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절 불러요~

수업시간엔 자느라 못 들었던 것 같구, 동생이 시험 공부하면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라는 표현을 공부하는 걸 본적 있었다. 그게 여러 가지 표현이 있었는데, 오늘 문득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가 기억이 났다.

초등학교 3학년생이 일기를 블로그에 기록하는데 그 포스트들로 초등학교 3학년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을 잠시 느낄 수 있다. 그 중에서 다음의 일기를 보면서 생각이 나게 된 것인데, 아래 인용구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방문할 수 있다.

나는 안심이 됐지만 또 만약을 준비해서 똥이 마렵다는 말은 영어로 배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 상우일기

그 당시 동생이 공부했던 표현은 Nature calls me. 또는 Nature is calling.로 기억되는데, 이걸 보고 문득 기억난 건 그걸 직접 사용했던 기억이었다.

영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화장실에 가려고 손을 들고는 쌤~ 자연이 절 불러요~ 라는 식으로 한글화해서 써 먹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반에서는 최소 3차원 이상의 정신세계를 가진 친구로 인식됐겠지만, 나름 스스로는 즐거워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친한 친구녀석들에게서 질문을 받고 답해줬다.

뭐 지금도 고차원의 사고방식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지만 그 당시에도 적잖이 고차원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8시간 공부?

나의 어머니께서 살고 계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으로도 잘 알려진 자녀들에 대한 학습욕(!)이 대단히 높다. 그런 분위기 가운데, 어머니의 어린 시절 일화를 들어 어머니의 학습열에 대해 살펴보고 본문을 시작하도록 하자.

보실까나?
본인의 모친께서는 초등학교 시절 그 작은 – 그러나 어머니의 고향에서는 결코 작지 않은 – 곳에서 결코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승부욕(!)은 다른 초등학생들과는 다른 열정을 가지시도록 만드셨다.

그 시절의 시골 학교의 학생들에게는 부모님들의 농업을 도와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던 어머니께서는 밤에 불을 밝히지 않을 수 없게 되셨다. 게다가 어머니의 형제들은 9남매라는 거대 인원인데, 그 중 맏이 셨던 어머니께서는 동생들을 보살피셔야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선택하셨던 방법이 각성제였다. 잠 안 오는 약으로 알고 드셨던 그 약을 통해서 밤새어 공부하셨더란다.
그럼 이쯤에서 어머니의 과거사 이야기는 접어두고, 본인의 과거사 이야기로 돌아가보겠다.

그렇게 대단한 열정을 가지셨던 어머니는 우리들(동생과 본인)에게도 높은 수준을 요구하셨더란다. 초등학교 시절에 나왔던 전과는 대략 5가지쯤 또는 그 이상이었는데, 그 모든 전과&학습지를 사셔서는 초등학교 1학년생인 아들을 학습시키셨더란다. 더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8시간동안 그 초등학교 1학년 생이 버텨냈다는 것이다!
애초에 본인이 학습 성취도가 낮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결과에 대해 어머니는 대단히 좋지 않게 생각하셨다고 생각된다.

쨌든 중고등학교 및 초등학교 2학년시절부터 꽤나 존재감이 없었던 학습에 대한 압박을 생각해보면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동생은 어머니의 그 승부욕을 학교 성적에 두었고, 본인의 경우에는 PC에 두었기 때문에 다른 결과로 현재의 삶에 나타나 있지만, 결코 후회될만한 결과는 아니다.

별 것 아닌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지만, 어머니께서 그대로 그런 학습욕을 본인에게 요구하셨더라면 지금은 어떤 결과로 나타났을까?
어머니의 설명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그런 욕심이 사라지셨기 때문에 본인과 동생이 편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하신다. 규모가 크건 작건 집단이라는 곳에서는 소문이라는 것이 있었을테고, 기도 좀 하신다는 분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런 분들 가운데 한 분께서는 어미님께 “하나님께서 맡기시라고 하시네요”라는 말로 본인을 구원하셨단다.

그랬더니 8시간의 공부를 시켜서 나왔던 성적보다 훨씬 나은 성적을 결과로 가져왔기 때문에 그 달에 바로 그만두실 수 있었단다.

뭐.. 그런 본인에게도 공부에 대한 욕심은 장기적으로 존재해왔다. 언제나 그만두지 않는다. (켈룩…)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