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민노씨의 글을 읽어내리다가 아거셔스에 등록되어있따는 고종석 논설위원의 글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이 나서 옮겨 적어본다.
아래의 글은 제가 군입대(2000년 9월 1일)하는 날 아버지께서 전해 주셨던 시이다.

아들에게

네가 태어나던 그 해는 무척 더웠단다
5월의 함성이 틀어 막혔고
위로 가던 철도가 끊겼고
통하던 전화선이 잘렸기 때문에

세상이 싫었을까 두려웠을까
한달이나 늦게 나온 네녀석으로
의사의 가운은 오줌세례 받았고
우렁찬 울음은 할애비의 기쁨이 되었었단다

한해 두해 어느덧 스물 한해 9월
5월의 함성은 공원이 되었고
끊겼던 것들은 다시 이어졌는데
그 날의 군복이 우리를 가르는구나

싫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세상을
너를 위해 십자가 진 예수님을 보면서
교관의 구령으로 대한의 남아되어
풍성한 주의 열매 맺으려무나.

필자는 1980년 7월 3일에 태어났는데, 출생지가 다름 아닌 전라남도 광주이다. 광주통합병원1에서 태어났다. 다들 알다시피 5월에 시작된 항쟁의 시끄러운 세태로 인해 그 당시 광주에서 5월, 6월의 출산 예정이었던 아기들이 한 달 정도 이후에 나오는 경우가 좀 있었던 모양이다.

그 중에 필자도 포함되는데, 예정일인 6월 3일에서 무려 한 달이나 늦게 나오게 되었다. 나왔어야 할 시기가 지난 후 11개월에 출생하면서 의사의 가운에 소변을 보았다고 한다.

그 당시에 좀 우스운 일이 있었는데, 필자는 그나마 1달이나 늦게 나오면서 무려 12시간의 진통 후에 나왔다고 한다. 오전 9시에 진통이 시작되어 오후 9시가 넘은 시간에 나왔는데, 젊은 아빠2는 그 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의 동생에게 그 자리를 맡기시고 병원 앞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고 계셨다고 한다.

신혼 부부들에게, 특히나 새신랑에게 흔히들 하는 말 중에 임신 중에 책 잡힐 일은 되도록 하지 말라는 게 다 이유가 있다.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종종 어머님은 그 이야기를 하시곤 하시기 때문이다.

당시에 이 글을 받아서 지갑에 넣고 육군훈련소와 부사관학교를 거치고, 자대에 배치받아 관사에 생활하면서까지도 몸에 가지고 있었다. 군생활 2년차 정도에 이 시가 들어있던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다행히 어떤 경찰분이 주워 보내주셔서 다시 찾았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모습은 여러가지로 권위적이었는데, 이 시를 접해서인지 조금은 다른 존재로 느껴지기도 했다.

  1. 현재는 광주 그 자리에 없고 수도통합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성남시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 당시 아버지는 26세[]

SAW Series

얼마 전에 Ch. CGV에서 SAW 2의 결말 부분을 우연찮게 보게 되었는데, 이전의 1도 일부분만 보았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래서 이번에 SAW 시리즈를 차례대로 보기로 했고 보고 있다.

사실 필자는 공포물이나 하드고어류를 보아도 별반 섬칫해하거나 하지 않았는데, 별 것 아닌 장면에서 섬뜩해 졌다.

그것은 바로 2에서 마약 주사를 위한 주사기 더미 위에 떨어지는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랬다.

정말 그 순간 섬짓했다.

의사들은 항상 차가운 의학용어로 내가 죽은 시체나 다름 없다는걸 돌려말하지

출처 : SAW III 중 24:50~54

이 대사는 직쏘1가 그가 암 판정을 받은 병원의 의사 중 한 여성 의사의 답변을 들은 뒤의 대사이다.

저 대사를 들으면서 생각해 낸 것은 얼마전 있었던 순천향 병원의 여중생 사건이었다. 정말 잊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가 되면 다시 언급하고 싶어지는 계기가 생긴다.

또 한가지는 의사들의 어쩔 수 없는 직업적인 말투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필자가 만일 의사였다면 어찌했을까 죽음의 그 무게 앞에서 가볍게 말할 수도 없을테고, 부드럽게 말하려해도 가족들이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경우의 수들말이다. 좀 귀찮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 하는 것 자체가 귀찮다는게 아니라 그 이후에 생길 일에 대한 귀찮음을 말한다.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말하는데도 가족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느끼게 된 것은 잘 하며 잘 살자 이다.

  1. 일본어 ‘칙쇼(?)’가 생각난다. 이 단어의 의미는 ‘젠장’이던가.[]

체 게바라 평전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을 정복하기 위해 많이 공부하여라. 그리고 혁명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 각자가 외따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점을 늘 기억하여 주기 바란다.
특히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누구보다 너희들 자신에 대해 가장 깊이. 그것이야말로 혁명가가 가져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1

이 책 처음 봤을 때부터 좀 괜찮겠다 싶었다. 하지만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아서 필자가 읽는 동안에도 여려 명이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또 그들 중 읽어본 몇 명의 사람들은 재미가 없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재미있었으며 체 게바라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한 명 만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의 후배는 책을 재미있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재미있지는 않았다.

어제 저녁에 마무리 지어지는 부분을 읽으면서 그의 최후에 대한 장면을 묘사해 놓은 장면을 보고나서 참 허탈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에 대해 존경심이 느껴졌다.

자신을 죽여야 하는 그 사람이 자신의 임무를 시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는 자신을 쏘라고 했던 장면에서 말이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예의없는 것들이라는 영화에서 신하균씨가 목사를 죽이는 장면에서 그 비리 목사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생각해 보았다. 나라면 그 사람과 다른 말을 뱉었을까? 자신을 죽이는 사람을 오히려 독려하고 축복해 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났다.

말로는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머리 속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다짐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할 만큼의 성화가 이루어졌을까 싶은 생각이다. 성화라는 것은 ~화… 변해 간다는 말이다. 성화가 완전히 이루어져서 죽는 인간은 없다.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셨던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완전히 성화된 인간은 없는 것이다.

쨌든 체 게바라 평전을 읽으면서 뭐든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하는 성질이 제대로 발동했기 때문에 육백 몇 십여 페이지의 책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일정을 소화해가면서 그 많은 페이지의 책 한권을 다 읽었다는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1. 장 코르미에 지음, 체 게바라 평전, 김미선 옮김, (서울:(주)실천문학, 2004), pp. 518~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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