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플렉스를 해 보았다

연구소에서 일을 하다가 일방적으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는데, 불미스러운 일로 그런건 아니고 국가에서 지급하는 연구비용 삭감이 이유였는데, 주는 월급에 비해서 일이 많다고 여겨져서 그만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기에 별 상관이 없었다.

문제는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이었는데, 이 부분은 계약서와 관련해서 내가 잘 못 한 부분이 있으니 주장할 수 없는 부분이고, 여유 자금이 없어서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를 찾다보니 플렉스를 하였다.

찾아보면 플렉스 경험담 단가 등의 다양한 글을 쉽게 검색할 수 있다. 그러니 겹치는 내용은 건너뛰고 몇 가지 부분에 대해서 간단하게 적어보려고 한다.

최저 시급도 안 된다

5월 중순에 새벽 배송으로 처음 시작해서 지금까지 약 한달하고 반 정도를 했다. 물론 처음 했던 날은 새벽 배송 물량이 없어서 이기도 했지만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최저시급도 받지 못했다.

새벽배송은 다른 시간대보다 단가가 높은 편인데(보통 박스 950원 / 비닐 650원) 38개를 배정받아서 1시 반에 나가서 배달을 마친 시간이 5시가 조금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 날 받은 금액은 박스 7개, 비닐 31개를 배달했으니 받은 금액은 26,800원이었다. 그러니 시간당 5,360원을 벌었는데, 여기에서 그 날 움직인 거리를 연비 계산했더니 유류비로 대략 4,000원을 조금 덜 썼다. 그러니 유류비를 제한 금액을 계산하면 시간당 5천원을 벌었다.

이게 처음이니까 이런데 하루 하루 해 나갈 수록 익숙해지고 건강해지기도 해서 최근에는 주간 배송과 당일 백업1까지 240개를 배송해서 전부 비닐 물량으로 550원씩 대략 계산하면 132,000원을 벌었다. 여기에 상자 가격이 나오면 더 많겠지만 오전 10시 반에 가서 오후 10시까지 배달했으니 12시간 일을 해서 시간당 11,000원을 벌었고, 여기에서 그 날 쓴 유류비가 대략 5,000원 정도였다.2

플렉스 프로모션이 없고, 최근 가격이 형편 없어졌지만 바지런히하면 이 정도 수준의 벌이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5월 17일 처음 시작해서 6월 14일까지 월~금만 20일 일하면서 1,445,801원(세전)을 벌었다. 일하면서 다른데 안 다니고 쓴 유류비는 15만원이다. 새벽 물량이 없어서 주간으로 바꿔 일하면서 일 평균 95개정도 했을 때 벌 수 있는 금액이니 참고하면 되겠다.

비닐로 단가 후려치기

최근에 뉴스에 나온 얘긴데, 일부러 그러는 거 같지는 않고 상자에 비닐로 표기가 되어 있어서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려는 꼼수라고 보도가 되었던데, 실제로 일을 하다보면 상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비닐인 물량도 제법 있다.

개인적으로는 단가를 후려치기 위해서 이러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동화하다보니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정확해지면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이니 신경쓰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겠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단가를 후려쳐서 문제가 되었다기 보다 차량이 작아서3 코드별로 분류해서 넣어놨는데, 표기된 것과 다른 포장이어서 찾느라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더 크게 다가왔다. 상자로 표시되어 있어서 상자만 찾았는데 찾아보니 비닐이어서 시간이 걸렸다거나 반대의 경우여서 비닐을 다 뒤졌는데 나오지 않아서 그 만큼의 시간이 걸려 지연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평소에는 문제가 안 되고 아무래도 시간 제한이 있는데 100개 이상의 많은 물량을 가지고 나갔을 때 생기는 문제니 보통의 여유로운 일정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사항이다.

건강해진다

개인적으로 앉아서 하는 일만 하면서 운동도 안 하고 있어서 체중이 130kg까지 치솟았는데, 이 일을 하면서 한 달 반 동안 하루 평균 2만보씩 걷다보니 살이 쭉쭉 빠졌다.4

돈을 벌고 체중도 줄어서 건강해졌다고 생각한다.

그 외의 생각

이제는 다른 일을 하게 되어서 플렉스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만하려고 하는데, 사실 플렉스라는 것이 원하는 날에 일할 수 있다는 유익이 있어서 했는데 사실 쿠친(쿠팡 직원)이 보통 가지고 나가는 물량만큼을 하루에 소화하면 원하는 날만 일하고 적당히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자리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차가 작아서 하루 종일 해 봤자 평균 200개 정도가 고작이기는 하지만 당장 일이 잘려 돈이 급하고 다른 자리를 찾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배민이나 오늘회 같은 비슷한 업무들도 괜찮지만, 내 경우에는 최근 1~2년 사이에 접촉사고가 많아서 배민에서 까이게 되어서 이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일한만큼 받을 수 있어서 좋은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1. 그 날 안에만 배송하면 되는 물량으로 보통 저녁 1시 전까지 업무를 마치면 되는 것으로 표시되는데, 쿠친(쿠팡직원)이 가지고 나간 물량 이외에 오후에 배당이 안 된 물량을 배송하는 업무이다.[]
  2. 240개 중에 박스도 있을테니 15만원을 훌쩍 넘길 것이지만 단순계산이니 이 정도이다.[]
  3. 쉐보레 스파크로 업무했다[]
  4. 6주 동안 체중이 13kg 빠졌는데, 골격근량이 변화가 없고 체지방만 5kg남짓이 빠진 것을 보면 근육도 생긴 모양이다.[]

번역에 있어서 주의할 점

워드프레스 번역에서 조심해야 할 부분 하나

한국 워드프레스 사용자 모임에 한 분이 번역으로 인해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고 글을 공개했다.

잘 못 한 번역으로 생기는 일

휴~ 다행

죄송하다는 댓글을 달기 전에 왜 그렇게 했을까를 생각해보려고 5.6의 번역 문자열을 확인하러 갔다.

첫 번째 오타가 난 부분은 분명히 내가 한 번역이었다.

당시에는 GTE였기에 번역을 하면 곧바로 승인까지 이어졌기에 번역을 제안한 사람이 없이 내 이름만 등록되어 있다.

두 번째 부분을 확인하려 했는데, 다른 분이 번역을 하신 것으로 나와 있었다.

그래서 이전 버전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인하려고 갔는데, 5.4판만 내가 번역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5.4와 5.5의 경우 이미 번역이 이루어진 부분은 그대로 두고 비어 있는 부분만 5.6의 번역에서 채우는 방식으로 했기에 아마도 5.6에서 이미 되어 있던 번역이 그대로 들어간 모양이다.

5.7을 확인해보니 5.6을 번역한 분이 한 것이 그대로 들어가 있었다.

이전 번역을 믿기

사실 이전 번역이 등록되어 있고 그에 대해 별 다른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면 다음 판에서도 같은 번역을 등록해도 문제가 없다.

그래서 이전 판에 번역이 등록되어 있다면 믿고 등록해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문제가 생겼다.

원문과 다른 번역문에 있어서 새 판에 적용할 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드프레스만의 문제는 아니니 되도록이면 원문의 특수문자 유무를 번역문에도 철저하게 적용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좋은 판단이었다

책을 스캔해서 보게 된 것이 20년 정도인데, 뇌과학과 관련한 동영상을 보고 나니 좋은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카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어서 ‘태블릿을 입학 선물로 줄까?’하고 검색하다가 교보에서 나온 전자책 단말을 보고는 조카에게 괜찮은지 물었다.

워낙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 1년 동안 무제한 요금제로 볼 수 있다는 말에 무척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바로 주문하였다.

주문을 해 놓고 기기에 관련한 내용을 검색하다 종이책과 전자책, 어느 쪽이 좋나요? (feat. 뇌과학)이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참 기분이 좋았다.

스캔의 시작

20년 전 대학에 입학하고 책을 무겁게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다가 집에 있는 스캐너를 활용할 생각을 했다.

베타 테스트를 위해 받은 스캐너

당시 아버지께서는 한국인식기술의 이인동 박사에게 스캐너를 지원받아서 쓰고 계셨는데, 글눈(하이아트)이라는 문자 인식 프로그램을 구매해서 가지고 계신 책을 스캔하시면서 사용하셨다.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문제를 확인하고 요청하는 사이에 스캐너를 받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베타 테스터정도의 역할을 위해 받으셨던 모양이다.

그 때의 글 눈의 한국어 인식은 꽤나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ABBYY사의 Fine Reader를 구매해서 쓰고 있는데, 한국어에 있어서는 당시의 글눈의 인식률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1

그 때 받은 스캐너는 평판 스캐너였는데, 꽤나 성능이 좋은 편이었기에 당시에 스캔한 책은 최신 기기로 스캔한 것과 견주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2

화면으로 보는 책

그 때부터 책은 PC 화면을 통하여 보았고, 학교 수업에 필요한 부분만 가지고 가서 보았다.

군생활을 마친 후에는 여유가 있어서 랩탑을 들고 다니면서 수업을 들었기에 거의 책을 들고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사람들이 종이로 문서를 보는 것이 편한 반면, 화면으로 보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반대의 현상을 겪고 있다. 종이로 책을 볼 때 장 시간 집중하는 것이 어렵게 여겨지기도 한다.

복사기 렌탈

그렇게 시작하여 20년이 넘는 시간을 책을 스캔해서 보관하여 놓고, 태블릿이 쓸만해지기 시작하면서 구매하는 책을 모두 스캔하여 보고 있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학교에 있는 삼성 복사기를 만났는데, 사용해 봤던 다른 어떤 복사기보다 스캔 기능이 좋았다.

대학원 원우회에서 복사기를 렌탈하여 비치하고, 종이만 가지고 와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두었는데 너무 좋은 기능을 보고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집에 복사기를 렌탈하였다.

여동생이 수학 개인과외를 하면서 학생들의 오답 노트를 만들어 주기 위해 인쇄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잉크 값으로 한 달에 6만원 정도를 지출하고 있었다.

그 얘기를 듣고 알아보니 복사기 렌탈이 7만원 정도였다. 렌탈 비용은 출력하는 양에 따라 정해졌는데, 스캔이 주 목적이고 동생이 사용하는 양은 기껏해야 최소 요금제가 제공하는 양보다 적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책을 자르는 일은 수고롭지만, 제단기를 살 정도로 한 번에 몇 십 권씩 사지는 않으니 큰 문제가 아니었다.

자르고 나면 복사기 상단에 넣어놓고 버튼 한번만 누르면 양면 스캔이 되니 그 마저도 크게 수고롭지 않다.

전자책보다 학습 효과가 좋은 종이책

위에 언급한 영상을 보면 종이책이 전자책보다 학습효과가 좋다는 내용이 나온다. 종이책은 정보의 위치가 변하지 않아서 학습에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자책으로 보더라도 PDF처럼 내용의 위치가 변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3

그 내용을 접하고 생각해보니 참 기분이 좋았다. 편리하면서도 학습에 좀 더 용이한 방식으로 책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좋은 판단이었다

개인적으로 PDF로 보관하고 있는 책의 수는 2014년에 없어진 이후 점점 늘어나서 6년 동안 800여 권 정도가 되었다.4

복사기를 렌탈하기 전에는 서적 스캔하는 업체에서 한 권당 2천원에서 4천원 정도를 들여서 스캔했었다.

가지고 있는 책을 3천원씩 주고 스캔했어도 지금까지 지출한 렌탈비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다.

비용이나 편의성을 생각해 보았을 때 처음에 좋은 기회로 시작하였던 책을 스캔해서 보는 판단은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1. 안타깝게도 2002년 이인동 박사가 별세하면서 그의 아내인 송은숙 씨가 업을 이어갔지만 지금까지 사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2. 클라우드 파일 공유 시스템을 사용하기 전에 외장하드에 저장해 두었는데, 2014년 시게이트 외장하드 4TB가 망가지면서 거의 없어졌다.[]
  3. PDF 형식이 아니더라도 위치 정보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면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댓글에 달려 있기도 하다.[]
  4. 개인적인 필요에 따라 스캔하는 것이기에 물론 스캔한 책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표정을 잘 본다는 것

사람의 표정을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점이기도 하면서 좋지 않은 점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결혼식에는 가려고 하는 편이다. 그 동안 축하해주러 오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이기도하고, 청첩장을 보냈다는 것은 축하해달라고 요청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청첩장을 받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축하해주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1

실제로 청첩장을 받지 않은 자리에서 좋지 않은 기억 때문이기도 한데, 그런 경험 때문인지 청첩장을 보내지 않은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최근 일부러 청첩장을 주지 않고 대화하는 자리에서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비웃는 표정을 짓는 사람을 보았다.

참 불쌍했다.

진심으로 웃는 것과 억지로 웃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참 힘들다. 상대방이 숨기려고 하는 표정까지 알아버리게 되니 여간 불편하다.

동체시력이 좋으면 사람의 표정을 조금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 상대방이 숨기려는 찰나의 표정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사회 생활에 무척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 정말 많은 도움을 얻게 된다.

차태현 주연의 슬로우 비디오가 동체시력을 주제로 하는 영화인데, 그럭저럭 볼 만하다.2

동체시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물론 이 경우에는 내 결혼식에도 오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전제가 있다. 새로 사귄 사람이라도 관계가 좋지 않으면 안 보내기도 하니 가지 않는 모든 경우에 이런 생각을 가질리도 없다.[]
  2. 실제로 그렇게 느리게 보이지 않는다.[]

기여에 대한 짧은 생각

여기 저기서 번역 부문에 기여하고 있는 커뮤니티가 몇 군데 있다. 짬짬이 하는 것이라고 해도 제법 적지 않은 개인 시간을 할애한다.

최근에 활동하고 있는 몇 커뮤니티에서 기여에 대한 보상과 관련하여 의견이 오갔다. 그리고 어떤 커뮤니티는 가입하는 사람이 쌓여(?)만 간다.

참여하고 있는 커뮤니티에서 여전히 활동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대부분 어떤 것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니 교회에서의 봉사를 예로 들어보고자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으로서 전혀 겪으실 필요가 없으셨던 삶과 고통,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셨다.

그리고 그렇게 죄가 해결된 사람은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죄가 해결된다. 100년 남짓의 세월에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죄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런 죄가 해결되었으니 당연히 예수님의 보혈에 감사하고 그 마음으로 교회에서 하는 일에 열심을 가진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1

물론 교회가 아닌 곳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이런 마음으로 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공통점을 찾자면 도움을 얻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기여에 열심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열심히 하기도 한다.

기여자를 통해 도움을 받은 사람이 모두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기여를 통해 도움을 받은 사람이다.

자신이 무엇을 얻기 위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기여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

개인적인 경험을 돌아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경험을 통해서 얻는 유익이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이다.

물론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생업으로 도무지 시간이 안 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원하는 만큼 기여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많으니 ‘일은 안 한다’는 비난은 삼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1.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말씀을 들으려는 마음도 봉사하려는 마음도 없다면 그냥 교인은 될 수 있을지 언정 성도는 아니다.[]
  2. 그리고 죄가 해결된 것에 비교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느려터진 에버노트를 버렸다

에버노트에 처음 가입한 것은 2009년이었다. 처음 에버노트를 설치했을 때는 한글로 내용을 입력하는데 문제가 좀 있었다. 그래서 곧바로 삭제했다. 그 당시의 에버노트는 그다지 쓸만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쓸만하지 않게 되어가고 있다.

에버노트를 사용한 10년

물론 처음 에버노트를 사용할 때보다 사용성은 좋아졌다. 더 이상 한글이 깨지는 일은 없고, 기능도 훨씬 많아졌다. 대학원에 등록하면서 다시 관심이 생겨 오랫만에 에버노트를 설치했고, 처음보다 훨씬 쓸만해진데다가 기기별로 동기화도 잘 되는 편이었기에 고민없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에버노트를 사용하는 양이 결제를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메모를 많이 하는 편이었지만, 수업 내용에 이미지나 동영상 등의 용량을 많이 차지하는 내용을 입력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제를 해서 썼다. 성장하는 에버노트를 지원하는 마음으로 유료로 결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대학원을 졸업할 시기가 다가오면서 노트의 수가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좀 생겼다. 에버노트를 실행하고 입력하고 동기화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속도가 느려지는 문제가 있었다.

약간의 검색을 해 보았지만 대체할 만한 다른 앱이 없었고, 크게 다른 앱으로 바꿔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느려진 것은 아니었기에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10년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처음에 설치하고 삭제한 뒤로 사용하지 않은 4년을 빼면 6년이다. 4년을 빼더라도 6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6년 동안 잘 사용했고, 유료 요금제가 생기고 난 뒤로는 달마다 결제를 하면서 사용했다. 2년 전부터는 연간 결제를 해 왔고, 한 달이 조금 못 된 4월 26일에 다음 한 해의 결제가 이루어졌다.

에버노트가 뻗었다

여전히 메모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대학원에 다닐 때 만큼은 아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가 보고 듣는 횟수가 많아지니 다시 검색을 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늘(2020년 5월 15일) 에버노트가 뻗는 일이 생겼다.

사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에버노트를 닫았다가 다시 실행하면 해결되었으니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에버노트를 열고 검색을 했는데, 검색이 되어 노트 화면이 열리기는 하는데,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 이상해서 새로운 노트를 열고 제목을 입력하고 내용을 입력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되지 않았다.

에버노트를 종료하려고 트레이 아이콘에서 종료를 시도하려고 했더니 에버노트가 작동을 멈춰버렸다. 에버노트 화면이 하얗게 되면서 응답하지 않았다. 사용하고 있는 TotalCommander로 프로세스를 강제로 종료시켰고, 다시 실행하였지만 여전히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오늘 이런 일을 겪기 일주일 전 쯤 다른 이유로 에버노트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일이 있어서 완전히 삭제했다가 다시 설치한 일이 생각이 나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반복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중에 누군가 활동하는 슬랙에서 노션을 언급했다.

노션… 노션? 노오션!

최근들어 노션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처음 노션에 대해 들었을 때는 뭔가 새로운 도구인가? 정도였다.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작년 중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서 노션에 대한 대화가 자주 보였다. 협업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다시금 그에 대한 관심이 생길 정도로 빈도가 높아졌다.

그러던 가운데 오늘의 일을 겪게 되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오늘의 일 만으로 노션에 대한 관심이 에버노트를 버릴 정도로 높아지지는 않았다. 그 동안 에버노트를 사용하면서 있었던 일들, 특별히 일 주일 전의 일과 오늘의 일이 다시금 대체할 노트앱을 검색하게 만들었고, 노션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노션은 열일하고 있다. 에버노트에 있는 자료를 가져오는 중이다. 6년 이상을 사용하면서 만들어 놓았던 노트를 가져오느라 아직도 일하고 있는 노션으로 옮기게 된 계기는 나와 다른 이유였지만 에버노트를 버리고 노션을 선택했다는 글 때문이다.

처음 글을 볼 때만 해도 쓸만한 노트앱이 많이 있구나 정도였는데, 그 다음 글을 보니 이젠 정말 에버노트를 버릴 때가 됐구나 싶었다.

에버노트(Evernote)에서 노션(Notion)으로 떠난 이유

이 글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눈에 띄고 공감이 된 항목은 단연 속도의 문제이다. 결국 오늘의 결정은 속도의 문제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웹클리퍼의 성능이 쓸만하다는 항목은 내게는 그렇게 큰 이점이 아니다. 글을 작성하는 일은 많지만, 에버노트로 클리핑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에버노트로 클리핑하는 대신 아카이빙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와 외국어 글에 대한 서비스를 각기 따로 쓰고 있다. 한국어 자료는 포켓, 그 외의 외국어 자료는 인스타페이퍼를 사용하고 있다.1

그래서 노션 쓰라고?

이제 노션을 설치하고 노션 웹에서 에버노트를 가져오게 해 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작업 중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6년의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고, 그 사이에 내 생각은 끊임이 없었기에 여전히 작업 중일 수 밖에 없다.

노션은 좋은 도구이지만,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은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다. 무료로 사용할 정도로 크게 사용이 많지 않다면 기본 기능으로 만족할 수 있고,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을만한 앱을 고민하여 선택하는 것이 좋은 일이다.

앞서 노션에 대한 정보가 정리되어 있는 글을 보고 다른 앱을 선택하는 것을 고민해보아도 좋을 일이다.

에버노트가 계속 이렇게 개인 사용자에게 무관심하고 기능 개선에 신경쓰지 않으면 에버노트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밝히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1. 한 앱으로 모아놓을 수도 있지만, 포켓의 외국어 글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영어의 가독성이 인스타페이퍼가 더 좋다. 이와는 별개로 강조표시(Highlight) 서비스는 디고(diigo)를 쓴다. 최근에는 라이너를 많이 쓰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원하는 기능이 구비되어 있어서 디고를 사용한다.[]

워드프레스 번역에 대한 단상

지난 글들을 정리하고 여기 저기에 퍼져 있던 글들을 모아 워드프레스로 온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이용하는 플러그인 몇 개를 번역하는 작업을 하였다.

개인적인 번역 진행의 문제

번역을 몇 건을 진행하면서 나름의 기준을 만들었고, Please가 들어가는 문장을 예로 들면, 문장의 끝은 ‘~하시기 바랍니다’로 통일성 있게 번역하였다. 이렇게 만든 번역어의 대부분은 원어의 발음을 그대로 쓰기보다는 번역어를 만들어서라도 쓰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번역하면서 원어의 발음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upload와 download, 그리고 update를 번역할 때, upload에 올리기, download에 내려받기, update에 갱신하기로 짝을 맞추었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알고 있던 번역어를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워드프레스 공식 번역을 보니 이 단어들이 영문의 발음을 그대로 차용하여 업로드, 다운로드, 업데이트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번역어를 이용하여서 의도하지 않게 기존의 번역과 다른 결과물을 만들었다. 번역을 하기 전에 아시아 폴리글롯 모임에 물어보았을 때는 연결된 번역어 모음이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번역의 품질과 통일성

개인적인 번역 결과물이 몇 개 생기고 난 뒤에 공식 번역을 제안하면서 이미 번역된 파일을 포에디트로 열어 검색하고 해당 단어가 어떻게 번역이 되어 있는지 확인하여 번역하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 하였거나 번역이 많이 되어 있지 않은 항목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번역어를 사용하였다. 그럴 때마다 사실 많이 아쉬웠던 부분이 통일성이었다.

워프 한국어 사용자 슬랙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어 사용자 장석문님1과 짧은 대화 중에 다른 분이 올린 번역을 확인하고 관리하는 일은 거의 혼자하고 계셔서 용어집, 스타일 가이드까지 작업할 여력이 안 되신다는 답변을 듣고는 그렇구나 하고 말았었다.

그 뒤로도 몇 개 정도 더 번역을 하면서 용어집이나 스타일 가이드가 없으니 개인적으로 진행하던 대로 번역을 하고 있었다.

5.4.x 한국어 번역 파일 제공 중지

오늘(5월 4일) 장석문님도 문제가 있다2고 여기셨는지 5.4.x 한국어 번역 제공은 중지한다는 공지를 올리셨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개인적으로 워드프레스를 본격(?)적으로 이용하게 되고, 번역에 참여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이 용어의 통일성이었다. 공식 번역물인데도 여러 사람이 제안하고 그것을 장석문님이 개별적으로 검토하고 진행하셔서인지 통일성이 확보되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았다.

혼자서 많은 일을 처리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경험을 해 보았기에 장석문님의 상황은 안타깝게 여겨진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이용자 입장에서는 업데이트된 5.4.x에서 제공되던 한국어 번역이 제거되어서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해보면 꼭 해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번역 파일 제공 중지를 계기로 용어집과 스타일 가이드가 잘 정립되어 통일성 있고 깔끔한 번역물이 나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더불어 개인적인 번역물에 문제가 있는 것들도 수정할 수 있는 좋은 기준이 생겼으면 좋겠다.

  1. 장석문님이 워드프레스 사이트의 drassy라는 사실을 최근 대화에서 알았다.[]
  2. 원인 제공자가 내가 아닐까라는 소심한 생각을 잠깐 했….[]

오랜 베타와 이용자의 욕구

스크리브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나 한글과컴퓨터의 한글과 같은 워드프로세서가 아니다. 생산성 앱으로 분류되어 워드의 기능을 어느정도 하는 프로그램이다. 도움말에 프로그램 개발 철학이 있을정도로 인문학적인(?) 프로그램이다.

맥용 스크리브너가 2.0에서 3.0으로 전환되는 시기는 대략 2017년 즈음이다. 하지만 윈도우용 스크리브너는 여전히 3판이 정식 출시되지 못한 채, 베타에 머무르고 있다.

3판의 출시

3 – That’s the Magic Number

“이제 스크리브너의 다음 장을 열 때가 되었다( It’s time to open Scrivener’s next chapter. )”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글은 이어 “맥용 스크리브너 2.0이 2010년 11월에 출시되고, 윈도우용 스크리브너 1.0이 2011년 11월에 출시되었다(Scrivener 2.0 for macOS was released in November 2010, and Scrivener 1.0 for Windows in November 2011.)”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맥용 스크리브너 3이 출시되는 시기에 맞추어 윈도우용 역시 3으로 넘어가겠다는 내용이다.

맥용과 윈도우용은 그 시작부터가 차이가 있고, 맥용 3판의 출시와 함께 윈도우용 역시 맥용과 같은 기능을 하도록 내놓겠다는 계획이었다. 7월에 이 계획이 발표되고 2017년 11월 20일에 맥용이 출시되었다. 하지만 윈도우용은 여전히 1판을 정식으로 올려두고 있다.

2017년 11월에 맥용과 함께 출시하고자 했던 계획은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였다. 윈도우용 스크리브너를 맥용과 같은기능을 하도록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1.

머기업에서 개발되어 몇 십명의 인력이 투입되는 것도 아니고, 몇 명의 프로그래가 반영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맥용 앱을 개발하던 회사가 시장 확장을 위한 목적으로 또는 윈도우 이용자도 이용하게 해 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윈도우용도 개발하기 시작하더라도 윈도우 개발 경험이 없다면 이런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미 윈도우 앱을 개발하던 개발자라고 하더라도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경험이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2018년 언젠가 출시할 것이라는 알림 글과 달리 윈도우용 스크리브너는 여전히 1판 만2이 정식 출시된 상태이고, 3판은 28번째 베타가 나와 있는 상태이다. 이제 2019년 마무리되는 중에도 여전히 버그가 보고되고, 수정 되어 새로운 베타로 갱신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수정된 버그의 자리에 또 다른 버그가 자리 잡아 윈도우용 스크리브너의 출시를 뒤로 미루고 있다.

이제 곧 정식 출시

윈도우용 스크리브너 개발팀이 27번째 베타판을 출시한 뒤로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Would you say the Scrivener 3 Windows beta is good enough to use now?

27판이 발표되었고, 최종 출시판과 가까워졌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글에 사람들은 여전히 컴파일과 관련된 문제가 보고되고 있으며 내용이 소실될 수 있는 버그가 존재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고, 이 게시물 뒤로도 20개가 넘는 버그 보고와 이를 확인하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스크리브너를 사용하는 사람은 대부분 작가들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꽤나 긴 내용을 작성하기에 자료가 소실되는 문제는 꽤나 심각한 문제다 3.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는 버그도 있지만, 이용하는 기능의 대부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결과 역시 원하는 만큼에 가까워서 지금 정식으로 출시하고 후에 남은 버그를 수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용자의 욕구

윈도우용 스크리브너 3의 개발 계획이 발표된 지 2년이 된 지금, 개발팀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몇 명 되지 않은 개발팀이 감당하기에는 주마다 발표되는 베타판의 버그는 가벼운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이 사람들이 힘을 조금만 더 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건 이용자로서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아직 개발하고 있는 3판의 베타를 이용하고 있으니 불편함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맥용 3판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기능의 편리함을 보고 있는 윈도우용 이용자로서는 말이다.

개발자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생각이 드는 반면 이용자로서는 조금 더 안정적인 상태로 정식출시되었으면 하는 욕구를 감출 수 없다. 그리고 동시에 이용자를 위해 이렇게나 노력하는데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1. 1989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한 어코던스는 몇 년 전부터 윈도우용으로도 앱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맥용에서는 되지만 윈도우용에서는 안 되는 기능도 있고, 다른 방식으로 구현되어 있는 기능도 있다.[]
  2. 2019년 11월 8일 기준 1.9.14[]
  3. 사실 내용 자체가 소실되지는 않는다. 구조를 담은 작업(Project) 파일이 손상될 뿐 그 안에 있는 파일은 작업 폴더 하위에 별도로 저장된다.[]

사라진 바이블 웍스

※ 바이블웍스 구매, 인증 문제에 대한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불법복제판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지, 어떻게 인증을 하는지에 대한 답변 역시 드릴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질문은 정중히 거절합니다.

바이블 웍스의 서비스 중단

바이블웍스(Bibleworks)가 2018년 6월 15일부로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As of June 15, 2018 BibleWorks ceased operation as a provider of Bible software tools.

더불어 실행파일을 받을 수 있는 페이지를 제공하지만 구매는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BibleWorks products are no longer available for purchase or licensing.

사실 나는 그 이전부터 어코던스를 구매하여1 사용하고 있었다.

어코던스를 구매하여 사용하는 가운데에도 바이블 웍스를 더욱 많이 활용하였다. 한글 역본을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는 소스가 있었고, 커멘드 모드의 접근이 용이해서 빠른 검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글 역본의 경우 바이블 웍스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국문성경(kor)이 있었으나 바이블웍스 7 때부터 더욱 많은 한글 역본을 사용하게 해 주는 팁이 검색되었기에 그것을 이용해 다양한2 한글 역본을 추가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커멘드 모드는 커멘드 창에 명령어를 입력하여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마우스로 클릭하여 사용하는 GUI(Graphic User Interface)와 대조되는 모드이지만 바이블웍스에서는 기본적으로 구성된 GUI에 커멘드 창을 지원하여 명령어를 입력하여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였다. 마우스를 통해 입력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역본을 전화하고 다양한 역본을 한 화면에 표시하거나 원문을 검색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서 무척 편리하다. 단점이라면 명령어와 사용법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바이블 웍스는 왜 사라지게 되었나?

바이블웍스를 알게 된 건 7판부터인데 그 당시에는 와레즈 등의 사이트를 통해 배포된 것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전에 불법과의 전쟁을 선포하다! – 빛과 소금 에서 기록했듯이 그런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을 중단하고 구매하여 사용하게 되었다.3

하지만 나와 같이 불법복제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7과 8, 9 그리고 10에 이르기까지 불법 복제판을 사용하는 사람은 끊이지 않았다. 바이블웍스가 서비스를 중단하게 되었다는 공지가 올라온 이후에도 여전히 다양한 판의 불법복제판이 검색되고 받을 수 있다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자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토렌트 파일이 검색되고 그것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면 여전히 불법복제판을 가지고 있고 받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이블웍스가 서비스를 중단하게 된 원인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또한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생각해보면 불법복제판 사용이 그 지원 중단의 원인이 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른 성경 연구 프로그램들은 로그인 방식을 이용하고 인터넷 연결을 통하여 라이선스를 확인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고, 더불어 그 방식이 정교해지면서 불법복제판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바이블웍스만은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고 기존의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이미 불법복제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해당 기능을 개발할 능력이 있는 인력을 구인할 수 있는 능력조차도 없는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 사라지게 되었을까?

어코던스를 구매할 때 한 번에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았다.4 어코던스 측에 문의를 하니 영어가 가능한 2명의 추천인과 해외 사용이 가능한 신용카드5가 있으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고, 당시 공부하고 있던 학교 교수님과 아는 형님에게 부탁하여 할부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6 당시에 공부하고 있던 학교 이름과 과정을 입력하고 학생할인을 받아서 30만원이 안 되는 금액으로 구매하였는데, 매 월 3만원이 안 되는 금액이었다.

이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국내 사용자들이 많아지면서 일부 신학교에서는 공동구매를 통하여 개인이 살 수 있는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들로 구매할 수 있는 경로가 있었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가 말씀을 연구하고 전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사역자들을 제대로 책임지지 않아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등의 문제제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미 교회가 책임지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 사역자들은 말씀 연구를 해야 할 시간에 생계를 걱정하는 현실, 교회법으로 금지된 이중직7이 암묵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런 문제제기는 소용이 없다.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교회의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도 본인의 결심을 통해 바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고 시도해보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비용을 모아 구매하는 것은 작은 결단과 조금의 부지런만이 필요할 뿐이다.

바이블 웍스가 사라진 것은 아쉽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쩌겠는가? 다만 이 글을 보고 마음에 찔림을 받으시거든 부디 지금부터라도 많지 않은 부지런함을 작은 결단으로 행동하시기 바랄 뿐이다.

  1. 어코던스 10부터 윈도우용 어코던스가 개발되어서 맥에서뿐만 아니라 원도우에서도 사용가능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구매하여 현재는 12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여 사용 중이다[]
  2. 쉬운성경, 200주년 기념 성경, 공동번역, 현대어 성경, 현대인의 성경, 천주교 성경, 새번역, 표준새번역 등[]
  3. 재정적인 여유가 없었기에 다소 늦게 구매했다[]
  4. 교회에서 말씀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나라에서 소득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이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웠다.[]
  5. 이용하고 있던 은행에서는 체크카드를 신용카드처럼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은 제공하였지만 해외 사용이 가능한 번호로 발급해주는 상품이 없었다. 친인척에게 상황을 말하고 달달이 해당하는 금액을 주기로 하고 해외 사용 가능한 신용카드로 결제하였다[]
  6. 어코던스에서 제공하는 할부 프로그램은 일시불로 전액을 할부로 계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12개월로 나눈 금액을 매월 정해진 일자에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7. 예장 대신의 경우 목사 안수를 받기 전에는 준회원으로 이중직에 대한 사항이 없다[]

20년 전에 배운 지식을 가지고 프로그래밍을 할 때

20년 전

20년 전에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웹디자인 회사에 취업했다.

다행인진 불행인지 작은 회사였고, 먼저 있던 직원이 이직을 위해 사람을 구하는 것이어서 크게 뛰어난 실력이 아니었음에도 채용이 되었다. 가능성을 보고 뽑은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출근했더랬다.

그 당시에는 웹 디자인과 웹 프로그래밍이 지금처럼 확실하게 구분이 되었던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인지 그저 작은 회사였기에 그런 것이었는지 혼자서 디자인과 개발 업무를 다 했다. 그래봤자 웹 디자인이 전문인 회사가 아니었고 중소기업 소개 홈페이지 만드는 정도였으니 프로그래밍이라고까지 할 것이 없었다. 그저 기본적인 메뉴 동작에 필요한 자바스크립트만 작성하면 되는 정도였다.

졸업한 고등학교는 정보산업고등학교였는데, 당시로서는 시범학교로 개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얻고, 실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어서 이것 저것 언어들을 공부하고 실습해볼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내었기에 채용된 회사에서 필요한 정도의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다.

취업된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던 과장님이 창업하신다고 하셔서 그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가 1년 정도 뒤에 그만두게 되었다. 진로가 완전히 바뀌어서 전혀 다른 분야로 대학을 하고 공부를 하고 그렇게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작은 프로젝트

작년 말부터 프로젝트 하나를 맡게 됐다. 개인적 필요에 의해 어떤 언어를 배우려고 하는데, 강의하시는 선생님과 얘기를 하다가 해당 언어를 학습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사실은 그 선생님과 연결해 준 사람이 전에 웹 디자인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었는데, 사전에 개인 업무에 크게 지장이 없는 선에서 해 드릴 수 있다고 했다.

개발하려는 웹사이트는 이미 그 선생님이 소속된 기관 서버에서 돌아가고 있었는데, HTML과 JS로 구성된 사이트였다. 하지만 기관 서버에 문제가 생기고 사이트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어서 사실상 페이지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상황이 되니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검색을 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트스트랩1을 이용하면 이전 사이트 수준 정도로는 금새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선생님께 제안하고 시간이 나는대로 필요한만큼 만들고 있다.

20년의 세월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기억났다. 설명이 잘 되어 있는 페이지가 구성되어 있고, 또 필요한 기능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의지

사이트 제작을 의뢰하신 선생님께서 일을 조금 더 크게 확장하고 싶어하셔서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였다. 선생님과 같이 가르치시는 선생님 몇 분과 선생님께 배운 학생 몇이 팀에 합류하였다.

각자의 영역을 나누고 일을 분배하는데 개발팀에 포함된 사람이 나 말고 하나 더 배정되었다. 이 사람은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개발팀에 소속되게 되었다.

처음 이 사람이 컴공과2를 나왔다고 했을 때, 궁금증은 이것이었다.

이 사람은 불가능한가?

그 당시의 컴공과에서는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을까? 그래서 물어보았다.

“컴공과였으면 프로그래밍 가능하지 않아요?”라는 질문에 그는 “오랫 동안 하지 않아서”와 “그 때에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였다. 이 사람도 해당 분야에서 계속 공부하지 않고, 지금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공부하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겼으나,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은 ‘정말일까?’

가끔 조카들과 놀아주는데, 둘째 녀석이 아직 어려서인지 들고 흔들고 데롱 데롱 매달려 흔들리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가지 일로 몸이 곤하면 피곤하다고는 하지만 놀아달라는 녀석의 눈길을 무시할 수 없어 앉아서라도 다리에 올려두고 흔들흔들해주고는 한다.

어제인가 조카에게 ‘아빠는 이런거 안 해주니?’라고 물었더니 ‘아빠는 허리가 아플까봐 안 된데요’란다. 그래서 나보다 10살 많으니 그런가보다 해서 ‘아빠는 나보다 10살 많아서 그래’라고 답변했더니 동생은 피식 웃으면서 ‘그 사람은 오빠 나이 때도 똑같은 소리 했어’였다.

체격이 좋지 않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원래 허리 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3 아프다고 한 것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허리가 아플까봐라고 아이와 놀아주지 않는 것은 그저 아이와 놀아줄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닐까?

정말로 허리에 지병이 있거나 문제가 있어서라면 미안할 일이 겠지만 지금까지 상황으로 봐서는 그리 미안할 일이 아니다.

적지 않은 시간의 경력 단절이 있다면 두려움이 있을 것이고 도전한다고 해도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기에 힘이 드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그럴 의지조차 가지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일도 못하는게 아닐까? 피곤하고 힘이 들어도 아이와 놀아줄 의지가 있다면 그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지 않을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가?

  1. 다른 프레임워크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개념이 가장 와 닿는 것이 부트스트랩이었다[]
  2. 컴퓨터공학과의 줄임말[]
  3. 내가 알기로도 그렇고 동생이 결혼하기 전에도 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적도 없었다[]

작은 용기가 필요한 일

하나님 말씀을 믿는다고 거짓말하지 말고, 순종하라!

인생에 있어서 ‘큰 일’을 겪고 난 직후에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 의욕을 잃었다. 사는 것의 소중함이나 일상의 소소한 기쁨 따위에 신경 쓸 여력조차 없어진 순간은 죽는 순간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내 목숨을 쉬이 끊고자 하는 생각까지 가지지 않는 인간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순간도 없지 않았다.

의욕상실

많은 포기와 자기 부정을 겪고 난 뒤에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무엇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스트레스이다. 심지어 적지 않은 나이1에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해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 하고 있던 일을 정리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과 같은 고민이 그 스트레스의 시작점이다.

노화를 퇴화가 아니라 변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년의 삶은 청년의 삶과 비교할 대상도 아니고 결코 뒤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공만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행복은 성공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마흔에게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p. 6

‘마흔에게’는 인간의 변화에 대한 부분, 특별히 이 책에서는 노화가 몸에 느껴지기 시작하는 마흔 살의 변화에서 힘을 잃고 의욕을 잃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이미 마음의 정리가 끝나고, 내 삶은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받아들인 상태에서 이 책을 읽을 때,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알려주는 지표를 발견하게 되었다.

특별히 지금 공부하고 있는 독일어, 그리고 그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다른 사람들이 내게 요구하는 방향성2을 거부하고 내가 가진 방향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중년이 되면 평가나 평판에 개의치 않고 순수하게 배우는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이 든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마흔에게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p. 11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던가? 나 자신에 대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과 큰 일을 겪게 된 원인이 나라는 자책감 등이었다는 점은 언제부터인가 내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인간에게 기본이 되는 생각이 아닌듯하다. 나에게 없는 것을 먼저 살피고 생각한다.

책 리뷰는 아니지만, 이 책의 저자는 가진 것을 생각하는 것이 많은 부분에 있어서 좋은 것이라고 한다. 같은 관점에서 생각을 더 이어 나갈 수가 있다.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가진 것은 참 많다. 인간으로서 몸을 가지고 있고, 부모를 가지고 있다. 주변의 환경들 가운데 우리 모두가 누리고 있는 공기와 자연,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가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소유가 아닌 것을 우리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는 공공재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기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우리가 가진 것이다.

이 많은 것들을 주신 분, 허락하신 분은 우리에게 아무 가치도 요구하지 않으셨다. 그저 주셨고 그저 누리고 있다.

내가 바닥이 보이지 않은 삶의 큰 일 가운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어떤 위로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일어서게 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듣기를 원하시는 그 말씀에서 힘을 얻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에 있는 성령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방식인 것이다.

다른 세계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나의 신앙고백은 ‘그래, 그건 당신 생각이고!’ 정도로 생각되는 ‘다른 생각’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속한 사람에게는 – 그가 누구라도 – 당연히 해야할 고백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누구라도 같은 신앙고백을 하고, 이런 세계관에 속해 있다는 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세계관을 무시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세계가 기록된 성경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믿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우상을 섬기는 이들을 청교도는 거짓 그리스도인이라고 정의한다. 거짓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열매로 증거된다른 성경의 기본적인 증언을 통하여 이렇게 정의하는 것이다.

현실의 어려움을 무시하고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당연히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우셔야 할 우리 인생의 수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면 더 이상 그는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1. 물론 어떤 이에게는 젊은 나이겠지만[]
  2. 금전적인 부분으로의 방향성[]

부족함, 더러움 그리고 나

처음 이 공간을 마련했던 것은 그리 큰 그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내 생각을 표현하고, 그것을 누군가 보고 반응하고, 그 반응에 또 반응하는 것이었다.

사실 처음 글을 썼던 순간, 조금 더 설명을 더하면 처음 글을 썼던 도구와 지금의 도구는 다르다. 여러 도구들을 거치면서 글을 옮기고 옮겨와 결국 워드프레스까지 오게 되었다.

지난 글들을 보면 나의 부족함이 보인다. 물론 지금조차도 나는 부족하다. 필력의 부족함을 넘어서 인간으로서의 부족함이 있다. 여전히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편이고, 이는 나의 일에 영향이 적지 않다. 이런 부족함으로 인해 오해가 생기고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지난 글들을 숨기지 않고 열어놓은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더러움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더러움을 숨기려고 한다. 그것은 숨겨야 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더러움은 숨겨야 할 것이 아니다.

더러움은 나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인간은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경의 증언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내 세계관의 기반이 된다. 모든 인간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허구의 세계관을 통해 재미를 얻기도 한다. 혹은 잘못된 세계관을 가지고 고통을 받기도 한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죄로 더러워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과 같이 더러웠는가? 그렇지 않다. 그 분은 우리에게 바른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말씀하시고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셨으며 스스로가 그렇게 사셨다.

오늘도 난 부족함을 느끼고 부족하다. 이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100% 완전한 인간, 100% 완전한 하나님,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존재방식을 가지신 분!

공개된 내가 부담이 될 때

지금까지는 “내”가 공개되었을 때 다른 곳에 둥지를 틀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사진도 공개하지 않았으며 철저하게 개인 공간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만난 사람이 아니면 블로그를 부러 알려주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블로그 메인에 제 사진을 걸어두게 됐어요. 그 당시에는 조금은 이제 공개해도 되겠다 싶었던 듯해요. 하지만 막상 생각보다 적지 않은 지인들이 제 블로그를 알아차리고 나니 부담이 되더라고요. 기껏해야 하루 방문자 200명도 안 되는 소소한 블로그라 이런 고민은 배부른 투정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분명한 건 마음이 불편하니 글도 잘 안 쓰게 되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전에 일상 얘기들을 곧잘 쓰곤했던 공간이 어느새 기술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있는 곳에서의 일상이 특별한 것 없는 것도 한 몫 했겠죠.

여튼 이런 글을 쓰는 건 좀 더 마음을 편하게 갖기 위해서에요.
뭔가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서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블로깅하자는 그런 의도인거죠.

잘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불꽃중앙교회에서 사기를 당했다?

바로 전 포스팅 뒤에 통계를 살피는데 14일 방문자가 평소의 두 배 가량이 되어 무슨 일인가 싶어 유입로그를 살펴보았습니다. 거의 대부분 Mobile Terminal이거나 BiteSMS 관련 유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강마리아 목사 사기 라는 검색어로 유입된 흔적이 있어 검색결과를 살펴보았습니다. 링크를 따라 검색 결과를 보면서 전에 부모님께서 강목사님 교회가 어려움에 있다는 소식을 얼핏 들은 기억이 났습니다. 그게 사기 건이었는지는 유입 로그를 통해 처음 알게 됐네요. 덕분에 목사님의 본명도 알게 되었구요.

검색 결과 중 제일 상단에 노출된 것이 **할렐루야! 빛된 예수!** – 이 사람을 보라!(수원 불꽃중앙교회 강마리아 목사를!)인데, 링크의 본문은 교회 19주년 감사 예배 사진을 메인으로 소망의 동산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기 관련 내용은 댓글에 나오는데, 댓글의 내용은 대체로 시험들어 나와서 고통 받고 있다 거나 금전적으로 피해를 봐서 소송했으나 폐소했다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댓글을 읽으면서 익숙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와 마음이 아픕니다. 그리고 댓글을 적으시는 분들의 태도에 한 번 더 놀랍니다.

그 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기를 친 사기꾼이니 막 대해도 되는 사람들이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그 분들은 댓글에 나와 있는 행동을 고의로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그 분들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경외하는 마음으로 섬기시는 분들이시기 때문이지요. 이단성을 인간적인 측면에서만 판단하시는 것에 또 한 번 놀랍니다.

댓글을 쓰신 분들에 대해 정죄하는 내용을 길게 적었다가 얼른 지웠습니다. 실수는 저 같은 못난 사람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도 실수하지요. 어떤 행동이 오해되어 실수가 된 것일 수도 있고, 또 그것이 완전히 풀어지지 않아 골이 점점 깊어지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미천한 인간인지라 감히 정죄할 수 없어 하나님께 기도하며 어떻게 심판하실지 두고 보는 수 밖에 없겠지요. 그 분들이 사기꾼이면 과연 인간의 법으로도 하나님의 법으로도 심판 받을 줄로 압니다.

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함께 기다려보지요. 세월이 흘러 흐지부지 되더라도 추적하여 올리겠습니다.

올리지는 않았지만 링크 글에 달아놓으신 댓글을 캡춰해 저장해 놓았습니다. 물론 나중에 올리게 되더라도 닉네임 등은 처리해서 올리겠지요.

내가 해야할 일은?

※ 상지대 구출 대작전에 이어 쓰려다가 혹 혼란스러워 하실 분이 계실 듯 하여 별개의 글로 작성하고 트랙백합니다.
※ 또한 상지대 관련 내용을 포스팅하는 이유는 이런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려 읽으시는 분들이 스스로 판단하시기를 바라기 때문이지요.

사실 전부터 관련 글을 쓰려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아 망설였는데, 이 기회를 빌어 작성하네요. 개인적으로는 교회에서 정치적인 의사를 밝히거나 교회가 정치 세력에 도움이 되는 것을 꺼려합니다. 이 모든 것이 욕심과 관련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인데요.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 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 하신
바라

로마서 13장1절

교회의 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시는 분들을 욕할 수 없는 것은 그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비판하는 분들을 욕할 생각 또한 없습니다. 그 분들은 신념에 따라 행동하시는 거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그 행동들이 옳다 그르다 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예수의 가르침의 내용은 해석하는 사람의 이해에 따라 여러가지로 갈라집니다. 그로 인해 분파가 생기고 또 그 안에서 쪼개져 있는 것이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위의 로마서 말씀도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지 않냐는 분이 계실까 또한 조심스럽게 적었습니다.

여러가지로 해석이 나뉘는 것에 대해 말하면 또 그로 인해 싸움이 될까 싶어 명확한 것 하나만 말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한 가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러하셨듯이 내 뜻을 구하지 말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해 달라고 기도해야한다는 것입니다.

  1.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2.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사
  3.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4.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태복음 26장 36~39절

좁게 해석하여 예수의 희생에 대한 것이 아니냐 하시면 또한 무능하여 답할 수 없습니다.

요점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지금의 우리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몸소 하셨듯이 기도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현명한 행동이 아닐까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고, 그렇기에 행동으로 움직여야한다는 분도 계시겠고 이런 상식도 없는 사람을 봤나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그 분도 결국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될 수 밖에 없음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소통의 욕구

민노씨는 트위터와 소통 강박증에서 “아무리 스마트폰이 진화하고, 트위터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고 해도 그 시간과 관심은 물리적인 한계치와 심리적인 한계치를 갖는다”고 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도 그렇고 한창 아거님의 글을 읽으며 홍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대공중관계라는 용어에 관심을 글로 표현해내면서도 지금과 같이 소통은 하나의 욕구로 자리잡았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소통의 욕구는 인기나 명예 따위로 귀결되겠지만, 저에게는 그저 소박한 꿈입니다. 그저 사람과 사람의 만남. 꼭 얼굴을 보면서 만나는 만남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하지만 그것도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거지요. 환경이 받쳐주지 못해서, 또 환경이 받쳐주더라도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것이지요.

여전히 이전에 만나고 대화했던 짧은 인사로 시작되었던 관계들의 주체들과 나름대로의 관계를 이어가기위해 그들의 글을 읽고 팔로우해서 살펴는 보고 있지만 여러모로 허락되지 않고 있다는 핑계를 가지고 여전히 망설이고 있습니다.

민노씨의 말처럼 물리적인 한계치와 심리적인 한계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조금만 변해 주세요.

KT, 요금제를 바꾸는 비용이 만6천원? By 도아

벌써 10 년도 전의 일이지만 SKT로 갈아타기 직전 KT에서 폰을 개통해서 쓰다가 상담원의 어이없는 응대에 홧김에 SKT로 넘어갔었습니다. 지금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SKT로 넘어오고 나서는 상담원 및 직원의 친절한 대응 때문에 그런 기억이 아주 없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SKT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글들을 읽으면서도 쉬이 타 통신사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KT로 넘어갈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몇 년은 넘어갈까 생각이 들면 금새 이전의 그 상황이 연상되어서  내가 뭐하러 홀대 받으러 KT로 가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뿌리치고 말았지요.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폰이 KT에서 정발되고 통신사를 옮기게 되었는데요, 초기에 아이폰 발송 지연 사태로 연결이 쉽지 않았지만 연결되고 나서의 상담원들의 응대는 이전의 기억이 조금은 사그라 들 정도로 친절했습니다.

그렇게 폰을 사용한 지 1달 쯤 사용하고 있는데 간간히 몇 분 내지는 십여분을  3G신호를 제대로 잡지 못하다가는 결국 서비스 없음 상태가 지속 되어서 전화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렇게 된 것이 연초에 있던 일 중이었기에 일을 마치고 본가 근방에 있는 부천 직영점을 찾았습니다.

서비스 없음이 지속되어서 탈옥 때문인가 싶어서 여러 번 순정으로 복원하여 확인해 본 뒤에도 서비스 없음이 지속되었고 지금 리퍼 받은 폰 역시 탈옥 상태로 쓰고 있은 지금도 몇 달째 관련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걸보면 탈옥으로 인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고로 기계적인 문제여서 리퍼가 확실히 가능하다는 생각에 개인정보 보호의 이유로 DFU 모드로 복원하고는 서비스 인증도 받지 않은 채 들고 갔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 화면엔 아이튠즈 연결 화면이 나오지요.

아이폰을 가지고 가서 접수하고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넘겨주니 대뜸 해킹하셨죠? 라고 하더군요. 조금 황당했습니다. 그 순간에 들었던 생각은 10여 년 전에 겪었던 불쾌한 경험이었습니다.
앞서도 적었지만 확실하게 기계 문제였기 때문에 아니라고 대답하더니 왜 대뜸 해킹했냐는 질문을 던지냐고 따졌더니 탈옥한 사람들 중에 DFU모드로도 복원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이튠즈 연결화면으로 가지고 온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세월이 흘러 아주 조금은 인덕이 수양되어인지 그 자리에서 흥분하지 않고 넘겼지만 10여 년 전의 저와 같은 이제 갓 스무살이 되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또 다시 KT에 대한 불쾌한 경험으로 다시 타사로 돌아가지 않을까요?

글이 조금 길어졌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한 마디네요.

조금만 변해 주세요!

희망의 기간

희망의 기간이라는게 있을까요?

덴마 라는 네이버 웹툰에 보면 실버퀵이라는 회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회사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자신의 몸이 아닌 다른 이의 몸에 정신을 가둬두고 계약 기간을 채우도록 합니다. 희망을 가지며 일을 하는 그들은 절망과 분노의 감정 뿐 아니라 그 희망을 향한 열망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회사는 결국 그들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소멸시켜 버리고 맙니다. 계약 기간 중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보안을 위한 조치일까요.

결국 그들은 이용당하다 죽어버리는 겁니다. 참 절망적입니다. 그 안에 있으면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죽기 직전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회사의 중요인물들이겠지요.

1년을 기다리고 이제 나가야겠다 싶은 마음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 1년 “만” 더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엄청난 절망감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또 다시 세워진 1년이라는 목표를 생각하면 희망을 가집니다.

과연 이런 식으로 얼마나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요? 학습하는 동물이기에 얼마 못 갈 겁니다. 두세번만 반복된다면 의심을 하게 되겠지요. 세 번도 많은 걸까요.

또 다시 1년을 기약하며 희망의 기간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귀찮아

귀찮다는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적지 않게 사용하는 말 중의 하나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어떤 계기에 의해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적잖이 사용했는데, 만사가 귀찮게 여겨질 때도 있어서 어떤 것을 하던지 귀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때도 있다.

언젠가 TV에서 드라마를 보는데 극중 할머니 분을 맡은 배우에게서 나온 대사중 하나가 귀에 띄었다.

······ 귀치 않아.

어랏 저게 귀찮다는 말의 원래 말인가? 하는생각으로 금새 이어졌다. 그 당시에는 그 정도로 생각이 그쳤지만 그 후에 몇 번인가 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귀하지 않다에서 귀치 않다를 거쳐 귀찮다로 줄어들었다고 추측된다.

귀찮다의 시작말인 귀하지 않다는 어떤 말인가. 귀하다 / 귀하지 않다는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말이고 가장 일반적으로는 어떤 행동에 대해 사용하고 있기에 그에 대한 가치가 낮다는 표현이다.

다른 용례는 접어 두고 이 글에서는 교회에 가는 것이 귀찮다는 것으로 글을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교회는 종교적으로는 해당 종교의 신에게 일종의 행위를 하기 위한 장소를 말한다. 불교의 경우 사찰이나 법당, 힌두교나 기타 종교에서는 신전으로 부르기도 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대상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한 장소를 교회라고 한다.

교회에 가서 하는 일 중에 가장 큰 일은 예배(Worship)이다. 예배는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행위라고 일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에 가기 귀찮다는 말은 교회에 가는 것이 귀하지 않다는 뜻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교회에 갈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귀찮다는 말을 사용할 수 없다. 귀찮아서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갈 수 있는 상황에서 귀찮다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교회에서의 가장 중요한 행위인 예배를 귀찮아하는 것으로 이어 갈 수 있겠다. 교회에 가는 것은 대부분이 예배를 드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창조된 목적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그를 위해 지음 받았다고 기록되어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즉 다시 말해 최고의 가치를 드리는 것은 사람이 창조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행동을 귀하지 않다고 치부해버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죄가 아닐까.

교회 가기 귀찮아. -=> 교회에 가는 것이 귀하지 않다. -=> 예수 만나는 것의 가치가 적다.

교회는 모임의 장소 교제의 장소 예수와의 관계 정립의 장소.

우리 보기에는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금년으로 대한수도원의 청소년 산상 성회는 2회가 되었다. 그 이전에도 청소년들이 개인적으로 부모들과 함께 큰 집회에 함께 참여하여 변화받기도 했으며 소명을 받는 일은 있었지만 – 대한수도원에서 – 그들을 위한 집회는 없었다.

대한수도원의 청소년 집회는 다른 청소년 수련회나 캠프에서와 같은 프로그램은 볼 수 없다. 다만 원내에 설치되어 있는 수영장에서의 수영시간을 매일 가져 더위를 식히고 다른 이들과의 친교(!)의 시간이 있을 뿐이다. 그 외의 시간에는 예배를 드리거나 보화1들을 체험한다.

성회 주최기관은 독특한 3가지 보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 곳에 계속 다니지 않았거나 올해 처음 참여하는 사람들은 3가지 보화를 경험하게되면 거부감을 표하기가 일반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복음성가에는 다른 캠프에서 일반적으로 부르는 찬양들에서는 보기 힘든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내용들이 가득하고 안찰은 폭력적인 모습으로 보이는데다가 성령춤은 이단의 어떤 행위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유들보다는 독특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처럼 다른 일반의 교회나 기독교 관련 기관에서는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작년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참여했다. 첫 번의 성회에서와 별 차이 없는 사람이 참여하였지만 청소년의 비율이 더 높아졌다. 청소년 성회라고는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까지도 참여하게 했기 때문에 1회 때는 초등학생들의 비율이 적지 않았다. 금년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했지만 초등학생의 비율은 줄어들었다.

이전에 몸 담고 있던 선교단에서는 청소년 캠프를 준비하면서 몇 달 전부터 준비한 계획에 따라 준비하고 연습했다.

이번 성회를 참여하면서 특별한 프로그램도 준비되지 않았고 일반의 찬양도 하지 않은 것을 보며 아이들이 어떻게 버텨낼지 의문이 먼저 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지루해하는 학생도 있었고 끝까지 말썽을 피우며 제대로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기는 했지만 끝까지 남아 참여한 학생들에게 적지 않은 변화를 경험했다. 그런가운데 가장 아쉬웠던 것은 일반적인 수련회나 캠프 일정으로 계획을 하고 참여한 경우 3일 내지는 4일만 참여하고 돌아가는 경우였다. 자율학습이 있는 학생의 경우 허락된 기간에 제한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성회의 마지막 날에 학생들의 입에서 나온 체험담은 듣는 사람들로 더 깊은 은혜를 느끼게 했다. 단순한 기분이나 심리적 만족감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느꼈다.

학생들의 입에서 나온 고백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방언 기도를 할 수 있는 은혜를 체험했으며 하나님의 만지심으로 마음 속에 있던 상처들이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의 표현은 너무 일반적이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고백하는 모습을 함께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학생들의 이런 변화는 경험 후에도 지속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 집회에서 얻은 중요한 것 하나는 어떤 인간적인 노력들로 보면 부족한 모습임이도 하나님의 성령이 인도하시는 가운데에 성회가 진행되었고 그런 가운데 역사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이런 변화는 그들의 삶에서 증거될 것이다. 내년 또는 그 후의 그들의 삶을 통해 이 변화의 간증이 이루어지기 원한다.

우리 보기에는 주먹구구식으로 해 나가는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지만 이루어진 지금의 시점에서의 성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되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다. 배우는 자의 입장에서 공부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렇다 할 지라도 자신의 인생을 위해 삶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1. 성회가 시작되고 3가지 보화를 설명했는데 복음성가, 안찰, 성령춤이다. 이에 대해서는 추에 포스팅하겠다.[]

FreePulse Wireless

지난 번에 로지택社에서 해외에서 발매된 제품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제품의 헤드폰 테 부분의 내구성이 문제가 되었다고 포스팅(로지택 블루투스 무선 헤드폰(Logitech blue tooth wireless headphone) )했다.

그리고 난 뒤 A/S를 받지 않고 다른 헤드폰(젠하이저 PX200)을 쓰다가 그 마저도 한쪽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번에 산 것은 정식으로 수입된 것이 아닌 것인지 정품 인증서가 들어있지 않았고, 들어 있었다하더라도 이미 서비스 기간이 지난 뒤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새 헤드폰을 구매하려고하다가는 이전의 블루투스 헤드폰과 같은 기능의 더 보강된 제품이 있는지 알아보니 무려 국내에서 발매된 것이 있었다.

Logitech Free Pulse Wireless이다.

일단 제품의 외향은 잘 부러지던 연결부가 스태인리스로 교체되었고, 실리콘으로 코팅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귀에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지 귀의 크기와 상관없이 걸리도록 링 형태의 실리콘 재질의 고리가 있다.

일단 착용감은 이전의 묵직했던 것보다 꽤나 가볍다.

시스템 요구사항

  • 3.5mm 오디오 잭

무선 기술 사양

  • 프로토콜 : Bluetooth v2
  • 수신 범위 : 최대 약 10m
  • 주파수 : 2.4Ghz
  • 전송 형식 : 디지털

디자인도 블랙 계열 구성으로 견고하다는 이미지를 받을 수 있고, 무게나 내구성 면에 있어서도 일단 만족이다.

구매 가격은 129,000

하나님을 신뢰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두가 복을 받을 수 있을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문구를 들고 다니며 크게 외치고는 있지만, 과연 정말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일단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믿는 것에는 많은 것들이 따르기 마련이다. 믿는 것에 대한 사람의 정신적인 변화와 행동의 변화는 그 모든 것이 가능하게 해 준다.

다만 그렇게 보여지게 할 뿐인 사람들은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구원은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되는게 아닌가!?

믿는 사람을 위해 많은 것들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를 믿는 것을 그 기본으로 한다.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믿는다는 말과 동일시해도 무리가 없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그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그를 위해서는 그의 말을 믿고 따를 수 있는 행동과 마음의 변화를 가져온다.

겉으로는 믿는다고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거짓 사랑은 다만 그에게서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하기 마련이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보면 쾌락을 위한 관계 어떤 만족의 조건을 위한 관계일 뿐이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행동들을 미리 아신 하나님께서는 한나에게 사무엘을 바칠 수 있는 서원을 통해 이스라엘의 제사장을 예비하셨다.

사무엘이 제사장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며 다만 형식적인 것들을 갖추기만 했을 때이다. 외형적으로 봐서는 이스라엘에게 있어 완벽한 승리자로서의 자리가 예비되어 있었다.

하늘을 찌를듯한 이스라엘의 군사들의 사기, 하나님의 언약궤와 그 곁의 제사장들..
하지만 이것들은 외형적인 승리의 조건들일 뿐이다. 이 사건에서 그들에게 없는 몇 가지 필수요소가 있는데, 바로 하나님에 대한 중심으로부터 나오는 신뢰와 그에 따른 행동들이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사무엘상 4장 3절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직전의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지게 된 사실을 말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궁리한다. 여호와의 궤가 함께하면 이길 것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 다시 이스라엘이 패한 요인을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1. 기도하지 않은 것
  2. 패배의 요인을 여호와께 묻지 않고 다시 전쟁에 임한 것
  3.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

1항과 2항은 같은 것이다. 2항과 3항도 연결된다.

여호와께 기도를 하지 않은 것이 무슨 이유가 되겠냐 싶겠지만, 다윗을 예로 든다면 그는 항상 여호와께 작은 것이라도 기도하고 임했기 때문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으며 사울에게서 그의 아들에게서 피할 때 무사히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야의 아내를 범할 때의 그는 인간의 욕망에 사로잡혀 여호와께 구하지 않은채 범죄한다. 이스라엘에게 칭송받는 그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고 구했기 때문에 그런 위치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의 가장 큰 죄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2항을 다루기 전에 3항에 대해 집고 넘어간다면 사무엘상 2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무시하고 제사를 드리기 전에 자신들의 이로운것들을 취함으로써 죄를 범했고, 그로 인해 멸하시기로 정하셨다.

먼저번의 블레셋과의 전투 패배 요인은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죄를 알지 못한 채 그들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언약궤와 함께 그들이 있도록 했다.

여기서 아골의 죄를 처벌하고 승리했던 사건과 대조할 수 있다. 여호수아서 7장에서는 아이성을 공격하는데 있어서 충분하다고 판단된 군사를 보냈지만 패한다. 그리고는 패한 이유를 여호와께 구하고, 아골의 죄를 드러내고 처벌했으며 그 후의 전쟁은 승리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은 패전의 이유를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았으며, 공식처럼 이것 저것들을 준비하고 전쟁에 임하지만 처절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바로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와 이스라엘 자신들의 실수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또는 예수님께서 동행해 주시기를 구한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다. 동행한다는 것에는 우리가 범죄하지 않고 정결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 붙는다. 범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그는 그 범죄에 대해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바로는 여호와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내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그로 인해 복을 받으려면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보여지기만 해서는 안된다. 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따라야만 그에 더하여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감사와 불평의 차이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감사와 불평의 차이는 백지장 하나 차이이다. 사실 그보다 더 적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일상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만큼 쉬운 것도 없다. 이게 무슨 말인가하면, 주의 말씀을 따르는 문제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주의 말씀에 살기로 작정하고 그것에 스스로 자원하여 따른다면 그렇지 않았을 때 느꼈을 불편함을 느끼지 않듯이, 불평의 상황에서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고 자원하여 감사한다면 쉽다.

감사할 상황이 아닌데, 분명 하루 종일 일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안되기만 하는 날에도 감사해야하는가의 문제와 불평도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에 의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질문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리고 그 자유의지로 우리가 어떤 것을 하든지 그것은 그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자원하여 그의 말씀에 따르고 지혜를 좇기를 바라시지 말씀을 거부하고 반대되는 삶을 살아서 심판을 받기 원치 않으신다.

감사는 저절로 나오는 상황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더 빛을 발한다. 어둠 가운데서 빛이 비추면 더 밝게 느껴지듯이 말이다.

목적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그것을 계획하고 시행하는데 있어서는 적은 노력이 들기도 하지만 많은 노력이 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향해 나가면서 신에게 자신의 계획을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기도라는 것은 어떤 것을 빈다는 의미인데, 그 비는 대상이 그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데서 기도가 성립된다.

단순히 보너스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그저 심리적인 만족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기독교인들은 그렇지 않다.

신앙의 정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기독교의 가장 중심적인 교리는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 성령의 실존을 믿고 그(들)에게 자신의 목적에 도움이 되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의 목적에 도움을 달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나님께 빌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물론 맞기는 하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더 큰 것을 구하고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적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계획 안에서 완성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은 변하기 마련인데,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그들의 희망대로 움직여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에 우리가 맞춰간다면 어떨까.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분(들)의 응답은 때론 이성에 오류를 일으키게하고 비합리적인 것들이라고 생각되어질 수 있지만, 결국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결과를 – 물론 좋은 쪽으로 – 이루어 내시기 위해 그렇게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머리로 이해는 하고 있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행하기란 정~~~~말 어렵다.

부자의 정

아버지께서 목요일(20일)에 네팔로 떠나신다. 그런데 지금 강원도에서의 일이 있어서 출국하시는 것을 배웅해 드리지 못하게 된 상황이다.

전에도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가족에 대한 정이 없다고 보여질만한 행동양식으로 가족들을 대해왔다. 물론 부사관학교에서의 아버지의 생신날 감격에 벅찬 생신 축하 메시지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가족에 대한 감정이 특별하게 없다.

이번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이 그저 잘 다녀오세요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배웅을 끝냈다. 이럴때마다 나란 인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어찌된 인간인지 인간이기는 한지도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폐륜아에 비하면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들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부자간의 정을 소통하지 않는 것을 보면 씁쓸하게 느껴진다.

얼마전에 함께 있는 동생이 아버지께서 중국에서 돌아오셨을 때 달려가서 안기면서 아빠~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변에 있던 지인들이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꼭 저렇게까지 해야 반가움을 표하는 것일까 싶었다.

사실 마음 속에서까지 그렇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건간에 지금의 이런 배웅 방식은 개인적인 취향이기에 나름대로의 독특성을 인정해줘야한다고 생각한다.

뭐… 그저 좀 씁쓸함이 느껴지고, 마음으로는 걱정도 되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도 쓰는 거라고 생각해주길 바라면서 짧은 글을 마무리하련다.

순종

노아는 이렇게 이상한 배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대단한 순종이다. 우리들은 믿을 수 있는 것만을 믿으려고 한다. 우리는 이성을 설득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거나 부정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신비에 대해 무지하며, 하나님의 주권 앞에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에도 인색하다.

출처 : 채워주심1

순종이라는 것은 사실 대단히 힘든 일이다.

장담하지만 당신들이 이성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당신들보다 잘 살 수 있다. 물론 당신들은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하겠지만 말이다.

  1. 이상혁, 채워주심, (서울 : 규장, 2007), p.211.[]

내려놓음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려 놓기
내려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내 눈에 보이고 내 손에 잡히는 명백한 실체가 있는데, 이러한 알토란 같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내려놓아야 할 것이 내 눈물과 내 피가 섞인 것일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내려놓지 못한다. 더 좋은 것을 기대하며 잠시 내려놓는다고 해도 언제라도 수틀리면 다시 집어들 생각을 하며 손닿는 가까운 곳에 둔다.
내려놓음이란 믿음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눈물의 헌신이다.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 내려놓지 못한다. 하나님은 내려놓는 우리의 손길이 떨리고 있는지 아니면 추호의 흔들림이 없는지도 보시는 분이시다.

채워주심1

내려놓음이란 이런 것이다. 에서 언급한 나아만 장군도 자신의 권위와 고집을 내려놓았을 때에 문둥병을 고침 받았다.

최근의 내게 내려놓음이란 상호작용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활동하던 선교단에서의 활동들을 내려놓고, 이성교제도 내려놓았다.

이성교제의 문제에 있어서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도 이해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내려놓아야만 할 때가 있다. 둘 중의 어느 쪽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도 그렇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 그럴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에 순종하고 따를 때 더 나은 상황과 여건으로 변화시켜 주셨던 경험을 기억하고 다시금 자신을 정비해야 한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이 순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결국 하나님께 부름받기 시작하면 그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분명하게 정리가 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사람들과의 문제에 있어서는 정리가 분명하지 않다.

선교단의 문제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해 왔던 사역을 이어받아 줄 사람이 없다.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관리하며, 관련 업무를 담당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이해시켜주시고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진다.

  1. 이상혁, 채워주심, (서울 : 규장, 2007), pp.144-145.[]

순종의 태도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생각 조금하고 기도 많이 해야 한다. 생각이 많으면 일하러 갈 수 없다. 바로 가자! 그리고 뭐가 되든지 간에 꼼지락거려보자!

(중략)

채워주시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중히 보시는 것, 그것은 종다운 순종의 태도다!

출처 : 채워주심1

순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순종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순순히 복종하다2이다.
순순히 복종하기 위해선 복종의 대상, 명령을 내린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야 한다. 물론 어떤 이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는 있지만 마음에서부터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따르는 것은 순종이라고 할 수 없다.
유명한 위인들의 주변에는 자원해서 도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개 그들은 그 위인에게 적지 않은 존경심을 가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 존경심은 감사의 형태를 띄고 감사의 마음으로 그를 따르게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순종과 감사는 하나의 팩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감사한 마음을 보답하기 위해 순종하고 존경심을 가진다.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접을 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노력한다.
내게 있어서 감사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그리고 그 분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모두를 알 수는 없지만 적다고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알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분에 대해 순종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감사에 대한 행동 표현이다.
이 글을 읽고 있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는 있겠지만 그렇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행동으로 마음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또한 깨닫기 바란다. 그리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1. 이상혁, 채워주심, (서울 : 규장, 2007), p.137.[]
  2. 순종(順從)【명사】【~하다|자동사·타동사】 순순히 복종함., 민중국어사전.[]

기도의 능력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기도의 능력을 가볍게 여기는 세태확실히 오늘날 세상은 기도의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우리들은 기도의 능력을 가볍게 생각한다.

(중략)

기도회에 모일 때 사람들은 저마다 한 보따리씩 견디기 힘든 삶의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기도제목 보따리를 풀어 하나님께 보여드린다. 그러나 기도가 끝날 때 그들은 다시 기도제목 보따리를 주섬주섬 싸면서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라님도 해결 못할 문제인데 당신이라고 뭐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튼 감사했고 심려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내일 새벽에 같은 문제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면서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신앙인의 불신앙이다. 때때로 기도는 결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하는 정신수양 혹은 기수련, 마인드 컨트롤 정도의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기도의 능력을 이렇듯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채워질 까닭이 없다.

출처 : 채워주심1

성경에 보면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그린 부분이 있다.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은 믿지 않았지만 문둥병을 고침 받는다. 그에게 있었던 것은 믿음이다. 물론 처음부터 믿었던 것은 아니지만, 신하의 말에 일리가 있다하여 엘리사의 말대로 정말 믿고 요단강에 들어가 문둥병이 깨끗하게 낫는다.
필자도 기도의 능력을 체험했는데, 등록금이 채워지는 응답을 받기까지 참으로 오랜시간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괴로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기도가 이루어질까하는 의심도 간간하게 들었지만 끝까지 채워주실 때까지 기도하고 기다렸다. 그랬더니 정말 등록금이 마련되었고, 무사하게 졸업할 수 있었다. 이 전에도 자잘한 체험을 주셨지만 가장 최근의 큰 체험이기에 나누려는 목적으로 기록하였다.
물론 많은 부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다 되는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살면서 믿을 가져야만 기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1. 이상혁, 채워주심, (서울 : 규장, 2007), pp.106-107.[]

I’m not a programmer.

필자는 프로그래머가 아니다. 그러나 프로그래밍은 한다. 웹디자이너도 아닌데, 웹디자인을 한다. 그래픽 디자이너도 아닌데, 디자인을 한다.

그냥 잡식성 인간이다. 프로그래밍이라는 것도 필요한 부분을 알아내서 사용하는 정도의 수준이다. 체계적으로 배운게 아니기 때문에 프로그래밍을 할 때에도 어떤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는게 아니라 주먹구구식이다.

이런게 다소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조금만 복잡해지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항상 한계에 부딪혀서 어떻게해서든 알아내고 해결은 하지만, 그럴 때마다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정작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해야할 지를 몰랐다.

기본적으로 씨언어를 공부했던1가락이 있어서 일단 기본적인 제어문이나 출력문의 형식을 이용해서 프로그래밍하지만 역시나 막혀버린다.

지인의 부탁으로 간단한 코딩과 디자인을 위해서는 원하는 기능의 스크립트를 구현하려고는 하지만, 해 봤자 가지고 있는 자원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원하는만큼 다 해내지 못하고 아쉬워하고 만다.

DOM 스크립트가 번역되어 나오고 대략적인 목차를 살펴보고는 이거다 싶어서 얼른 사버렸다. 이번에 졸업식을 하면서 축하한다며 지인에게 받은 문화상품권 만원권 2장에 헌혈해서 생긴 3천원권 1장, 거기에 더해 교보문고 사용가능 포인트 2천점을 더해서 샀다. 물론 인터넷에서 구매하면 2500원 정도 더 싸게 살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 그래서 일단 시작했다. 꼼꼼히 공부하고 거듭날테다!

  1. 전에는 포인터가 어찌나 헛갈리던지 이해도 되지 않고해서 그만둬버렸다[]

브루스 올마이티와 자유의지

짐 캐리 주연의 <브루스 올마이티>에 보면 하나님으로 나오는 모건 프리먼이 짐 캐리에게 “인간의 자유의지는 조정할 수는 없다네”라는 대사를 날려준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를 조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브루스 올마이티의 후속 버전이 에반 올마이티의 주인공인 에반은 뉴스 진행 중 대사가 꼬여서 대단히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그것은 역시 에반이라는 사람의 말하고자하는 자유의지 인 것이다.

영화에서 재미라는 요소를 살리기 위해서라지만 앞서 전제한 대사에 대한 룰(!)을 지켜야하지 않을까. 그 장면을 보면서 그저 웃고 넘기면 다행이지만, 딴지를 걸거나 자신의 실수로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이건 신에 의해 실수를 하게 된 것이 아닐까라며 엄청난 고민에 빠지고 자살에 이르러 버리는 사람도 있지않을까…..

….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 본다.

오픈 아이디로 선물을

티스토리를 포함한 몇 사이트들에서는 오픈 아이디로 가입도하고, 서비스 이용도 가능하다.

오픈 아이디를 가지고 가입하고, 방문하고, 사용하면 선물을 준다는 사실을 저번 주에 알아버렸다.

그래서 얼른 해당 페이지를 얼른 방문해서 사용하고 있는 오픈 아이디를 입력했더니, 대부분이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들이었다.

아직 가입하지 않았던 서비스들이 몇 있어서 마저 가입하고 도장을 받아냈는데, 과연 이렇게 해서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싶었다.

이제 3일밖에 기간이 안 남았고(~2월 29일), 도장을 9개 모두 받은 사람이 2188명이나 되지만, 경품에 당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남은 시간을 보내야겠다.

제발! ㅠㅠ약한 소리는 금물인것이다!

소니 바이오 노트북타면 어렵 사리 공부하고 있는 아는 동생에게 줄 것이고,
아이팟 터치나 너도사라(NDSL)가 당첨되면 내가 써야겠다.

엠피 쓰리라도 타면 기쁘겠지만 이왕이면 아이팟, 너도사라 정도는 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하지만 소니 바이오를 타서 그 넘에게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관련링크
오픈아이디 커뮤니티

약속 시간에 민감하다

군에서 담당했던 업무로 인해서 생긴 강박 덕분에 일의 퀄리티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필자 스스로는 괴로워지게 되었다.

완벽주의자적인 성격이 형성되고, 시간을 다투던 업무였기 때문에 시간에 있어서 스스로에게 가하는 채찍질의 정도는 매우 심하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가 아닌 대부분의 만남에서 코리안 타임을 적용한다. 그래서 모임을 가질 때면 기본적으로 5분은 물론이고, 10분, 심지어는 1시간까지도 지연되는 경우를 발견한다. 그런 경우에 있어서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보낼 것들을 미리 챙겨가기 때문에 별로 걱정이 없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강박은 스스로에 대해서만은 매우 엄격하다. 특히 시간에 대해서만은 다른 것들에 비해 심한 편인데, 이런 저런 변수를 고려해서 30분 이상을 미리 출발해도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가끔 있어서 그럴 때면 머리 속은 거의 미친사람 수준이 되어버린다.

예정된 경로를 따라 이동은 하고 있지만, 머리 속에서는 점점 스스로를 죄어버리곤 한다. 그렇게 해서 대부분의 모임 시간엔 늦지 않고 대부분 10분 이상씩 미리 도착해 있기는 하지만, 1초라도 넘어가는 경우에는 죄책감이 심하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나아져서 그렇게해서 느끼게 되는 죄책감을 외부로 표출하는 경우는 적어졌지만, 여전히 내부에서는 계속 가지고 있게 된다.

이 전에도 다른 순차적으로 읽어야한다는 강박을 소재로 글을 적었는데, 이번엔 시간에 대한 강박이라니… 읽는 사람들은 필자가 스스로에게 일부러 강박을 부여한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사실 업무에 대한 완벽주의 성향의 강박은 버리고 싶지 않다. 이전보다 훨씬 꼼꼼하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조금 괴롭더라도 다른 것들을 제쳐두고라도 남기고 싶다.

추격자

일단 아는 동생에게 보냈던 감상을 옮겨보자면

ㅅㅂㄹㅁ

이다.

솔직히 영화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감독과의 인터뷰를 읽었기 때문이다. 내용 중에 유영철 영등포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에서 동기를 얻은 부분이 없지 않다고 하는 부분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친구 부부 – 부부가 모두 친구다 – 가 이사를 하는데 도와달라고해서 갔다가 얼른 옮겨주고는 그 집에서 시간을 좀 보내고 있었는데, 뭔가 급작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가더니 영화를 보는 것으로 정해졌다.

토요일에는 대학 입학 동기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결혼식에 참석한 대학 동기들과 영화를 보러 갔었는데, 무려 점퍼였다. 나름 그것도 재미있었지만 조금은 뻔한 스토리여서 그다지 재미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 본 추격자는 꽤나 재미있었다. 전직 경찰이었던 그 아저씨도 적절한 배역이었고, 끝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을 듯 했던 아이 엄마도 괜찮았지만, 웬지 범죄자 녀석은 조금 미스였다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근거를 말해가면서하면 좋겠지만 일단은 조금 피곤하다.

하지만 그 녀석이 맡았던 역의 그 놈은 정말 ㅅㅂㄹㅁ다.

글읽기 강박에 대한 단상

절대 바톤 놀이 를 포함한 몇 건의 포스트에서도 밝혔지만 어떤 블로그를 보기 시작하면 처음부터 읽는 습관이 있다.

사실 습관이라기보다는 강박에 가까운데, 지금도 그렇게 읽고 있는 블로그가 4곳이다. 그나마 한 곳을 거의 다 읽어가기 때문에 3곳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듯 하다.

이전부터 왜 이런 강박이 생겼을까하고 생각해 보려고 하다가 글을 얼른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얼른 돌아서버려서 그다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지금 문득 떠 오른것은 통신 시절의 일이다.

나우누리에서 대화에 끼어들기라는 글이었던 것 같았는데, 그 글에서 말하기를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끼어들기보다는 기존에 어떤 내용들이 오가고 있는지, 어떤 분위기인지를 파악한 뒤에 참여하라는 글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은 단지 대화방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커뮤니티에든지 그 곳의 분위기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인지 어떤 곳에 끼어들기 전에 짧은 시간이나마 분위기를 파악하는 시간을 가지고 그들의 대화에 무리를 가하거나 중단되지 않도록 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RSS구독을 하면서 발생한다. 그저 구독 목록에 넣어놓고 최근에 오른 글을 읽어가면서 분위기를 파악해도 될 듯하고 사람의 실시간 대화에 끼어드는만큼 분위기를 망칠 가능성도 적은데, 그런 사실로부터 시작한 순차적 글읽기 강박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 몇 주간 좀 바빠져서 읽지 못했던 글을 지금까지 약 1주일에 거쳐 다 읽어내고 나서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 그만두자… 얼마 전에 읽었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논술 지도책(?)에 많은 것을 읽기 보다는 한 권을 읽더라도 논점을 파악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논리적인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했듯이, 많은 것을 읽기 보다는 글 하나를 읽더라도 정독을 해서 논리를 파악하자!

….. 라고는 하지만 쉽게 고쳐질 것 같지는 않는다. 속독 하는 것을 연습해야겠다. 내용도 파악하고 빨리 읽고… 그것 만이 살 길일까? ㅡㅡ;;

웹표준 지키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생각하지 않고 웹디자이너로 한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 이전에 학교에서 이런 저런 경로들을 통하여 독학하였던 실력을 바탕으로 나름의 자신감을 가지고 취업을 하였다.

정보산업고등학교에 진학한 이유가 관련 분야에서 일찍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래밍에도 관심이 있고, 그래픽 분야에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 두 분야를 통해 일을 할 수 있는 분야가 당시의 웹디자이너였다.

웹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전에도 홈페이지 제작 관련해서 나우누리 웹디동의 활동이 있었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기도 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웹표준이라는 용어를 알지는 못했지만 익스플로러와 넷스케이프, 이 두 브라우져에서 똑같이 보일 수 있도록 코딩을 하는 것이 웹디자이너로서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 외의 브라우져는 그다지 많이 쓰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었고,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브라우져인 넷스케이프와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브라우져가 익스플로러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년여를 관련 직종에서 실무를 했지만, 일을 그만두고 군에 입대하고 나서는 웹디자인을 그만두고 군에서 맡겨진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서 별도의 활동을 하지 않았다. 군에 입대하면서 웹디자이너로서의 앞길을 회의적인 생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에 관심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그와 함께 웹표준에 대한 관심도 함께 적어졌다. 그저 주로 쓰는 브라우져이든지 잘 보이게만 하면 되는거지라는 생각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군에서의 생활이 마무리 되어가던 시점에서 Firefox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직접 관련 소식을 접해서 알았던 것이 아니라 네트워킹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가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브라우져가 파이어폭스였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모질라 커뮤니티에서 웹표준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서 다시 생각이 바뀌어지게 되었다.

표준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자원의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효율의 문제이고 미래의 우리를 위한 예방 활동이다.

표준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법규를 지키는 것과 같이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며 무시하고 마음대로 했을 때 당장은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그런 불법에 익숙한 습관으로 인해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할 때에 원망조차 할 수 없는 문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의 몸에 규칙적인 운동이나 식사를 하지 않았을 때 당장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지속적이고 반복되었을 때 건강상에 문제가 생기고 몸에 이상이 생기는 문제와 같다.

지금 당장 공부하지 않고 게임이나 유흥을 하고 관심있는 부분만 공부하는 학생이 가지게 될 좋지 않은 성적은 우리가 지금 당장 웹표준을 지키지 않았을 때 가지게 될 결과가 같지 않을까?

웹표준은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꼭 지켜야 할 필수요소라고 생각한다.

블로거 축제 제1회

블로거 축제가 있는데, 주류가 있어서 참석할까 고민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술 자리에서 술을 안 마시고도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이해관계가 형성된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서로 불편함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자리에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위의 링크를 참조하고 원하는 사람은 신청하시면 되겠다.

일단 여러 블로거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로 이야기 할 수 있고 평일 저녁이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는데 정말 고민이 된다.

SKT와 하나로 통신이 만나려 할 때

전부터 왜 SKT가 KTF나 LG보다 품질이 좋다고하는지, 정말 그게 사실인지 여부에 대해 적잖이 궁금했다. 사실 통신 분야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고할 만큼의 수준이기 때문에 검색하려거나 더 조사를 해 보려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아마 통신 분야에서 종사하거나 관련 학과를 통해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일반 소비자들이 가지는 지식 수준은 필자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 메일함을 열어보니 블로터에서 온 메일이 있어 열어보았다. 가장 크게 도드라져 보이는 제목이 바로 왜 800MHz 주파수가 주목받을까? 였다. 해당 글에서 관련 부분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1. SKT가 사용하는 저대역(800MHz)이 고대역(1700~1900MHz)이 좋은 굴절율과 조금 더 넓은 도달 거리를1을 가진다.
  2. 해외에서 주로 800MHz 대역을 사용하기 때문에 SKT의 경우 별도의 기기 교체가 필요없다.
  3. 3G에 이르러서는 대역을 각 통신사별로 동일한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면서 타 통신사들이 전력투구하고 있다.

1, 2번은 SKT와 타 통신사의 품질의 차이를 가져오는 주요 원인들이다. 그러나 3번의 경우 최근의 K사가 해당 상품에 대한 열정을 그토록 보이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사실 필자에게는 SKT가 하나로통신과 하나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유선 인터넷 서비스회사가 하나로 통신이어서 개인적인 이득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지금 KT와 KTF의 경우 show서비스와 일반전화나 인터넷 서비스를 혼합하여 사용하는 경우에 할인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것과 같이 할인율을 적용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환영하는 중이었다. 물론 이 글에서 주제로 삼고 있는 800MHz 대역의 사용으로 인한 시정 조치와 관련해서 얼마나 관련있는지에까지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해당 사실에 대해 기대하는 중이다.

사실 SKT의 행태를 보면 소비자로서도 화가나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이따금씩 시정조치 내용같은 걸 접할 때면 측은한 생각도 들기는 한다.

쨌든 결과적으로는 (필자를 포함한 SKT)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방향으로 전개되었으면하는 바람이다.

  1. 해당 글의 작성자(it수다떨기)께서 알려주셔서 내용이 바뀐 것을 알았고, 해당 부분을 수정하였다.[]

고집

요즘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도통 리더에 오른 글들을 읽을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밀리기 시작한 글들은 어느새 몇 백건을 상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필자가 여전히 난독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이며 리더에 등록되지 않은 글들 – 예를 들면 새로 구독하게 될 블로그의 글 – 도 만만치 않게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모든 글들을 다 읽어내려고 고집을 피우고 있다. 이건 누구에게 강요를 받은 것도 아니고, 절대적인 의무감을 가질 일도 아닌데 말이다.

분명히 자유에 의한 것인데, 유독 자신에게만은 이리 엄격할까 싶다. 별 것도 아닌 일인데 말이다.

전설 2mb

나는 건설이다 에서

  • OldBoy댓글:2008년 1월 18일 18:52 편집그럼 국민들은 좀비인가요? 흑흑흑 ㅠㅠ응답
  • cansmile댓글:2008년 1월 18일 19:42 편집@OldBoy – 2008/01/18 18:52
    글쎄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렇긴 한데요.나는 전설이다에 보면 윌 스미스가 살던 동네에 좀비들이 득시글 거리기는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좀비가 아닌 사람들이 모여서 살잖아요?좀비처럼 어떤 본능에만 충실한 사람들이 2mb를 뽑았잖아요.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혹은 그저 단순한 의미로 뽑기도하고요.응답
  • OldBoy댓글:2008년 1월 19일 08:25 편집@cansmile – 2008/01/18 19:42
    가능하면 더 멀이 떨어져 살아야겟군요! 응답
  • cansmile댓글:2008년 1월 19일 17:14 편집@OldBoy – 2008/01/18 18:52
    그러고보니 윌 스미스 분의 역할이 그들을 위한 치료제 개발을 했기 때문에 전설이 된건데, 좀비들의 왕(?)으로 여겨지는 2mb가 그들을 치료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살짝 상상해 봤습니다.응답

이런 댓글들이 오갔는데, 정말 생각해보니 그렇다.

일단 이미지상으로는 2mb씨가 도드라져보이지만, 영화의 내용 – 원작 소설의 내용은 제쳐두고 – 으로만 보면 윌 스미스분의 박사가 결국엔 좀비들을 구원한다는 내용인데, 결국엔 2mb씨가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을 정상인(!)의 상태로 돌려놓는 역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나는 여전히 어리다

최근에 더욱 두드러지게 느끼고 있는 사실 중에 하나가 나는 어리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 어르신들에 비하면 육체적인 나이도 어리고 젊지만 상대적으로 그 나이에 가져야 할 정신적인 나이가 어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웹상에서의 모습은 물론이고 오프라인에서의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나이에 가져야 하는 사고의 깊이의 정도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각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는 분위기를 통해 그것이 정해져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 통념적이라는 표현을 빌어오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까?

조금 더 말해보면 철이 없다는 것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그 나이에 가져야 할 행동 양식이나 마음 가짐을 가지지 못한 사람을 말하는게 아닌가.

사실 어린 시절부터 주욱 해왔던 생각은 철이 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하면, 다르고 싶다는 생각이 발전해서 나온것이다. 사회의 틀에 맞춰 사고까지 틀 짓기가 되어 평범 또는 그 이하의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이런 생각이 어중간하게 실현되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에 대한 문제점들이 적잖이 느껴졌다.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작은 문제들이 모이게 마련인데, 그 동안 문제가 될까 싶었던 것들이 지금의 생각을 가지게 하고 있다. 문제가 아닌 긍정적인 행동양식이라고 생각되었던 행동들이 오히려 또 다른 문제들을 낳았다.

쨌든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이 정도의 어설픈 글을 쓰게 되었는데, 이런 저런 현상들을 모아서 나는 여전히 어리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정리를 해 보려고 쓰기 시작했는데, 생각만큼 정리되질 않는다.

맥북에어 광고 음악

맥북 에어를 서류봉투에서 꺼내는 홍보영상에 대한 소식을 여기 저기서 들었지만 그 사실 보다는 배경음악에 관심이 더 많았다.

맥북 에어 홍보영상 배경에 깔린 음악을 검색해 봤지만 나오지 않아서 대충 들리는 단어들을 나열했더니 구글이 뱉어내주었다.

Song lyrics | New Soul lyrics]

곡도 참 재미있게 느껴졌었는데, 뮤직비디오도 뭔가 획기적이지는 않지만 재미있다.

발빠른 청와대~

청와대 블로그[네이버]에는 벌써 노무현 대통령, 2008년 신년사라는 제목으로 올라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중에 있었던 여러가지 사건들에 대해 기록되어져왔던 블로그인데, 필자에게는 이번 학기 행정학 개론을 들으면서 관련 자료를 얻었던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아마도 내일이 휴일이기때문에 미리 올려둔 것으로 생각되는데, 예약글의 형태로 올릴 수는 없었을까?

안타까움을 표한다.

댓글도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 단다…

싸이에 가면 1촌이든 아니든 제일 처음에 댓글을 달아달라는 메시지가 보이도록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댓글은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필수 기제라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 동안 댓글을 달 수 있는 상황이든 아니든 어찌됐든 눈웃음 표시만으로라도 댓글을 달아주고는 했는데, 어느순간 그것마저도 하지 않게 되었다.

싸이월드 뿐만 아니라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에도 마찬가지다.

그 원인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비춰질까라는 질문이라 생각된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춰질 지 생각해보지 않았다기보다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와 같은 생각은 독특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필자를 제한적인 인간으로 만들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몇십년을 보내고 나서 한 블로그의 주인장으로부터 거부처리를 당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댓글을 달기 위해 닉네임과 비밀번호, 홈페이지 주소, 그리고 내용을 적고는 입력을 눌렀는데, 거부되었다는 메시지가 충격에 휩싸이도록 만들어줬다.

아~ 난 이 사람에게 이런 존재구나 싶었….. 으면 좋았겠지만 그 순간에도 뭔가 오류인가 싶어 티스토리 사용자 포럼에 이상하게도 거부라는 메시지가 나온다는 질문을 했다.

답변으로 돌아온것은 EAS에 걸린거든지 해당 블로그 주인이 진짜로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다른 티스토리 블로그 아무곳에나 방문하여 댓글을 달아보았다. 이상 없이 달리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런 경험을 하고나서는 기분이 좀 나쁜게 사실 그런 정도로 싫었다면 그다지 달갑지 않다는 쪽지 내지는 이메일을 보내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할 가치조차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는 것인가. 나라는 존재는 그에게 있어 그런 존재인가.

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어중간한 인생살이에서 조심스러워야할 이유가 생겨버린것이다.

분명 이런 태도는 어느순간에 이전처럼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당분간은 지금의 태도를 유지할 생각이다.

댓글을 달 때 망설여지고 내용을 언제 적었냐는 듯이 취소하고 탭을 닫아버린다.

존재감이 없는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구글(google)이라는 기업의 위치는 그 누구도 따라 잡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될 수도 있을 만큼의 위치에 서 있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떤 기업들처럼 항상 관심과 주목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구글 성공스토리와 우연의 일치에서는 구글이 어떤 우연들로 인해 성공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이 있다. 몇 몇 부분들이 있는데 제목과 연관하여 적어보자면

구글은 너무나 작은 회사여서  MS 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구글은 결국  MS의 방해 없이 열심히 웹 쪽을 계속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MS의 무관심으로 적은 방해를 받으며 충분히 자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졌지 않은가.

과연… 하지만 저 글에서도 주장되어지고 있지만1 단순히 우연만이 그들을 성공시킨것은 아니다. 우연을 잡아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전 한 설교시간에 설교자는 말했다. 에반 올마이티에서 신으로 나오는 모건 프리먼이 에반의 부인에게 말한 내용이었는데, 우리가 성공을 기도하고 부자가 되도록 기도하면 그 기도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부족하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뒷받침되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글의 성공신화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작은 기회들에서도 충분히 역량을 발휘하고 그 기회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기본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1. 구글이 지금까지 달려왔지만 그것은 단순한 운 또는 우연의 일치라기 보다는 그들의 열정과 노력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레몬펜 설치

얼마전부터 민노씨의 블로그 오른쪽 아래 펜 모양의 아이콘이 보였다.

뭔가 궁금해서 들어가봤더니 레몬펜이라는데, 이거 지금 쓰고 있는 확장과 비슷한 기능인 듯해서 얼른 서비스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오늘 다시한번 방문해 가입을 시도했는데, 가입 처리되어 사용하게 되었다.

지금 레몬펜 공지사항을 확인해보니 필자가 운이 좋은 모양이다.

레몬펜 오픈베타 서비스 시작!

12월 12일, 정말 많은 분들께서 기다리셨던 [레몬펜 오픈베타 서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누구나 자유로이 레몬펜의 설치코드를 받아 자신의 블로그나 사이트에 레몬펜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베타테스터 여러분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더욱 안정적이고 탄탄한 레몬펜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부족했던 레몬펜에 열성적으로 버그를 신고해주시고, 제안을 아끼지 않으셨던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픈 베타 서비스로 레몬펜이 모든 분들께 선보이면서, 여러분들께서 제안해주신 다양한 기능들을 점차 반영코자 합니다. 앞으로도 레몬펜에 많은 제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일단 가입 후 페이지에 스크립트를 넣으면 다음과 같은 그림이 일정 위치에 따라다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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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본문 글에 선택영역을 만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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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와 같은 아이콘이 따라붙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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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클릭하면 포스트 잇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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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서가 나타나면 덧붙일 내용을 적을 수도 있고, 하단에 태그도 달 수 있다.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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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고 그 상태에서 접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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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번호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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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에서는 메뉴 선택을 할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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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은 대번에 알 수 있는 메뉴들이다. 포스트잇의 내용을 입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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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오른쪽의 메뉴에서 스크랩북 보기로 들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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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형광표기 된 부분과 해당 본문의 제목, 메모 내용 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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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와 유사한 기능의 파이어폭스 애드온을 사용 중인데 레몬펜을 알게 되고 괜찮은 서비스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었다.

2007/09/28 – [나의/일상] – 요즘 스크랩에 사용하는 애드온에서 설치했던 애드온 중 text marker만 사용 중인데, 단축키를 사용할 수 있고, 3가지 색으로 표기할 수 있어서 편리하게 사용중이었다.

해당 애드온으로 같은 부분을 표기하여 클립보드에 복사하면

필자의 실수(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가능성
(Source URL: http://cansmile.tistory.com/526)

이런식으로 표기한 내용이 표기한 순서대로 나오고 마지막엔 출처 주소가 표기된다.

아직 레몬펜은 스크립트가 설치된 페이지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이번 달 안으로 애드온이 나오면 다른 페이지들에서도 사용 가능해 질 것으로 기대된다.

IE Toolbar나 파폭 확장팩 요청 / 작성자 : seeyoung / 2007-12-12 18:31:27
모든 웹사이트에서 사용가능하도록 ie toolbar나 firefox extension형태의 지원이 되면 좋을것 같습니다.

답글 & 히스토리
위쯔~ / 2007-12-12 18:37:34
우와!
12월에 나올 예정입니다. 파폭과 IE용으로 제공될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 )

rainygirl / 2007-12-12 18:38:00
네, 말씀주신 브라우저 확장프로그램도 현재 준비중입니다. 내부에서 최종 테스트중이며- 곧 선보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기대해주세요^-^

스프링노트도 가입해서 학교 수업 시간에 필기를 하고 정리하면서 이번 학기까지 아주 잘 사용했기 때문에 레몬펜에 대한 기대가 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보시는 바와 같이 필기 내용이 검색 결과에 노출되지 않도록 잠금상태인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아마도 학기를 마치면 공개할 가능성이 높다.

학기 중간에 노트북이 생겨서 수업시간에 무선 접속하여 스프링노트로 필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변인들의 관심이 높았다.

그들에게 가입권유는 해보지만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지 가입하겠다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하지만 그들 중의 몇 몇에게는 가입 권유를 통해 가입하고 사용중이기도 하다.

앞으로 더 좋은 서비스들을 기대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추가
다 적고 나서 설명 페이지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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