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20년 전에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웹디자인 회사에 취업했다.
다행인진 불행인지 작은 회사였고, 먼저 있던 직원이 이직을 위해 사람을 구하는 것이어서 크게 뛰어난 실력이 아니었음에도 채용이 되었다. 가능성을 보고 뽑은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출근했더랬다.
그 당시에는 웹 디자인과 웹 프로그래밍이 지금처럼 확실하게 구분이 되었던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인지 그저 작은 회사였기에 그런 것이었는지 혼자서 디자인과 개발 업무를 다 했다. 그래봤자 웹 디자인이 전문인 회사가 아니었고 중소기업 소개 홈페이지 만드는 정도였으니 프로그래밍이라고까지 할 것이 없었다. 그저 기본적인 메뉴 동작에 필요한 자바스크립트만 작성하면 되는 정도였다.
졸업한 고등학교는 정보산업고등학교였는데, 당시로서는 시범학교로 개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얻고, 실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어서 이것 저것 언어들을 공부하고 실습해볼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내었기에 채용된 회사에서 필요한 정도의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다.
취업된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던 과장님이 창업하신다고 하셔서 그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가 1년 정도 뒤에 그만두게 되었다. 진로가 완전히 바뀌어서 전혀 다른 분야로 대학을 하고 공부를 하고 그렇게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작은 프로젝트
작년 말부터 프로젝트 하나를 맡게 됐다. 개인적 필요에 의해 어떤 언어를 배우려고 하는데, 강의하시는 선생님과 얘기를 하다가 해당 언어를 학습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사실은 그 선생님과 연결해 준 사람이 전에 웹 디자인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었는데, 사전에 개인 업무에 크게 지장이 없는 선에서 해 드릴 수 있다고 했다.
개발하려는 웹사이트는 이미 그 선생님이 소속된 기관 서버에서 돌아가고 있었는데, HTML과 JS로 구성된 사이트였다. 하지만 기관 서버에 문제가 생기고 사이트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어서 사실상 페이지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상황이 되니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검색을 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트스트랩1을 이용하면 이전 사이트 수준 정도로는 금새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선생님께 제안하고 시간이 나는대로 필요한만큼 만들고 있다.
20년의 세월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기억났다. 설명이 잘 되어 있는 페이지가 구성되어 있고, 또 필요한 기능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의지
사이트 제작을 의뢰하신 선생님께서 일을 조금 더 크게 확장하고 싶어하셔서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였다. 선생님과 같이 가르치시는 선생님 몇 분과 선생님께 배운 학생 몇이 팀에 합류하였다.
각자의 영역을 나누고 일을 분배하는데 개발팀에 포함된 사람이 나 말고 하나 더 배정되었다. 이 사람은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개발팀에 소속되게 되었다.
처음 이 사람이 컴공과2를 나왔다고 했을 때, 궁금증은 이것이었다.
이 사람은 불가능한가?
그 당시의 컴공과에서는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을까? 그래서 물어보았다.
“컴공과였으면 프로그래밍 가능하지 않아요?”라는 질문에 그는 “오랫 동안 하지 않아서”와 “그 때에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였다. 이 사람도 해당 분야에서 계속 공부하지 않고, 지금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공부하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겼으나,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은 ‘정말일까?’
가끔 조카들과 놀아주는데, 둘째 녀석이 아직 어려서인지 들고 흔들고 데롱 데롱 매달려 흔들리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가지 일로 몸이 곤하면 피곤하다고는 하지만 놀아달라는 녀석의 눈길을 무시할 수 없어 앉아서라도 다리에 올려두고 흔들흔들해주고는 한다.
어제인가 조카에게 ‘아빠는 이런거 안 해주니?’라고 물었더니 ‘아빠는 허리가 아플까봐 안 된데요’란다. 그래서 나보다 10살 많으니 그런가보다 해서 ‘아빠는 나보다 10살 많아서 그래’라고 답변했더니 동생은 피식 웃으면서 ‘그 사람은 오빠 나이 때도 똑같은 소리 했어’였다.
체격이 좋지 않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원래 허리 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3 아프다고 한 것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허리가 아플까봐라고 아이와 놀아주지 않는 것은 그저 아이와 놀아줄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닐까?
정말로 허리에 지병이 있거나 문제가 있어서라면 미안할 일이 겠지만 지금까지 상황으로 봐서는 그리 미안할 일이 아니다.
적지 않은 시간의 경력 단절이 있다면 두려움이 있을 것이고 도전한다고 해도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기에 힘이 드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그럴 의지조차 가지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일도 못하는게 아닐까? 피곤하고 힘이 들어도 아이와 놀아줄 의지가 있다면 그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지 않을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