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통령의 고민이 깊습니다.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변양균 전 정책실장의 문제와 관련해 “난감하고 할 말이 없다”며
그 고뇌의 일단을 표현한 적도 있습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던, 믿었던 측근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인해 참여정부의 도덕성
전체가 의심받는 상황을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변 전 실장의 문제를 보고받은 대통령의 심정은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입니다. 믿음이 무너진 허탈함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대통령을 힘들게 한 것은 온갖 어려움을 헤치며 만들어 온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대한 당당함과
자부심의 훼손일 것입니다.출처 : 사람도리 하는 게 그렇게 이상합니까
이 부분을 읽으면서 엉뚱하게도 필자는 예수의 제자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아니 정확하게는 필자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요즘 학교 과제를 위해 책을 읽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부분을 보면서 지금 주의 자녀들인 우리들의 문제가 일이년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1700년 하나님께서는 스콧트란드에 주목할만한 성서의 개혁자를 보내셨는데 그들이 바로 Haldane형제들이었다. … 중략 … 총회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너무 무관심하고 그들 스스로 의롭다고 자처하는 위선에 환멸을 가지고 장로교회를 떠나 형과 함께 성서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목사 사회에 팽배한 부도덕성과 냉담을 성서를 더 많이 보급하고 가르침으로 고치고자 노력했다.
출처 : 그리스도의 교회 I (환원운동사편)1
물론 필자는 겨우 인간 따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들의 어떤 문제가 어떻게 잘 못되었다고 정죄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이기에 이에 대한 별도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지켜줘야할 법적인 문제들을 어겨가면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머리 속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
지난 이십여년의 짧은 생애를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교회들의 일처리에 대해 살펴보게 되었지만, 절차를 밟고 순서를 시켜가며 기다림으로 일의 처리를 하는 교회가 있는 반면에 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일단 벌이고서는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시겠지라며 과도하게 진행하는 교회도 있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다 처리할 수 있으실만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생기는 예수의 형제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의 그런 행동을 통해 우리만 욕먹고 끝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들의 그런 법절차를 무시하는 행동들은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이름을 먹칠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더럽히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 하나 잘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는 생각보다는 나 하나부터 변하고 옳바르게 행동하는 것부터 변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해야 할 때이다.
- 권인원 저 / 서울 : 문연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