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의 차씨들

민노씨의 글을 읽다가는 ‘실용’주의와 언어 제국주의: 이명박 정부의 영어 이데올로기를 접하게 되었는데 해당 글에서 근거로 삼고 있는 글의 링크를 따라가보니 조선왕조실록의 홈페이지가 나왔다.
이러저리 돌아다니다보니 당시의 인물들을 성씨로 검색하는 메뉴가 있어서 본관(연안차씨(延安車氏))으로 검색해 보았더니 총 5건이 나왔다.

성명 신분 시호 본관 생몰년
차약송(車若松) 기타시대 – 무인 연안(延安) ? ~ 1204
차예량(車禮亮) 여명(汝明) 풍천(風泉) 충장(忠莊) 연안(延安) ? ~ ?
차원부(車原頫) 사평(思平) 운암(雲巖) 문절(文節) 연안(延安) 1320 ~ ?
차천로(車天輅) 문반 부원(復元) 오산(五山) 연안(延安) 1556 ~ 1615
차충량(車忠亮) 여서(汝恕) 연안(延安) ? ~ ?

음… 필자는 연안차씨(延安車氏) 강렬공파 39대손이다.

말이 나온김에 자료를 더 찾아보니 연안차씨의 유래도 있다.

황제(黃帝)의 후손인 사신갑(姒辛甲)께서 고조선 평양 일토산(一土山) 아래에 살면서 성을 왕씨(王氏)로 하고 이름은 조명(祖明)이라 하였다. 고조선말 그의 후손 왕몽(王蒙)이 기자조선 준왕(準王)의 모함을 받아 7남 림(琳)과 함께 지리산으로 들어가 숨어서 살게 되었다. 이때 몽은 자손번창을 이유로 왕씨(王氏) 성자(姓字)를 전자(田字), 신자(申字), 차자(車字)로 고쳐 성을 차씨(車氏)로 하고 이름을 무일(無一)로 하였다.

조금 더 파고들어가봤자 머리만 더 아플 뿐이기에 여기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