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 태도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생각 조금하고 기도 많이 해야 한다. 생각이 많으면 일하러 갈 수 없다. 바로 가자! 그리고 뭐가 되든지 간에 꼼지락거려보자!

(중략)

채워주시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중히 보시는 것, 그것은 종다운 순종의 태도다!

출처 : 채워주심1

순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순종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순순히 복종하다2이다.
순순히 복종하기 위해선 복종의 대상, 명령을 내린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야 한다. 물론 어떤 이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는 있지만 마음에서부터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따르는 것은 순종이라고 할 수 없다.
유명한 위인들의 주변에는 자원해서 도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개 그들은 그 위인에게 적지 않은 존경심을 가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 존경심은 감사의 형태를 띄고 감사의 마음으로 그를 따르게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순종과 감사는 하나의 팩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감사한 마음을 보답하기 위해 순종하고 존경심을 가진다.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접을 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노력한다.
내게 있어서 감사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그리고 그 분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모두를 알 수는 없지만 적다고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알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분에 대해 순종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감사에 대한 행동 표현이다.
이 글을 읽고 있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는 있겠지만 그렇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행동으로 마음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또한 깨닫기 바란다. 그리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1. 이상혁, 채워주심, (서울 : 규장, 2007), p.137.[]
  2. 순종(順從)【명사】【~하다|자동사·타동사】 순순히 복종함., 민중국어사전.[]

지금 내 마음이 그래

I’ll never be able to give up on you
So never say good bye and kiss me once again
나는 절대로 그대의 앞에서는 하염없이 울거나 하지 않지
이것은 결국 언제나 자신이 아나키스틱한1 그대에게 어울리기 위해서
현대의 시드비셔스에게 수갑이 채워진 것은 그저 나만일뿐
가지말아줘 어디든지 그대와 함께가 아니면 싫어
그대밖에 보고 있지 않아 지금 여기서 키스해줘
다른 교복의 여고생을 눈으로 쫓고 있는 것 알고 있어
비스듬한 머리 뒤언저리로 아플 정도의 시선 느끼지 않는건지
뭐 내가 예쁘거나 미인형은 아니지만 이 쪽을 봐줘

어떤 때에라도 나의 이상을 놓치지마
그대의 긴 속눈썹도 그 갸날프고 커다란 손도 전부 너무 좋아해
어디에라도 그대 만한 사람은 없어
그대 밖에 보고 있지 않아 지금 여기서 키스해줘
가지말아줘 어디든지 그대와 함께가 아니면 싫어
그대 밖에 보고 있지 않아 지금 여기서 키스해줘
I feel so nice ’cause you are with me now
It is certain I love you so much baby
I’ll never be able to give up on you
So never say good bye and kiss me once again

방금 그녀와 통화를 마쳤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녀와 필자는 그다지 긍정적인 상황 하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소송 통보를 받은 상태이고, 그녀 역시 그런 아버지를 설득해보려 하지만 전혀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요 전번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만나지 않는게 좋겠다는 정도로 그쳤지만, 이번에는 고등학교 졸업하고부터고 뭐고 평생 못 만나게 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물론 필자에게 직접적으로 한건 아니고 흥분한 상태에서 딸아이를 걱정해서 순간적으로 나온 말일 가능성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지만 그녀의 불안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데서부터 기인한다.

여튼, 그녀는 오늘 하루종일 공부를하고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공중전화로 통화를 시도했고 연결됐고 방금 마쳤다.

마치면서 시이나링고의 코코데키스시테라는 노래 들어봐. 지금 내 마음이야.. 라는 말을 남겼다.

  1. 아나키스틱은 영어 anarchistic에서 온 말로 ‘무정부주의(자)의’란 뜻입니다.
    ‘아나키스틱하다’라고 하면 ‘기존의 체제나 질서나 억압에 저항한다’라는 뜻이 됩니다.

    []

SAW Series

얼마 전에 Ch. CGV에서 SAW 2의 결말 부분을 우연찮게 보게 되었는데, 이전의 1도 일부분만 보았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래서 이번에 SAW 시리즈를 차례대로 보기로 했고 보고 있다.

사실 필자는 공포물이나 하드고어류를 보아도 별반 섬칫해하거나 하지 않았는데, 별 것 아닌 장면에서 섬뜩해 졌다.

그것은 바로 2에서 마약 주사를 위한 주사기 더미 위에 떨어지는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랬다.

정말 그 순간 섬짓했다.

의사들은 항상 차가운 의학용어로 내가 죽은 시체나 다름 없다는걸 돌려말하지

출처 : SAW III 중 24:50~54

이 대사는 직쏘1가 그가 암 판정을 받은 병원의 의사 중 한 여성 의사의 답변을 들은 뒤의 대사이다.

저 대사를 들으면서 생각해 낸 것은 얼마전 있었던 순천향 병원의 여중생 사건이었다. 정말 잊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가 되면 다시 언급하고 싶어지는 계기가 생긴다.

또 한가지는 의사들의 어쩔 수 없는 직업적인 말투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필자가 만일 의사였다면 어찌했을까 죽음의 그 무게 앞에서 가볍게 말할 수도 없을테고, 부드럽게 말하려해도 가족들이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경우의 수들말이다. 좀 귀찮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 하는 것 자체가 귀찮다는게 아니라 그 이후에 생길 일에 대한 귀찮음을 말한다.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말하는데도 가족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느끼게 된 것은 잘 하며 잘 살자 이다.

  1. 일본어 ‘칙쇼(?)’가 생각난다. 이 단어의 의미는 ‘젠장’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