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2mb

나는 건설이다 에서

  • OldBoy댓글:2008년 1월 18일 18:52 편집그럼 국민들은 좀비인가요? 흑흑흑 ㅠㅠ응답
  • cansmile댓글:2008년 1월 18일 19:42 편집@OldBoy – 2008/01/18 18:52
    글쎄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렇긴 한데요.나는 전설이다에 보면 윌 스미스가 살던 동네에 좀비들이 득시글 거리기는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좀비가 아닌 사람들이 모여서 살잖아요?좀비처럼 어떤 본능에만 충실한 사람들이 2mb를 뽑았잖아요.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혹은 그저 단순한 의미로 뽑기도하고요.응답
  • OldBoy댓글:2008년 1월 19일 08:25 편집@cansmile – 2008/01/18 19:42
    가능하면 더 멀이 떨어져 살아야겟군요! 응답
  • cansmile댓글:2008년 1월 19일 17:14 편집@OldBoy – 2008/01/18 18:52
    그러고보니 윌 스미스 분의 역할이 그들을 위한 치료제 개발을 했기 때문에 전설이 된건데, 좀비들의 왕(?)으로 여겨지는 2mb가 그들을 치료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살짝 상상해 봤습니다.응답

이런 댓글들이 오갔는데, 정말 생각해보니 그렇다.

일단 이미지상으로는 2mb씨가 도드라져보이지만, 영화의 내용 – 원작 소설의 내용은 제쳐두고 – 으로만 보면 윌 스미스분의 박사가 결국엔 좀비들을 구원한다는 내용인데, 결국엔 2mb씨가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을 정상인(!)의 상태로 돌려놓는 역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어색함, 부담감

오늘은 근 1년만에 친구 한 명을 만났다. 물론 중간에 다른 친구들도 만나고 이 친구와도 간간히 연락은 했지만 다른 때와는 다르게 꽤나 오랜시간의 공백이 있었던 것마냥 반갑게 만났다.

그런데 만나는 중간 중간에 그 친구에게서 부담감이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면 그 친구가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 친구와 밥을 다 먹고 일어나면서 오늘 좀 부담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더니 아니라고 했다.

그런 대답을 듣고 나니 그 친구가 아니라 필자가 그 친구를 무의식 중에 부담스러워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을 자꾸 해서 그런것이었을까 싶다.

여하튼 그 친구는 연애를 오래하는 타입인데, 헤어진 사람들을 마음에서 완전히 정리하는게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반면에 필자는 이별한 사람은 대부분 상대방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은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나 싫다고 떠난 사람 그리워 해 봤자 시간 낭비 라는 생각때문인지 얼른 정리를 한다고 했더니 그 친구도 같은 생각을 하지만 마음이 쉽게 잊지 못한다고 한다.

머리속에서는 싫어서 헤어지자고 했지만, 어딘가 모르는 구석진 곳에 미련이 남게 된다고 하면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 마음이라는게 쉽게 변할 순 없지만, 얼른 밀어내려고 노력해야 밀려나가는게 않을까. 추억을 되새기는 것과 미련을 남기는 것… 어떤 차이를 가지는 것일까.

키퍼 있는 골은 넣으려 하지 않는다

이성과의 교제에 관련된 이야긴데, 필자의 입장에서 키퍼는 남자이고, 골은 여자이다. 물론 이런식으로 비유하는 것은 좋지 못한 평을 받겠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비유라고 생각되어 사용해 본다.

이전에는 남자친구가 있더라도 날 좋아해줘서 사귀게 된다면 상관없다고 잠시나마 생각했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고는 그렇지 않겠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이성관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라서 또는 여자라서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사랑한다는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새로운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나중에 나와 사귀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갈 수도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무슨 바람둥이나 사기꾼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남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세대가 만남과 이별에 대해 쉬이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만남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최소한 연인사이에서만큼은 하지 않아야 하는 행동이다.

전에 어른들로부터 이력서에 기록이 복잡하면 취직에 어려움이 있을것이라면서 말씀해주신 것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여러번 옮기는 사람은, 바꿔 말해 한 곳에서 인내하지 못하고 자주 직장을 옮기는 사람은 새로운 직장에서도 힘들고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이유로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를 사귀려고 하지도 않고, 제의 해 오더라도 거절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 입장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아무 상관없지는 않을거라고 생각된다.

포기하는 것은 인간일 뿐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하의 글을 기독교 전체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며, 개인의 신앙 고백이지만 사실에 근거하여 글이 작성되었음을 밝혀둔다.

그 동안 너무 쉼 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근 한달여를 RSS구독을 미뤄왔다.1 그러다가 방학을 시작하자마자 그 동안 읽지 못했던 포스팅들을 읽어내려가고 있다.

그러던 중 오늘은 리디의 생각하는 섬 바닷가의 글들을 읽고 있었다. 그러던 중 On your mark님께서 작성하신 글을 읽다가 문득 다음 부분에서 시선이 고정되었다.

하나님은 모든 영혼을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포기하는 것은 다만 인간입니다.

그렇다. 인간은 신(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오해를 많이 하고 있다. 마치 자신이 다 안다는 듯이 사고를 하고 비판을 해댄다. 그게 무슨 신이냐. 인간을 만들었으면 그를 사랑한다면서 왜 그렇게 고난을 주고 힘들게 놔두느냐. 신 따위 없는게 아니냐. 혹시 포기한 것은 아니냐.

인간은 성경과 역사적인 근거들을 통하여 이성의 힘을 빌어 그를 정의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정의될 수 있다면 난 흥미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끝 없는 탐구의 존재 아무리 알려고해도 다 알 수 없는 존재가 더 흥미 있지 않은가.

하지만 단지 그런 이유에서 저 부분에 시선이 멎은 것은 아니다. 바로 필자의 인생에서도 같은 생각을 갖도록 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하나님을 정의내려버리고는 그것과 달라버리거나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이라고 생각되는 사건으로 이어지면 신은 없다. 그 따위 것은 심리적인 의존일 뿐이다. 라고 단정해버린다.

과연 그런가. 필자는 – 전에도 말했을 테지만 – 굉장히 의심이 많은 인간이다. 모태신앙인이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온전하지 않았다. 끝 없이 부정하고 오해하고 투덜였다. 완전히 그를 신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완전히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중요한건 지금의 필자가 있기까지 인간적인 노력으로 할 수 없었던 성격적인 면이나 성품적인 면에서의 변화는 필자가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하고 변화를 구하고 난 시점 뒤에 눈에 띄일 정도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도 인간이고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진 가장 큰 오해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그런 목표를 가지고 있는게 확실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즉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렇게 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밥 한 숟갈 먹였다고 배부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인간이기 때문에 욕먹을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건 마찬가지겠지만 그런 것을 악용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다른 자들까지도 피해를 보는 것이다.

교회에 다니면서 악행을 일삼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경쓸 이유가 없다. 그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줄 것을 권면하여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이다. 성경중에는 개인이 먼저 권면하고, 교회의 직책을 가진 자들에게 권면을 요청하고, 교회에 권면을 요청해도 안되면 그에 대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어서 그냥 방치하는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방치 이전에는 분명히 단계적인 권면이 있어야 한다.

필자가 느끼는 인성, 성품의 변화를 아무런 행동이 없이 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분명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있으셨고, 그로 인해 변화되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필자에 대해 대단히 개방적이시며 적극적으로 힘이 되어 주시지만 어떤 행동에 대해 꾸짖거나 하지 않으셨다. 물론 그런 것이 무조건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소한 필자에게 있어서는 적절한 대응 방식이셨다고 말할 수 있다.

글이 좀 길어졌는데,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것은 인간들이여 자기 중심적 생각으로 신을 정의하지 말라 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 진정한 하나님의 속성을 알기를 구하고 – 기도하고 – 노력하라는 것이다.

  1. 방학이 끝나면서 Google Reader라는 존재를 알면서 HAN RSS에서 갈아타보려고 사용해 보고 있는데 글들을 쭉 읽으면서 웬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한 RSS와는 별 다른 기능의 차이는 없는듯 한데 어딘가 불편하다.[]

감성과 냉정

제목을 적으면서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작품의 느낌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글은 nonem_Blog에서 요즘 작업이라는 글을 보면서 필자에 대해 몇 자 끄적이려고 적었다.

필자는 어려서 눈물이 많았던 아이였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울 일이 많았는데, 그 때마다 부끄러움이나 스스럼 따위 없이 울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감성적이었다는 것의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런 상태로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었는데, 그 때는 –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 예능 계열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비록 집안 내력 상 예능에는 소질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림을 그린다던가 음악을 만든다던가 하는 것에의 관심은 그런 소질의 부재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만들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Dr. Halo라는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단지 끄적이던 것이 고등학교에서 이르러서는 포토샵으로 이러 저러한 작품(!)이라는 것을 만들기에 이르렀고, 지금도 그다지 특출나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학생들의 눈에는 괜찮아 보일 정도의 물건을 내놓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음악 분야에 있어서도 그랬는데, 중학교 때 미디의 존재를 알았지만 제반 장비를 마련하기에는 재정적 여건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기본 사운드 카드에 내장 되어 있는 것을 이용하는 프로그램만을 이용한 작곡이었다. 당시 컴포저라는 프로그램으로 마우스로 일일히 찍어 만들었던 음악들은 음악적 지식이 없었어도 나름의 감성을 표현한 작업들이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지만,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군에 입대하게 되면서 직책 상의 필요에 의해 그런 감성을 의도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게 되었다. 좀 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자리에 앉게 되면서 감성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서는 스스로도 놀랄만큼 냉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는데, 전 만큼이나 눈물이 나오지 않는것이다. 분명히 눈물을 흘려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종교적인 체험에서 그렇게 잘 나오던 눈물은 마치 가뭄이라도 난 것처럼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음악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어느새 마음 속에서 울려나던 멜로디들은 침묵을 이루었고 그래픽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도 전만큼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군을 전역한지 1년이 넘어가면서 전만큼은 아니지만 감성이 조금은 회복되어진 듯 하다. 마음 속을 울려주는 멜로디들은 여전히 울리지 않지만 이만큼이라도 회복되어진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 때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 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단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서 감성이 메말라 가는 것인가라는 질문도 던져보지만 그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과 비례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올 뿐이다. 다시 이전처럼 감성인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