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그것을 계획하고 시행하는데 있어서는 적은 노력이 들기도 하지만 많은 노력이 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향해 나가면서 신에게 자신의 계획을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기도라는 것은 어떤 것을 빈다는 의미인데, 그 비는 대상이 그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데서 기도가 성립된다.

단순히 보너스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그저 심리적인 만족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기독교인들은 그렇지 않다.

신앙의 정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기독교의 가장 중심적인 교리는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 성령의 실존을 믿고 그(들)에게 자신의 목적에 도움이 되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의 목적에 도움을 달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나님께 빌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물론 맞기는 하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더 큰 것을 구하고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적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계획 안에서 완성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은 변하기 마련인데,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그들의 희망대로 움직여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에 우리가 맞춰간다면 어떨까.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분(들)의 응답은 때론 이성에 오류를 일으키게하고 비합리적인 것들이라고 생각되어질 수 있지만, 결국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결과를 – 물론 좋은 쪽으로 – 이루어 내시기 위해 그렇게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머리로 이해는 하고 있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행하기란 정~~~~말 어렵다.

우리가 신문을 읽는 이유..

신문을 왜 읽는다고 생각하는가. 그 전에 읽는 행위는 어떤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을 먼저해야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된다.

읽는다는 행위는 대부분 알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 표지를 이해하기 위해 읽고, 어떤 사실을 알고 남들에 비해 더 많은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만큼의 힘을 가지게 된다.

뉴스(News)라는 것은 새로운 것을 알리는 대표적인 단어이다. 신문의 영어식 대표적 표현은 newspaper인데, 이 것 역시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종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녹색평론》제80호
2005년 1-2월호 :: 과학기술의
덫에 갇힌 언론 / 강양구

최근에 mentalease의 글을 처음부터 쭉 읽어나가고 있는데, 그 중 누가 황우석에게 꽃을 던질까라는 글을 읽으면서 본문에 첨부된 링크를 통하여 읽게 되었는데, 언론의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자세에 대한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마지막까지 하게 된 생각은 언론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읽는 행위를 통해 정보를 획득하는데 읽는 행위는 문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문자 뿐 아니라 그림이나 사진으로 그 내용을 읽고 있으며, 분위기를 읽어낸다. 여기에서 읽는다는 표현을 이렇게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은 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그 내용을 통해 단지 문자에 대한 이해만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문자를 통해 사실을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보조적으로 그림이나 사진이 이용되고, 도표도 이용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람은 읽는 행위를 통해 정보를 획득하고 얻은 정보의 양과 적절한 시기의 사용을 통해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모든 정보가 힘을 주는 것이 아니다. 정확한 정보만이 최후까지 그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부정확한 정보는 아무리 빠르게 전한다고 하더라도 힘을 가지기는 커녕 정보를 제공한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들기까지 한다. 오히려 역효과를 내게 된다.

우리가 신문을 읽는 것은 이러한 힘을 얻기 위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일단 알기 위함이다. 이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론의 하는 일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실을 전하면서 일반인들, 즉 비전문가인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적절하게 해 주는 것이며, 그런 기능이 적절히 수행되고 독자들의 이해가 올바르게 이루어질 때 언론의 기능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문만이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신문이라는 매체는 여전히 활용되고 있는 정보의 전달자이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언급했다.

카툰들은…


그저 보고 웃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만화라는 것은 애초에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던가. 아! 그런 것에 있어서는 장르별로 다른 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재미있게 보는 몇몇 카툰들이 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보기 시작하지는 않지만 각각의 카툰들은 웃고 즐기기에만 좋은 것도 있고,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것도 있다.

만화라는 것은 내 인생에 들어와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용기를 주기도 하고, 희망을 주기도 했으며, 상상력을 늘려주기도 하였다.
머리 속에 이미지를 떠 올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내 머리속에 영상을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준 것은 수 없이 봐왔던 영화들보다는 카툰이 더 많은 영향을 주었다.

위에 있는 카툰은 여러 카툰들 중에서 아! 하는 감탄사를 주었던 작품(!)들 중에 하나이다.
반전의 재미를 알게 해 주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