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기

marineblues – 20071202

할머니, 증조 할머니!

성게양의 조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관련 에피소드가 올라왔다.

괘기, 개대기1

참 정겨운 단어이다. 필자의 증조모님은 1898년생이셨으며, 105세까지 이 땅에서 살아내셨다.

증조모님은 그 연세에도 꽤나 총명하셨던 분이었지만, 일부러 그러시는지 헛갈리는 치매 증상을 가지고 계셨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조부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더 이상 유선여관에서 안주인으로 지내실 수 없게 되시면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좁은 집안에서 조모님과 함께 지내었는데, 그에 더해 증조모님도 함께 모시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증조모님께서는 거동이 불편하셨고 말씀도 그다지 많지 않으셨다.

가족들이 집안에 있을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말상대가 없어서였는지, 그 이전에도 그러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간간히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시면 총명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충분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증조모님의 소천일에는 정말 슬픔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상을 치르면서 호상이라며 사람들이 심하게 울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필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셨던 조부님과 대등한 애정을 당신의 방식대로 쏟으셨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증조모님께서 필자를 부르던 호칭이 더욱 그리운 순간이다..

빙조야~
  1. 전라도 사투리로 고양이를 이르는 말이다. ‘괘대기’이지만 개대기로 발음하기도 한다[]

내가 너 보러 왔다냐~

2007/10/02 – [나의/과거사] – 유선여관 2에서 이어지는 글이면서 다른 제목을 달아놓은 이유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가 태어나던 해에 관련된 이야기는 2007/06/23 – [나의/과거사] – 아들에게에 작성되어 있다. 그 후로 며칠이 안되어 조부님께서 장손의 득남 소식을 듣고 재빠르게 광주에 올라오셨다.

필자의 아버지께서는 들어오시는 조부님을 반기며 아버지 오셨습니까라고 인사를 드렸는데, 글쎄 조부님께서는 그런 아버지의 인사를 뿌리치시고는 내가 너 보러 왔다가 내 손주 보러왔지 라고 하셨단다.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서운하셨던지 지금도 종종 이야기 하시면서 서운한 감정을 얼굴, 몸짓 등으로 표현하시곤 한다.

유선여관 2

친조부님께서 돌아가시던 해는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 그 당시 그로부터 몇 년후 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여관 근처에 솔숲이
캠핑장이 되고 또한 공원 내라고하여서 여관과 붙어있던 상가가 뜯겨져버리는 참혹한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문화재로 지정되어 복원되고 있다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친조부님께서는 필자를 유독 사랑해주셨는데, 그 어린 시절의 기억에도 그 사랑의 잔향이 여전히 느껴질 정도이다. 친조부님께서 그토록 사랑해 마지 않으셨던 이유는 연안 차씨 강렬공파 39대손으로, 종손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위의 언급한 친조부님의 장례식에서도 종손으로서의 영정을 들고 여기 저기 조부님께서 돌아다니셨던 길을 되짚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날을 유독 선명히 기억하는 것은 영정을 들고 있는 필자를 중심으로 대둔사의 승려들이 좌우로 좌~악 줄지어서서는 되짚었기 때문이고, 장례식 중간에 비가 내려 비를 맞으면서 장례를 치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유선여관에서의 추억은 여럿이 있는데, 조부님과 함께 하셨던 증조모님과의 추억이 또 연결된다. 이 여관은 전통가옥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으며, 부엌도 전통 가옥의 부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부엌에는 작은 방이 딸려 있었는데, 여관의 안 주인이셨던 증조모님께서 그 방에서 지내시곤 하셨다. 밥을 짓는 아궁이와 직접 연결되어 최고의 화력을 지닌 방이기도하고 거동이 불편하신 증조모님께서 식사를 그때 그때 하시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여관 뒤편에 있는 개울에서 목욕도 하고 물장난도 치고 고동도 잡곤 했다. 물론 친인척들과의 만남도 잦았다. 어린시절의 그곳은 좋은 추억들로 가득한 곳이다.

여관에서는 진돗개를 키웠는데, 그 개드로가 강아지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키스(!)도 했다.

조부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는 공원 지정도 그렇지만, 증조모님을 모시고 서울에 올라와 함께 살게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소천하셔서 나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할 사건들도 적지 않은데, 이와 관련해서는 언젠가 포스팅할 기회를 엿보겠다.

유선여관 1

박상민은 1989년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 역을 맡아 데뷔했으며 영화, 드라마를 통해 꾸준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최근엔 SBS TV 드라마 ‘불량커플’에 출연했다.

이 기사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 사람 아직 결혼 안 했나아~ 장군의 아들 촬영지 이다.

첫 번째 들었던 생각은 그저 단순한 내용이어서 패쓰~ 하지만 두 번째 생각은 필자와 매우 관련이 깊다.

장군의 아들의 촬영지인 유선여관이 바로 관련의 첫 접점이다.

대둔사와 유선여관

대둔사연못한편
두륜산 자락에 자리잡은 대둔사는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둔사는 한때 대흥사로 불리우다가 1993년부터
예전 이름을 찾아 대둔사로 불리고 있다.
대둔사는 우리나라 31본산(本山)의 하나로 대한 불교조계종(佛敎曹溪宗) 제22교구 본사이다.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응진전앞 삼층석탑(보물 제320호), 북미륵암 마애불(보물 제48호),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301호), 천불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8호), 서산대사 부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7호) 등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천불전에 안치된 천불상은
지난 74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됐다. 서산대사의 유물과 유적이 보관된 표충사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이밖에도 서산대사 유물관에는 많은 문화유적들이 잘 보관되어 있다.
유선여관경내버스
종점 바로 위쪽에는 서편제에서 판소리하는 장면이 촬영된 유선여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또한 장군의 아들 1. 2. 3 가
촬영된 곳으로 한국영화는 두륜산도립공원과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선여관은 1930년대에 지어진 여관으로 현재
전통보존가옥으로 지정되어 보수중이다.

– 입장료 : 어른 2000원(2000원), 청소년.군인 1500원(1200원), 어린이 1000원(800원)


…………..( ) 안은 30인 이상 단체요금

– 주차비 : 승용차 1000원, 버스 2500원


이 유선여관은 위에 나온 것처럼 영화의 촬영지로도 사용되었는데, 그 여관이 필자의 친조부님께서 운영하시던 여관이었기에 더욱 깊은 감정이 녹여진다.

여튼 이 유선여관에서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이어적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