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변해 주세요.

KT, 요금제를 바꾸는 비용이 만6천원? By 도아

벌써 10 년도 전의 일이지만 SKT로 갈아타기 직전 KT에서 폰을 개통해서 쓰다가 상담원의 어이없는 응대에 홧김에 SKT로 넘어갔었습니다. 지금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SKT로 넘어오고 나서는 상담원 및 직원의 친절한 대응 때문에 그런 기억이 아주 없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SKT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글들을 읽으면서도 쉬이 타 통신사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KT로 넘어갈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몇 년은 넘어갈까 생각이 들면 금새 이전의 그 상황이 연상되어서  내가 뭐하러 홀대 받으러 KT로 가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뿌리치고 말았지요.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폰이 KT에서 정발되고 통신사를 옮기게 되었는데요, 초기에 아이폰 발송 지연 사태로 연결이 쉽지 않았지만 연결되고 나서의 상담원들의 응대는 이전의 기억이 조금은 사그라 들 정도로 친절했습니다.

그렇게 폰을 사용한 지 1달 쯤 사용하고 있는데 간간히 몇 분 내지는 십여분을  3G신호를 제대로 잡지 못하다가는 결국 서비스 없음 상태가 지속 되어서 전화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렇게 된 것이 연초에 있던 일 중이었기에 일을 마치고 본가 근방에 있는 부천 직영점을 찾았습니다.

서비스 없음이 지속되어서 탈옥 때문인가 싶어서 여러 번 순정으로 복원하여 확인해 본 뒤에도 서비스 없음이 지속되었고 지금 리퍼 받은 폰 역시 탈옥 상태로 쓰고 있은 지금도 몇 달째 관련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걸보면 탈옥으로 인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고로 기계적인 문제여서 리퍼가 확실히 가능하다는 생각에 개인정보 보호의 이유로 DFU 모드로 복원하고는 서비스 인증도 받지 않은 채 들고 갔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 화면엔 아이튠즈 연결 화면이 나오지요.

아이폰을 가지고 가서 접수하고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넘겨주니 대뜸 해킹하셨죠? 라고 하더군요. 조금 황당했습니다. 그 순간에 들었던 생각은 10여 년 전에 겪었던 불쾌한 경험이었습니다.
앞서도 적었지만 확실하게 기계 문제였기 때문에 아니라고 대답하더니 왜 대뜸 해킹했냐는 질문을 던지냐고 따졌더니 탈옥한 사람들 중에 DFU모드로도 복원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이튠즈 연결화면으로 가지고 온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세월이 흘러 아주 조금은 인덕이 수양되어인지 그 자리에서 흥분하지 않고 넘겼지만 10여 년 전의 저와 같은 이제 갓 스무살이 되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또 다시 KT에 대한 불쾌한 경험으로 다시 타사로 돌아가지 않을까요?

글이 조금 길어졌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한 마디네요.

조금만 변해 주세요!

기거하는 곳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지금 생활하고 있는 곳은 기도원이다. 대한수도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1940년에 조선수도원1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시작되어서 지금까지 이어져내려오고 있다.

이 곳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거대한 규모의 성전만을 보고 오해할 수도 있을 만큼 적지 않은 규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곳은 한번에 어떤 계획으로 크게 자랑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40여명 정도 된다. 이 사람들은 이 큰 규모의 시설을 운영하기 위해 자원하여 봉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곳은 다른 기도원들과 달리 일체 이용 요금을 치르지 않는다. 다만 복음성가(3000원)나 이 곳의 역사를
담고 있는 책(8000원)을 자기 마음에 필요를 느낄 때 살 수 있게 해 놓았을 뿐이며, 자신의 필요한 생필품을 살 수 있는
정도의 매점만이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훈련을 받기 위한 것인데, 훈련이라는 단어에서 육체적인 어떤 것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육체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훈련을 받아간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물론 육체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변화를 필요로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스스로
자력에 의해 추구했어도 변화하지 못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을 고치기 위해 영적인 부분의 훈련이 필요하다.

영적인 훈련과 육적인 문제 해결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지만, 영적인 훈련으로 다듬어지면서 육체적인 부분의 문제까지도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 언급을 마치겠다.

쨌든 이 곳에서는 자원봉사자로서 수도원의 일을 스스로 돕고 있으면서 자신의 필요를 충족 – 영적인 훈련 – 하고 있다.

  1. 남북으로 갈리고 조선이라는 이름이 북한과의 관련성을 지닌게 아니냐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박해를 받는 중에 대한수도원으로 개칭.[]

감정보다는 상황에 대한…

2007/10/27 – [나의/일상] – 소닌(성선임) 양의 감정을 통해 눈물을 흘리는 필자이지만 어제는 냉정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무슨 소리인가하면 어제 학교에서 수업을 모두 마치고 지하철을 타기위해 응암역으로 들어갔는데 응암역 근처에 있는 신사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설문을 하고, 점검해 주는 행사(?)를 했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밖에 안 걸릴 듯해서 시작했는데, 검사지에 응답을 하고 응답한 항목들의 수를 세어 적어 담당자의 앞에 갔더니 A, B, C, D, E항목을 보면서 풀이해주었다.

전부 이야기해주지 않고, 제일 낮은(1개) A항목과 굉장히 높은 편(8개)에 속하는 D와 E항목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주었는데, 필자가 예상하기로는 A는 남을 배려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고, D와 E항목은 남에게 얼마나 냉정하게 대하는가에 대한 것 같았다.

D항목은 무려 8개나 나왔는데 이 항목을 이야기하면서 감정보다는 상황을 중심으로 한 행동과 판단을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들을 배려해 줄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아!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싶었다.

물론 이런 성격이 된 것은 스스로에 대해 적극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했던 지난날의 바람이 심하게 이루어진 탓이라고 해야할 듯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MBTI를 했을 때 분명히 I형으로 나왔었지만 최근의 성향에서는 E형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통해 성격이 변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되새김하였다.

고등학교에 접어들면서 내성적이고 수동적인 성격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노력해 왔는데 결국엔 성격이 바뀌어서 지금의 복학한 학교생활에서 필자가 내성적이었다는 것을 알거나 믿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아니기 위해서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말하기 위해서는 직선적인 것이 필요했고 그런 성향은 점차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결국엔 위의 사회복지관의 검사의 결과와 같은 평가가 나온 것이다. 어제(26일) 집에 와서 바로쓸 생각이었지만 뭔가 내키지 않았다.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은 필자가 다시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결심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해도 무관하다.

지금의 외향성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 처럼 말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멋진 신세계를 만들겠다는 우리들의 영웅이 권력을 얻고나면 잔인하고 파렴치하고 이권을 챙기고 비인간적으로 되어버리는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급우편에 서겠다던 반장은 선생님 편이 되어버리고, 국회의원은 제맘대로 당을 바꾸고 뒷돈을 챙긴다. 급우나 지역구의 여론은 안중에 없다.
회사라 하여 예외가 될 수 없다. 진급이나 승진을 하여 보다 권력있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과장 승진을 하면 대리 때보다 목에 힘이 더 들어가고 아랫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달라진다.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어꺠를 펴면서 등이 뒤로 휘어 배가 나오게 된다. 옛날의 그 대리가 아니다.

유쾌한 심리학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 권력 편

  확실히 자리는 사람을 만든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해 보았기 때문에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에 공감한다. 군을 부사관으로 전역했는데, 애초에 지원한 목적 중에 하나가 변화였다. 그 변화라는 것은  조금더 외향적이고 활동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화를 원했다.

  물론 전역한 지금 그런 노력들의 결과로 긍정적인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군 생활은 나로하여금 어떤 다른 인간의 모습을 가지게 했었다. 뭐랄까.. 조금 더 권력 의존적인 행동을이라고 표현하면 적절할까. 어느 집단에든지 수직적인 관계로인해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 다른 집단들보다 조금 더 많은 강제권을 가진 곳이 군이라는 집단이고, 그런 곳에서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짧은 군생활을 했기 때문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지휘하고 있는 곳에서는 스스로 왕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건데 결코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실수들이 많았다.

  군에 처음 입대했을 때 외향적이며 적극적인 행동과 사고방식을 가지자는 목적과 함께 다짐했던 것이 폭력행사나 욕설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군입대전 – 그리고 지금 – 신분이 신학생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다짐을 굳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리는 사람을 변하게 한다. 긍정적인 면이 있으면 부정적인 면도 있는 것이 세상 이치인것이다. 처음 1, 2년 동안은 다짐을 했던대로 부하들에게 욕설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정이 없고 약삭빠른 부하들이 많아졌고, 또 이전보다 군기가 헤이해졌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 사건들로 인해 그들에게 더 이상 정을 가지고 대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생각되었다. 또 상급자들로부터 군기를 바로잡아야하지 않겠냐는 주문을 간접적으로 받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활하던차에 군에서는 작은일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옆 중대에서 전역신고를 하지 않은채 행정병을 괴롭혀서 전역증을 미리 받아 아침 일찍 아무도 모르게 나가버린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근무하고 있는 중대에서는 휴가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고, 중대장님과의 면담도 거치지 않은채 나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던 것이다. 군이라는 집단은 신고가 가장 기본인것을 그들이 몰랐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병사 신분 중에서는 가장 높은 병장의 계급을 가지고 있었고, 전역한 그들 스스로는 준장, 소장, 중장, 대장 다음이 병장이라고 할 정도로 결코 경험이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있을 만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회사의 직급으로 따지자면 과장 바로 밑인 대리격이다.

  조금 주제에 어긋나기는 했지만 그런 상태에서의 내 행동은 조금 더 과격해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고, 저녁에 근무를 서면서 중대소속의 부하들을 모두 모아놓고 적잖이 과격한 방법으로 폭력적인 언어와 행동을 취했다. 물론 여러분들이 흔히 생각하는 구타가 만연한 그것이 아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지만 당시로서는 그렇게 할 필요성이 느껴지는 자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평화적이며 비폭력적인 방법들로 여러면에서 접근했을 때 여러 번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이란 강제력이 없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해서 간 곳이 아니기 때문에 생활 자체도 적극적이지 못할 수 밖에 없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게중에는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으로 상급자인 나로하여금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됐던 부하들도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끊이지 않고 있었다.

  쨌든,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조직에서 어떤 자리에 오르게 되면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게 되면 하지 않으면 안될 행동으로 인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변화..

나란 인간은 참 변하지 않는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미 여러 면에서 변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 환경, 성격이라는 3가지 분류로 살펴본다면,
먼저 지금은 무려 27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를 가지고 있다. 나이라는 것은 단지 태어난날로부터 몇 년이 흘렀는가를 나타내기도하지만 그것보다는 이 사람이 얼마나 죽을 날에 가까워지는가 하는 것을 수치로 나타내주는 것이다. 참… 쓰고 나서도 우울하지 않을 수 없는 정의로군.

환경면에 있어서는 전보다 평균적인 삶의 질이 조금 더 높아졌다고 해야하는걸까? 질이라는 것의 기준이 모호해서 명확하게 어떤 점이 어떻게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의 생활과 비교해봤을때 지금의 삶은 여러 모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해있다. 이전의 월세 생활에서 전세로, 지금은 어렵게 마련한 자금들을 이용한

우리집

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좋아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부채들을 생각하면 그다지 나아졌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우리 가족은 화목하기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겠다.

철없던 고등학교 시절(17살 ~ 19살)의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됐는데, 오늘 그렇지도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낮에 당산에서 회의를 하고 나서 친구녀석이 “너 요즘 왜 이렇게 침체돼 있니?”라는 것이다.
스스로는 성격의 변화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여서인지 “그래?”라는 답변만 해 줬을 뿐이다.
단지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변한건가? 사람의 성격이라는거 나이 먹어서도 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 타인이 갑작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단숨에 – 변해 버린 것일까?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까 확실히 전보다 굉장히 차분해졌다. 사람이 결단을 하고 그것을 행하려고 할 때 변화되어버리는 것인가. 결단이라는 것은 목표가 있지 않더라도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 버릴 수 있는 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변하게 마련이라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변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좋지 않은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사람이 죽을 날이 가까워지면 갑자기 달라지게 된다는 생각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성격 변화라는 주제에 연관지어 성화라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성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믿기로 작정했을 때 긍정적으로 발전시켜나간다는 과정을 말하는데, 비난 받는 – 비그리스도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 그리스도인들은 완전히 성화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완전히 성화된 인간이 아닌 불완전 성화의 상태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것이다.

뭔가.. 꽤나 복잡해져버릴 것 같아서 이만 줄여야 겠다. 사실 좀 피곤하기 때문에 줄이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