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위해 신념을 팔아 버리지는 않았는가

종교는 1:1 사이였던 창조자와 나를 1:1:1 사이로 만들었다. 신과 나의 관계가 아니라 신과 교회 그리고 나의 관계로 만들었다.

위의 인용문은 타블로에 의해 작성된 글을 월아님께서 작성1하신 내용 중의 한 부분이다.

타블로는 종교가 자신과 창조자와의 사이에 끼어 1:1:1의 관계를 형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인간이 다른 것에 의해 방해를 받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중간에 교회를 끼워 넣은 것이다.

대한민국에 종교가 들어오는데 있어서 큰 공헌을 했던 것 중에 하나가 백성들의 종교성이다. 성경에서 바울이 이름 없는 신을 섬기는 것을 두고 종교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지방의 사람들만이 종교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가 정도의 차이를 두고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 기독교가 쉬이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전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각각의 기본 종교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 두 국가들과 종교들이 새로운 국가로 재탄생하면서 종교가 함께 바뀌었기 때문에 조선의 멸망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새로운 국가를 위한 종교를 찾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종교는 인간에게 이용당하고 만다.

사실 교회나 목회자가 중간에서 힘을 얻게 된 동기를 굳이 찾자면 샤머니즘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전의 굿판을 벌이던 무당을 섬기던 자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목사들을 무당쯤으로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억지스러운 추측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설득력을 가지기는 하다.

하고싶은 말이 뭐냐면 타블로의 1:1에서 1:1:1의 관계가 된것은 그 자신에게 있어서 아무런 무넺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간의 교회를 1로 차지하게 한 것은 타블로 자신이지 교회와 같은 타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샤머니즘의 무당을 목사로 대체시킨것은 목사 자신들이 아니라 인간들인 것처럼 말이다.

  1. 긁어오신 것인지 직접 타이핑을 하신것인지 포스팅상에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알 수는 없지만[]

기독교의 배타성?!

아래의 답변은 기독교 전체의 답변이 아니며, 본인의 짧은 지식과 생각을 비춘 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또한 추가적인 답변을 제공할 수 없으므로 주변 교회의 목사님을 방문하시거나 권위있는 학자들의 글들에서 답변을 얻으시기를 권하며,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하나님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전부터 기독교의 배타성에 대한 안티 기독인들에 대한 글들을 많이 접해오면서 스스로도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명쾌한 답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거듭 확인하게 되었고,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음을 한탄하며 더욱 공부하고 알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문제는 기독교의 배타주의라는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어제는 불교인이 본  기독교라는 글을 통해서 다시한번 배타성과 관련하여 적은글에서 외부의 사람이 느끼는 배타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적어놓은 글에 navman님이 질문을 해 오셨다. 그것은 기독교 배타주의에 관한 것이었고, 성경 상의 하나님의 죄인들에 대한 심판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들였어야 하겠지만, 사실 그만큼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짧게 반문을 적어두었었다. 그런 후에 이런 저런 일들을 하는데 그 문제에 대해 계속 생각이 나서 뭔가 확실한 답변이 될 만한 것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명쾌한 답변을 내려주기에는 지식적 경험적 한계를 가졌다. 그렇더라도 일단 알고 있는 한에서는 답변을 해야 하는게 도리라고 생각하기에 일단 답변을 해 본다. 그러나 질문하신 분에게 기타 신학적인 이론들을 설명함으로써 혼란이 생길 수 있어 심도 있는 언급은 제하기로 한다. 일단 navman님을 포함한 기독교적 지식과 이해을 가지지 못한 분들에게 그 사랑이라는 것을 인간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되는 문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라는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들이 죄를 지어 잉태하여 후예들을 낳았다. 그런데 그들이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점차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과 동행했던 인간들은 스스로 자만하여 죄악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 중 의인이었던 노아를 선택하여 그의 가족들과 한 쌍씩의 동물들만 남겨두고 물로 심판하신다. 여기에서 문제는 제기된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았다고 다 쓸어버리는 것이 기독교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navman님의 질문 덧글에 답변으로 달아놓은 반문은 그것에 대한 간단한 답변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신 분이시고, 인간을 만드신 분으로써 인간을 없애는 것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인간은 하나님께 있어서 소모품 정도의 비중밖에 안되는 존재들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물로 심판하셨을 당시의 상대적 의인인 노아의 가족들을 통해 죄로부터 최대한 멀어진 삶을 살도록 허락하셨다. 그리고 계속되는 인간의 죄악을 예수님의 부활 사건으로 인해 용서받을 수 있도록 하셨다. 이런 설명에 대해 믿든지 그렇지 않든지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진리라는것은 자신이 인정하지 않거나 이해가 가지 않아도 그것은 진리인것이다. 해가 이동하는 방향이 마음에 안 들고 그렇게 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덧붙여 말하자면 죄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여러가지 추가적인 문제들을 발생시킨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고 하였다. 그렇게 따지면 기독교의 배타성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죄들을 정당화되어도 괜찮다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기독교와 관련된 죄들의 대부분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그 뜻을 충분히 여쭙지 않고 인간의 욕심을 더 앞세워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문제는 발생되는 것이다. 위의 문제에 대해 검색을 하면서 기독교의 자기싸움이라는 글을 접하게 되었는데, 인간의 욕심인 자본주의적 방법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문제들은 발생되는 것이라는 그 포럼에서 논의 되었던 내용에 대해 공감하는 바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 한 사람이라도 생명의 길에 인도하려는 – 에 대한 욕심을 가지지 못하고, 단지 규모를 늘리기 위한 교회사역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에 더하여 한 가지 말하자면 기독교인들은 이미 예수님과 같이 완전한 성인(聖人)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말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 역시 스스로의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제쳐뒀었고 자만하고, 욕심부려 기독교인으로써 해서는 안될 발언, 행동들을 가졌었고 그런것들을 고치고 인내해 가는 과정에 있는데 그 동안 습관적이었던 것들이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기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것과 연관지어 말할 수 있는데,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는 있지만, 죄된 습관을 오랜동안 가지고 살다가 회개하여 믿게 되더라도 자신도 모르는 습관 때문에 죄를 짓게 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젊은 시절에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습관이라는 것은 오랜 것일수록 고치는데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부활이나 인간의 종말에 대한 말씀들을 믿고 믿지 않고는 철저히 개인적인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권하는 것은 안타깝기 때문이다. 생명의 말씀을 받아 함께 영원한생명을 얻어 함께 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것이다(영원한 생명에 대해 뱀파이어나 기타 죽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모레 수렁에 빠져서 점차 몸을 침식당해가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것은 인간으로써 가질 수 있는 감정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을 언제 데려가실지 모를 상황에서 그 긴박함은 강제성있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이를 잃지 않기 위해 아이에게 권유하고 물가에서 위험하게 놀 때에는 혼내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해야 한다.

기독교를 보는 시각

올블 메인 페이지에 들렸을 때 불교인이 본 기독교라는 제목의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그 글을 직접 발견한 것은 아니고 다른 페이지에서 였다. 그 글에 대해 불교인뿐 아니라 무교인이 본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고 표현했었기 때문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반면 또 달리 드는 생각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였다.

신학도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의 미래는 목회자이다. 목사라고 불리우는 신분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제성은 없지만, 선교사로서 일하든지 신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지식의 획득만을 위해서이든지 그들은 기독교인이라는 공통된 분모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인은 그 말씀에 의해 전도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의무를 언젠가는 행해야 하기 때문에 본인과 같은 의미로써 위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 봐야한다.

글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어떤 부분에서 자기 편이 아닐 때는 배척하고 증오하고 복수했다.고 느꼈을까하는 것이다. 예수님 스스로가 그런 행동을 보이셨던가? 증오하고 복수까지 했다는 것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는추측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떤 부분이 그들을 증오했다고 묘사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복수했다고 묘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외에도 여러 의문점들이 있었지만, 그 글의 필자가 토론을 위한 글이 아니라고 전제해 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가 몇가지를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인으로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해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