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면 사라지는 사람들 1

아~ 먼저 이 글 미스테릭 포스팅은 당연히 아니다. Pink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좀 적어본다.

먼저 제목인 방팅에 관한 것인데, 인터넷이 활성화 되기 전 통신을 하면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는데, 초등학교때는 단순히 통신 상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만 했고 실제적인 만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었다. 겨우 장만한 컴퓨터로 전화연결이 되어 글 읽고 정보를 얻는 것으로 만족했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들어와서도 그다지 실제적인 만남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없었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서울에서 이사를 하면서 그다지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에 통신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물론 통신을 이용하는 연령대가 지금처럼 폭넓지가 않아서 동년배의 친구를 알게 되는 경우는 좀 적었지만, 그래도 통신상에서의 만남이 즐거웠다.

아!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 나우누리 채팅방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몇 번 연락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진전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여자친구를 처음 사귄게 이 때 였다. 그다지 진지하지 않아서였을까. 단순한 이성친구정도의 느낌 뿐이어서인지 일반적인 연애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인지 더 이상의 확실한 기억이 없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이 고등학교 올라가서라고 기억된다. 나우누리에서는 여러가지 활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PC를 이용한 개인적인 활동은 이미 중학교 들어서면서 시작되었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만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때의 만남을 시작으로 동호회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활발해졌다.

하이텔도 그렇고, 나우누리도 그렇고 채팅방에 가면 항상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채팅방에서 만나서 결혼까지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었다. 이건 분명히 필자가 알고 있는 경우에 한정되기 때문이 이전에도 몇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천리안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리고 방팅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던 것이 20살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때보다 군에 가서 더 방팅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나름대로 방황하고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했을 때가 23살정도였는데, 월급도 꼬박꼬박 들어오겠다 두려움이 없었다. 그 때는 친구들과도 가장 활발하게 만나고 다녔는데, 친구들과의 연결점 역할을 했었다. 대게 친구들이 무리지어 노는데, 그 친구들과 모두 연락할 수 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점차 연락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록 힘들어져서 지금은 연락을 정말 가끔씩만 하는 상태가 되었다. 무엇보다 서로가 바빠져서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전역하기 1년 전인 2003년엔 아랫지방에 돌아다닐 계획을 세우고 경상도 지방에서 전라도 지방까지 순회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가 마지막이었던 듯 하다. 부산에 내려가서 전역한 친구와 연락해서 만나 한잔하고는 늦은 저녁이 되고 잘 곳이 없어서 PC방에 들어가서 부산 방팅을 찾았다. 그런데 이 부산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속적으로 방팅을 하고, 놀 돈을 마련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잠시 생각난 것이 있어서 시작했는데, 끝이 없다. 너무 길어서 둘로 나누어야 할 듯하다.

동생을 보내다…

오늘은 두 명의 동생을 보냈습니다.

한 명은 제 친동생이지요. 친 동생의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결혼식을 마쳐갈 무렵에서야 아.. 결혼하는구나.. 동생이 다른 집으로 가는 구나 싶더군요.

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거라고는 사진 찍는 것 밖에는 없어서 사진을 찍어준다고 해서 스튜디오에서 스냅사진을 빼고 얼마의 돈을 할인 받았습니다. 하지만 후회스럽네요. 다른 두 친구의 결혼식에서 찍었던 것만큼 잘 찍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웬지 동생에게 미안합니다. 이쁜 사진을 찍어내기 위해서는 아니, 찍어낸다는 표현보다는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러 저러한 곳으로 열심히 뛰어다녀야 하는데, 결혼식 중반부터는 결혼하는구나… 동생이 결혼하는 구나… 라는 생각에 뛰어다니질 못하고 아버지의 광고 중 시 낭독 – 동생과 그의 남편된 사람에게 적으신 – 때에는 눈물을 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열심히 뛰어다닐 수가 없더군요.

매우 우울해져 버렸습니다. 알송으로 하드에 저장되어 있는 음악을 재생하여 듣고 있는데, 웬일인지 모두가 우울하게만 들립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우울해 있는데, 자주 가는 모기불 통신의 기불님께서는 정다빈씨의 자살 소식에 우울증에 대해 적어놓으셨더군요. 그 글을 보면서 故정혜선 양의 자살 소식을 검색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옥탑방 고양이에서 상큼 발랄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녀에게도 나름의 인생의 고충이 있더군요. 해 맑은 웃음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더군요.

그런 그녀에게 악플을 다는 개념 충만한 사람들이 있더군요. 웬지 이 기계세상이 싫어집니다. 아무 생각없이 던지고는 신경도 쓰지 않은채 또 다시 던지는 그들의 행태를 보아오면서 늘 분노를 느끼지마는, 어찌 할 수 없는 제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들이야말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웬지… 오늘은 이러 저러한 생각들이 우울함에 영향을 받았네요… 오늘은 흠뻑….

뿌리고 거두는 것..

이제 3일만 지나면 동생이 결혼한다. 동생의 결혼은 필자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또 다른 편으로는 기쁨을 안겨주기도 한다. 사랑하는 동생이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들과 지내느라 필자와 지냈던 27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것은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이런 우울한 생각은 저쪽으로 던져두고 뿌리고 거두는 것에 대한 짧은 글을 적어보려고 한다.
필자의 부모님은 모두 7명 이상의 형제를 두셨다. 그리고 모두가 장남, 장녀 이시기 때문에 결혼식에 많이 다니고는 했다. 물론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축의금을 내야하는데 필자의 고모, 이모님들이 모두 결혼하시던 시기의 필자의 나이는 많아봐야 13살 이전이었다. 게다가 그 외의 친인척들과 교회 식구들의 결혼을 다니고는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그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수의 결혼식에 다니고는 했다.

축의금을 내야 했던 결혼식보다는 그냥 가서 식사 머리수를 채웠던 결혼식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부모님들은 직업상 이리 저리 많은 사람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셨는데, 이번에 동생의 결혼 청첩장을 돌리기 위한 목록을 만드는데 엄청난 예상외의 참석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동안 심어둔 것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필자는 굉장히 계산적인 사람이라서 이런 사고방식이 자연스럽다.

쨌든 이번에 동생과 제부될 사람이 만든 청첩장은 400장이었는데, 그 중에서 250장이 우리 몫이었다. 하지만 제부 될 사람 쪽은 당사자만 뺴고 다들 결혼한 상태라서 청첩장이 되려 남아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래서 우리 쪽에서는 그 남은 청첩장을 활용할 수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약도 부분만 복사해서 편지봉투를 더 사와서 보내야만 했다. 음.. 그 중에서 몇 명이나 올 것인가는 모르겠지만 웬지 300명 이상은 오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게다가 이번에 결혼식을 올리는 장소가 신랑쪽에서 다니는 교회인데 교회 식당이 교회 규모에 비해서 그다지 큰 편에 속하지 않아서 손님들이 음식을 많이 먹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작년 말에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도 유사한 현상이 벌어졌었는데, 같은 시간에 결혼식을 치른 손님들을 한 장소에 몰아넣어서 자리가 부족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조금만 먹고 일어나서 가버리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에 이런 예상을 하는 것인데, 만약 필자처럼 끝까지 남아서 먹는 사람들이 많다면 필자의 말을 듣고 출장부패인원을 줄여버린 신랑 신부가 욕을 먹게 되고 그 욕은 직접하지는 않겠지만 필자의 수명을 증가 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쨌든 이번 결혼식으로 인해서 여기 저기서 스트레스 되는 말을 조금 듣기는 했지만 동생의 결혼식이니만큼 우울해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과 행동으로 일관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적기 시작했는데, 참… 웬지 횡설수설하게 적어버린 기분이다.

결혼, 이성관에 대한 단상

결혼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는만큼 서두르는 편이 아니다. 뭔가 아직도 이루어야 할 것이 많고 그런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누군가를 사귀기에는 능력이랄까 그런것이 없다는 생각에서이다. 나이가 이십대 후반이 되고나니 사귄다는 것이 책임을 동반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래서 남자로서 상대방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되버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생각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애에 뭔가 틀을 씌우는 타입도 아니라서, 꽤나 쿨한 연애관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언제나 쿨하지 않은건 상대방이었으니까. 이런 나를 두고 혹자는 바람둥이 기질을 타고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외모는 그다지 바람둥이 스타일은 아니지만 웬지 여자친구들을 사귀거나 대하는 모습에서 그런 경향을 발견했다는 사람도 있다.

그저 편하게 대해주려는 것 뿐인데, 그것이 단점으로 작용해버린걸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형들보다는 누나들에게 귀여움을 많이 받아왔고, 고로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쪽 인맥이 상대적으로 두터운 편이기 때문에  여자를 두려워한다거나 하는 것은 없지만, 웬지 너무 주변에 흔하게 여자과 접촉(?)을 하고 있어서인지 군대에서조차 여자를봐도 희귀하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군대 얘기하면 흔하게 나오는 치마만 두르면 다 좋아하게 된다는 그런 류의 속설에 해당된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안 좋은 점에 대해서는 웬지 외로움을 타지 않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식의 오해를 받는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이성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고등학교 초반까지는 외로움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은 커녕 느껴보지도 못했다. 단지 혼자라는 느낌을 외로움이라고 정의한다면야 몇 번인가 느껴는 봤겠지만 이성과 연관된 외로움에 대해서는 그다지 경험이 없었다. 이성관계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 가볍게 여겨 장난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고 오해를 받기도 했다.
조금 다른 얘기로 이어 보자면 고등학교 1학년 때 반에서 꽤나 논다고 하는 여자친구가 나에게 사귀자고 했다. 웬지 그동안 얌전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그 친구가 그저 순진한 녀석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장난치지 말라고 거절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꽤나 진심이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이미 늦어버린 시점이었다. 그 이후로 껌좀 씹고 다리좀 떨었다는 친구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남들보다 조금 더 재미있게 생활하려고 했던 똑같은 중고등학생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그 친구의 영향이 꽤나 컸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그 또래의 논다고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다른 얌전한 친구들과 별반 다르게 보지 않는다. 그 때의 작은 경험은 나로하려금 비뚫어진 비행 청소년에 대해 똑바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주었다.

쨌든 나이가 20대 중반을 넘기려니 동생(여) 녀석이 여기 저기서 선자리가 들어온다. 어머님은 동생의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폰 번호를 뿌리는 대담한(?) 행동을 서슴치 않으시고 계신다. 동생 녀석도 웬지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으면서 선자리가 들어오면 꽤나 즐기는 눈치다. 그런 동생을 보고 있노라면 웬지 나도 뭔가 연애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연애는 철저히 능력이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쉽게 시작되질 않는다. 막상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접근해서 작업이 시작되기는 하지만, 이제는 혼자서 좋다고 사귀고 꺠지고 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되는건 나이를 먹었다는 것일까?

최근들어 결혼이나 연애에 관해서는 여러가지로 복잡해진다. 나이라는 것과 결혼이라는 문제로 연결이 자연스럽게 되기 때문이다. 아~ 어린 시절의 그 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