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불평의 차이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감사와 불평의 차이는 백지장 하나 차이이다. 사실 그보다 더 적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일상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만큼 쉬운 것도 없다. 이게 무슨 말인가하면, 주의 말씀을 따르는 문제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주의 말씀에 살기로 작정하고 그것에 스스로 자원하여 따른다면 그렇지 않았을 때 느꼈을 불편함을 느끼지 않듯이, 불평의 상황에서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고 자원하여 감사한다면 쉽다.

감사할 상황이 아닌데, 분명 하루 종일 일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안되기만 하는 날에도 감사해야하는가의 문제와 불평도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에 의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질문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리고 그 자유의지로 우리가 어떤 것을 하든지 그것은 그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자원하여 그의 말씀에 따르고 지혜를 좇기를 바라시지 말씀을 거부하고 반대되는 삶을 살아서 심판을 받기 원치 않으신다.

감사는 저절로 나오는 상황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더 빛을 발한다. 어둠 가운데서 빛이 비추면 더 밝게 느껴지듯이 말이다.

브루스 올마이티와 자유의지

짐 캐리 주연의 <브루스 올마이티>에 보면 하나님으로 나오는 모건 프리먼이 짐 캐리에게 “인간의 자유의지는 조정할 수는 없다네”라는 대사를 날려준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를 조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브루스 올마이티의 후속 버전이 에반 올마이티의 주인공인 에반은 뉴스 진행 중 대사가 꼬여서 대단히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그것은 역시 에반이라는 사람의 말하고자하는 자유의지 인 것이다.

영화에서 재미라는 요소를 살리기 위해서라지만 앞서 전제한 대사에 대한 룰(!)을 지켜야하지 않을까. 그 장면을 보면서 그저 웃고 넘기면 다행이지만, 딴지를 걸거나 자신의 실수로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이건 신에 의해 실수를 하게 된 것이 아닐까라며 엄청난 고민에 빠지고 자살에 이르러 버리는 사람도 있지않을까…..

….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