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사랑은…

많은 사랑을 겪어 왔지만 정말 이번만큼 깔끔하게 정리된 적은 없었다.

일정의 기간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서로에게 이해가 되고 연인관계만이 정리된 상태이다.
하지만 그 동안의 내 착각이 여실히 드러나는 경험이기도 했다.

하다.

그 동안의 많은 사람들에게 해 왔던 말이지만, 연인관계가 정리된 이 순간에도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고, 그리워하고 있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냉정해 진 줄 알았는데, 진짜로 쿨해지기란 쉽지 않구나!

기분 째질것 같다!!

그녀의 아버지와 만남을 가지게 된 것이 이번 달 1일이었다.

그간의 사건들은 조금씩 정리해서 이 블로그 내에서 검색이 가능하다. 그런데, 오늘 그녀의 아버지께서 그녀에게 더 이상 고소한다느니하는 소리를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이 말은 무슨 말인고하니 더 이상 만남을 비밀스럽게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동시에 그녀의 부모님과 당당하게 만날 수 있으며, 그녀와의 데이트 역시 허락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고소하겠다고 더 이상 만남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던 분이었기에 더욱 이번 소식은 좋지 아니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와 필자는 올해 수능이 끝나기 전까지 만나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일과 함께 그녀의 어머니의 행동의 변화가 또한 더 기쁜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그녀와의 만남 가운데서 가장 장애가 되었던 것이 그녀의 모친과 외가식구들이었다. 그녀의 어머님께서는 우리 둘의 만남에 대해 친인척들에게 말했고, 그런 소식을 접한 그들사이에서 우리 둘은 미친ㄴㅕㄴ, 미친놈이었다.

그리고 그 동안 그녀의 부모님들이 교회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고 근처에도 가지 않았었는데, 오늘그녀가 교회에서 점심을 먹는중에 어머님께서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나셨단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의 모임이 끝날때까지 그녀를 기다리시며 교회 분들과 – 이미 전에 안면이 있으신 분들이 계셨단다 – 대화를 나누셨고 집에 같이 가셨단다.

이 사건은 별 일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뭔가 예배를 드린 것도 아니고 교회에 다니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지만 시작인 것이다. 그녀의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기도했던 것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며 시작인것이다.

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교회에 나가자고 한 마디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오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그대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강제 성향의 포교활동이 전혀 없음에도 나오시게 되었다는 말이다.

좀 흥분해서 정리가 다소 안되긴하는데, 그냥 손이 가는대로 작성하고 포스팅하련다.

기분 째~~~~진다!

오빠 사랑해~♥

어제는 내 인생에 역사적인 날이었다.
무슨 기념일 같은것이나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됐다거나 하는 일은 아니다.

그녀와 사귄지 오늘로 49일째다. 공교롭게도 오늘로 수능 49일전이기도 하다. 그녀와는 교제 시작과 함께 이미 고난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전에 올린 글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녀의 부모들로부터 교제 중단 요청을 받았지만, 그녀의 의사에 따르겠다고 하였고 그 때문에 여전히 진행중에 있다.

그녀와 사귀면서 그녀의 행동이나 말, 그리고 이런 저런 정황들로 분명히 그녀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사람이라는게 뭔가 표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금은 있지 않나.

필자 역시 사람이고,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가 그토록 듣고 싶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어머님께도 한 번 사용해 본 적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그제 저녁에 통화하는데 대뜸 어머님께 사랑한다고 말씀드릴거라고 했다.

마음속으로 매우 기뻤다. 그녀가 추석 연휴를 이용해서 친구네 집에서 하루 자게 되어서 그걸 이용해 거의 새벽내내 통화를 했고 그 통화의 말미 부분에 그런 말을 들었다.

그리고 오늘 하루종일 그녀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녀와의 통화가 시작되고 나서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다른 날에 비해 대화가 적어졌고, 얘깃거리가 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런 것에 그녀가 서운해 해서 이래 저래 이야기를 했지만 역시나 계속 이어나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며, 내가 사랑하는거 알지? 잘 자구 이쁜 꿈 꾸렴하고 마지막 인사를 건내고 나서 그녀가 말하기를…

오빠 사랑해~♥

눈물이 나려했다.

이전에도 들어왔고 가족들끼리 자주 사용해오던 말이며 그녀에게 속삭여주던 말이지만, 이번은 정말 달랐다.

이 짧은 기간의 연애 기간에 듣지 못했던 그 말을 이제서야 듣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격했을까. 아니면 뭔가 다른 깊은 무언가가 있었을까.

이보다 기쁠 순 없다!

지금 내 마음이 그래

I’ll never be able to give up on you
So never say good bye and kiss me once again
나는 절대로 그대의 앞에서는 하염없이 울거나 하지 않지
이것은 결국 언제나 자신이 아나키스틱한1 그대에게 어울리기 위해서
현대의 시드비셔스에게 수갑이 채워진 것은 그저 나만일뿐
가지말아줘 어디든지 그대와 함께가 아니면 싫어
그대밖에 보고 있지 않아 지금 여기서 키스해줘
다른 교복의 여고생을 눈으로 쫓고 있는 것 알고 있어
비스듬한 머리 뒤언저리로 아플 정도의 시선 느끼지 않는건지
뭐 내가 예쁘거나 미인형은 아니지만 이 쪽을 봐줘

어떤 때에라도 나의 이상을 놓치지마
그대의 긴 속눈썹도 그 갸날프고 커다란 손도 전부 너무 좋아해
어디에라도 그대 만한 사람은 없어
그대 밖에 보고 있지 않아 지금 여기서 키스해줘
가지말아줘 어디든지 그대와 함께가 아니면 싫어
그대 밖에 보고 있지 않아 지금 여기서 키스해줘
I feel so nice ’cause you are with me now
It is certain I love you so much baby
I’ll never be able to give up on you
So never say good bye and kiss me once again

방금 그녀와 통화를 마쳤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녀와 필자는 그다지 긍정적인 상황 하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소송 통보를 받은 상태이고, 그녀 역시 그런 아버지를 설득해보려 하지만 전혀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요 전번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만나지 않는게 좋겠다는 정도로 그쳤지만, 이번에는 고등학교 졸업하고부터고 뭐고 평생 못 만나게 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물론 필자에게 직접적으로 한건 아니고 흥분한 상태에서 딸아이를 걱정해서 순간적으로 나온 말일 가능성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지만 그녀의 불안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데서부터 기인한다.

여튼, 그녀는 오늘 하루종일 공부를하고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공중전화로 통화를 시도했고 연결됐고 방금 마쳤다.

마치면서 시이나링고의 코코데키스시테라는 노래 들어봐. 지금 내 마음이야.. 라는 말을 남겼다.

  1. 아나키스틱은 영어 anarchistic에서 온 말로 ‘무정부주의(자)의’란 뜻입니다.
    ‘아나키스틱하다’라고 하면 ‘기존의 체제나 질서나 억압에 저항한다’라는 뜻이 됩니다.

    []

사랑이 언제까지나 계속될거라구…?


처음엔 간이라도 빼줄것처럼 잘해주던 ‘그’들이
딱 6개월이 지나면 소홀해졌으니까요.
반복되다보니 그 남자나 이 남자나 뭐 비슷비슷하려니..
하는 불신이 생겼구요.

앤의 그림일기를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몇 달 전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바로 이번에 본 사내커플의 문제점이라는 이야기를 접한 것이었다.

그 내용의 일기를 오늘 또 접하게 되었고, 시간도 허락하고 작가의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처음부터 다시 보는 중에 위의 인용구를 읽고는 필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를 사귀기 전에 사람이랑 사귀면서 그녀에게서 들었던 얘기 중에 오빠는 처음에만 잘하고는 시들해지는 사람인거야?라는 내용이었다. 그 땐 정말 별 것 아니라는 생각으로 응대했다. 스스로에 대해 그런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곰곰히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게 아닐까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 6개월이 지나면 소홀해져버렸던 걸까. 확실히 그 말을 들었던 그녀에게는 그렇게 한 듯도 싶다. 왜냐하면 처음만큼 열정적이지는 않아으니까. 하지만 그런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사랑하는 마음이 줄어들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그녀에게 난 영원히 사랑한다는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아. 죽는 날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해 주고 싶어라는 멋진말을 해 주기 위해 생각해 두었다.(조금은 야한지도.. *^^*, 머리 속 이… ;;)

그리고 오늘 그녀에게 해 줄 생각이다. 추석 기간이라 학교에서 일찍 끝난다고해서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의 친구들은 각자의 사정들로 인해서 그 계획은 파토나고 그녀와 단둘이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놀기보다는 공부하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서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하기로 했다. 그녀의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 이제 곧 인천으로 가야할 듯하다.

함께 공부해 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하지만 지금의 행동들이… 나름의 배려라고 해 주는 이 행동들이 정말 그녀의 미래를 위해 해 주는 것인가하는…

키퍼 있는 골은 넣으려 하지 않는다

이성과의 교제에 관련된 이야긴데, 필자의 입장에서 키퍼는 남자이고, 골은 여자이다. 물론 이런식으로 비유하는 것은 좋지 못한 평을 받겠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비유라고 생각되어 사용해 본다.

이전에는 남자친구가 있더라도 날 좋아해줘서 사귀게 된다면 상관없다고 잠시나마 생각했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고는 그렇지 않겠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이성관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라서 또는 여자라서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사랑한다는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새로운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나중에 나와 사귀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갈 수도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무슨 바람둥이나 사기꾼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남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세대가 만남과 이별에 대해 쉬이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만남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최소한 연인사이에서만큼은 하지 않아야 하는 행동이다.

전에 어른들로부터 이력서에 기록이 복잡하면 취직에 어려움이 있을것이라면서 말씀해주신 것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여러번 옮기는 사람은, 바꿔 말해 한 곳에서 인내하지 못하고 자주 직장을 옮기는 사람은 새로운 직장에서도 힘들고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이유로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를 사귀려고 하지도 않고, 제의 해 오더라도 거절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 입장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아무 상관없지는 않을거라고 생각된다.

수능 90일 전의 만남..

최근에 새로이 사랑을 시작한 상대는 2008학년도 수능을 치러야 하는 친구이다. 공부에 열정을 쏟아야 할 그를 연애질이라는 행동에 시간을 배분하도록 하는 것은 적지 않은 고민이었다.

하지만 필자 역시 이번 학기를 치르고 나면 원생이 되어야 할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능을 치르는 사람과 비교해도 손색없을만큼의 공부를 해줘야 한다.

여기까지 작성하면 두 사람이 각자의 목표하는 바를 두고 함께 공부하는 좋은 방법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올법한데, 바로 이 이야기를 위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해와 함께 새로운 만남을 가지게 된다. 필자는 비둘기 학번으로 입학하자마자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헤어졌다.

군에 복무하고 학교에 복학하면서 새내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CC와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최근의 그들은 학교 공부도 함께 하여 연애와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는 이야기였다.

과연 그것만큼 이상적인 관계가 어디있을까 싶었다.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두 주인공은 각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통해 좋은 성적을 유지했는데, 두 사람이 연인관계가 되면서 성적의 이상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로에 대한 애정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경쟁자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 애니메이션의 에피소드 중에 학교 교무주임 선생에게 성적과 연애에 대한 충고를 받게 되는데, 이게 또 굉장하다. 부모들의 그들에 대한 신뢰를 통해 연애에 대해 간섭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과연 애니메이션은 허구로만 끝날 것인가. 아직까지도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그것들이 주는 흥미외에도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만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행동양식의 비교, 그리고 수용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괜찮겠다는 것을 따라하는 것이다.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에서 유키노와 아리마와 같이 연애와 성적(공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관계를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 만나서 합의에 이르렀다. 물론 연애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미래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수능일까지의 만남은 자제하도록 말이다.

그 중간에 전화나 문자로 연락은 유지하겠지만, 만남은 가지지 않기로 합의했다. 물론 이게 강제력을 가지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는 것과 비교해도 손색없을만큼의 엄격함을 통해 이루어내고 싶다. 그리고 후에는 다시 지금의 감정으로 관계를 유지해나갔으면 좋겠다.

기록

사랑을 하면 매우 열정적이어진다고 한다. 열정적이지 않다고해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그런 열정이 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던 기억도 있다.

예를 들자면 사랑하는 그녀와의 문자를 모두 PC에 저장해 놓는 일도 있었다. 군에 있을 때 사귀게 된 여자친구와의 문자를 그때 그때 PCLink로 받아서 저장하고는 했는데, 이런 일이 불가능한 훈련때의 경우에는 노트를 가져가서 문자를 보내고 받은 모든 것들을 적어서 옮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뭔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작은 추억이라도 남기고 싶은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새 정말 일거리가 되어있었다. 여전히 그 기록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떤 자료를 찾으려 하다가 발견하고는 하는데, 씁쓸하기도 하지만 풋풋한 추억의 향도 느끼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거리를 만들기 위해 했던 일인데, 지금도 간혹 그 때처럼 해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때 만큼 열정적으로 해낼 자신은 없지만, 그렇게 남겨놓은 기록들을 나중에 100일이나 200일 선물로 줄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런 행동은 어찌보면 정신과적인 문제로 보여질 수도 있겠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은..

언제나 두근거리기 마련이다.

이 바쁜 와중에서도 사랑은 싹튼다. 그 동안 잊고 있었다고만 생각했던 두근거리는 느낌, 그것이 설레임이라는 것으로 불리우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이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직 사랑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가슴의 물리적인 박동외의 떨림이 있다는 것은 설레임의 증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심장박동이 미친거라고 생각될 만큼 뛰기 시작해야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1년이 지나고 2년, 3년…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에 상대에 대해 더 이상 심장박동이 미친듯이 뛰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게 되는 것인가.

사귐, 교제라는 것은 사랑하지 않아도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중에서도 이성과의 교제는 조금 더 다른 요소들을 포함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교제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다른 말로 표현될 수도 있지만 일단 그것은 교제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나서 ‘왜 나를 좋아해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나랑 닮은 구석이 있어서‘라는 다소 건조한 대답을 했다. 그러자 곧이어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요?‘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 질문에 ‘몇 번 만나지 않았지만 닮은 구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날만한 가치가 있지 않아? 서로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만나는 거 아닌가?‘라는 답변을 해 주었다.

개인적으로 결혼을 선보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는데, 필자는 선을 보았더라도 사계절은 보내고 결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건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기간을 가지자는 것이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결혼해도 잘 살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위험부담이 크지 않은가. 서로에 대해 서로를 향해 쏟아붓는 에너지의 무의미한 소비로 전락될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닌가. 서로를 향해 에너지를 한 껏 다 쏟아내고 나서야 그 에너지의 소비가 헛되다는 것을 느꼈을 때의 감정은 허무함일까.

일단 이제 갓 시작한 그1와의 사랑은 풋내로 가득하다. 조금더 이전보다도 더 절제된 조심스러운 행동과 말, 그리고 이상으로 여기는 대화가 있는 교제가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글을 줄인다.

  1. 남성이어서 ‘그’가 아니다.[]

고백

사랑의 고백이라는 것은 언제나 기다림을 만든다. 고백 후에 바로 답을 듣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야 할 경우도 있다.

그동안 잘 지내던 오빠가 갑자기 사귀자고 한다.

난데 없이 갑자기.

오늘 고백한 그녀로부터 오빠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필자는 이성 친구를 사귀는데 있어서 이렇게 시간을 끌어본 적이 없다. 호감이 가고 마음에 들면, 거기에 당시의 상황이 솔로라는 상황이라면 호감의 상대에게 바로 접근해서 나 너 좋은데, 넌 날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한동안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여력이 없을 정도로 공부라는 것에 열정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솔로인채로 1년여를 지내왔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솔로로 지내는 것에 대해 별반 외로움이나 유사 감정이 생기지 않았는데, 한달여쯤엔 누군가를 사귀어도 괜찮다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이 전까지는 주변에서 이제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상대는 있느냐 이제 조금 사귀어도 괜찮지 않겠냐 는 류의 여러 말들이 있었다. 그래도 그런 말들에 아직 괜찮아요 나이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요 뭘 서두르고 싶지 않아요. 라고 대답했다.

사실은 어제 6월 14일1에 고백하고 키스를 해 줄 생각이었다. 물론 불가능했을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그래도 한번은 생각해 볼 만한 낭만적인 장면이 아닌가. 어쨌든 그 계획은 고백하는 동생이 너무나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위로해 주는 정도로 그만 뒀다.

사실 3주간의 기간이 걸린 것은 그녀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일정부분 차지하기는 했지만, 시험시간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배려도 섞여 있었다. 이미 마음은 정해져있었다고 봐도 무관하다. 하지만 이번만은 웬지 곧바로 말하지 않고 거의 1달 가까이를 지체시켰다.

웬지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오늘의 고백이 있고 나서였다.

시험이 모두 끝났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오후 5시 즈음에 그녀를 기숙사 아래2로 불러내었다. 5분 후 쯤에 잠깐 내려와라~ 는 좀 무뚝뚝해보이기까지 하는 한 마디로.

그녀의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라고 하고 집에 왔다.

그녀는 왜 이렇게 여자 보는 눈이 없냐는 핀잔 비슷한 답변을 했지만, 필자의 여자보는 눈은 대부분 틀리지 않아왔기에3 믿는다. 그녀의 열정적인 모습과 이상형에 가까운 통통한 모습의 그녀를 믿는다.

  1. 키스데이[]
  2. 그녀는 기숙사에서 한 학기를 보냈다.[]
  3. 확신 근거는 부모님들께 보일 때마다 그래왔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던킨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훼손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필자는 진정으로 던킨을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라고 표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필자의 지인들이 던킨에 대한 사랑을 알기에 12개 세트를 사가지고 오면 앉은 자리에서 다 해치우는 열정적인 사랑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2년전에 헤어진 그녀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보다 더 침울하다. 온 마음을 다해 필자의 모든 것을 주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그녀와의 이별 사건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배신감이 느껴진다.

회장 보복 사건에 신경을 집중해 놓은 탓에 던킨의 사건을 그 존재조자 알지 못했다. 던킨의 대응 방식 또한 볼만한데, 이 포스트는 대응방식 따위에 신경쓰고 싶지 않을 뿐이다.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 이 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녀(던킨)로부터 받은 배신감은 이후 어떤 제조된 빵도 먹지 못할 결과1를 낳았다.

가망은 없어보이지만, 그래도 이 사건의 고발 사실이 거짓이라고 판결나기를 바란다. 가능성이 없다면 진실을 인정하고 다시 일어서는, 깨끗한 빵을 만들어 파는 그런 던킨으로 다시 일어서기를 바란다. 그런 그녀를 다시 사랑해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 그녀(던킨)가 결백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필자가 읽은 순서대로 관련글 링크걸어둔다.

최근의 두 가지 사건의 implication
던킨 도너츠, 그 실체는
던킨 도너츠, 장난하냐? 장난해!
기업들이 도대체 왜 이러는지..
트랜스 지방이 문제가 아니다 던킨도너츠
우리사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두가지 사례
던킨…예전에도 맛은 없었다…
전선에 참전
던킨도너츠, 관세사 실수로 영업정지 처분
“영업정지는 부당” 던킨도너츠 반발

  1. 물론 다이어트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몸살이 나도록 사랑에 빠지는..

nonem의 Why Love?라는 글 중에서 몸살이 나도록 사랑해 본적이 없다는 말에 왜 그래 공감이 가는걸까.

사실 몸살이 나도록 사랑을 해 본적이 있다. 하지만 그 표현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몸살이라는게 한 번 호되게 거치고 나면 다시 그 몸살을 겪지 않으려고 조심하게 된다. 필자의 사랑 경험 역시 그 이후의 사랑들을 몸살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만들어 두도록 하는데 일조했다.

난 더 이상 몸살이 나도록 사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사랑 다시 해 보리라는 기대감마저 버린 것은 아니다.

기대하고 있다.

여전히…

사랑 시리즈 2

서울에서 살다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아버지의 일 때문에 부천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앞서 1편에서 부교역자로 계시던 교회에서 나와 개척을 하게 되신것이다. 그렇게 남자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1년 반을 지내고 졸업을 했지만 친한 친구는 사귈 수가 없었다. 물론 남자 중학교였기 때문에 여자와의 관계는 가질 수 없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지만 내성적인 성격이고 다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려는 노력이 없었다고 해야할 듯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남녀공학이었다. 남녀공학에도 남자와 여자를 각기 다른 반에 편성해 운영하던 학교였지만 과의 특성상 여자가 더 많았고 해당 과에 배정된 반이 2개 반이어서 남녀 합반으로 편성될 수 밖에 없었다. 남자들은 3년 내내 같은 반으로 지낼 수 밖에 없었다.

1학년에 입학해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 한 껏 내성적인 성격으로 지냈던 것에 후회라는 것을 하게 됐다. 고등학교에서는 좀 더 활달한 사람이 되자는 목표아래 조금 이상한 행동을 해 버렸다. 이 계획에 다행히 도움이 되었던 것은 담임 선생님께서 자유로이 자리를 정하도록 해 주셨던 것이었다. 난 문간에 앉아서 지나다니는 친구들에게 모두 인사하기 시작했다. 같은 중학교에서 온 친구들은 모두 다른 반으로 흩어졌기에 인사하는 친구들은 모두 새로운 친구들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시작하면서 보게된 그녀였다. 피부가 백성공주라고 불리워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하얀 친구였다. 지금도 그녀를 처음 보았던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인다. 물론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렸지만, 그녀는 내 가슴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설레임..

문간에 앉아서 인사를 하면서 내성적인 성격이 고쳐지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녀와는 그런 친구들 중에 한 명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는 3년 간의 one side love가 시작되었다. 고지식하다고 하겠지만 한 여자를 사랑하는 동안에는 다른 여자를 돌아볼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1학년 중간고사를 보고나서인지 2학년이 다 되어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고백을 하게 되었다.

고백의 결과는?

학교를 마치고 다른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간데다가 버스 정류장에는 그녀와 그녀의 친구, 그리고 내 친구와 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좋아하는데 사귀면 어떻겠냐는 질문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고등학교 때에는 아무도 사귈 생각이 없다였다. 그 대답은 완곡한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녀를 먼저 버스를 태워 보내고 나서 애꿏은 정보지 통을 발로 차 버렸다. 내성적인데다가 눈물이 많은 필자는 집에 가서 펑펑 울어제꼈다. 그렇게 울고 있는데, 집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라며 들려온 목소리는 그녀였다.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알려 준 적이 없었는데, 어찌 저찌해서 알아냈다며 자신의 감정을 밝히려고 전화했다고 했다. 필자가 싫어서가 아니라 진짜로 사귀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글을 적으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고백할 때 곁에 같이 있어줬던 내 친구가 한 마디 한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녀석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기는 하지만 일단 이 것에 대한 확인은 추후에 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간을 짝사랑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포기가 되어졌다. 그리고는 취업을 나가고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채팅에서 만난 사람들과 번개를 하면서 지냈다. 주로 1:1 만남이었고 대상은 여자들이었다. 나름대로 여성에 대한 면역이 생긴정도를 넘어서서 적절한 작업이 가능한 성격으로 변화해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OT를 지내고 나서 한 친구에게 사귀자고 했다. 고등학교 내내 사랑했던 그녀와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다른 여자를 사귀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사귀자고 했던 친구였다. 물론 호감이 가는 친구였기 때문에 사귀자는 제의를 했었지만 그 친구와는 그리 오래 사귀지 않았다. 호감을 느끼긴 했지만 사귀자고 했던 목적이 불순했다는 솔직한 얘기로 이별을 고했다.

CC로 사귀었던 친구와 사귀기 시작한지 얼마가 되지 않아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고등학교 때의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는지를 물어왔다. 그 친구는 정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사귀고자 했던 것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순간이었다.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다는 말에 조금 놀라는 듯해서 니가 나랑 사귀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다른 친구를 사귀었다는 말에 고등학교 때는 그랬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 화가 나서 대충 대화를 마무리 하고 전화를 끊었다.

웬지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나 라는 존재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3년 간의 짝사랑은 마무리 되어졌다. 아니 마무리 되어진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그녀는 나를 설레이게 만들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랑 시리즈 1

기억도 못할 시절의 첫사랑은 예외로 두겠다. 왜냐하면 기억하려고 애써봤자 기억나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일단 가장 먼저 누군가를 좋아한 것은 – 물론 가족을 제외하고 이성이라고 생각되어지는 – 김△□양이었다. 그녀는 부모님들께서 부교역자로 일하시던 교회 총회장 목사님의 손녀딸이었다. 지금도 어린 시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꽤나 귀여운 그녀이지만 어린 시절만큼은 아니다.

다 커서 어느날인가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았던 본인은 그녀를 찾기 위해 무려 420명의 동일 생년 동명의 여인들 중에서 그녀를 찾으려 했으나 헛 수고였다. 메인에 자신의 사진을 걸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언니의 이름으로 검색을 해서 찾아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그녀는 어린 시절의 첫 사랑 그녀였던 것이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첫사랑은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누군가에게는 이루지 못했거나 깊은 상처로써 기억하겠지만, 사람들은 첫 사랑에 대해 기분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만난 그녀와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지냈지만 부모님들께서 목사님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여건이었다. 물론 어린 시절에는 조금 귀여운 여자아이라는 생각을 가진게 다 였지만 중학생이 되어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이었다. 그렇게 그녀에 대한 사랑을 키워갔지만 어느 날인가 동생이 본인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는 이상형을 물어보고는 알려주었는데, 그것으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접게 되었다.
왜 인지 그당시에는 굉장히 비뚤어진 이상형을 가졌다고 생각되었다. 담배도 좀 피워보고 술도 좀 마셔 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물론 본인은 굉장히 고지식한 존재로서 그녀에게 인식될만큼의 인물이었고 스스로도 그런 이상형에 가까워질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는 부천이라는 동네로 이사오게 되었다.

그 중간에 홍당무라고 불렀던 여자친구에 대해 호감을 가지긴 했지만 그다지 사랑이라고까지 여기지는 않았었다. 홍당무라고 불렀던 그녀는 웬지 얼굴이 자주 붉어지던 아이였다. 그래서 별명을 홍당무라고 지었는데, 그럴때면 얼굴이 빨개져서는 화를 내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리고는 중학교에 진학하고 아버지께서 부천에 교회를 개척하셨기 때문에 부천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여전히 그녀에게는 난 친구일 뿐이고, 나 역시 그녀를 친구로서만 생각하고 있다.

결혼에 대한 단상

내 이상형이라고 하기에는 명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일단 함께 살아갈 반쪽은 기도 잘하고, 밥 잘 먹는 여자였으면 좋겠다.

일단 기도를 잘한다는 것은 방언을 한다는 것인데, 이제 일반적인 초신자나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미쳤다고 했던 방언을 말하는데, 방언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하는 필수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기도를 잘 한다는 것은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견을 여쭈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본인 역시 그런 면에서 자유롭지 못한 편인데, 꽤나 노력하고 있으니 반려자도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기도로 서로를 중보하면서 서로를 우선순위로 두기보다는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더 높이 두어 서로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 줄 수 있는 그런 관계이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교의 학과장으로 계신 분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분께서 신부감을 고르실 때 선택 기준 중에 하나이셨다는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밥을 잘 먹는 여자여야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이다. 이번 주 월요일에 마케팅 담당 교수님께서 강의 중에 어떤 여자를 이상형으로 두었냐고 물으시길래 “밥 잘먹는 여자요”라고 했더니, “돼지 키울 일 있냐?”고 하셨다. 그 상황에서 더 자세하게 말하고 따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고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밥을 잘 먹는다는 것은 결코 과도하게 먹는 식탐의 소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수님께서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셨던 것이라고 짧게 집고 넘어가겠다.

이런 여자를 구하는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큰데, 아버지께서 어머님을 선택하셨던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밥을 먹는 모습에서였다고 한다.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과감하게 잡수셨고, 그런 모습에 반하셨다고 한다. 어찌보면 이건 눈에 콩깎지가 콱~ 끼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했으리라고 설명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야리야리한 아가씨들보다 그렇게 건강하고 밥 잘먹는 모습이 더 좋으셨기 때문에 조금은 저돌적인 청혼을 하셨다고 한다.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밥 잘 먹으면 일단 건강은 따 놓은 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본인의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밥 잘 먹는 여인네들은 성격이 원만한 편이며 성격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본인이 원하는 여성상은 대략 저정도 뿐이다. 거기에 외모도 좀 받쳐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다지 외모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사귀어왔던 여성 동무들의 외모를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을 증명해 낼 수 있다.

최근에 와서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라는 식의 생각들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것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라는 설명보다는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고 설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개인과 개인이 사랑해서 시작되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집안과 집안이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내 이성 선택의 기준은 결국 집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를 가진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정도의 여성정도라면 어떤 여성이라도 – 상대 집안의 신앙과 불신앙 – 상관 없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신다. 문화적 충격에 민감하신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단 여기에서 우리 어머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님은 예수쟁이라는 – 기독교인을 이르는 당시의 털털한 표현 – 딱지를 달고 불교인 집안에 들어오셨다. 당연히 시누들이나 시부모님들로부터 엄청난 눈총을 받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어머님이 시집온다는 말에 집안에서는 “예수쟁이 며느리를 얻으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억지의 말도 나왔다고 한다. 사실 그 시대 상황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암 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의 변형 정도로 생각하고 말자. 그렇게 시집오셔서는 집안을 전도하시는데 20여년을 보내셨다. 이런 경험에 의해서 부모님들은 여자쪽의 집안도 모두 믿는 가정이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야할 것은 본인이 목회를 목표로 하고 있는 신학생이라는 것이다.

문화적 충돌이라는 것은 결코 우습게 볼 만한 일이 아니다. 문화적 충돌을 얕잡아 보는 것은 심지어 이혼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르게 하기도 한다. 단지 둘이 좋아서 결혼하는 것으로 결혼생활은 원만히 마무리 되지 않는다. 술, 제사, 기타 집안행사에 있어서 문화적인 차이를 통해 다투게 되고 그런 것들로 불화를 겪는 가정은 적지 않다. 그런 것들로 인해서 다른 기독교인들에게마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또 만약 잘 되지 않는 경우를 들어보자면 그 문제성은 더욱 심도를 가진다.

뭐.. 이런 저런것 다 따지다 보면 어떻게 연애를 하겠는가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나이에 이르르니 별 수 없다. 본인의 연애관은 일단 쿨하게 시작하고 맺음도 깔끔하게 하자는 것이다. 누군가 본인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일단 그 사람에게 확실히 말해둠으로써 더욱 깊어질 정으로 인해 상처가 커지는 것을 방지해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그 순간에는 상처가 될 것이지만, 그 이후에까지 방치해서 더 깊은 상처를 받게 하는 것보다는 낫다.

본인은 80년생(27세)이고 위로 6살 아래로 6살까지 커버 가능하다는 점을 기억하시고, 이 글을 읽는 분중에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기도 잘하고 밥 잘 먹는 여인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기 바란다. ^^ 소개가 아닌 자신이 그런 조건에 부합된다고 생각하시면 적극적으로 다가와 주시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 짓겠다.

사랑은 현실과 이상의 적절한 조합

얼마 전 활동하는 커뮤니티에서 아래의 동영상을 접하게 되었다. 사랑에 대해서는 매우 많은 자료들이 있고, 또 많은 의견들이 있다.

인성이의 사랑은 이상이다. 지현이의 사랑은 현실이다.

분명히 사랑은 현실이다. 그러나 사랑으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착각이라는 것은 굉장한 오류라고 생각된다. 물론 현실 때문에 사랑이 휘청휘청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 적지 않은 요소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사랑에 대해 위대하다 한다.

나 역시 조인성과 비슷한 입장이기 때문에 사랑을 시작하지 않는다고 핑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언제든 사랑을 시작할 준비는 하고 있다. 지금의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여자라면 평생 함께 해 줄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혼률이 급하게 오르고 있는 지금의 세대에서 이런 입장에 대해서 난색을 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이 남자라면 내게 어떤 것이든 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여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랑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의 즐거움이나 외로움을 잊기 위해 사랑을 하는 자신은 용납할 수 없다.

많은 사랑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나름 직접 또는 간접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사랑을 통해 현실을 극복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차이를 가지지 않도록 상대를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평균적으로 사랑의 지속기간은 2년여라고 한다. 하지만 내 아버지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다투었을 때 잠시 사랑의 감정이 끊겼을 때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해 끝없는 사랑을 보이고 계신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와서인지 난

너만을 영원히 사랑해

라는 말을 믿는 바보 중에 하나이다.

쨌든 나에게 있어서도 사랑은 현실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은 사랑하는 사람 상호간의 협조체제에 의해 얼마든지 극복해 낼 수 있다는게 이 글의 주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