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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일상

멘탈을 부여잡고 살아가기

사실 지난 3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일을 겪었다. 자세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지만, 일평생 겪은 모든 고통 가운데 가장 극심한 일이었다.

교회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고,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하는 일이기에 멘탈을 부여잡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기에 그저 멘탈이 나간채로 살아갈 수 없었다.

요즘은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도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교회 안에서 만연해 있고, 그런 생각을 중심으로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1

사람이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많은 연구자들이 논문을 발표했겠으나 이 글은 그런 내용을 나누고자 하는 목적은 아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멘탈이 나갔다

‘멘탈이 나갔다’ 혹은 ‘멘탈 브레이커’와 같은 표현이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그것이 공중파를 통해서 어머니의 귀에 들렸을 때 어머니께서는 ‘참 무서운 말을 쉽게도 한다’고 하신 적이 있었다.

멘탈이 나갔다. 그냥 나간 것이 아니었다. 평생에 이렇게나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타격감을 맛보게 되니 그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크게 맞고나니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 생각만 머리 속에 꽉 차들어 무엇이 잘못이고 그 잘못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고민 속에서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게 되자 그 원인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실제로도 그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한 없이 스스로를 책망한다.

주변에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비율의 사람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방향으로 도피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같은 일을 겪게 되는 사람은 대부분 그 원인을 경제적인 것에서 찾는다. 그래서 당장 그 일을 그만두고 경제적인 부분으로 자신의 만족을 얻고자 한다. 또 다른 편으로 빠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여기에서 밝히기에 민망한 일이라 굳이 여기에서 언급하고 싶지 않다.

부여잡고 살아가기

다행스럽게도 다른 길로 가지 않고 이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처음 그런 일을 겪게 되었을 때 일하는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 그 교회에서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 그런 부분으로 노오력을 그칠 수 없었다.

여전히 미련이 남았고, 있지도 않은 가능성을 부여잡으면서 1년을 힘겹게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을 때, 또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그 일로 모든 희망을 내려 놓게 되었다.

그런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는 이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개인적인 의지보다는 신적 의지가 강력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신적 부르심을 입고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머리 속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멘탈이 바르게 자리잡고 있을 때에는 하지 않을 판단과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다.

어쩌면 핑계라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사고활동이 구속되었다는 판단이 될 정도로 사고활동을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것을 또 듣는 이들에게 맞추어 정리해야 하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 그 동안 해 온 경험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교회의 일은 엉망진창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함께 일을 했던 성도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든다. 간혹 연락이 오기도 하는데, 그 때의 내 상태를 생각해보면 믿기 힘들 정도로 좋게 기억하고 계셔서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또 다시 결론은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신적 의지, 그리고 신적인 부르심에 대한 사명감. 단지 이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일이 교회에서 일어났다.

나는 여전히 회복 중이고, 그 당시에는 더 엉망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부족한 모습을 통해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해 낸 것보다도 더 큰 은혜를 받아 누리는 학생들. 내가 한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

이 모든 것 가운데 인간의 노오력이란 얼마나 무의미한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찰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내가 능력이 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일을 하는 것.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대단한 일을 하지도 않은 나에게 허락된 이 은혜를 어찌 표현할 길이 없다.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의 말씀이지만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개역개정 4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고백이 내 삶을 통해서 고백되어질 수 밖에 없다.

여전히 나는 부족하고 약해빠진 인간이지만 이런 나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하다.

  1. 개인적인 생각이다. 무엇이 교회다운 모습이고 무엇이 교회다움을 잃은 모습인가는 지금 중요하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