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성교육

미디어몹에서 딱정벌레님께서 아드님의 성문제에 대한 글을 올리신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고, 4편까지 올라와 있는 것을 알고는 새벽에 중간시험 기간 공부 중에 짬을 내어 읽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성교육을 시킬까라는 질문에 대한 간접답변정도로 참고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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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아직 미혼인데다가, 아직 결혼 예정도 없는 총각이지만 성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꽤나 관심있게 지켜보는 편이다. 자녀라는 대상에 고정되지 않은 관심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여타 총각의 관심과는 또 다른 차별성을 가진다. 이 관심은 여타 총각들이 가질 수 있는 관심으로부터 발생되었지만 지금은 그것에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성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또 유지해내려고 하는 중이다.

쨌든 다시 딱정벌레님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아드님께서 PC로 컬러풀한 장면을 감상하는 것에 놀라시고 그것을 계기로 아들의 첫 경험(?)의 교사와의 관계가 자신의 그것과 다름 없음에 안심하시는 모습까지 잘 읽어내려갔다. 그 부분까지 읽어 내려오자 필자의 머리에서는 내 첫 경험은 어떻게 하게 되었는가로 생각이 이어졌다. 아! 라고 생각한 순간 잠시 잠간의 정적이 돌았다. 필자의 경험은 그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필자가 성에 대한 매체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2학년엔가 3학년엔가, 아니 4학년때 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께서 필자가 가지고 싶어하던 PC를 어디선가 구해오셨는데 그야말로 XT급 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 이상의 성능을 가진 PC가 사용되었던 시절이기는 했지만, 아버지께서는 집안 사정상 최신의 PC를 구매해주실 능력이 되지 않으셨다. 그렇기도 했지만 필자의 관련 지식은 그것으로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행복했다.

나도 PC가 생겼구나! 라고 생각하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다. PC를 들여오고나서 변화된 것은 활동이 전보다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과 PC화 동화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님께서는 항상 바쁘셔서 동네에서 어르신들이 필자와 동생만 보면 부모님을 욕하고 있을 정도로 꼬질 꼬질하고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랬기 때문에 더 PC에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PC와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곧 PC 통신과도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 PC 통신이 시작되었을 때는 관련법이 제대로 정립되어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말 그대로 통신은 무법천지였다. 뭐 그 나름의 서비스에서 정의하는 제한사항이나 그 비슷한 제지가 있을만한 짓을 초등학교 5학년엔가 6학년에는 해 본 기억이 없다. 그저 그 곳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은 초등학생이 접하기에는 아직도 부담스러움을 느낄만한 것들이었다.

먼저 첫 경험의 교사와의 관계는 나 자신이다.

흔히 친구들이 알려준 방법을 해보는 것으로서 그 친구는 선생님이 된다. 자위에 대해서만큼은 그가 나보다 먼저 알았기 때문에 성립될 수 있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딱정벌레님의 아들의 성 3번째 글의 댓글에 개인 경험이라는 분이 올려주셨던 내용처럼 필자는 누구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이미 어떤 자료를 접하기 전에 자위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당시에는 그것이 자위인줄 몰랐다. 성기가 손에 의해 자극을 받고 그를 통해 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자위생활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이 그다지 중독성을 가지지 않았다.

야설을 읽다 걸린것은 치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1

당시에는 케텔에서 하이텔로 바뀌고 난 뒤인것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개인이 인터넷 서버를 운영하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인터넷이 아니라 PC통신 서비스를 연결하기 위해 BBS 프로그램을 돌리기도 했다. 또한 Hitel 외에도 다른 경로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음성적인 방법으로 이런 저런 것들을 많이 구할 수 있었다. 속도와는 상관없이 음성적인 자료들은 어떻게해서든 수요자와 공급자가 있는 듯 하다. 야설은 그렇게 읽게 되었다. 사실 그 당시는 그림파일의 화질이나 수준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야설로 많은 부분을 충당할 수 밖에 없었다.

나름 소설의 형태로서 조잡하지 않았던 소설들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텍스트 파일을 읽다가는 부모님들께서 들어오시는 소리를 듣고는 정리도 않고 그냥 PC를 다운 시켜버렸다. 그리고는 기억에서 까맣게 지워져버렸다. 야설을 읽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전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굉장히 정색을 하시면서 필자를 부르셨다. 이게 뭐냐고 하시며 PC화면을 가리키셨다. 모니터에는 이전에 부모님께서 들어오셨을 때 놀래 정리하지 않았던 파일이 텍스트리더와 함께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물론 딱정벌레님의 아드님처럼 풀컬러판 화면은 아니었지만, 부모님들께서는 나름대로 충격을 받으셨다. 필자가 전에도 몇번인가 말했지만 아버지께서는 각목으로 필자를 다스리셨다. 그리고는 몇 대 맞을 것인지를 정하고 어머님은 잡으시고, 아버지는 때리셨다. 유일한 지원군인 할머님조차도 어디 나가신모양이었다. 그렇게 맞으니까 울게 되었고, 그것으로 부모님들은 이제 더 이상 야설은 안 읽는다는 약속을 받아 내셨다. 그 파일들을 제거되었다.

딱정벌레님의 글에는 필자의 부모님들께서 성에 대해 자유스러웠다고 댓글을 달아놨지만 초등학교 시절에서부터 자유롭게 해 주셨던 건 아니다. 그 후로 강압적이고 두려운 아버지는 어느새 필자의 친구와 같은 아버지로 변해계셨다. 어린시절 필자의 눈에 물을 만들게 했던 몽들이들은 이미 그 자리조차도 잃어버린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야설은 그만 읽었지만 자위행위만은 계속되었다.

한달에, 또 어떨 때는 2주일에 한번 정도로 자위행위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 서울에서 부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친구들이 돌려보는 만화책을 보게 되었다. 필자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골든보이(Golden Boy)이다. 원작 자체만으로도 좀 변태스러운 구석이 있는 만화인데, 그것을 또 다른 버전으로만든것이었다.

일본에서 만든것을 빨간모자 아저씨들이 수입해서 판매하는 것들이었다. 그것으로 다시 야설, 야사, 야동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고등학교를 정보산업고등학교를 들어갔고, 학교에서는 인터넷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친구들이 있을 수업시간이나 모든 수업이 끝난 직후에는 힘들었다. 혼자 있을 시간에 잠시 짬을 내어 보기도 하고 했다.

인터넷은 점차 학교에서 집으로 더 빠른 방식으로 지원되었고, 좀 더 쉬운 접근이 가능해졌다. 지금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지만, 야동, 야설, 야사는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허구적인것이라는 것과 보는 이로 하여금 더 흥분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과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전만큼 자주 접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필자가 중고등학생이라면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쉬이 접할 수 있는 것들을 아무런 비판의식이 없이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이유로 성에 대해서 무조건 혼내거나 금지시키는 것보다는 공개적으로 가르치고 유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 여기서 부모님들의 성에 대한 개방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어린 시절의 그런 사건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성적인 표현들에 대해 다른 부모님들이 그럴 것이라는 필자가 가진 기준보다 더 개방적이셨다고 생각된다. 중학생이던 동생과 필자 앞에서 ‘자지’라는 표현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셨던 것이다. 그저 고유명사를 말하는 것 뿐인데 그걸 천시하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이상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주말의 명화와 같은 장면에서 키스 장면이 나오면 보지 말라던가 하는 말보다는 그냥 뽀뽀하는 건데 뭐 어떻냐는 식으로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어머님께서는 간호장교 출신이시라서 의학적인 관련 지식을 말씀해 주시고는 했다. 물론 성관계나 직접적인 세세한 표현은 없었지만, 묻는 것에 대해서는 그대로 대답해 주셨다. 지금의 성에 대해 개방적인 생각과 굴절되지 않은 성 가치관은 부모님들의 이런 개방적인 행동에 의해 생겼다고 생각한다.

이것으로 성에 대한 관심, 처음의 경험에 대한 글을 마치려고 한다.

딱정벌레님의 연재는 계속되어 7편까지 나온것을 확인했지만, 개인적으로 약속드린 부분이라 미흡하나마 글을 남긴다.

  1. 히포크라테스가 정의한 기질 중 다혈질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행동력을 뛰어나지만 치밀함에 있어서는 우울질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두 기질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울질보다는 다혈질이 더 우세인 듯 하다.[]

난 변태인가?

남자라면 누구나 머리속에 응큼한 생각 한 둘씩은 하고 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응큼한 생각을 그대로 방치해 뒀다가는 어떤 죄를 더 짓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머리속 상상으로 머리를 분쇄시켜버린다. 온갖 알고 보고 들었던 절단할 수 있는 도구들이 머리 속에서 본인의 머리를 잘게 부숴버리는 상상으로 그런 응큼한 상상을 마무리 시키는데, 참 그 때의 기분이란 참 묘하다.

꽤나 잔인한 장면으로 연출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변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뭔가 자신을 분쇄시키면서 응큼한 생각을 없앤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잔인한 장면으로 쾌감을 얻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