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88Kg

사실 운동 분류에 넣기에는 애매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일단 지금까지 체중과 관련된 포스팅은 운동 분류에 넣었왔기에 그대로 한다.

이전에도 몇 번의 체중 관련, 운동 관련 포스팅이 있었지만 그 동안 100Kg이 넘고나서는 90Kg대로 떨어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더 독하게 해 보기로 했다. 사실 다이어트 계획은 없었는데, 이 곳에서의 활동량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체험하고나서 계획했다.

음식 섭취량은 시작 이전에 먹던 것보다 60%정도로 줄이고, 활동은 그대로 하는 것이다. 이전에 집에 있을 때에는 거의 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먹는 것은 모두 살로 갔다고해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운동을 하더라도 그만큼 더 먹어주기 때문에 체중이 그다지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활동량이 이전에 운동했던 칼로리 감소량에 비해 엄청나고 음식 섭취량까지 줄이고나니 금새 빠져버렸다.

전에 줄넘기로 3개월만에 10Kg을 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2개월 며칠만에 15Kg이 빠졌다.

조금 무리한 듯한 인상은 있지만 쓰러지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별다른 걱정은 없다. 너무 심하게 적게 먹은 날1은 조금 어지럽기도 했지만, 무리가 된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다.

쨌든 이전에 103Kg이었다가 다이어트를 시도했을 때 동생이 체중이 감량되고 허리가 가늘어지면 입으라고 이전 허리 사이즈의 바지를 사 준 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집에 고이 모셔져 있다.

이제 그 바지를 입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체중은… 88.7Kg!!2

  1. 음식섭취량을 30%로 줄여서 먹으려 시도했던 날[]
  2. 마지막으로 체중을 측정했을 때 87.2Kg이어서 제목을 87Kg으로 했는데, 지금 측정해보니 88.7Kg이다. ㅡㅡ;;[]

가르치면 90% 유지

Silberman(1998)에 따르면, 우리가 많이 접하는 강의(lecture)는 retention rate이 5%에 그칩니다.
책을 읽는 것(reading)이 10%, 오디오비주얼(audiovisual)을 활용하는 것도 20%에 그치지요. 실제 보여주는
것(demonstration)이 30%, 토론(discussion)이 50%, 행위를 통해 연습하는 것(practice by
doing)이 75%라고 합니다. 그리고, 남을 가르쳐 보는 것(teaching)이 90%라고 하네요.

확실히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서 사람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가르치는 지식이나 방법 등을 더욱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고, 또 가르치는 과정 중에는 자신이 스스로 공부할 때 알지 못했던 타인의 이해과정을 통해 다른 것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보다는 동생이 더 공부를 잘 했는데, 동생은 나름 대학교에 다니면서 학비를 위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는데, 가르치는 내용은 대학 공부와는 상관이 거의 없었지만,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것들을 통해 대학 공부에 임했기 때문에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학교 수업 시간에 발표 수업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렇게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업에서 단순히 듣기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들을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확실히 90%라는 것은 맞다!

동생을 보내다…

오늘은 두 명의 동생을 보냈습니다.

한 명은 제 친동생이지요. 친 동생의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결혼식을 마쳐갈 무렵에서야 아.. 결혼하는구나.. 동생이 다른 집으로 가는 구나 싶더군요.

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거라고는 사진 찍는 것 밖에는 없어서 사진을 찍어준다고 해서 스튜디오에서 스냅사진을 빼고 얼마의 돈을 할인 받았습니다. 하지만 후회스럽네요. 다른 두 친구의 결혼식에서 찍었던 것만큼 잘 찍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웬지 동생에게 미안합니다. 이쁜 사진을 찍어내기 위해서는 아니, 찍어낸다는 표현보다는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러 저러한 곳으로 열심히 뛰어다녀야 하는데, 결혼식 중반부터는 결혼하는구나… 동생이 결혼하는 구나… 라는 생각에 뛰어다니질 못하고 아버지의 광고 중 시 낭독 – 동생과 그의 남편된 사람에게 적으신 – 때에는 눈물을 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열심히 뛰어다닐 수가 없더군요.

매우 우울해져 버렸습니다. 알송으로 하드에 저장되어 있는 음악을 재생하여 듣고 있는데, 웬일인지 모두가 우울하게만 들립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우울해 있는데, 자주 가는 모기불 통신의 기불님께서는 정다빈씨의 자살 소식에 우울증에 대해 적어놓으셨더군요. 그 글을 보면서 故정혜선 양의 자살 소식을 검색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옥탑방 고양이에서 상큼 발랄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녀에게도 나름의 인생의 고충이 있더군요. 해 맑은 웃음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더군요.

그런 그녀에게 악플을 다는 개념 충만한 사람들이 있더군요. 웬지 이 기계세상이 싫어집니다. 아무 생각없이 던지고는 신경도 쓰지 않은채 또 다시 던지는 그들의 행태를 보아오면서 늘 분노를 느끼지마는, 어찌 할 수 없는 제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들이야말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웬지… 오늘은 이러 저러한 생각들이 우울함에 영향을 받았네요… 오늘은 흠뻑….

불장난..

– Make sure you’ve got film in the camera, set the ISO dial, and don’t shoot into the sun.
 필름은 넉넉하게 갖고 다니시고 필름감도를 맞추어 찍는 걸 잊지말고, 해는 찍어봐야 사진만 버립니다.


몇번인가 해를 찍어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카메라 동호회의 어느 회원이 올렸던 글을 보고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DSLR의 경우에는 영상을 디지털화 신호로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별도의 장치가 필요하다. 태양을 찍게 되면 그 센서가 타버려 굉장한 비용을 들여야 고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쨌든 그런 생각 – 태양을 찍는 – 을 할 때마다 생각나는 일화가 있는데, 어린시절의 불장난에 연관된 일화이다. 불장난을 꽤나 좋아했었다. 지난번
동생과의 사건일지(!)를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불장난으로 집을 홀라당 태워먹을 뻔한 일도 있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렌즈가 필수라는 것은 다들 아실것이다.

렌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것이 생각나시는가? 본인의 경우에는 돋보기이다. 돋보기를 통해 할 수 있는 장난질은 여러가지가 있다. 단순히 글자를 확대해 볼 수 있는 도구 본연의 기능 외에도 꽤나 이러 저러한 용도로 활요하여 재미를 느끼 실 수 있다.

먼저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의 신체 일부를 확대해서 보는 것이다. 꽤나 징그러운 장면이라고 생각하실만한 것들을 관찰 하실 수 있을 것이다. 피부에서부터 눈알까지 닥치는대로 한번 확인해 보시라. 그러나 이 때 주의해야할 것은 절대로 태양을 보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눈의 검은자는 타기 딱 알맞은 색상이기 때문이다. 여름에 검은색 옷을 입고 활동하는 것만큼이나 미련한 행동은 없다. 그만큼 검은색은 열을 잘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또 잘 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눈의 검은자는 돋보기로 발생되는 집중열을 금새 받아들여서 단지 안과 진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본인의 어린시절 친구의 친구는 그런 장난을 치다가 실명한 사례도 있으니 꽤나 주의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해 볼 수 있는 것은 신문지를 태워보는 것이다. 일반 종이보다 기름을 많이 포함하고 있으면서, 활자가 적지 않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신문지만큼 잘 타주는 재료도 없다. 기름의 함량으로 치면 기름종이가 있지 않냐며 반문하시는 독자도 계시겠지만, 기름종이는 생각보다 잘 타지 않는다. 신문지야 말로 불장난하기에 최적의 재료라 할 수 있다. 수 없이 돋보기의 집중열로 인해 타들어갔던 신문지들을 생각하면 소변이 마렵다. 어린시절에는 어른들의 말을 여과없이 듣게 마련인데, 그러는 중에서도 과감하게 불장난에 임했다. 어른들의 말로는 불장난을 하면 이부자리에 오줌으로 지도를 그린다고 했는데, 불장난을 그렇게 심하게 했으면서도 지도 그린 적이 없다는 것에 웬지 모를 자부심을 가진다.

동생의 노래실력..

최근에 동생이 남자친구를 소개받아 사귀고 있다. 사실 25살이 넘은데다가 어른들의 소개로 만난 것이라서 선 본 상대와의 만남이다.

쨌든 그동안 소개받았던 사람들과는 서로 성격의 차이나 사람의 캐릭터 등으로 인해서 잘 되지 않았지만, 이번엔 생활 패턴부터해서 사람 됨됨이가 괜찮아서인지 꽤나 잘 되어가고 있다. 특히나 동생의 생활패턴이 독특하기 때문에 더욱 성사율이 낮았더랬는데, 이번에 만나는 사람과는 좀 맞는듯 하다. 개인 사업으로 여행쪽일을 하는데, 주 5일이라 토요일엔 온전히 쉬고, 오전엔 그다지 일이 없는 편이어서 동생이 출근하기 직전 시간인 점심시간 즈음에는 둘이서 데이트를 간단히 즐길 수 있는 그런 형태의 만남인것이다.

쨌든 이래 저래 말들은 건너뛰고 둘이서 노래방엘 갔었는데, 노래방에서 제공하는 기능 중에 녹음해서 웹에서 다운 받는 그런 게 있더란다.
그래서 그걸 음원파일로 만들어 보았다.
들어보시라.. ^^


어머님께서는 이 걸 멀리서 들으시고는 웬 새로운 가수가 부른듯한 착각을 일으키셨단다..
물론.. 본인은…?
박자도 조금씩 어긋남을 느끼며… ㅋㅋㅋ

사실 동생 삶에 있어서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가사를 외웠다고 한다. 남자쪽에서 좋아한다는 곡이라는 이유에서란다. 흠… 상대방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인가.

동생과 친한건 아마도..

물론 지금 동생과 친하게 된 데에는 어린 시절부터 장난도 잘 치고 뭔가 함께 같이 했던 이유들도 있겠지만, 다른 이유를 찾아보려고 글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책과는 그다지 친분을 쌓고 살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책을 빌려본다던지 사달라고 한다던지 했던 적이 없다. 스스로 읽어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굴러다니던 책들이 잔뜩 있었기 때문에 가끔씩은 친밀감을 형성하고 싶은 쌩뚱맞은 충동을 느꼈다.
동생은 글자만 있는 책들로부터 만화책까지 읽는 범주가 넓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책과의 친밀감을 형성하고자했던 가끔씩의 충동질을 해소하기 위한 탈출구(?) 정도로 작용했다. 집에 책은 잔뜩 있었지만 그 어린 넘이 읽을 만한 책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동생이 책방으로부터 빌려온 책들을 함께 읽었다. 동생은 계속 책을 가까이 했기 때문에 한 두시간이면 만화책이든 소설책이든 어떤 책이든간에 다 해치워버렸고, 그런 동생이 읽고 남은 기간동안 있는 것이다. 사실상 동생은 책을 빌리기는 잘 하지만 반납하는 것에 있어선 잘 신경쓰질 않았다.
그래서 동생이 자주가던 책방에 반납하는것은 내 임무(!)중에 하나였다. 얼른 읽어버리고 갖다줄 수 있었다면 반납 습관이 들여졌겠지만, 읽고 있는 걸 뺏어서 갖다 줄 수 없었기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그 습관은 나 때문에 생긴것일까?

쨌든 어떤 연관성을 만들자면 이렇다. 동생이 읽은 책들을 함께 읽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사고방식도 비슷해지기 마련이지 않을까? 함께 가족이라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들을 나눌 수 있는 편안함이 더욱 그 친밀감을 높여주었다고도 생각된다.

또 한가지 이유는 방치된(?)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된다. 왜냐하면 부모님께서는 큰 교회 부교역자로서 꽤나 열성적인 사역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을 돌아볼 여력이 없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께서 챙겨주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들 스스로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숙명적 위치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뭐 이런 글에 숙명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니까 웬지 어색하지만, 이러한 조금은 황당한 이유로 동생과 친한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동생과 함께라면..

동생과는 어린 시절부터 꽤나 친근한 관계를 유지해 왔고, 지금도 다른 남매들과는 사뭇 다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이 한 살 더 먹고 각자 다른 신분으로 생활을 하다보니 전보다는 확실히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른 남매들과는 차이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어릴 땐 주로 동생이 일방적으로 맞곤 했다. 장난도 심하고 뭐든지 한번에 끝장을 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했으니, 동생을 괴롭히는 일에서야 어땠겠는가. 동생의 회상을 들어보면 본인이 기억하지 못하는 이단 옆차기 가격 등이 본인을 섬찍 놀라게 한다. 본인은 그런 기억이 없기 때문인데, 동생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원래 때린 사람보다는 맞은 사람의 기억이 더 오래간다”는 이유로 그 근거를 삼는다. 정말 인생에서 괴로웠던 순간이 더 많이 자주 기억되는 것으로 봐서는 동생의 말이 맞는 듯도 하다.

동생은 마루타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본인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꽤나 이상적인(?) 실험대상이 되어주었고 기타 여러 장난들을 할 때 함께해 주었다. 그런 가운데 가장 자주 회자되는 사건이 몇 가지 있다.

1

먼저는

가위로 손이 잘리는가

였다.
어느날인가 동생에게 “손이 가위로 잘릴까?”라는 질문과 거의 동시에 옆에 있던 가위가 손에 들렸다. 그리고는 동생이 아차! 할 순간조차도 허락하지 않고는 왼손의 엄지가락을 싹~ 뚝~!
동생은 아픔을 호소 할 틈도 없이 피가 흐르는 것을 목도(!)해야했고, 피를 보고나서야 울기 시작했다. 그 사건은 동생에게 중학교때까지 흉터를 가지게 했다. 지금도 장난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이단 옆차기 얘기와 동등할 정도의 빈도를 가진다.

2

다음은 불장난인데 머리가 조금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무렵부터 돋보기로 뭔가를 태우는 일에 심취해 있었다. 그런고로 어른들이 계실 때 뿐만아니라 아무도 안 계신 틈을 탄 장난도 잦았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집안에서 성냥으로 불장난을 즐기고 있었는데, 어른들이 오시는 기척이 들렸다. 놀란 나머지 휴지에 붙은 불을 얼른 끄고, 옆에 있는 휴지통 안으로 넣고 어른들을 마중했다. 그런데 다시 방에 들어가면서 뭔가 타는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 정도가 태우다 만 것을 꺼버린 것 치고는 꽤나 심했기 때문에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얼른 뛰어 들어갔더니, ㅡㅡ;;; 타다 만 휴지를 넣었던 쓰레기통 안에서는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 뭔가 외출이라던지 밖에 완전히 나가버린 상태였다면 어땠을까… 꽤나 섬뜩하다.. 당시 우리집은 전세로 세들어 사는 형편이었는데, 주인집은 당시로서는 그 주변 일대의 어떤 집에 비해서는 규모가 중급 이상이었기 때문에 무거운 결과를 짊어지지 않을 수 없었을 듯하다.

막상 기록하려고 하니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동생과 함께 장난치고 동생을 실험대상으로 했던 일들이 기억날 때마다 다시 적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