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Show 5 (1) 설치와 실행

방송 설비가 잘 되어 있고 설비를 운용할 수 있는 인력까지 충분한 교회들이야 이미 좋은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양한 기능을 포함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은 한 번에 적지 않은 비용을 내거나 월 구독료를 내는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바이블쇼(BibleShow)는 성경 본문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되어 있고, 그에 필요한 기능을 안정적으로 실행한다. 발견한 이후로 지금까지 사용하면서 크게 문제가 되었던 적이 없고, 다른 복잡한 기능이 필요없고 성경 본문만 훌륭하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소개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

BibleShow 는 Microsoft Windows 운영 체제를 실행하는 개인용 컴퓨터에 연결된 모든 비디오 디스플레이 장치(모니터, 프로젝터, TV 세트, HMD)에서 성경 구절을 보여주기 위한 소프트웨어 솔루션입니다. 이 응용 프로그램은 모든 사용자에게 무료로 공유되어야하며, 전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전파하려는 목적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이 도구는 교회, 기독교 단체, 설교자, 성경 공부 모임 지도자 뿐만 아니라 성경 구절을 즐겨 읽을 수 있는 독자에게 주로 유익합니다. 사용자는 현대적이고 매력적인 디자인을 즉시 보게 됩니다.

바이블쇼 홈페이지발표 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번역

개인적으로는 단일 실행파일로 되어 있는 홀리뷰어를 좋아했지만, 사용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오타가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당황은 담당자 몫이었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저런 프로그램 중에 그나마 완성도가 있었던 프로그램은 이지슬라이드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불편한 부분이 있어서 검색하다가 발견하게 된 것이 바이블쇼이다.

내려받기

프로그램은 홈페이지의 다운로드 페이지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지금은 5.3이 최신 안정판이고 5.4판이 몇 가지 문제점을 수정하여 얼마 후에 나올 것이라고 한다.

홈페이지: https://www.bibleshow.net

바이블쇼는 루마니아
바이블쇼 홈페이지

개발자는 Miodrag Rechesan 인데, 루마니아인이어서 영어와 함께 루마니아어로 홈페이지가 서비스된다. 좌측 메뉴에서 Download 를 누르면 아래와 같은 화면이 나타나는데, 상단에는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는 링크가 있고, 그 아래에는 성경 역본을 내려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내려받기(Download) 페이지

내려받을 수 있는 파일이 3개가 있지만 크게 문제가 없다면 제일 위에 있는 파일을 받으면 된다.

설치하기

내려받은 파일 BibleShow5.exe

파일을 내려받은 위치로 이동하여 BibleShow5.exe1를 찾아 마우스 두 번 누르기를 하여 설치를 진행하면 된다.

설치자 첫 화면

설치파일이 정상적으로 실행된다면 위와 같은 화면을 만날 수 있는데, Next 를 누른다.

약관 화면

5.3판의 이용약관 / 소프트웨어 사용권 본문의 내용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용 약관 / 소프트웨어 사용권 계약:
• 소프트웨어 제작자는 성경 구절을 제시 할 목적(주로 교회용)으로만 컴퓨터 또는 모바일 기기에서 BibleShow를 내려받아, 설치하고 사용할 수 있는 제한적, 비상업적, 비 독점적, 재 라이센스 불가능, 할당 불가능, 무료 라이센스를 사용자에게 부여한다.소프트웨어 저자는 성경 구절을 제시하기위한 목적으로, 다운로드, 설치 및 컴퓨터 또는 모바일 장치에서 BibleShow를 사용하는 제한, 비 상업적, 비 독점적, 비 – 비 할당, 무료 라이센스를 사용자에게 부여 ( 주로 교회 용).
• 사용자는 판매, 단기 임대, 장기 임대, 수출, 중개자 또는 공급자의 역할을 하거나 제 3 자에게 권한을 부여하지 아니한다.
• 사용자는 BibleShow 실행 파일과 성경 역본의 수정, 파생물 제작, 리버스 엔지니어링, 디 컴파일, 분해 또는 해킹을 수행, 유발, 허용 또는 승인하지아니한다.
• 소프트웨어 제작자는 소프트웨어와 성경 본문을 사용하여 발생하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 소프트웨어가 무료로 제공 되더라도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수년간의 집중적인 작업이 필요하며 때로는 적절한 리소스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이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데 부끄러운 느낌이 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응용 프로그램이 필수적인 교회는 새로운 성경 역본의 개선과 추가에 대해 어떻게든 기여할 것을 권장합니다.
저작권 (c) 2002-2019 Miodrag Recheşan
www.BibleShow.net

바이블쇼 발표 페이지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I Agree 를 눌러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면 설치할 위치를 입력하라고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변경하지 말고 Install 을 눌러 설치를 진행한다.

설치 위치

다음 화면에서는 설치하는 내용이 주르르르륵~ 올라가는데, 금새 끝나고 나면 아래와 같이 설치를 마치는 화면을 만날 수 있다.

설치 마침화면

여기까지 진행됐다면 이제 사용할 준비가 되었다. 여기에서 표시한 채로 Finish를 누르면 바로 실행된다. 바로 실행하고 싶지 않다면 상자를 눌러 표시를 해제한 후 Finish를 누르면 된다.

실행

이렇게 설치가 잘 되었으면 아래와 같이 앱이 검색이 된다.

윈도우 10에서 bibleshow 를 입력하면 위와 같이 설치된 앱이 나타난다.

설치자에서 따로 묻는 항목이 없었지만 바탕화면에는 바로가기가 보인다.

BibleShow5바로 가기

둘 중에 어느 편이라도 원하는 방식으로 실행하면 다음과 같은 화면을 만날 수 있다.

BibleShow 5.3 설치 직후 실행화면

설치하고 처음 실행하면 아래의 도움말 파일도 같이 열린다.

외국어 울렁증이 있으신 분들이 계실텐데, 다행스럽게도 사용화면을 한국어로 바꿀 수 있다. 다음 편에서 기본 사용 방법과 설정에 대하여 이어가고자 한다.

  1. 물론 판이 바뀌면 파일명이 바뀔 수 있으니 홈페이지 내려받기 페이지에 있는 파일명을 확인해 두어야 한다[]

작은 용기가 필요한 일

하나님 말씀을 믿는다고 거짓말하지 말고, 순종하라!

인생에 있어서 ‘큰 일’을 겪고 난 직후에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 의욕을 잃었다. 사는 것의 소중함이나 일상의 소소한 기쁨 따위에 신경 쓸 여력조차 없어진 순간은 죽는 순간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내 목숨을 쉬이 끊고자 하는 생각까지 가지지 않는 인간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순간도 없지 않았다.

의욕상실

많은 포기와 자기 부정을 겪고 난 뒤에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무엇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스트레스이다. 심지어 적지 않은 나이1에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해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 하고 있던 일을 정리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과 같은 고민이 그 스트레스의 시작점이다.

노화를 퇴화가 아니라 변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년의 삶은 청년의 삶과 비교할 대상도 아니고 결코 뒤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공만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행복은 성공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마흔에게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p. 6

‘마흔에게’는 인간의 변화에 대한 부분, 특별히 이 책에서는 노화가 몸에 느껴지기 시작하는 마흔 살의 변화에서 힘을 잃고 의욕을 잃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이미 마음의 정리가 끝나고, 내 삶은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받아들인 상태에서 이 책을 읽을 때,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알려주는 지표를 발견하게 되었다.

특별히 지금 공부하고 있는 독일어, 그리고 그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다른 사람들이 내게 요구하는 방향성2을 거부하고 내가 가진 방향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중년이 되면 평가나 평판에 개의치 않고 순수하게 배우는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이 든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마흔에게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p. 11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던가? 나 자신에 대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과 큰 일을 겪게 된 원인이 나라는 자책감 등이었다는 점은 언제부터인가 내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인간에게 기본이 되는 생각이 아닌듯하다. 나에게 없는 것을 먼저 살피고 생각한다.

책 리뷰는 아니지만, 이 책의 저자는 가진 것을 생각하는 것이 많은 부분에 있어서 좋은 것이라고 한다. 같은 관점에서 생각을 더 이어 나갈 수가 있다.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가진 것은 참 많다. 인간으로서 몸을 가지고 있고, 부모를 가지고 있다. 주변의 환경들 가운데 우리 모두가 누리고 있는 공기와 자연,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가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소유가 아닌 것을 우리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는 공공재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기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우리가 가진 것이다.

이 많은 것들을 주신 분, 허락하신 분은 우리에게 아무 가치도 요구하지 않으셨다. 그저 주셨고 그저 누리고 있다.

내가 바닥이 보이지 않은 삶의 큰 일 가운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어떤 위로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일어서게 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듣기를 원하시는 그 말씀에서 힘을 얻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에 있는 성령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방식인 것이다.

다른 세계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나의 신앙고백은 ‘그래, 그건 당신 생각이고!’ 정도로 생각되는 ‘다른 생각’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속한 사람에게는 – 그가 누구라도 – 당연히 해야할 고백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누구라도 같은 신앙고백을 하고, 이런 세계관에 속해 있다는 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세계관을 무시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세계가 기록된 성경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믿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우상을 섬기는 이들을 청교도는 거짓 그리스도인이라고 정의한다. 거짓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열매로 증거된다른 성경의 기본적인 증언을 통하여 이렇게 정의하는 것이다.

현실의 어려움을 무시하고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당연히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우셔야 할 우리 인생의 수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면 더 이상 그는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1. 물론 어떤 이에게는 젊은 나이겠지만[]
  2. 금전적인 부분으로의 방향성[]

하나님을 신뢰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두가 복을 받을 수 있을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문구를 들고 다니며 크게 외치고는 있지만, 과연 정말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일단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믿는 것에는 많은 것들이 따르기 마련이다. 믿는 것에 대한 사람의 정신적인 변화와 행동의 변화는 그 모든 것이 가능하게 해 준다.

다만 그렇게 보여지게 할 뿐인 사람들은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구원은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되는게 아닌가!?

믿는 사람을 위해 많은 것들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를 믿는 것을 그 기본으로 한다.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믿는다는 말과 동일시해도 무리가 없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그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그를 위해서는 그의 말을 믿고 따를 수 있는 행동과 마음의 변화를 가져온다.

겉으로는 믿는다고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거짓 사랑은 다만 그에게서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하기 마련이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보면 쾌락을 위한 관계 어떤 만족의 조건을 위한 관계일 뿐이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행동들을 미리 아신 하나님께서는 한나에게 사무엘을 바칠 수 있는 서원을 통해 이스라엘의 제사장을 예비하셨다.

사무엘이 제사장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며 다만 형식적인 것들을 갖추기만 했을 때이다. 외형적으로 봐서는 이스라엘에게 있어 완벽한 승리자로서의 자리가 예비되어 있었다.

하늘을 찌를듯한 이스라엘의 군사들의 사기, 하나님의 언약궤와 그 곁의 제사장들..
하지만 이것들은 외형적인 승리의 조건들일 뿐이다. 이 사건에서 그들에게 없는 몇 가지 필수요소가 있는데, 바로 하나님에 대한 중심으로부터 나오는 신뢰와 그에 따른 행동들이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사무엘상 4장 3절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직전의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지게 된 사실을 말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궁리한다. 여호와의 궤가 함께하면 이길 것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 다시 이스라엘이 패한 요인을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1. 기도하지 않은 것
  2. 패배의 요인을 여호와께 묻지 않고 다시 전쟁에 임한 것
  3.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

1항과 2항은 같은 것이다. 2항과 3항도 연결된다.

여호와께 기도를 하지 않은 것이 무슨 이유가 되겠냐 싶겠지만, 다윗을 예로 든다면 그는 항상 여호와께 작은 것이라도 기도하고 임했기 때문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으며 사울에게서 그의 아들에게서 피할 때 무사히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야의 아내를 범할 때의 그는 인간의 욕망에 사로잡혀 여호와께 구하지 않은채 범죄한다. 이스라엘에게 칭송받는 그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고 구했기 때문에 그런 위치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의 가장 큰 죄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2항을 다루기 전에 3항에 대해 집고 넘어간다면 사무엘상 2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무시하고 제사를 드리기 전에 자신들의 이로운것들을 취함으로써 죄를 범했고, 그로 인해 멸하시기로 정하셨다.

먼저번의 블레셋과의 전투 패배 요인은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죄를 알지 못한 채 그들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언약궤와 함께 그들이 있도록 했다.

여기서 아골의 죄를 처벌하고 승리했던 사건과 대조할 수 있다. 여호수아서 7장에서는 아이성을 공격하는데 있어서 충분하다고 판단된 군사를 보냈지만 패한다. 그리고는 패한 이유를 여호와께 구하고, 아골의 죄를 드러내고 처벌했으며 그 후의 전쟁은 승리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은 패전의 이유를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았으며, 공식처럼 이것 저것들을 준비하고 전쟁에 임하지만 처절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바로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와 이스라엘 자신들의 실수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또는 예수님께서 동행해 주시기를 구한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다. 동행한다는 것에는 우리가 범죄하지 않고 정결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 붙는다. 범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그는 그 범죄에 대해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바로는 여호와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내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그로 인해 복을 받으려면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보여지기만 해서는 안된다. 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따라야만 그에 더하여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순종의 태도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생각 조금하고 기도 많이 해야 한다. 생각이 많으면 일하러 갈 수 없다. 바로 가자! 그리고 뭐가 되든지 간에 꼼지락거려보자!

(중략)

채워주시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중히 보시는 것, 그것은 종다운 순종의 태도다!

출처 : 채워주심1

순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순종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순순히 복종하다2이다.
순순히 복종하기 위해선 복종의 대상, 명령을 내린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야 한다. 물론 어떤 이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는 있지만 마음에서부터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따르는 것은 순종이라고 할 수 없다.
유명한 위인들의 주변에는 자원해서 도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개 그들은 그 위인에게 적지 않은 존경심을 가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 존경심은 감사의 형태를 띄고 감사의 마음으로 그를 따르게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순종과 감사는 하나의 팩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감사한 마음을 보답하기 위해 순종하고 존경심을 가진다.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접을 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노력한다.
내게 있어서 감사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그리고 그 분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모두를 알 수는 없지만 적다고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알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분에 대해 순종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감사에 대한 행동 표현이다.
이 글을 읽고 있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는 있겠지만 그렇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행동으로 마음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또한 깨닫기 바란다. 그리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1. 이상혁, 채워주심, (서울 : 규장, 2007), p.137.[]
  2. 순종(順從)【명사】【~하다|자동사·타동사】 순순히 복종함., 민중국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