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능력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기도의 능력을 가볍게 여기는 세태확실히 오늘날 세상은 기도의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우리들은 기도의 능력을 가볍게 생각한다.

(중략)

기도회에 모일 때 사람들은 저마다 한 보따리씩 견디기 힘든 삶의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기도제목 보따리를 풀어 하나님께 보여드린다. 그러나 기도가 끝날 때 그들은 다시 기도제목 보따리를 주섬주섬 싸면서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라님도 해결 못할 문제인데 당신이라고 뭐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튼 감사했고 심려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내일 새벽에 같은 문제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면서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신앙인의 불신앙이다. 때때로 기도는 결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하는 정신수양 혹은 기수련, 마인드 컨트롤 정도의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기도의 능력을 이렇듯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채워질 까닭이 없다.

출처 : 채워주심1

성경에 보면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그린 부분이 있다.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은 믿지 않았지만 문둥병을 고침 받는다. 그에게 있었던 것은 믿음이다. 물론 처음부터 믿었던 것은 아니지만, 신하의 말에 일리가 있다하여 엘리사의 말대로 정말 믿고 요단강에 들어가 문둥병이 깨끗하게 낫는다.
필자도 기도의 능력을 체험했는데, 등록금이 채워지는 응답을 받기까지 참으로 오랜시간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괴로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기도가 이루어질까하는 의심도 간간하게 들었지만 끝까지 채워주실 때까지 기도하고 기다렸다. 그랬더니 정말 등록금이 마련되었고, 무사하게 졸업할 수 있었다. 이 전에도 자잘한 체험을 주셨지만 가장 최근의 큰 체험이기에 나누려는 목적으로 기록하였다.
물론 많은 부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다 되는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살면서 믿을 가져야만 기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1. 이상혁, 채워주심, (서울 : 규장, 2007), pp.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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