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끝없이 나를 죽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 글은 누군가를 훈계하기 위함이나 가르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또한 본문에는 필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도록 만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바울(Paul)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했다. 필자 역시 스스로를 수 없이 죽이고 있다.1 자신을 죽이는 방법은 머리속에 있는 필자의 모습을 상상해 놓고 무언가 폭력적인 방법으로 죽인다.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은 실제 행동에 변화를 가져온다고는 할 수 없지만 스스로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가지도록 만들 수는 있다. 그런 상상을 하고 나면 조금 반성의 기미를 가지고 스스로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끝없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은 욕심을 가지는 건 인간의 기본 욕구일까. 그런 욕구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싶어하지 않은 인간도 있을까. 분명 있기는 할 것이다. 도저히 인간으로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단계까지 철저하게 내려간 그에게서는 그런 욕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부모님께서 목회자라는 것은 연단의 가장자리에서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했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는 이점을 가지게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 지인이 그런 상태2에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여태껏 연단 구경잘했으니 뭔가 잘난 소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둘 다 아니다. 연단의 가장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진지한 사고의 과정이 거쳐지지 않으면 그 연단의 가장자리에서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필자는 자신을 죽이는 행위를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사실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없다. 인간적인 사고로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게 된다. 영적인 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굳이 이득을 찾아본다면 조금 더 성화되어 있는 듯한 모습을 자신에게서 발견한다는 것일까. 이전 보다 조금, 아주 조금 더 성화되어 가는 단계의 일로에 놓여있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일까.

그 분도 마찬가지 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술도 마셔주고 하면서 자신에 대해 실망스러우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전에 그 분께 약속 드렸던 사랑 이야기 하나 해 드려야겠다. 사랑이야기라기 보다는 필자 인생의 단편이라고 표현해야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M_더보시게요?|접을까요?| 그녀와 난 동생의 소개로 만났다. 다시 말하면 그녀는 내 동생의 친구였던 셈이다. 그런 그녀는 필자와 진행되기 전의 어떤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필자의 기억속에는 동생이 소개 시켜준 뒤로부터의 기억밖에 없다. 왜냐하면 필자는 관심이 없는 것엔 철저히 뇌세포를 차단시키기 때문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필자와의 첫 만남은 내 동생이 입학했던 해인 2000년에 자기가 좋아하던 친구가 필자의 친구였던 모양인데, 그녀가 그 친구에게 전해달라고 십자가 팬던트를 줬던 경험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기억을 아무리 애써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지지가 않았다. 담아 두지 않았던 것은 찾아도 찾아지지 않는게 당연한 일이다.

쨌든 그녀와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과 사귀게 되는 수순과 기간을 훨씬 넘어설 정도로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물론 얼굴을 보지 않아도 동생이 소개시켜준 사람이기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었다고 할까.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로
여쭈었을 때 괜찮다는 응답이 왔었던 상대였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관계는 진행도 빨리
되는구나 싶었다.

당시 필자의 상황을 약술해보자면 당시 입대 후 자대에 배치받은지 1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리고 필자가 가장 힘들었던 교육담당관3을 맡기 직전에 사귀게 되었다. 동생에게 연락처를 받아서 연락을 취하고 사귀게 되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사귀었다.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 역시 필자를 사랑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가 이별선고를 하고 나서부터 발생한다. 이제 겨우 6개월여 밖에 사귀지 않았는데, 어제까지만해도 만남을 가지고 함께 외박4기간에 놀이동산에도 놀러갔던 그녀가 필자가 복귀하자 사랑한다면서 이별을 선고한다.

필자는 그녀에게 이별을 선고받기 전까지 이별하면서 상대방에게 우는 것을 찌질하다고 생각했다. 구차5하게 생각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전의 이별에서 헤어지자는 말을 들으면서도 하면서도 구차해지지 말자는 생각으로 쿨하게 헤어졌다. 하지만 그녀에게만은 그럴 수 없었다. 왜 사랑한다면서 떠나느냐 그러지 말자 하고 끊었지만 밤새도록 울면서 생각했다. 뭔가 내가 잘못한 게 있을까. 끝없이 생각해도 없었다. 며칠을 그녀에게 전화하고 문자도 보내봤지만 그녀는 그 후로 연락은 받았지만 다시 사귈 마음은 없다는 반응만 보일 뿐이었다.

그 때부터 필자는 비뚫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했는데, 하나님뜻이라고해서 만났는데 왜 이런 이별을 겪어야 했는지 끝없이 따지고 따졌다. 또 따지고 따졌다. 그렇지만 반응이 없으셨다. 무반응 대답도 없고 그랬다.

그래서 필자는 비뚫어지겠다고 했다. 건방지게도 하나님이란 존재를 부정하기로 했고, 갈 수 있을 때까지 가기로 했다. 인간이 끝이라고 느낄만큼 폐인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는 시작됐다. 교회는 가지 않았다. 고참들이 놀랄 행동을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술은 커녕 담배도 피우지 않았던 녀석이 대뜸 회식시간에 소주 한 잔 달라고 하니 얼마나 놀랄 일인가. 다들 아시겠지만 군대는 강압적인 명령체계와 상하관계가 또렷하기 때문에 고참의 말은 명령과 다름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하사(이등병)들은 고참이 술을 권하면 먹어야 했다. 하지만 필자는 초임하사시절 고참이 주는 술을 신학생이라는 이유로 받지 않았고, 그래서 괴롭힘도 많이 당했다. 그런 괴롭힘들을 겪으면서도 먹지 않았던 필자가 스스로 먹겠다고 한 것이다. 물론 그건은 소속한 부대 내에서 굉장한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는 휴가와 외박 기간에도 집에는 첫날과 마지막날 어떨 때는 집에 전혀 들리지 않고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시고 진탕 취하고 나이트에도 가고 단란한 곳에도 가고 그랬다. 물론 성적인 것에 있어서도 끝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one night stand도 서슴없이 했다. 그렇게 끝까지 가기로 했다. 그리고 자주하던 게임에서 만났던 아줌마와도 연애를 했다. 채팅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던 여자 아이는 돈을 뜯어내기위해 필자에게 접근하기도 해서 말하자면 원조교재 비슷한 것도 해 봤다. 참.. 인간이란 이렇게 유치하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며 전역이 다가왔다.

필자는 꽤나 술을 자주 마셨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당시에는 간부였기 때문에 군인이라고해도 돈을 벌었고 친구들과 함께 마시고 계산은 대부분 필자가 했다(ㅡ.,ㅡ) 1년여의 기간 동안에 그렇게 폐인이 되어있었다.그러면서도 그녀에 대한 마음은 쉬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녀를 어떻게해서든 잠시나마 취해서 잊어보려고 했지만 술은 취하지 않는다. 점점 술은 도수를 높여가고 나중에는 맥주나 소주는 마시지 않고 양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느새 폐인이 되어있었다. 체중은 100Kg에 가까워가고 있었고, 몇 년을 유지했던 착한 몸매는 망가져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생각은 어느새 술에 의지해 있었다. 하나님을 부정하더라도 일단은 인간으로서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나서 지난 1년을 되돌아봤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다만 그녀에 대한 증오심만 키워왔다.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된 감정은 이별을 기점으로 사랑한다며 떠나는 그녀에 대한 증오심으로 변했다.

운동을 시작했고,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생각은 정리되어 갔다. 뭔가 다른 집중할 거리를 찾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과도 좀 친해지고 어느새 전역의 시기가 다가왔다. 그러면서 정리되었던 것은 필자가 잘못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거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점차 하나님께 잘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는 복학했다. 한 학기를 보내고 나니 그녀가 같은 대학 대학원에 들어오면서 학부 조교를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는 한참을 망설였다. 그녀를 만나면 어떻게 하지 그냥 전처럼 인사해야할까 아니면 모른채해야할까. 그러는 사이에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역시나 자연스럽게 인사는 할 수 없었다. 애써 모른척하고 지나치고는 했다. 그렇게 한달여를 보내면서 이래서는 안되겠다싶어서 그녀가 일하는 조교사무실에 가서 어색하나마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헀다. 이런 저런 인사말을 주고 받은 후 침묵이 맴돌았는데, 그 순간이 왔다는 느낌이 되어 물어봤다.

왜… 왜 그 때 사랑한다면서 떠났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잠깐 그녀에 대해 적어보자면 그녀는 가족들 가운데 가장 믿음이 좋았고, 믿음의 호주로서 하나님앞에 바로서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마음의 안정을 위한 최고의 방법은 성경 묵상이며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표현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모의 길을 다짐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자의 동생을 통해 필자를 만나게 되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 때의 일에 대해 말해주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감동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녀 역시 필자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내려놓으라는 말씀을 하신것에 순종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게 맞는것이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그 때의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교육담당관을 맡기 직전에 그녀를 만났는데, 이 교육담당관이라는 자리는 실제적으로 비인가 자리인데, 부대의 특성상 부사관으로 한 자리 만든것이다. 실제로는 부대장인 중대장이 해야할 일을 분담할 수 있는 직책을 만든 것이다. 그런 자리에 하사6가 앉게 된 것이다. 한번도 해 본적도 없는 일을 맡게 되어서 그 직책을 수행하면서 하루에 잠을 1시간 이상 자 본 적이 몇 날이 안 되는듯 하다..
당연히 그렇게 부대에서 거의 사다시피

  1. 물론 실제로 죽이는 건 아니다. 자살의 의미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자살이지만 실제의 물리적인 몸을 손상하는 것은 아니다.[]
  2. 자신을 죽여야만 하는 상태[]
  3. 사실 이 직책은 중대급에서는 별도로 인가가 없어서 소대장의 임무지만, 부대 특성상 부사관이 맡고 있었다.[]
  4. 일반적으로 병사들이 가지는 휴가 같은 것[]
  5. 여기서 구차하다는 것은 없어보인다는 의미로 없어서 메달린다는 의미로 생각하시기 바란다.[]
  6. 부사관 신분 중 가장 낮은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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