 탄약 부대에서 근무하던 선배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금새 풀 뽑아놓고 뒤돌아보면 다시 자라있다

물론 바로 돌아보면 없어져 있겠지만, 그 만큼 처리해야할 양은 엄청나고 없애는 사람은 제한적이라는 소리다.

이곳도 예초기 한 대로 여러 사람이 해야할 일을 줄이고는 있지만, 일단 다른 일들이 바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혼자하고 있는데 이거 정말 며칠 전에 처리한 구역에 또 다시 자라있는 잡초들을 보면 징그럽기까지하다.

쨌든 일주일을 예초기를 어깨에 지고 다니다보니 어깨가 아픈데, 유난히 왼쪽어깨만 더 아프다. 예초기 모터 부분에서 나오는 풀을 자르는 부분을 왼편으로 해 놓고, 그 중간에서 어깨까지 줄을 달아놔서 왼편에 걸치게 해 놨는데, 그것 때문에 어깨에 무리가 간 모양이다. 오른편으로 할 수도 있지만 풀이 고르게 잘라지지 않기 때문에 자꾸 피하게 된다.

그래도 균일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왼편 어깨에 무리가 덜 될 것이기에 내일은 시도해봐야겠다.

  1. 논 한 구획을 배미라고 한다.[]

내려놓음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려 놓기
내려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내 눈에 보이고 내 손에 잡히는 명백한 실체가 있는데, 이러한 알토란 같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내려놓아야 할 것이 내 눈물과 내 피가 섞인 것일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내려놓지 못한다. 더 좋은 것을 기대하며 잠시 내려놓는다고 해도 언제라도 수틀리면 다시 집어들 생각을 하며 손닿는 가까운 곳에 둔다.
내려놓음이란 믿음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눈물의 헌신이다.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 내려놓지 못한다. 하나님은 내려놓는 우리의 손길이 떨리고 있는지 아니면 추호의 흔들림이 없는지도 보시는 분이시다.

채워주심1

내려놓음이란 이런 것이다. 에서 언급한 나아만 장군도 자신의 권위와 고집을 내려놓았을 때에 문둥병을 고침 받았다.

최근의 내게 내려놓음이란 상호작용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활동하던 선교단에서의 활동들을 내려놓고, 이성교제도 내려놓았다.

이성교제의 문제에 있어서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도 이해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내려놓아야만 할 때가 있다. 둘 중의 어느 쪽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도 그렇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 그럴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에 순종하고 따를 때 더 나은 상황과 여건으로 변화시켜 주셨던 경험을 기억하고 다시금 자신을 정비해야 한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이 순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결국 하나님께 부름받기 시작하면 그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분명하게 정리가 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사람들과의 문제에 있어서는 정리가 분명하지 않다.

선교단의 문제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해 왔던 사역을 이어받아 줄 사람이 없다.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관리하며, 관련 업무를 담당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이해시켜주시고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진다.

  1. 이상혁, 채워주심, (서울 : 규장, 2007), pp.144-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