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날

2주 전 토요일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그 동안 정신이 드셨다가 또 어느날은 제 정신이 아니셔서 사람 얼굴을 못알아보신다고 하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그 동안 못 찾아뵈었으니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가서 뵙고 오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더하셨다. 그래서 주일을 맞이하기 전 며칠을 있을 생각으로 옷가지와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그리고 주일 저녁 예배까지 모두 마치고 교회에서 바로 출발하였다.

이전에는 쉬지 않고 운전해도 피곤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녹록치 않아 중간 중간 쉬엄 쉬엄 가다가 도무지 피곤해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고속도로 바깥으로 빠져 일반도로 가에 주차할 공간을 찾아 쉬었다 가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해남 우리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요양원에 계실 때 혼자 거동하시다가 순간 중심을 잃고 주저 앉으셨는데, 그것 때문에 엉치뼈 부분에 수술을 하셨다. 수술 후에 오래 누워계시게 됐는데 그러다보니 등에 문제가 생기셔서 병원에 계속 계실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note]병원에서 조치를 잘못해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 연세가 드시고 몸이 약하여지셨기에 생긴 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건강하실 때야 이런 문제가 생기겠는가?[/note] 병원에서도 수치상으로는 지금 당장 돌아가셔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소견을 보이는 상태가 되셨다.

금방 돌아가실 것 같다던 할머니께서는 병원에 갔을 때 나를 알아보셨다. 할머니 내가 누구에요? 하니까 내 이름을 부르셨다. 얼마나 다행으로 여겨졌던지 좋지 않았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할머니께서는 성도로 신앙생활을 하셨고, 국민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시지 않으셨기에 한글을 제대로 읽거나 쓰지 못하셨다. 아버지로부터 전도받으시고 성도가 되셔서는 성경을 읽겠다고 한글을 공부하셨다. 성경을 모두 쓰시면서 한글을 알게 되시고 읽게 되시고 쓰게 되셨다.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정신이 온전하지 않으실 때, 신앙을 부인하시지나 않으실까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정신이 온전하지 않으신 상태의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들께서 신앙을 부인하시기도 하신다는 얘기를 건너들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에 갈 때마다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를 때마다 할머니께서는 정신이 온전하셨다. 사도신경도 느릿 느릿 모두 외우시고, 좋아하시는 찬송가도 1절에서 4절까지 후렴까지 부르시고, 말씀을 전할 때 아멘~ 아멘~ 하시면서 응답도 하셨다. 주기도문까지 온전히 외우셔서 예배를 마칠 때까지 정신이 온전하셨다.

무엇보다 ‘하나님 믿으세요?’ ‘예수님 믿으세요?’ ‘성령님 믿으세요?’라는 질문에 또렷하게 대답하셨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할머니께서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안한 모습으로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정해진 일정들을 소화하면서 할머니 걱정은 내려놓은 상태였다. 며칠동안 혈색도 괜찮은 모습을 마지막으로 뵈었기에 아직은 괜찮겠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저녁 소식을 들었을 때, 놀라운 마음을 미처드러낼 수 없었다. 하지만 사촌 형님 한 분은 마음이 달랐다. [note]그 형님 아버지께서는 음주운전자에게 뺑소니를 당하셔서 돌아가셨다. 어린 시절 가정의 경제 형편을 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을 전전하면서 손가락을 잃게 되었던 형님이었다. 양심 없는 사업자는 제대로 된 조취를 취하지 않아서 잃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의지를 잃지 않고 살다가 이십 대 중반 사랑하는 사람과 이루어지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여자 집안에서는 손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가 심했던 것이었다. 어느 날 술을 마시고 사랑하는 여인을 집 앞에까지 배웅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 자고 일어난 형님은 사랑하던 여인이 수면제를 다량 먹고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note] 방황하던 시기에 유일하게 형님을 챙겨주었던 사람이 할머니셨다. 그 형님은 전화를 받고 펑펑 울었다. 형제자매가 외면할 때도 도닥이며 위로해주셨던 분은 할머니셨다.

오늘은 해남에 계시는 작은 아버지께서 기본적인 절차를 처리하셨다면서 장례는 내일부터 시작된다. 마음이 복잡해서 잠이 오질 않아 적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마음이 정돈이 되어서 다행이다.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성도로 믿음을 지키셨고, 분명 예수님께서 기쁘게 맞아주시는 그 곳에 먼저 가 계실 것을 생각하면서 기쁜마음으로 자리를 지키러 간다. 집안의 종손이라서 장례를 마칠 때까지 있어야 할텐데 기쁜 마음으로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고 장로 유영갑 1926~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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