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면서 동네 형이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그렇게 타고 싶었더랬다.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 놀이터에 가면 항상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나는 그저 친구들과 뛰어노는게 전부였다.
내용을 이어가기 전에 초등학교 운동장에 대해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초등학교는 산등성이에 있어서 학교 운동장이 끝나는 지점에 경사가 5m가량 있고, 그 경사면이 끝나는 지점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철조망이라고 해서 지금과 같이 튼튼한 구조물이 아니라 그저 녹색 그물로 되어 있는 그런 모양의 구조물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10m가 넘는 절벽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가정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양새였다.
언젠가 용기를 내어 그 형에게 한 번 탈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의외로 바로 핸들을 내 주었다. 어린 시절 자전거를 이미 배운적이 있었고, 그 동안 타고 싶어했던 마음을 가득 담아 페달을 밟으며 신나게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제법 오래 탔던 것인지 형은 이제 그만타라고 소리를 질렀다.
누구에겐가 멋지게 보이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나는 그 경사로가 있는 운동장의 한 구석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멈추어 설 생각이었다. 하지만 브레이크를 힘껏 쥐어도 자전거는 멈추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 끝네 살포시 올라와 있는 연석을 넘어서 경사로쪽으로 몸이 날아갔다. 마치 이티의 한 장면처럼 자전거와 나는 한 몸이 된 듯이 날아갔다.
운동장 끝네 닿기 전 자전거 주인이었던 형은 무엇인가를 힘차게 외쳤지만 나는 그게 그만타라는 말이었겠거니 하고 무시했다. 다행스럽게도 돌에 부딪히며 속도가 줄어서였든지 생각만큼 빠르지 않아서였든지 나는 그물 구조물 바깥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 아래로 떨어졌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기로라고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에피소드이긴한데, 사실 이것보다 위험한 순간은 더 많다. 또 언젠가 생각나면 적기로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미투에 이 글을 적기 직전에 여행사에 서류를 갖다줘야할 것이 있어서 다녀오는 길에 라디오를 들었는데, 두 개의 방송국에서 서울 경기 지방에는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보를 들었기 때문에 적었었는데, 정작 자전거를 타고 나가지 않았다.
화요일마다 있는 모임이 있기는 한데 이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강제성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일이 있으면 참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는데, 생각보다 하던 일이 오래 걸려서 가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주부터는 제 시간에 갈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건 바로 직전의 포스팅에서 밝힌것과 같이 운동을 하지 않아 체중이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힘들게 감량했는데, 불어나기 시작하면 그 끝을 알 수 없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운동을 더 이상 쉴 수가 없다. 쉬어서도 안된다. 고로 다시 시작!
다이어트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동생이 선물했던 바지인데, 그 때 당시 체중이 무려 103.5Kg이었다.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밝힌 적이 있지만, 이건 아직 100Kg이 되기전에 이왕 찐 김에 .1ton이 되어보고 싶어져서 무작정 먹고 운동을 안해서 얻은 내 생에 최대의 체중이었다. 체중이 그 정도 되면 허리 사이즈는 말할 필요가 없다. 기형적으로 허리가 가는 편이라고 하더라도 허벅지와 힙 사이즈 때문에 36을 입지 않으면 안되는 체중인거다.
그리고 .1ton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다이어트는 시작되었다. 이전만큼 줄넘기 5천번씩 할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걷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체중으로 줄넘기 했으면 아마 각 하체 관절들이 남아나지 않았을거라 생각된다.
쨌든 지금 다이어트를 시작한지 무려 6개월이 넘어가고 있는데, 현재까지 뿌라쓰 마이나스 되어 94Kg이다. 학기가 시작하면서 신청한 학점이 모두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운동시간을 포기해야했다. 그다지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을 투자하는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핑크님을 비롯한 RSS 리더에 등록된 글들을 종강후에 잔뜩 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이것에서 발생된다.
그렇게 운동이 그치자 다시 몇백 그램씩 다시 찌는 자신의 체중을 발견하고, 이거 안되겠다 싶어 집에서 썩고 있는 자전거를 활용하기로 했다. 물론 자전거로 통학할 생각을 하게 된것은 약 7Kg정도가 빠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체중이 90Kg이 넘어가고 있는데다가, 걷기만으로 관절이 강화되었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저래해서 종강이 되기 전까지 총 -11.5Kg을 감량했지만, 종강이 되고 나서가 문제인거였다. 방학이 되면 의례 한가해지는 것이 옳은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필자는 그렇지 않다. 오지랖이 매우 넓은데다가 아버지께서 때때로 원치 않지만 할 수 밖에 없는 일거리를 물어오시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150곡짜리 악보집을 만들게 됐는데, 이게 또 일 시작하면 밤낮 안가리고 하는 성질머리라 약 2주간의 기간동안 그렇게 작업만으로 달려왔더니 다시 체중이 94Kg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글을 읽게 된 것이다. 살을 빼고 빼빼 말라있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는 말씀에 절대 공감한다 하지만 과체중은 온갖 병을 유발할 뿐 아니라 그다지 좋은 인상을 주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살아야 하는건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면서 인거다.
분명 핑크님의 글의 말미의 주장처럼 빼빼 말라있는것은 미덕이 아니다. 필자 역시 이상여성형이 통통한 사람(조정린이나 박경림 같은)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다이어트를 하면 안되는 상황이랄까?
이런 이상형은 어린시절의 말라서 볼품없었던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 때의 성질머리가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의 체형과 체중에도 그 이상형이 변하지 않는 것은 다른 이유이지만 일단은 적당한 체중과 체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이미지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 다이어트는 지속하고 있다.
5월까지는 졸업사진에 뚱땡이로 나오기 싫어서 다이어트를 했지만 지금은 졸업 이후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게으른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부탁드린다! 응원해주시라! 동생이 선물해준 32인치 진을 입을 수 있게 되기를! 아직도 목표 체중까지는 14Kg이 남았다.
그 이상 빠지면 볼품이 없을 뿐 아니라 불쌍해보이기까지하다.
중학교 3학년 이후로 80Kg이하로 떨어졌던건 부사관학교에서의 고된 훈련 후에 임관식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사진을 인증으로 걸어둘까한다.
부사관학교 임관식 사진
무려 2000년 12월 29일 사진… 이 사진 찍었을 때의 아버지께서는 대나무를 보시는 듯 했다고 하셨다.
전역 송별회에서 김인희와 함께
추가 :: 일단 이건 중3이후 최저 체중일 때 사진이고, 전역하기 전에 찍은 사진이 아래에 있는 사진인데, 이 때의 체중은 아마도 83Kg정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아마 2004년 9월부터 시작한 줄넘기로 3개월간 10Kg정도 감량했을 때이다. 그리고 이런 운동도 했다. 찍은날은 2004년 12월 20일. 아니 찍힌 날..
너무 오랜기간 배에 기름을 채우고 있었다. 기름 먹는 기계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름은 채워지고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배에도 기름은 차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열정적이다. 하지만 기름이 채워지기 시작하면 그 채워지는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점차 그 사람을 잠식해가고 그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점차적으로 점령해 나간다. 하지만 그는 그걸 느낄 새도 없이 새로운 사람들에게 그 자리를 내 놓아주려고 이미 포기할 상태에 이르게 된다.
필자 역시 그런 수순을 밟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직 그렇게 포기하고 누군가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 할 나이가 한참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름이 채워지는 속도와 내어주려는 속성을 가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채우지 않기 위해 인간으로서 열정으로 그 기름들을 소모시키고 열정을 통한 일의 성과를 보려고 할 때이다. 아직 성과를 보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으로 머무른다면 아무런 발전도 없다. 작은 성과들은 더 큰 성과를 향해 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고 그 성과는 더 큰 결과를 향해 딛을 수 있는 발디딤돌이다.
게으름이 배 속에 기름을 채워넣기를 더 하지 못하도록 게으름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노력으로 자전거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를 통학하기로 했다. 부천 원미 도당에서 서울 은평 신사 까지 가양대교를 건너는 경로는 1시간 내외가 소요되며 왕복 2 시간으로 하루에 2시간이 운동으로 칼로리가 소모된다. 그에 더해서 음식 섭취량을 1/8 수준으로 줄여서 기름이 찰 짧은 순간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관계를 해칠만큼의 거절은 하지 않는다. 음식을 나누는 시간에는 그 이상의 양이라도 섭취해 준다. 하지만 그 이후 시간에는 음식 섭취를 일체 하지 않는다.
몸에 무리가 가는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할 것이라는 생각을 기본으로 깔고 있기 때문에 무리는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이라는게 이런 일상의 것들 뿐이다. 좀 더 전문적인 글을 쓰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다른 사람보다 부지런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 남성은 신체적인 특성상 다리가 두꺼워지지 않을 수 없다. 똑같은 기간에 같은 거리를 운동하더라도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인 변화의 정도는 다르다. 둘 다 체력이 보강되어지고 전반적인 대사량이 소비되겠지만, 남성에게는 한가지의 변화가 더 생긴다. 바로 다리 근육의 발달인데, 이것이 자전거 타기를 기피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 – 정확히 말하자면 땀을 흘리는 행위 – 필자는 줄넘기도 해보고, 자전거로 통학도 해 왔다. 특히나 자전거로 통학할 때는 조금 무리가 된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침 저녁으로 땀을 흘려주어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제반 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가양대교를 건너는 동안에는 곁길이 있어 별 불편이 없었지만, 그 외의 일반 도로의 경우에는 자전거 도로가 구축되어 있지 않거나 인도에 오르내리는 부분에서 매끄럽지 못해서 자전거 바퀴가 상하거나, 그로 인해서 터지곤 했었다. 그리고 자전거 도로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구간에서는 인도에서 다니는 것이 불편 –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 – 했기 때문에 인도에 가까운 차도로 다니기가 일반적이었다.
자전거로 이동하는 것은 환경과도 관련되어지는데, 차량으로 다니는 것보다 그만큼의 매연이 줄어들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전거 이용자수가 눈에 띄일 정도의 인원일 때의 말이다. 차량 이용자들이 잘 구축된 자전거 도로나 제반 시설이 생기고 국가에서 지원이 있다면 그만큼 자전거로 이동수단을 변경할 것인가하는 의구심도 살짝 든다. 그 동안 차량으로 편히 다니다가 자전거로 힘들여 다니고자 하는 사람이 그 만큼 생길 것인가 하는 것이 그 의구심의 첫째되는 항목이다.
쨌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개인의 체력 증강, 건강 회복의 이점 외에도 좋은 점이 많지만 사람들의 의식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략을 잘 구성하여 시행하지 않는다면 잠시 떠들고 마는 수준의 활동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