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불평의 차이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감사와 불평의 차이는 백지장 하나 차이이다. 사실 그보다 더 적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일상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만큼 쉬운 것도 없다. 이게 무슨 말인가하면, 주의 말씀을 따르는 문제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주의 말씀에 살기로 작정하고 그것에 스스로 자원하여 따른다면 그렇지 않았을 때 느꼈을 불편함을 느끼지 않듯이, 불평의 상황에서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고 자원하여 감사한다면 쉽다.

감사할 상황이 아닌데, 분명 하루 종일 일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안되기만 하는 날에도 감사해야하는가의 문제와 불평도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에 의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질문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리고 그 자유의지로 우리가 어떤 것을 하든지 그것은 그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자원하여 그의 말씀에 따르고 지혜를 좇기를 바라시지 말씀을 거부하고 반대되는 삶을 살아서 심판을 받기 원치 않으신다.

감사는 저절로 나오는 상황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더 빛을 발한다. 어둠 가운데서 빛이 비추면 더 밝게 느껴지듯이 말이다.

미루었던 글쓰기

밀린 글을 쓸 때 가장 큰 문제점은 아무래도 쓰려고 마음 먹었을 당시의 느낌을 100% 되살리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쓸 내용은 매우 밝고 긍정적인 내용인데, 쓰려는 지금의 상황이 매우 우울하고 서글픈 때는 다소 난감해집니다.


정말 난처했다.

이번에 끝난 학기 중에 상담과목이 있었는데, 기혼 친구의 이혼 문제에 대한 상담을 한 것이 3월이었고, 그 친구와 상담한 것을 상담 사례로 제출하기로 하고는 다른 과제들에 밀려서 미루고 미루어졌다.

사실 그 과제의 제출일은 기말 시험을 치르는 날이었기때문에 한참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었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는 스스로에 대한 판단에 간단한 기록을 스프링 노트에 남겨두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는 대화의 전체 내용을 다 기억할 수는 없었다. 사실 상담이라는 것의 대부분은 내담자1가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약간은 걱정이 되었지만, 그대로 미루고 미루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거의 다 마치게 되었을 즈음에 가서야 조금 여유가 생길것이라는 생각으로 지내었는데, 학기 말은 그런 생각으로 미루어 둔 과제들이 몰려있기 마련이다. 이번 학기에는 조금 나은 형편이라고 말할 수 없고 되려 더 심한 형편이었다.

하지만 간단히 기록을 남겨둔 것에 힘입어 열심히 열정적으로 그 내용들을 기억해 내어 다 작성하긴 했다.

하지만 제출하기 위해 살피면서 그 때의 절박함2이 다 표현되어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과 같은 표현력이 필요한 부분이 아닌 사례 자료였지만, 좀 아쉬웠다.

역시! 글은 그 때 그 때! 글 뿐만 아니라 생각났을 때 얼른 처리해 버리는 것이 속 편하고 그것 나름대로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1. 상담을 청해온 사람[]
  2. 그 친구는 작년에 결혼해서 6개월 가량의 신혼이었는데, 이혼 상담을 청해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