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강박에 대한 단상

절대 바톤 놀이 를 포함한 몇 건의 포스트에서도 밝혔지만 어떤 블로그를 보기 시작하면 처음부터 읽는 습관이 있다.

사실 습관이라기보다는 강박에 가까운데, 지금도 그렇게 읽고 있는 블로그가 4곳이다. 그나마 한 곳을 거의 다 읽어가기 때문에 3곳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듯 하다.

이전부터 왜 이런 강박이 생겼을까하고 생각해 보려고 하다가 글을 얼른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얼른 돌아서버려서 그다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지금 문득 떠 오른것은 통신 시절의 일이다.

나우누리에서 대화에 끼어들기라는 글이었던 것 같았는데, 그 글에서 말하기를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끼어들기보다는 기존에 어떤 내용들이 오가고 있는지, 어떤 분위기인지를 파악한 뒤에 참여하라는 글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은 단지 대화방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커뮤니티에든지 그 곳의 분위기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인지 어떤 곳에 끼어들기 전에 짧은 시간이나마 분위기를 파악하는 시간을 가지고 그들의 대화에 무리를 가하거나 중단되지 않도록 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RSS구독을 하면서 발생한다. 그저 구독 목록에 넣어놓고 최근에 오른 글을 읽어가면서 분위기를 파악해도 될 듯하고 사람의 실시간 대화에 끼어드는만큼 분위기를 망칠 가능성도 적은데, 그런 사실로부터 시작한 순차적 글읽기 강박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 몇 주간 좀 바빠져서 읽지 못했던 글을 지금까지 약 1주일에 거쳐 다 읽어내고 나서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 그만두자… 얼마 전에 읽었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논술 지도책(?)에 많은 것을 읽기 보다는 한 권을 읽더라도 논점을 파악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논리적인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했듯이, 많은 것을 읽기 보다는 글 하나를 읽더라도 정독을 해서 논리를 파악하자!

….. 라고는 하지만 쉽게 고쳐질 것 같지는 않는다. 속독 하는 것을 연습해야겠다. 내용도 파악하고 빨리 읽고… 그것 만이 살 길일까? ㅡㅡ;;

고집

요즘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도통 리더에 오른 글들을 읽을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밀리기 시작한 글들은 어느새 몇 백건을 상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필자가 여전히 난독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이며 리더에 등록되지 않은 글들 – 예를 들면 새로 구독하게 될 블로그의 글 – 도 만만치 않게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모든 글들을 다 읽어내려고 고집을 피우고 있다. 이건 누구에게 강요를 받은 것도 아니고, 절대적인 의무감을 가질 일도 아닌데 말이다.

분명히 자유에 의한 것인데, 유독 자신에게만은 이리 엄격할까 싶다. 별 것도 아닌 일인데 말이다.

우리가 신문을 읽는 이유..

신문을 왜 읽는다고 생각하는가. 그 전에 읽는 행위는 어떤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을 먼저해야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된다.

읽는다는 행위는 대부분 알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 표지를 이해하기 위해 읽고, 어떤 사실을 알고 남들에 비해 더 많은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만큼의 힘을 가지게 된다.

뉴스(News)라는 것은 새로운 것을 알리는 대표적인 단어이다. 신문의 영어식 대표적 표현은 newspaper인데, 이 것 역시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종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녹색평론》제80호
2005년 1-2월호 :: 과학기술의
덫에 갇힌 언론 / 강양구

최근에 mentalease의 글을 처음부터 쭉 읽어나가고 있는데, 그 중 누가 황우석에게 꽃을 던질까라는 글을 읽으면서 본문에 첨부된 링크를 통하여 읽게 되었는데, 언론의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자세에 대한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마지막까지 하게 된 생각은 언론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읽는 행위를 통해 정보를 획득하는데 읽는 행위는 문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문자 뿐 아니라 그림이나 사진으로 그 내용을 읽고 있으며, 분위기를 읽어낸다. 여기에서 읽는다는 표현을 이렇게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은 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그 내용을 통해 단지 문자에 대한 이해만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문자를 통해 사실을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보조적으로 그림이나 사진이 이용되고, 도표도 이용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람은 읽는 행위를 통해 정보를 획득하고 얻은 정보의 양과 적절한 시기의 사용을 통해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모든 정보가 힘을 주는 것이 아니다. 정확한 정보만이 최후까지 그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부정확한 정보는 아무리 빠르게 전한다고 하더라도 힘을 가지기는 커녕 정보를 제공한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들기까지 한다. 오히려 역효과를 내게 된다.

우리가 신문을 읽는 것은 이러한 힘을 얻기 위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일단 알기 위함이다. 이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론의 하는 일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실을 전하면서 일반인들, 즉 비전문가인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적절하게 해 주는 것이며, 그런 기능이 적절히 수행되고 독자들의 이해가 올바르게 이루어질 때 언론의 기능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문만이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신문이라는 매체는 여전히 활용되고 있는 정보의 전달자이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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