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불만의 해소

싸이 메인 화면에 포옹의 효과라는 글이 올라와있어 클릭해 보았는데, 정희곤이라는 사람의 미니홈피에 올라온 글이란다. 다른 어디에 올라와있었는지 모르지만, 필자는 처음 보았는데 이게 욕구불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인지 좀 흥미가 생겼다.

1. 기분 전환에 좋다.

2. 외로움을 없애 준다.

3. 두려움을 이기게 해준다.

4. 자부심을 갖게 해 준다.

5. 이웃을 사랑하게 해준다.

6. 긴장을 풀어준다.

7. 불면증을 없애 준다.

8. 근육을 튼튼하게 해준다.

9. 욕구불만이 있는 뚱뚱한 사람들에겐 식욕을 줄여 준다.

10. 즐거움과 안정감을 준다.


이상의 여러 효과들 중에서 9번항에 유독 시선이 멎은 것은 최근에 줄어든 식욕 때문이었다. 최근에 누군가와 포옹을 한 적이 있는가 싶었다. 사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필자의 가족 분위기상 포옹은 별달리 어색한 행위가 아니기때문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전에 군생활 중에 알게 된 동네 누나와 포옹한 적이 있었는데, 그 누나와의 포옹으로 가족과의 만남이 잦지 못했던 시기에 욕구불만을 해소 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굉장한 체중을 줄이기 위한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고, 그것에 음식 섭취량의 감소가 자연스럽게 이어졌었다는 생각이 든다.

포옹의 효과, 그리고 욕구불만의 해소..

만 18세의 참언론을 위한 준비

2006년 여름 시사저널은 사장에 의해 한 기사가 광고지면으로 바뀌었다.

그 사태에 대한 여러 증거들을 모아놓은 블로그가 바로 시사저널 거리 편집국이다. 이 곳은 시사저널에서 나온 기자들이 신 매체 창간을 위한 준비까지의 활동사항들을 작성해 놓은 곳이다. 지금도 활동이 완전히 멈춰진 것은 아닌데, 글이 대략 뜸한 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난 기록들은 어떻게 그것들이 진행되어왔고,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들이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띄엄 띄엄 알고 있던 사건의 진행 사항들에 대한 정보들을 이를 통해 얻고 있다.

그러면서 시사저널이 18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런 시점에서 삼성기사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한국에서의 성인은 만 18세를 기준으로 구분되어지는데, 이것은 성인영화를 볼 수 있는 능력 – 한 사람으로 자신에게 이로울지 해로울지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 – 을 지녔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어진다.

시사저널이 그 대상이 되어 언론의 탄압되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18세의 한국인들이 스스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어떤 일을 할 지 무엇을 좋아하고 행복해 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평균적인 나이일 것이다.

이런 것이 생각나게 된 동기는 시사저널 거리 편집국의 다음의 한 부분이다.

독립정신이 훼손되고 유린당한 매체,
기자다운 기자들이 떠나버린 <시사저널>은 더 이상 <시사저널>이 아닙니다. 알맹이는 가고 껍데기만 남은,
죽은 매체일 뿐입니다. 우리 전직들은 시사저널을 사랑했기에 시사저널로 돌아가지 않은 파업 기자들의 결단을 지지하면서 이제 정든
그 이름, 아름다운 과거와 작별을 고하고자 합니다. 굿바이 시사저널!

위의 인용문은 전 시사저널 기자들의 참 언론 실천 시사기자단의 성명서의 마지막 부분인데,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있었지만, 그런 부분들을 읽을 때에는 아무런 감정이나 특별한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왜 위의 부분에서 그런 생각이 들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들의 행보가 드디어 가속되기 때문이 아닐까. 크게 진실을 향한 한 걸음 내 딛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18년 동안 자라온 나무의 열매가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병충해를 이겨내어오면서 무르익은 열매라서 그런것이리라.

해수욕장 횡포

을왕리 해수욕장을 찾았다가 왕산 해수욕장으로 가다를 읽다보니 고등학교 때의 에피소드가 생각나는데, 그 때 가족들과 함께 해변에 간 일이 있었다. 아마도 안면도의 어느 해수욕장인 것으로 기억된다.

이모부님의 고향이 안면도였는데, 배들이 있는 곳이 집이었는데, 그 곳 뒤쪽이 방파제가 있는 바다가 있었다. 그 건너편에 해변이 있었는데, 하루는 시간을 내어 해변에 갔는데, 문제는 그곳에서 발생되었다.

해변에서 천막(텐트)을 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젊은이 – 물론 필자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였다 – 두 명이 오더니 자리값을 내라고 했다. 그 둘이 왔을 때 모레들이 필자의 몸을 덮고 있었는데 황당함에 고개를 올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전에 해변에서 자리세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뉴스에서 접했는데 그들이 그런 사람인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아저씨들이 뭐하는 사람들인데 자리세를 받아요?라고 항변했더니 해변이 자기들의 땅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리세를 받는다고 했다.

대번에 들어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사유지라면 그런식으로 영업을 할 리도 없지 않은가. 2년 전 쯤에 남이섬에 사진 촬영을 위해 간 일이 있었는데, 정말 철저하게 사유지라는 것을 느끼게 할 정도로 비싼 입장료와 주차요금을 내었다. 사유지라면 그곳이 나머지 기간에 운영될 정도로 요금을 받아야 하는게 맞다고 생각되지만 그곳의 해변은 엉성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대답을 듣고 그럼 땅문서나 영업이 가능한 증명서류를 보여달라고 했다. 이미 필자를 덮고 있던 모레들은 그들의 친구들과 만나 있었고 얼굴은 붉게 타고 있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난 후의 그들의 행동은 마음속으로만 했던 그 생각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라졌고 다시 우리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목격할 수 있었다. 생각같아서는 쫓아가서 영업행위(?)를 방해해 주고 싶었지만 가족들의 만류로 참았다. 그들이 순순히 물러간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가지게 된 엄청난 덩치덕이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그들은 그 동네에 사는 청년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여름에 오는 피서객들에게 돈을 그런식으로 갈취해서 뭘 하려고 했을까.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일까?

cansmile의 미투데이 – 2007년 7월 23일

이 글은 cansmile님의 미투데이 2007년 7월 23일 내용입니다.

하루 중에 몇 시간을 테트리스에 들였다. 사람 욕심이라는게 정말 무서운데, 이게 욕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9위를 했는데 그게 약 30번 정도의 시도를 통해서 얻은 결과였다. 그렇게 순위를 얻고 나니 욕심이 더 생기게 되었고,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이랍시고 가진 시간을 온통 테트리스에 들였다.

그리고는 저런 로그만 남게 되었다.

PR이라는 것은 진실을 잘 전하는 것이다.

Hoh Kim’s Lab는 김호님의 블로그인데, 이 곳에 있는 글들이 여러 관련 블로거들에게 인용되는 것을 보면서 따로 등록해두거나 하지 않았었는데, 여러 번 보게 되어 관심이 생기고 글을 처음부터 읽어볼만한 가치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여러가지를 배우고 습득하게 되었는데 그런 것들을 다 정리할 수는 없지만 간단하게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PR을 광고와 별다른 구분을 두지 않고 사용해 왔지만, PR은 광고와 엄연히 다른 행위이다. 알린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차이점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전에 아거님의 글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대공중관계(Public Relations) 에서 언급한 바 있다.

사실 PR에 대해서는 아거님의 블로그 Gatorlog에서 먼저 확실히 알게 되었는데, 그 이후에 아거님의 글들을 통해서 얻었던 정보들을 관계라는 점에서 온전히 연결하는게 힘들었다. 말하자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확실히 PR이 대공중관계라는 공식은 성립되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Hoh Kim’s Lab에 2001년부터 올라온 글들과 스크랩된 기고글들을 통해 관련 지식을 습득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확실히 처음부터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PR은 이미지를 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것을 도구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최종목표이다. 기업에 대한 이미지나 어떤 상품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권위는 점차 유명인이나 해당분야의 권위자들로부터, 또는 기업에서 하는 광고에서부터 얻으려 했던 사람들이 기업을 경험한 사람들, 기업의 상품을 이용한 사람들에게서 얻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경향의 변화는 다대다(多 vs 多)로의 전환으로부터 발생된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이 점차 다양화되어지고 기업에서 꾸며지는 듯한 단일한 이미지보다는 사용해 본 사람들의 솔직하고 다양한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음주운전자의 수면

방금 재미있는 일을 겪어서 바로 포스팅해 본다.

새벽에 교회에 갔다가 할머니를 태우고 집에 오는 길이었는데, 사거리 골목에 하얀 승합차가 왼쪽 깜빡이를 켜고 서 있다.

그래서 처음엔 뭔가 일이 있는가 싶어 한 30초 정도를 기다렸지만 움직이지를 않아서 크렉션을 살짝 두번 울려줬는데, 옆에 서 있던 아가씨가 뭐가 재미있는지 잔다는 몸짓을 했다. 황당해서 정말 자면 깨우려고 내려서 해당 차량에 접근했는데, 정말 자고 있었다. 그것도 침을 흘리면서 자고 있었다.

황당해서 유리를 두드리고 소리도 쳐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차를 후진해서 돌아서 집에 가는데 할머니께서 혹시 죽은게 아니냐는 말씀을 하시는것이 아닌가! 그래서 문득 걱정이 되어 차를 돌려 승합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차는 세워져있었고 운전자 역시 왼발을 운전대 옆에 올려놓고 자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죽은게 아닐까 싶어 잠시 동안 살펴보면서 문을 두드렸더니 가슴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이렇게 놔뒀다가는 누군가 지나가다가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싶어 열러 있는 것으로 확인된 조수석 문을 열어 깨우기로 했다.

조수석쪽 문을 열자 운전자가 왜 그런 어정쩡한 상태로 차를 세워뒀는지 이해가 갔다. 그 이유는 바로 술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술 냄새가 진동 했다. 코를 굉장히 자극하면서 구역질이 나왔다. 이 표현은 그런 행동이 구역질 날 것 같았다는 표현이 아니다. 정말 술 냄새가 심해서 신체에 반응이 왔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해서든지 깨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소리도 쳐보고 흔들기도 했지만 도무지 숨을 쉬는 것 외에는 꼼짝달싹 하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운전석 쪽에 문을 살짝 여시자 기대어 있던 운전자는 그로 인해 눈을 떴다. 그래서 일어나서 집에 가거나 길 옆에 세워두고 자라는 소리를 했지만 풀린 눈을 잠시 보였을 뿐 반응하지 않았다. 귀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10여분을 깨웠지만 일어나질 않아서 경찰에 신고 했다. 신고한 시간이 5시 53분이었는데, 신고하고 10분이 다 되어가도록 오지 않아서 6시 6분에 다시 확인을 했더니 거의 다 왔을 거라는 답변이었다. 그로부터 1분이 안 된 시간에 그 장소로 이동인 듯한 경찰이 전화를 걸어 위치확인을 하였다.


통화를 하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도착했는데, 몇 분 후 또 다른 순찰차가 도착했다.

경찰은 도착 후 폰카로 필자처럼 사진을 촬영하였다. 저 사진에 있는 경찰이 도착하고 난 뒤에 온 경찰의 손에 디카가 들려 있는 것까지 확인하고 돌아왔다.

운전자가 죽은건지 확인하면서 차를 둘러봤는데 옆면이 긁혀 있어 골목을 운행하면서 긁힌 것인가 싶어 주변 차를 찾아봤더니 바로 옆에 세워진 차량의 뒷범버에 흰색 도료가 묻어 있었다.

술냄새가 얼마나 심했던지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음주운전은 자기만 안 죽으면 다행인 것이 아니다. 누군가 뺑소니를 당했다거나 했다면 정말 큰일이다.

필자의 고모부께서 뺑소니 당하시고 고모님께서 고생하시며 친척 형누나동생 3남매를 키우시는걸 옆에서 봐와서인지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굉장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운전자가 자고 있는 모습까지 촬영해서 올리려는 마음이 있었지만 꾹 참았다. 부디 음주운전 하지 마시기 바란다. 모르긴 몰라도 저 정도면 면허 취소에 구속도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cansmile의 미투데이 – 2007년 7월 19일

  • 시작이란 그런걸까.. 웬지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오전 12시 8분
  • 절대 선물때문에 신청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댓글을 보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확인했다. 왜냐하면 지금 199명의 친구가 있구, 먼저 신청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펭도님이 누구를 먼저 수락하느냐!! 오전 3시 58분
  • 선물해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53-4번지 ㅡㅡ;;; 오후 10시 56분
  • 이런현상 너무 심해져서 친구가 없어져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후 11시 6분
  • 할 것은 많고 시간은 없다. 작업 좀 하다보니 벌써 내일이 다가온다. 오후 11시 7분

이 글은 cansmile님의 미투데이 2007년 7월 19일 내용입니다.

사진은 찍는 사람의 감정도 담는다.

한 동안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를 보면 “사진은 사진을 찍는 사람의 감정이 투영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표정 정말 맞는 표현이다.

사진은 사진을 찍는 사람의 감정이 투영된다고 한다.

또한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어떤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 대상과 어떠한 형태로 교류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중략)

상황이 끝나고 임시 편집실에 오자마자 안선배가 찍어 온 사진을 보았다.
사진이 나빴다. 안선배 사진 답지않게 사진이 너무 나빴다.
대부분 초점이 맞지 않았고, 구도도 심하게 불안정했다.

출처 : 시사저널 거리 편집국 – 한 동안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원래 사진을 시작하게 된 것은 중학교 때 특활시간에 사진부 활동을 시작하면서, 세상을 다 담고 싶다는 소망에서부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저런 소소한 사진들을 주제에 상관없이 찍어왔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들조차 피사체가 될 수 있었다. 다시 사진기를 잡기 시작한 것이 처음 디지털 카메라를 샀던 때였는데, 그 때는 풍경사진을 찍기를 좋아했다.

정말 똑딱이(COOLPIX E775)로 좋은 사진을 많이 찍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올해 초에 행사사진을 찍으면서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들이 잔뜩 생기기 시작했다. 초점은 물론이고 구도도 엉망이었다. 심지어는 화밸1조차 맞지 않은 사진이 있었다.

카메라는 분명 처음 사용했던 똑딱이보다 좋은 카메라(D70)인데도, 결과물은 엉망인게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결과물들이 말해주는 필자를 들을 수 있었다.

행사사진이라고 해 봐야 소속해 있는 집단에서 하는 집회 정도뿐인데, 그들과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들이 필자에게 어떤 해코지나 괴롭힘을 행한것도 아닌데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전처럼 다가가서 말하고 인사조차도 하기 힘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필자뿐이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것을 그만 둘 수는 없었고, 그 집단에서도 필자의 사진을 좋아하고 원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깨닫고 난 뒤로부터는 다시 그들에 대해 애정을 갖기를 노력했다. 사람 마음이라는게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경험이었다.

최근에도 초점이 맞지 않는다거나 자동초점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는 기능상의 이유로 사진품질이 좀 떨어졌지만, 그래도 그들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인지 이전에 그 때보다 더 좋은 사진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는 사진들이 나온다.

이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시사저널 거리 편집국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져와서 씁쓸함이 느껴졌다.

  1. 화이트 밸런스[]

술 마시면 사라지는 사람들 2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술 마시면 사라지는 사람들 1 에 이어서 작성되는 글이다.

Pink님의 글을 보고 생각난 것은 사람들의 술버릇인데, 필자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때 술을 처음 마셨다. 학원에 같이 다니면서 친해진 누나와 그녀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어느날인가 술을 마시자구 불리워나갔다. 그 때는 그다지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었는데 웬지 그날만은 기분이 좋아서 벌컥 벌컥 마셨더란다. 그 누나 남자친구가 천천히 마시라고 했지만 주는대로 다 마셔버려서는 거의 둘이서 10병 가까이를 마셔버린 듯 했다. 그리고 노래방엘 갔는데, 약 1시간 가량의 기억이 없다. 그렇다! 별다른 술버릇이 없고 단지 잠만 잘 뿐이다. 필름이 끊긴건 평생에 그 때뿐인데, 그 이후에는 끊겨본 일이 없다.

그래서 군대에서 사람들의 술버릇을 관찰할 기회가 많았는데, 좀 정리해보자면 행동파, 수면파, 감성파로 나눌 수 있겠다.

먼저 행동파는 동작이 활발해져서는 평소와는 다른 모습들을 보이게 되는데, 아마도 술기운을 이용해서 평소에 발휘하지 못했던 것들을 표출하는 듯 했다. 주사가 심한 사람들이 보면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데, 사실 이런 사람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필자의 경우에는 군입대 후 약 2년 정도를 술도 안 마시고 놀았는데, 고참들로부터 얻었던 별명이 콜라한캔 X하사였다. 콜라 한캔만 시켜주면 술 몇 병이 들어간 사람처럼 논다는 의미 되겠다. 뭐 자랑아닌 자랑이 되겠는데, 이게 나름의 노력으로 이뤄진 성격의 변화이기 때문에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변명하는 것은 그만두기 바란다.
행동파중에는 제목처럼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람 쐬러 나간다고하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Pink님의 글 중에도 3차로 이동하면서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하는 부분에서 이 사람들이 생각난 것이다. 이 사람들 회식을 정리하려고 찾아보면 내무실에 간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고, 어딘가 배수로에 빠져있다던가 화장실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은 수면파인데, 필자가 이 분류에 속하겠다. 술에 취하면 잠이 들거나 꾸벅 꾸벅 졸게 되는데 명확한 과학적 증명을 알고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패스한다. 이 사람들은 그다지 술자리에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단 둘이 술 마시는데 이런 사람이면 좀 곤란하다. ㅡㅡ;;

그 다음은 감성파인데, 웬지 감상에 젖어지게 되어서는 울거나 웃어버린다. 웃는 사람은 시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나은편인데, 우는 사람은 정말 대책을 세울 수가 없다. 친구들을 많이 사귀면서 여자친구들이랑도 가끔씩 만나고는 했는데, 단둘이 마시면서 울어버리면 마치 죄인이라도 쳐다보는 듯한 시선을 받기 쉽상이었다. 다행히 필자에게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이런 경우에는 얼른 집에 돌려보내버리는게 상책이다.

생각난 이야기를 한 페이지에 다 기록할 수 있지만, 웬지 너무 길어지는 듯해서 나누어서 쓰게 되었는데, 이번 글은 생각보다 좀 짧아져버렸다.

술 마시면 사라지는 사람들 1

아~ 먼저 이 글 미스테릭 포스팅은 당연히 아니다. Pink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좀 적어본다.

먼저 제목인 방팅에 관한 것인데, 인터넷이 활성화 되기 전 통신을 하면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는데, 초등학교때는 단순히 통신 상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만 했고 실제적인 만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었다. 겨우 장만한 컴퓨터로 전화연결이 되어 글 읽고 정보를 얻는 것으로 만족했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들어와서도 그다지 실제적인 만남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없었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서울에서 이사를 하면서 그다지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에 통신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물론 통신을 이용하는 연령대가 지금처럼 폭넓지가 않아서 동년배의 친구를 알게 되는 경우는 좀 적었지만, 그래도 통신상에서의 만남이 즐거웠다.

아!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 나우누리 채팅방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몇 번 연락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진전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여자친구를 처음 사귄게 이 때 였다. 그다지 진지하지 않아서였을까. 단순한 이성친구정도의 느낌 뿐이어서인지 일반적인 연애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인지 더 이상의 확실한 기억이 없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이 고등학교 올라가서라고 기억된다. 나우누리에서는 여러가지 활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PC를 이용한 개인적인 활동은 이미 중학교 들어서면서 시작되었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만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때의 만남을 시작으로 동호회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활발해졌다.

하이텔도 그렇고, 나우누리도 그렇고 채팅방에 가면 항상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채팅방에서 만나서 결혼까지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었다. 이건 분명히 필자가 알고 있는 경우에 한정되기 때문이 이전에도 몇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천리안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리고 방팅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던 것이 20살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때보다 군에 가서 더 방팅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나름대로 방황하고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했을 때가 23살정도였는데, 월급도 꼬박꼬박 들어오겠다 두려움이 없었다. 그 때는 친구들과도 가장 활발하게 만나고 다녔는데, 친구들과의 연결점 역할을 했었다. 대게 친구들이 무리지어 노는데, 그 친구들과 모두 연락할 수 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점차 연락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록 힘들어져서 지금은 연락을 정말 가끔씩만 하는 상태가 되었다. 무엇보다 서로가 바빠져서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전역하기 1년 전인 2003년엔 아랫지방에 돌아다닐 계획을 세우고 경상도 지방에서 전라도 지방까지 순회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가 마지막이었던 듯 하다. 부산에 내려가서 전역한 친구와 연락해서 만나 한잔하고는 늦은 저녁이 되고 잘 곳이 없어서 PC방에 들어가서 부산 방팅을 찾았다. 그런데 이 부산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속적으로 방팅을 하고, 놀 돈을 마련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잠시 생각난 것이 있어서 시작했는데, 끝이 없다. 너무 길어서 둘로 나누어야 할 듯하다.

게임같은 블로깅, 블로기즘

필자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기껏해봐야 지뢰찾기나 테트리스 같은 간단한 게임만 가끔씩 할 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게임은 최근에 여러 사람 폐인 만들었다는 스타 크레프트, 와우, 리니지 같은 류를 말한다.

관련글 : 프루나 같은 인간, 순간 판단력

게임을 하지 않는 대신에 다른 것에 재미를 가지고 PC에 대한 관심을 이어왔는데, 최초의 관심 대상은 하드웨어였다. 이런 저런 것들을 붙여보고 떼어보고 어떻게 하면 어떤 방식으로 다르게 작동하는가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좋은 성능을 낼 수 있는가에 대한 글들을 통신에서 찾아서 직접해 보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그러는 중에 날려먹은 PC만 10여대가 되었지만, 지금은 일반적으로 PC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비해 조금 나은 하드웨어 운용능력을 가지게 된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 시기적으로 그 다음이라고 할 만큼의 차이를 가지지는 않지만 – 그래픽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다. 마우스가 생기기 전에 닥터 할로라는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고, 마우스가 생기고 나서도 마찬가지로 사용하였다. 닥터 할로라는 프로그램이 지금의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션, 그리고 플래시 같은 프로그램을 다루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닥터 할로는 말 그대로 끄적거리는 정도의 장난질로 그림을 그리고는 했는데, 그 이후의 프로그램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방면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 두가지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게임이 아니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게임과 같은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민노씨의 게임과 블로그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것은 시민이자 대중인 우리가 삼성의 자본권력으로 귀추되는 것에의 새로운 혁명적인 행동이 가능한 곳이 바로 블로그, 블로기즘으로 이야기되어지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 ‘블로그’가 필자가 이전부터 PC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어올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흥미거리로만이 아니라 새로운 혁신도구로써의 도구로1 사용되어 진다는 것이다.

과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되는것이 필자 역시 단순한 기록의 도구로 블로그를 사용하고 있지만, 다른 이들과연 관계가 형성되면서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시사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 그것에 대해 사상이라는 것을 정립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블로깅이 단순한 기록의 도구에서 사상을 정립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피력할 수 있는 도구로 전환되어져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미디어들은 버려져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블로거들이 이처럼 바로 잡아가야할 대상 중에 기존 매체들도 포함되어져야 할 것이다. 삼성의 자본권력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시사저널 기자단과 같은 분들처럼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사람은 변화하고 바뀔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그것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2는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정리하자면 게임과 같은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도구로써 블로기즘은 기존의 매체들을 비판하는데 그들을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정도로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 민노씨의 포스팅 중에서는 위(Wii)와 같은[]
  2. 블로거[]

아놔~ 바탕화면…

cansmile의 배경화면

이것을 본 사람은, 반드시 데스크탑 스크린샷을 일기에 올려야 합니다.
집행유예는 없습니다.
너무나도 명예훼손인 경우에는, 아이콘이나 파일 이름에 수정을 가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너무 수정하면 재미없으므로 정도껏 자제합시다.

간단한 설명을 붙여도 좋습니다.
자, 어서 모든 창을 최소화하십시오!

구글리더 새로운 글들 좌악~ 읽다가 막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에 새로운 글이 하나 떠서 봤는데 그만… 바탕화면을…

캐나다發 내일行 비행기 – 비상구옆 창가 자리에서 트랙백~

바탕화면 그림은 마블 바탕화면… 홍합양.. 웬지 반해버렸..;;;;

홀리데이


중국 정부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자국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 선교사를 대거 추방시키는 ‘타이펑(台風) 5호’라는 비밀작전을 수행중인 것으로 12일
드러났다. 중국 내부에 정통한 선교 전문가 그룹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 2월 ‘타이펑 5호’ 작전에 들어간 이래 4월부터
6월까지 최소 100명의 외국인 선교사를 불법 종교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 출국시켰다.

출처 : 베이징 올림픽 앞두고 외국인 선교사 대거 추방… 한인교회 타격 중국선교 비상

우연히 돌아다니다 위의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위의 기사를 보면서 홀리데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났다. 이 영화를 보면 88올림픽을 위해 판자촌을 강제 점거한 사건이 나오는데 이게

1988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유전무죄 무전유죄’ 지강헌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홀리데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상당부분 픽션을 가미해 영화적 재미를 더할 것이다.

여기에서 종교탄압 이런 부분까지 논할 수는 없고, 단지 환경 정리를 위한 국가 권력의 사용이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이 영화가 생각이 난 것이다.

물론 이번 경우와 88년도 사건과는 다른 대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떤 나라든지 개발도상중에 있고 민주주의체제가 온전히 갖춰지지 않은 국가에서는 세계적인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 이런 저런 행동들을 하는 패턴이 같구나 싶었다.

저 사람들 – 선교사들 – 을 불법 선교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추방을 했다는데, 그게 공개적인 거라면 상관없겠지만 아무래도 올림픽 이전에 외국인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강구된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비밀스러운 공권력 행사도 있지만 올림픽을 위해 혼잡하던 교통 습관을 바로 잡는 일도 한단다.

그런데, 중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이 운전 기사들의 방식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 운전이 터프하다고 하지만 중국의 1/10도
안됩니다. 2차선 도로에서 중앙선 침범은 예사이고 추월은 기본입니다. 안전을 위해 깜박이 대신 수 없이 클럭숀은 눌러대고 사람도
차도 서지 않고 요리 조리 피해 다니는 효율적인(?) 운전 습관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까요.
구경 좀 하겠다고 택시나 버스
앞에 앉았다가는 구경은 커녕 가슴만 두근 거리고 잠을 청하기도 어렵습니다.

얼마 전에 학생들을 가르치러 중국에 가셨던 아버지 말씀으로는 위와 같던 운전 습관을 일부 공안들이 지도를 한다고 한다. 후훗… 재미있는 세상.

돈 굳었다

요전에 5만힛을 하신분께는 증거자료 – 갈무리 사진 – 을 보내주시면 소정의 선물을 드린다고 했었는데, 아무도 제출하시지 않는 것으로 보아 스스로 5만힛인줄도 모르고 지나치신것으로 생각된다.

역시 공지사항으로 했어야 하는건데 주인장의 실수다. 어쨌든 돈 굳었다.

사람은 역시 잘 살아야 한다.

군대라는 곳은 여러 지방, 여러 환경에서 자라온 청년들이 모이는 장소이다. 여기에서 왜 남성이라는 표현을 안 쓰고 청년이라는 표현을 썼냐면 여성들도 부사관 이상의 계급으로 입대하여 군대라는 집단에 포함되어 활동하고 있고 여러 다른 환경에 영향을 받아 살아온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생활하다보면 정말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는데, 가만히 관찰해보다보면 김완섭이라는 사람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자신이 재학시절에 운동권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를 바로 보려는 후배들을 빨갱이새끼들이라고 매도하며내가 운동할 때는 순수 그 자체였는데 니 놈들은 김일성 자식새끼들이 되어 있다는 주장을 늘어 놓았습니다. 학생운동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자신의 학생운동의 결과물이 바로 후배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배신한 선배가 되어 후배를 욕하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중략)

     이에 김완섭과 십 년 정도 차이가 나는 선배가 자신의 결혼생활과 삶을 얘기하면서 김완섭에게 충고를 하자 김완섭은한물간 오렌지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라는 선배를 깔아뭉개는 글을 버젓이 올렸습니다.


미닉스님의 위의 글에서 보면 후배들을 욕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배에 대해서도 좋지 못한 발언을 하여 깔아뭉개고 있는데 저런 사람도 있다. 이등병 때에는 다들 그렇듯이 별 소리 하지 못하고 있다가는 – 아니 요즘엔 있을지도 모르겠다 – 일병 달때가 되어 고참들(상병, 병장)에 대해 욕하는 것은 기본이요 대하는 행동 보면 정말 자기는 결코 그런 인물이 되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지만 또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친구들 – 한달이상이라도 차이가 나는 후임들 – 에게는 자신에 대한 존경심을 표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형이다.

과연 그런 후임들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표할까 싶다. 정말 병사들 중에서도 간부로서 봐도 존경심을 품게 만드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상담하고 하는 친구들이 따르곤 했는데, 상대적으로 저 김완섭이라는 사람 같은 형의 사람에게는 기껏해야 동기들이 얘기하고 있거나 그나마 동기들도 함께 하지 않아서 후임들을 괴롭히는데 재미를 붙이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물론 간부로서 몇 차례 경고를 하지만 그 때 뿐이다. 그게 또 영창을 보낼만한 수준 – 구타가 아니더라도 가혹행위로 – 도 되지 않는 소심한 수준이어서 어찌 권고 외에는 해 볼 도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도 꽤나 엉뚱한 편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양반은 많이 지나쳤다.

60%까지는 재미있었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의 내용을 미리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감상에 방해를 받으실 수 있는 분들은 뒤로 돌아가시거나 창을 닫아주시면 되겠습니다.

어제 아는 꼬맹이로부터 10시가 넘은 시간에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자기 동아리 선배가 학교에 놀러왔는데, 그 선배가 당첨된 영화 시사회에 못 가게 되어서 표를 받았다고 같이 보러갈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물론 영화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하고는 오늘 오후 7시에 그 녀석의 집 근처 지하철 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퇴근시간이어서 차가 많이 막혔는데, 그 때문에 8시에 시작하는 것을 처음부터 보지 못하게 되어 약 20분 가량의 처음 부분을 감상하지 못했지만 전반적으로 내용 이해에 무리가 되지는 않았다.

그저 시사회 장소에 대한 정보만 간단히 검색하고는 잤기 때문에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 누가 등장인물인지도 확인하지 않았는데 어딘가 익숙한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여자 주인공은 마샤 왓타나파니크는 처음엔 혼혈처럼 느껴졌는데,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영화 전반에 걸쳐 한국에 대한 대사들이 마치 우리가 미국을 말하는 듯한 투였는데, 보통 거슬리는게 아니었다. 물론 한국이라는 나라가 의료분야에 있어서 태국보다 나은면이 있기는 하지만 의도적으로 넣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는 심증일 뿐 어떤 확증이 없다.

샴 쌍둥이로 태어난 핌과 플로이가 15세에 수술 중에 죽었다고 나오는데, 영화 후반부에 가면 플로이가 핌을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 저것 영화들을 섞어놓은 듯한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대로 60%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만해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그 이후 부분에 있어서는 미져리, 장화홍련, 그루지 이 세 작품이 연상되었다.

그리고 극장에 비치되어있는 영화를 소개하는 팜플에서 두 사람을 합성해 놓았는데, 영화 중 그녀들은 위만 붙어있는 상태인데, 이 종이에는 팔부터 힙부분까지 붙어있는 듯이 합성을 해 놓았는데, 뭐.. 영화를 감상하는데는 무리가 없으려나!?

순간 순간 놀랄 수 있도록 음향이나 시각 효과를 적절히 사용하기는 했지만 마치 기존의 영화를 조합해 놓은 듯한 인상으로 그다지 좋은 평은 줄 수가 없다.

공식 홈페이지

바닷가에서 무한 모양을 그리고 있는 쌍둥이

로지택 블루투스 무선 헤드폰(Logitech blue tooth wireless headphone)

헤드폰을 몇 개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하나는 SENHEISER PX200과 Logitech Bluetooth wireless headphone(F-0361A, F-0397A)인데, PX200같은 경우에는 재작년에 PX200 정품을 사서 사용하다가 잃어버려서 올해 다시 산 것이고 퍼렁니무선 헤드폰은 선물받은 것이다.

쪼개지기 시작한 제품

그런데 이 퍼렁니 무선 헤드폰이 작년에 사용하면서 헤드폰 뒷부분이 쪼개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달랑 달랑 두 조각이 나게 생기는 사태가 벌어졌다. AS받으러 갈 시간이 되지 않아 그렇게 몇개월을 방치해 뒀었는데, 종강을 하고 약 2주 전에 AS를 받았다.

쪼개지는 부분

그렇게 쪼개지는 것이 필자의 머리가 커서인가 싶었지만 험하게 사용한 탓도 있겠다 싶었는데, 이번에 다시 받아서 사용한지 1주일만에 다시 쪼개지기 시작하는것이 아닌가!

이거 AS를 보냈지만 어찌 손쓸수가 없어서 새것을 보내준 듯하다. 일단 받았을 때 기분은 좋았지만 일주일밖에 안 된 시점에서 이렇게 쪼개지는것을 보면 분명 이 제품 자체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아~ 정말 화딱지 난다!

남대문 새벽시장 상인들

오랫만에 새벽시장에 다녀왔는데, 오늘은 남대문에 다녀왔다. 그 동안 어머니께서 워낙 정신없이 옷 살 시간도 없이 바쁘셔서 마음 먹고 나가신 것이다. 경인고속도로를 지나 회현 고가 근처에 차를 대충 세워두고 내렸는데, 도로변에 있는 가게들이 모두 셔터가 내려져 있어서 장사하지 않는 날인가 싶은 착각이 들었다.

그런데 돌아오면서 보니 그쪽만 그런것이었다. 도착한 시간이 대략 1시 반 정도였는데, 차를 세워둔 곳에서 옷을 사기 위해 조금 들어가니 먹거리가게가 있었는데, 길을 묻기 위해 잠시 섰던 것 뿐인데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어 떡볶이 1인분을 주문하고 앉았다.

그런데 떡볶이 한 접시가 무려 3,000원이었다. 하아~ 정말 먹고나서 만족감보다는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배가 아파오는 듯 했다.

그렇게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중간에 다른 가게에 들려 이런 저런 옷을 골라보았다. 물론 이번에 방문한 목적이 어머니의 옷을 사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주머니들 옷을 주로 파는 상가로 보이는 곳을 순회했다.

돌아다니면서 문득 깨달았는데, 아주머니들 대상이라고 해도 세련된 것들이 간혹 보이고 마지막 목적지로 삼은 커먼프라자에서는 가격대가 비슷하면서도 이쁜 옷들이 보였다. 어머니께서는 중간에 들렸던 가게에 들리지 말고 바로 갔으면 좋았겠더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상인들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복잡하고 했을 때는 만져보는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날카로운 시선에 무섭기까지 했는데, 지금은 많이 정감있어 보이는 응대로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아마도 경기가 어려워지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고 하셨다.

50,000번째 들어오시는 분께는!!

벌써 블로그 방문자가 5만 힛이 가까워져가요.

그래서 5만번째 접속하시는 분에게는 소정의 선물을 드릴 예정입니다.

방문하셨을 때의 화면을 캡춰해주시는건 기본일테구요, 이 글에 비밀댓글이나 트랙백으로 날려주시면 되겠습니다.

초속 5cm 벗꽃초

아~ 정말 신카이 마코도씨 작품이구나! 싶었다.

감상하기 전에 약간의 정보들과 스틸 샷과 실사를 비교해 놓은 자료를 접해서인지 영상들은 그다지 이질감이 없었다.

아카리와 타카기와의 풋내가 그리움을 자아냈다. 내 첫사랑, 첫키스….

타카기가 키스 이후에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는 것에 있어서는 어느정도 공감이 되었다. 왜냐하면 정말 첫 키스에 있어서는 특별한 느낌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나무 아래에세 만남
힘껏 달려가 역에서 만난 두 사람이 도시락을 먹고 있다

종소리가 들린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달콤했기 때문이다. 너무 달콤해서 마치 그녀가 입술에 뭔가 바르지 않았을까, 달달한 키스 직전에 먹은것은 아닐까 싶은 착각마저도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와의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 생에 있어서 정말 진정한 첫사랑은 누구일까… 짝사랑은 첫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한다. 마음에 열정을 가졌다고 그것이 모두 사랑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쪽으로의 사랑은 집착에 가깝다. 사랑은 조금이라도 상호작용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에 최고의 열정을 품었던 사랑이기 때문에 배신감도 컸지만, 그리움도 그 이상이다. 이미 다른 남자의 안사람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그 때의 애틋함은 가슴속에서 숨쉬고 심장이 뛰게 만든다.

이 모든 것들이 기억이 나고 몸에 느껴지는 듯했다.

이후의 작품이 기대된다. 

cansmile의 미투데이 – 2007년 7월 11일

  • [포츈쿠키] 하루에 한 번만 더 웃어보세요. 당신의 꿈에 힘이 되어 줄것입니다. <- 사실 정호씨께서 하신걸 따라했을 뿐인데, 아하~ 웬지 제 닉이랑 어울리는걸료~ ^^ 오전 3시 13분
  • 난 좀 치사하다.. 후로 점수가 없는 것은 게임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보다 높은 점수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전 8시 10분

이 글은 cansmile님의 미투데이 2007년 7월 11일 내용입니다.

몹쓸 것들은 뭐하러 보냐?

제가 시사기자단 홈페이지를 보고 있는데 아버지께서는 그런 몹쓸 놈들 것은 뭐하러 보냐?고 하셨다. 시사저널의 추태를 꼬집어 말씀하시는 것이다.

필자의 주변 블로거들을 통해서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시사저널 거리기자단 홈페이지에 방문하고 가입도 하였다. 그 동안 올라온 글들을 주욱 읽어내려가고 있는 순간에 시사저널이라는 글자만 보시고 하신 말씀이다.

아~ 나만 알아선 안되겠구나 싶어서 아버지께 시사저널이 아니라 시사저널에서 나온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페이지에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오~ 그래? 하시면서 희색을 보이셨다.

사실 그 때 아버지께 가입하시라고 말씀드리려다가 이런 사실을 아시게 되셨으니 자발적으로 가입하시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만두었다. 성품이 적극적이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러실 거라고 생각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가입하셨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된다.

그러던 오늘 시사기자단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메일을 통해 보내져왔다. 그 내용인즉슨 자원하여 도움을 주신분들에 대한 감사하다는 것과 새로이 새 매체를 위한 정기구독신청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사정이 허락하는대로 입금하여 신청하고 후에 매체가 발간되면 잔금을 치루어 달라는 것이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수십만원 아니 수백만원이라도 보내주고 싶지만 재정적 여건이 그렇게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조금의 성의를 보낼 수 밖에 없지만 그것 외에도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가능성에 보탬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이런 포스팅을 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을 통해 알려지겠지만 조금이라도 노출을 위한 노력을 하여 가능성을 넓히고자 함이다.

메일내용보기

사흘 만에 2억 원을 모아주셨습니다

  세상 일이 그런 것이겠지요. 기자들이 매체를 떠난 뒤에야 <시사저널> 사태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시민들은 난데없이 기자들이 울고 불고 하는 것을 보고서야 이 사태를 알게 되신 듯했습니다.


저의 후배 기자들은 편집국장 몰래 빠진 기사 세 페이지 때문에 1년을 싸웠고, 6개월 동안 월급 한 푼 못 받는 파업을 벌이고,
또 끝내는 사주의 결단을 청하며 사주의 집 앞에서 곡기를 끊고 주저앉았습니다. 팔과 다리를 자르고 무릎 걸음으로 기어들어오라는
회사의 태도에 후배들이 결단했습니다. 길이 끊긴 그 곳에서 그들은 자폭했습니다. 그런 후배들을 지켜봐야하는 제 마음의 비통함을
말하는 것은 사치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부음에 놀라고 슬퍼해 주신
분들이 너무 많아 저는 먹먹합니다. 7월 현재, 전 시사저널 기자들로 구성된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은 시쳇말로 시대착오적일지 모르는
일에 몰두해 있습니다. 오는 9월 창간을 목표로 신매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호도, 창간 날짜도 없는데 정기 구독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제호도 지어달라고 손을 벌리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셨습니다. 기자단 발족 이후 1주일 동안 저희 통장에
입금된 금액만 3억 원이 넘었습니다. 1만원, 2만원 또 덜컥 5백만원…. 그렇게 모인 돈입니다. 단지 기자들이 안쓰러워 은행에
찾아가 돈을 입금하는 번거로운 일을 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빠진 세
페이지 기사는 세상을 뒤흔들 특종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편집장이라면 실었을 것입니다. 그 기사가 빠진 과정은
비상식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항의하는 기자들을 응대하는 장본인들의 태도는 몰상식했습니다. 싸움의 끝에 이르러 한 후배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졌다. 그런데 우리만 진 게 아니고 전체 언론이 다 졌다.”


저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다른 일도 아니고, 언론사에서 거대 광고주와 사주의 이해 때문에 편집권이
문제가 된 사안에 대해 주요 언론이 외면하고 입을 닫았습니다. 그 고집스러운 침묵의 의미를 알아챈 사주와 사장은 상식을 조롱하며
철퇴를 휘둘렀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자 24명 가운데 17명을 징계하고, 한 사건에 대해 취재진과 독자, 시민단체 대표 등
닥치는 대로 23명이나 법정에 세우겠다고 고소 고발할 염을 품지 못했을 것입니다. 겨우 입을 연 언론에 대해서는 고소로 재갈을
물렸습니다. 예상대로 많은 언론이 중얼거리다가 입을 닫았습니다. 저희는 말라 죽어갔습니다. 몇몇 언론만 피를 토하듯 외롭고
분주히 저희 싸움을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상식은 살아있었습니다. 지금
저희는 컴퓨터가 단 한 대도 없이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데 자원 봉사자들이 노트북을 들고 와서 회원 관리를 해주고 후원 전화를
받아줍니다. 충남 당진의 한 주부는 “너무 멀어 밥을 해주지는 못하고 반찬을 택배로 부쳐 줄테니 밥만 해서 먹으라”고 전화를
합니다. 기금에 보태라며 미국에서 그림 수십 점이 날아옵니다. 중고차를 취재차로 쓰라며 한 중고차 상인이 전화를 합니다. 단식
농성장에는 퇴근하고 어둑한 골목길을 더듬어 굶는 기자들을 격려하러 오는 독자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언론이 그 상식의 힘을
증폭시키지 못했을 뿐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메모를 남겼습니다.
‘뉴스를 볼 수도, 안 볼 수도 없는 세상.’ 저는 그 말 속에서 더 이상 사회의 정직한 보고자로서의 책무를 잊어버린 기성
언론에 대한 가없는 염증을 확인합니다. 그 염증에 우리는 책임이 없는가 돌아봅니다. 언론이 상식의 힘을 증폭시켜야 합니다.
여러분, 저희가 두려운 마음으로 그 길을 걷고자 합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장 문정우  

 ∼•∼•∼•∼•∼•∼•∼•∼•∼•∼•∼•∼•∼•∼•∼•∼•∼•∼

저희가 가는 길에 함께 해주세요.

  아직 제호도, 창간 날짜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감히 청합니다.

새 매체는 성역없는 탐사 보도, 균형잡힌 공론의 마당, 깊이 있는 정보와 책임있는 대안 모색을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벌써부터 많은 분들이 후원금을 보내고 계십니다. 1만원부터 수백만 원에 이르기까지 후원계좌에 돈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귀한 이들의 뜻을 밑천삼아 길을 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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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사태가 궁금하시면 아래의 < PD 수첩 >을 봐주세요.


뭐 굉장한 목적을 위해 이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충실히 전해 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다. 이 작은 행동 하나가 더 진실된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ㅣ

프루나 같은 인간

아~ 정말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되는데, 이게 왜냐면 정말 푸르나1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글의 부제는 믿어주는 사람의 발등찍는 법이다. 이게 또 오해를 살 수가 있는데, 그렇게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둬야겠다.

프루나로 자료를 전송받다보면 한 자료를 기준했을 때 꽤나 짜증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자료의 95%이상의 완료상태에서 점차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하는것인데, 이것은 전송방식의 문제이면서 프루나의 특징처럼 되어버렸다.

일단 프루나는 개인끼리 서버 또는 클라이언트를 삼아 자료를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램인데, 이 서버와 클라이언트인 자들은 대부분 그 하는 일이 정해져있다. 무슨말인고하니 자료 찾아서 가지고 있으면서 나눠주는 사람은 죽어라 나눠주기만하고 받는 사람은 죽어라 받기만 한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받으려고만하지 자기가 가진것을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필자는 어느쪽이냐하면 나눠주는 쪽에 속한다. 물론 공유 가능한 자료에 한해서라는 기준이 있지만 말이다. 스스로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고는 PC 전반2에 대한 이해와 두루 사용해 본 경험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어느정도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필자의 작업 이력에 굉장히 중요한 사항인데, 그렇기 때문에 의뢰 들어오는 작업은 어떤 한 분야에 치중되어있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자주 들어오는 것은 디자인 분야이다. 뭐 디자인이라고해서 엄청난 디자인이 아니고 기껏해야 포스터정도나 축제때 사용하는 안내인쇄물 정도이다.

어쨌든 매번 작업이 많아서 힘들어하면서도 어떤 사람이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있으면 가서 간섭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를 묻고,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아~ 이거 무슨 자랑질이냐 싶으시겠지만 과연 자랑일지 끝까지 읽어보시라.

이렇게 시작한 작업들은 한 때 한번에 5~6개 이상이 된 적도 있었는데, 이런 정도가 되면 개인의 취미생활 따위는 가질 수가 없었다. 아니 가질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작업이 취미라고 생각되어지고 실제로도 취미생활하는 것처럼 즐거웠으니까.  게임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것도 스스로 공부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한 시간 투자가 더 많았던데다가 게임보다 그런 분야를 스스로 터득해 나가면서 느껴지는 즐거움이 더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자! 여기서 공유정신 – 필자의 경우는 능력의 공유(?) – 이 십분 발휘된다는 것에 있어서는 굉장히 좋은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저렇게 작업이 많아지게 되면 약속한 날에 완료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진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잠을 줄일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했다. 잠도 줄이고 이래 저래 다 완성해서 준다.

하지만 문제는 최근에 와서 발생한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면서 좀 지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게 작년이었다. 작년이 작업량의 최고조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슬럼프에 빠졌었는지도 모른다. 뭔가 기능의 한계같은것을 느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런 생활에 대한 회의가 급발생했기 때문이다. 점차 그런 기간은 길어졌고 작년 후반기를 그렇게 아무것에도 열정을 쏟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잘 하고 있던 공부마저도 손을 놓기에 이른다. 물론 그와 동시에 체중도 증가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다시 이전처럼 열정을 가지자는 마음 가짐으로 시작했지만, 슬럼프 기간동안 많은 이들의 의뢰를 거절하고 회피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필자에게 가지고 있던 기대를 모두 무너뜨려주었다.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 상태에서 작업을 해 봤자 좋은 결과가 나올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고, 실제로도 작업을 해 보면 좋은 결과를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잊혀지도록 만들었다.

그런 슬럼프의 시작은 아마도 이런 작업들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거지라는 의문이라고 생각된다. 글쎄… 여전히 작업을해 주고 있지만 자신의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어질 거라는 생각은 떨쳐버렸다. 다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치를 두기로했다.

하지만 작년에 그런 기간을 거친후에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 좀 지체하는 습관(?)같은 것이 생겨버렸다. 전 같았으면 다 마무리하기전에는 잠도 안 자고 있을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고 있다.

하아~ 좀 길어졌는데, 어쨌뜬 이 글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1. 오지랖 완전 넓어서 고생은 하지만 인생에 도움은 안된다.
2. 슬럼프 이후로 작업 완료 시점이 지연된다.
정도이다.

  1. P2P프로그램으로 국내에서 꽤나 이름 날렸던 프로그램[]
  2. 전반은 완전히와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완벽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대강 정도로 이해해주시기를[]

cansmile의 미투데이 – 2007년 7월 10일

  • 오늘은 더 이상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다. 기상청 믿어보겠어! 자전거 타고 나가는데 저녁에 비오면 가만두지 않을게야! 오후 5시 2분

이 글은 cansmile님의 미투데이 2007년 7월 10일 내용입니다.

미투에 이 글을 적기 직전에 여행사에 서류를 갖다줘야할 것이 있어서 다녀오는 길에 라디오를 들었는데, 두 개의 방송국에서 서울 경기 지방에는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보를 들었기 때문에 적었었는데, 정작 자전거를 타고 나가지 않았다.

화요일마다 있는 모임이 있기는 한데 이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강제성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일이 있으면 참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는데, 생각보다 하던 일이 오래 걸려서 가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주부터는 제 시간에 갈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건 바로 직전의 포스팅에서 밝힌것과 같이 운동을 하지 않아 체중이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힘들게 감량했는데, 불어나기 시작하면 그 끝을 알 수 없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운동을 더 이상 쉴 수가 없다. 쉬어서도 안된다. 고로 다시 시작!

빠지고 있다!!!

오늘 리더의 밀린 글들을 읽고 있는 중에 구루님<걷기로 확실하게 살빼는 방법 : 다이어트가 제일 쉬웠어요 !>과 핑크님<살 빼서 입을래요>의 블로그 글에서 모두 다이어트(살)와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핑크님의 포스트를 읽는데 아직도 옷걸이에 걸려있는 32인치 스키니(?) 진 하나가 생각 났다.

다이어트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동생이 선물했던 바지인데, 그 때 당시 체중이 무려 103.5Kg이었다.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밝힌 적이 있지만, 이건 아직 100Kg이 되기전에 이왕 찐 김에 .1ton이 되어보고 싶어져서 무작정 먹고 운동을 안해서 얻은 내 생에 최대의 체중이었다. 체중이 그 정도 되면 허리 사이즈는 말할 필요가 없다. 기형적으로 허리가 가는 편이라고 하더라도 허벅지와 힙 사이즈 때문에 36을 입지 않으면 안되는 체중인거다.

그리고 .1ton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다이어트는 시작되었다. 이전만큼 줄넘기 5천번씩 할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걷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체중으로 줄넘기 했으면 아마 각 하체 관절들이 남아나지 않았을거라 생각된다.

쨌든 지금 다이어트를 시작한지 무려 6개월이 넘어가고 있는데, 현재까지 뿌라쓰 마이나스 되어 94Kg이다. 학기가 시작하면서 신청한 학점이 모두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운동시간을 포기해야했다. 그다지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을 투자하는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핑크님을 비롯한 RSS 리더에 등록된 글들을 종강후에 잔뜩 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이것에서 발생된다.

그렇게 운동이 그치자 다시 몇백 그램씩 다시 찌는 자신의 체중을 발견하고, 이거 안되겠다 싶어 집에서 썩고 있는 자전거를 활용하기로 했다. 물론 자전거로 통학할 생각을 하게 된것은 약 7Kg정도가 빠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체중이 90Kg이 넘어가고 있는데다가, 걷기만으로 관절이 강화되었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저래해서 종강이 되기 전까지 총 -11.5Kg을 감량했지만, 종강이 되고 나서가 문제인거였다. 방학이 되면 의례 한가해지는 것이 옳은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필자는 그렇지 않다. 오지랖이 매우 넓은데다가 아버지께서 때때로 원치 않지만 할 수 밖에 없는 일거리를 물어오시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150곡짜리 악보집을 만들게 됐는데, 이게 또 일 시작하면 밤낮 안가리고 하는 성질머리라 약 2주간의 기간동안 그렇게 작업만으로 달려왔더니 다시 체중이 94Kg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글을 읽게 된 것이다. 살을 빼고 빼빼 말라있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는 말씀에 절대 공감한다 하지만 과체중은 온갖 병을 유발할 뿐 아니라 그다지 좋은 인상을 주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살아야 하는건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면서 인거다.

분명 핑크님의 글의 말미의 주장처럼 빼빼 말라있는것은 미덕이 아니다. 필자 역시 이상여성형이 통통한 사람(조정린이나 박경림 같은)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다이어트를 하면 안되는 상황이랄까?

이런 이상형은 어린시절의 말라서 볼품없었던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 때의 성질머리가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의 체형과 체중에도 그 이상형이 변하지 않는 것은 다른 이유이지만 일단은 적당한 체중과 체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이미지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 다이어트는 지속하고 있다.

5월까지는 졸업사진에 뚱땡이로 나오기 싫어서 다이어트를 했지만 지금은 졸업 이후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게으른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부탁드린다!
응원해주시라! 동생이 선물해준 32인치 진을 입을 수 있게 되기를!
아직도 목표 체중까지는 14Kg이 남았다.

그 이상 빠지면 볼품이 없을 뿐 아니라 불쌍해보이기까지하다.

중학교 3학년 이후로 80Kg이하로 떨어졌던건 부사관학교에서의 고된 훈련 후에 임관식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사진을 인증으로 걸어둘까한다.

부사관학교 임관식 사진

무려 2000년 12월 29일 사진… 이 사진 찍었을 때의 아버지께서는 대나무를 보시는 듯 했다고 하셨다.

전역 송별회에서 김인희와 함께

추가 ::
일단 이건 중3이후 최저 체중일 때 사진이고, 전역하기 전에 찍은 사진이 아래에 있는 사진인데, 이 때의 체중은 아마도 83Kg정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아마 2004년 9월부터 시작한 줄넘기로 3개월간 10Kg정도 감량했을 때이다. 그리고 이런 운동도 했다.  찍은날은 2004년 12월 20일. 아니 찍힌 날..

하나로 광랜(W) 모뎀 교체

저번 주말에 지금 쓰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에 문제가 생겼다. 저녁 시간대에 점차 표시할 수 없는 페이지의 빈도가 늘어나더니 12시 근방에 이르자 신호만 들어와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상해서 품질 테스트를 해 보았더니 오십여 Mbps에서 오십여 Kbps까지 떨어지고 있는것이 아닌가! 그래서 뭔가 문제가 있나 싶어 모뎀을 리셋했더니 이번에는 IP를 못 잡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과감히 106번에 전화를 걸었는데, 이거 상담원도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기사 방문을 받겠냐고 물으면서 당일에는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월요일에 방문을 받기로 하고 쓰는데, 여차 저차 했더니 다시 IP는 겨우 잡았다.

IP만 잡았을 뿐이지 속도는 아주 불안정한데다가 제대로 페이지를 표시하지도 못 하는 상태였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오늘 기사의 방문을 받았는데, 이거 모뎀 문제가 아니라 케이블 방식의 서비스가 고주파수(55MHz~1GHz)에서 불안정한 지역도 있다는 것이다. 그 지역이 바로 이 지역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만탭1이라면서 그래서 불안정하다고 하는게 아닌가!

전에 하나로 주택 광랜 설치 에서는 필자가 설치한게 ETTH방식이라고 해 놓은것 같은데, 오늘 다시 생각해보니 광랜(W)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교체한 모뎀이 1000bastT포트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로 속도측정 사이트 결과

방금 하나로 품질 측정 페이지를 이용한 테스트 결과인데, 일단 지금은 비교적 안정적인 결과를 보이고 있다.

국가사회진흥원품질측정결과

하나로 품질 측정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왜 이 부분을 첨부하였냐면 국가정보진흥원의 품질측정 페이지가 가끔 접속이 안된다고 나왔기 때문에 앞으로 하나로 품질 측정을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측정 불가 상태라고 나왔을 때는 하나로 인터넷의 품질에도 문제가 있을 때였지만 말이다.

국가정보진흥원에서의 품질 측정이 지금은 비교적 괜찮은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거 저녁에 어떨지 한번 기대중이다.

기사님께서 방문해서 모뎀을 교체해 주긴 했지만, 만약에 이번에도 문제가 발생하면 이전의 상품(프리미엄 20M)으로 전환해 달라고 요청하라고 했다.

여기서 잠깐!

만약에 품질 상태가 좋지 않아서 바꾸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인 필자가 요청했다는 이유로 설변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아닐테지?!

만약 그런다고하면 다른 회사 제품을 찾아봐야겠다. 아무리 자기가 가진 것이 좋지 못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이런 답변이 어디있나 싶었다.

데이터센터랑 연락해서 안정화 방안을 강구해서 사용하도록 해 줘야 하는게 아니냐는 말이다. 전에 필자도 하나로에서 외주업체 근무를 했었는데, 그 땐 정말 그렇게 해 줬는데, 이 사람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건지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방안이 현재는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은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하나로 두고봐야겠다.

  1. 케이블 방식은 5c케이블을 이용해서 신호를 받는데, 이 선을 따라가다보면 전주에 이르게 된다. 전주에 선이 복잡하게 연결되어있는 장치를 탭이라고 한다. 만탭은 이 탭의 수용 회선(보통 8개)이 가득찼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탭의 신호가 센 경우 분배기로 나누기도 하는데, 어쨌든 나누면 나눌수록 신호는 떨어지게 된다.[]

파워콤 문의

앞의 글 하나로 광랜(W) 모뎀 교체 에서 다른 회사 상품으로 전환하려고 해 본다고 해서 바로 확인 전화 들어갔다. 전화번호를 알아보기 위해 LG파워콤 페이지에 접속했더니 번지 입력하면 어떤 상품이 설치 가능한지 나오는 서비스가 있었다.

해당 서비스로 해 봤더니 파워콤 프라임(하나로의 20M급과 유사한 서비스) 밖에 안된다고 한다. 전에 3월 중에 파워콤 기사가 광랜 장비 동의서 서명을 받으러 다녔는데, 설치는 됐는데 아직 전산에 적용이 되지 않은건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있는 대표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역시나 프라임 밖에 설치가 안된다고 한다. 설치 동의서에 필자는 서명했지만 다른 집에서 동의를 하지 않았는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것일 가능성을 말하면서 통화는 마쳐졌다. 이래서는 다른 상품을 – 물론 KT도 있지만 가격이…. – 사용할 수도 없는 상태잖아!

이래서는 하나로 서비스센터를 협박할 수가 없다. 그래도 내게는 뻥카가 있지 않은가!!

우리가 신문을 읽는 이유..

신문을 왜 읽는다고 생각하는가. 그 전에 읽는 행위는 어떤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을 먼저해야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된다.

읽는다는 행위는 대부분 알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 표지를 이해하기 위해 읽고, 어떤 사실을 알고 남들에 비해 더 많은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만큼의 힘을 가지게 된다.

뉴스(News)라는 것은 새로운 것을 알리는 대표적인 단어이다. 신문의 영어식 대표적 표현은 newspaper인데, 이 것 역시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종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녹색평론》제80호
2005년 1-2월호 :: 과학기술의
덫에 갇힌 언론 / 강양구

최근에 mentalease의 글을 처음부터 쭉 읽어나가고 있는데, 그 중 누가 황우석에게 꽃을 던질까라는 글을 읽으면서 본문에 첨부된 링크를 통하여 읽게 되었는데, 언론의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자세에 대한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마지막까지 하게 된 생각은 언론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읽는 행위를 통해 정보를 획득하는데 읽는 행위는 문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문자 뿐 아니라 그림이나 사진으로 그 내용을 읽고 있으며, 분위기를 읽어낸다. 여기에서 읽는다는 표현을 이렇게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은 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그 내용을 통해 단지 문자에 대한 이해만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문자를 통해 사실을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보조적으로 그림이나 사진이 이용되고, 도표도 이용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람은 읽는 행위를 통해 정보를 획득하고 얻은 정보의 양과 적절한 시기의 사용을 통해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모든 정보가 힘을 주는 것이 아니다. 정확한 정보만이 최후까지 그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부정확한 정보는 아무리 빠르게 전한다고 하더라도 힘을 가지기는 커녕 정보를 제공한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들기까지 한다. 오히려 역효과를 내게 된다.

우리가 신문을 읽는 것은 이러한 힘을 얻기 위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일단 알기 위함이다. 이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론의 하는 일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실을 전하면서 일반인들, 즉 비전문가인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적절하게 해 주는 것이며, 그런 기능이 적절히 수행되고 독자들의 이해가 올바르게 이루어질 때 언론의 기능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문만이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신문이라는 매체는 여전히 활용되고 있는 정보의 전달자이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언급했다.

집안 누수 현상

양심없는 사람들 1

위의 글에서 언급한 문제에 대해서 기술자를 불러다가 점검해 봤는데, 일단은 집안 내부의 배관에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내부의 배관은 보일러 배관을 말하는데, 일단 이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서 15 단위의 콤프레셔(공기압축기)를 이용하여 온수관과 냉수 관에 각각 연결하여서 공기를 넣고 압력이 떨어지는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점검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두 관 모두 압력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기술자들은 내부의 관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제 외부에서 이 건물로 들어오는 수도관에 문제가 있는것인지 확인해 봐야하는데, 이 집에 들어와 있는 계량기로부터의 배관은 이상이 없다고 한다. 계량기를 분리해서 이 집으로 들어오는 배관에 연결할 후에 위와 같은 방식으로 점검을 했다. 역시 내부의 배관에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이상의 두 검사를 시작하면서 집안에 있는 변기와 세면대에 있는 수도 공급 벨브를 모두 꽉 잠궜다. 압력이 떨어지는 부위가 수도관이 되어서는 안되기도하고 만약에 잘못하면 남아있는 물로 인해서 꼭지가 터져버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남은 부분은 내일 확인한다고 한다. 사실 해당 검사를 위해 기술자가 어제 와서 땅을 파기 시작했는데, 다른 집 사람들이 주말에 쉬려고 하는데 시끄럽다고 항의했기 때문에 월요일로 미루어진 것이다. 자기네 집에는 문제가 없는 일로 공사가 있으니까 시끄럽다고 하는거라고 생각된다. 만약에 우리집과 같은 문제가 같이 발생한 것이라면 그런 소리 안 했을텐데, 참.. 인간이란 동물에 대해 정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이 경우에 공사비용 내지는 점검등에 소요되는 비용은 우리집에서 내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건물 자체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건물 주인이 지불해야 하는 것인가하는 것이다.
공사가 필요한 부분은 분명히 건물이 지어졌을 때 제대로 방수공사를 해 뒀어야 하는 부분이라서 모호하다. 누가 지불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