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아들 폭행사건의 발단

모기불님의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글에 댓글을 달아놓은 것에 조금 더 추가하자면, 사실 필자는 가해자들이 회장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 회장 아들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1를 생각하고 때린 것에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추측을 하고생각으로 초점을 회장 아들을 때린 자들과 김승연 회장의 보복에만 집중하는지 궁금해 했었다.

시비는 G가라오케 화장실 앞에서 발생했다. 조씨는 김 회장의 아들이 계속 째려보는 등 거슬린다는 이유로 뺨을 때렸고 김씨가
넘어졌다. 싸우는 과정에서 김 회장의 아들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눈 주위를 10여 바늘 꿰매는 상처를 입었다. 김 회장의
아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때리느냐”고 따졌지만 이들은 “네가 누군데?”라며 무시했다

기사를 좀 뒤적이니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말 실수를 했던게 화근이었다. 아무리 못났더라도 사람이라면 자존심이 훼손된다면2 물리적인 폭력행사가 아니더라도 악감정을 가지게 마련이다.

일단 김승연 회장이 아들의 보복에 대한 처벌을 하기 전에 원인을 선 제공한 조씨측도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법관련 지식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확언은 하기 힘들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지금 전반적인 분위기가 김승연회장의 재력을 통핸 권력 행사로 몰아가고 있는데, 김승연 회장도 처벌을 받아야하고 조씨 측도 원인을 제공하고 회장 아들에 대해 폭력을 행사한 것에 대해서는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1. 드라마, 소설 등에 등장하는 돈에 대한 관념이 없고, 자기 잘난 맛에 마음대로 하는 자식.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부정적인 쪽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는다.[]
  2. 표현이 좀 좋지 못하지만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한다.[]

한글 2007 – 히브리어 입력 문제

한컴 메인 화면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한 자료를 캡춰하기 위해 방문한 한소프트 사이트의 메인 화면은 바뀌어 있었다. 이전보다 좀 더 시원해 보이는 색감이 배색되어있는 것으로 날이 더워지는 것이 새삼 느껴지게 되었다.

한글 2007년이 나온뒤에 기존에 2005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가 해결되어있기를 바랐지만, 2005에서 잘 되던 부분까지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한글과컴퓨터에 로그인하여 해당 문제를 접수하였으나 다른 문제들과는 달리 여전히 접수 상태였다.

한컴 Q&A 목록

2006년 12월 6일에 접수한 문제인데 그 이후에 다른 문제로 올린 문제들에 대해서는 만족할만한 수준의 친절한 처리가 있는것과 달리 여전히 접수상태인 것으로 보아 해당 기술 분야에 굉장한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히브리어는 일반인들이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소홀해 질 수도 있는 분야이기는 하지만 다른 문제들에 대한 처리 대응으로 보아 단지 소홀하여진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입력방향 문제

2007년에서 입력한 히브리어는 자음만 입력했을 때 히브리어의 정방향1입력이 안되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2005에서 2007로 판올림되면서 생긴문제이다.
모음과 함께 입력했을 경우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게다가 2007년 판에서 제대로 입력해 놓은 문구들이 다른 판(2007 이전 판)에서 열 경우 뒤집어지는 문제가 발견되었다. 이 문제는 2007년 판 또는 그 이후의 판에서는 상관이 없겠지만 모두가 2007년판을 사용하지 않기에 문제가 된다.

일부 모음의 자음과의 분리

Shift키를 누른 키보드 레이아웃
Shift키를 누르지 않은 키보드 레이아웃

아시는 분만 아시겠지만, 일단 자음은 크게 보이는 것들이 자음이고, 작은 점들로 보이는 것이 모음이다.
Shift를 누르지 않은 상태가 대부분 자음인데, 누른 상태에서는 안 누른 상태에서 미처 배정받지 못한 자음과 모음들이 있다. 그런데 자음들 사이에 e키에 해당하는 부분에 모음이 있는데, 그것이 자음들과 합쳐져서 나타나야 하는데, 합쳐지질 않아서 글자 겹치기로 만들어 넣어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 문제는 2007에 이르러서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u나 i에 해당하는 모음은 다른 자음들과 이상없이 합쳐져 나오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다.

일단 위의 두 가지 문제가 2007에 이르러서 새로 생기거나 이전부터 있었던 문제이다. 여전히 일부 자음과 모음 조합에서 오류를 일으키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해당 문제는 다른 PC의 다른 버전에서는 이상없이 되는 것인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남기지 않는다.

  1.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기 때문에 입력또한 같은 방향.[]

사랑하는 던킨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훼손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필자는 진정으로 던킨을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라고 표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필자의 지인들이 던킨에 대한 사랑을 알기에 12개 세트를 사가지고 오면 앉은 자리에서 다 해치우는 열정적인 사랑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2년전에 헤어진 그녀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보다 더 침울하다. 온 마음을 다해 필자의 모든 것을 주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그녀와의 이별 사건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배신감이 느껴진다.

회장 보복 사건에 신경을 집중해 놓은 탓에 던킨의 사건을 그 존재조자 알지 못했다. 던킨의 대응 방식 또한 볼만한데, 이 포스트는 대응방식 따위에 신경쓰고 싶지 않을 뿐이다.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 이 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녀(던킨)로부터 받은 배신감은 이후 어떤 제조된 빵도 먹지 못할 결과1를 낳았다.

가망은 없어보이지만, 그래도 이 사건의 고발 사실이 거짓이라고 판결나기를 바란다. 가능성이 없다면 진실을 인정하고 다시 일어서는, 깨끗한 빵을 만들어 파는 그런 던킨으로 다시 일어서기를 바란다. 그런 그녀를 다시 사랑해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 그녀(던킨)가 결백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필자가 읽은 순서대로 관련글 링크걸어둔다.

최근의 두 가지 사건의 implication
던킨 도너츠, 그 실체는
던킨 도너츠, 장난하냐? 장난해!
기업들이 도대체 왜 이러는지..
트랜스 지방이 문제가 아니다 던킨도너츠
우리사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두가지 사례
던킨…예전에도 맛은 없었다…
전선에 참전
던킨도너츠, 관세사 실수로 영업정지 처분
“영업정지는 부당” 던킨도너츠 반발

  1. 물론 다이어트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cansmile님의 미투데이 – 2007년 4월 28일

  • 케이블 방식 인터넷을 사용하는 중인데, 이거 업로드로 1Mbps도 안 나오는데 이 작업중엔 인터넷을 모뎀으로 사용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오전 2시 24분
  • LG 파X콤에서 주택가 광랜 가입신청 받던데, 우리집까지는 안 들어왔단다. 금새 들어온다는데, 들어오면 갈아타야겠다. 오전 5시 54분

이 글은 cansmile님의 미투데이 2007년 4월 28일 내용입니다.

zero gravity

아거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오늘자(2007-04-28 08:52)로 올라온 무중력상태의 스티븐 호킹 박사라는 포스트를 통해 뉴스를 접했다. TV를 거의 보지 않고 사는 것은 다른 창조적인 작업에 할애할 시간이 많이 생긴다는 이점도 있지만, 때론 세상과 단절되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TV가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 전해받는 소식들도 TV를 직접 보며 알게 되는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겠지만 또 다른 느낌이 있다.

Firefox를 사용하면서 Wizz RSS News Reader를 Addon으로 사용하다가, 얼마전에 HAN RSS를 접해보고는 갈아탔다. HAN RSS에 대해서는 적지 않이 오래전에 존재를 알았지만, 당시에는 RSS를 구독한 지 오래되지 않았었고, 나름 뭔가 불편을 느꼈었던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얼마전에 다시 접했을 때는 이전에 가졌던 느낌은 기억이 나질 않고 괜찮고 편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 Gatrolog 6 A.M.에 새로운 글이 하나 있다는 표시에 블로그 제목을 누르니 위의 뉴스가 포스팅되어있었다.

아거님께서 작성하신 내용에는 홍보 이벤트에 중점을 두셔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본문에 첨부되어 있는 동영상 링크를 보고 나서는 또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동영상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무중력이라는 것에 더 비중을 두게 되었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무중력 상태에서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다.
무중력, Zero Gravity.

삶을 살아오면서 무중력을 느끼기는 불가능하다. 스티븐 호킹과 같이 우주인 체험의 기회가 주어지거나 관련 직종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수한 경험인것1이다.

우리의 삶에의 중력은 단지 표면적으로 우리가 땅에 붙어있을 수 있는 힘만이 아니다. 주위 환경에 의한, 인간관계와 삶에의 무게를 모두 느끼고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분명 적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자신의 지병(루게릭병)으로 인해 삶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무중력상태의 경험을 통해서 200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느꼈다. 일상에서의 자신의 불편함, 현실의 무게에서 일순간이라도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무게를 잠시라도 잊어서 행복하고 천진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단언할 수만은 없는 것은 그의 평소의 표정이나 생활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영상에서 무중력 체험을 하는 그의 얼굴에서 천진난만함이 묻어나는 표정을 본 것이 필자만이 아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발견했다면 그 민간 우주 여행 사업자는 홍보에 성공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1. 우주여행이 보편화되는 미래의 언젠가에는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괜찮은 독자

책을 읽으면서 발견되는 적지 않은 오타들을 보면서 사람이 만든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이런 것을 발견하기 위해 인력들이 투입되었을텐데 도대체 그 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돈을 받아먹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오타가 있는 책도 적다고만은 할 수 없다.

오탈자의 문제는 비단 책에 국한 할 수 없다. 종이로 출판되는 것들에서는 대부분 오탈자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고 있다. 재작년에 들었던 수업 중에 담당교수님께서는 오타가 발견될 때마다1 외국의 경우2를 들어가면서 말씀하셨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에 절대적으로 공감했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하면 플톡에서 방송하시는 분 중에 쿨하니라는 분이 계시는데, 이 분의 블로그 글들을 앞에서부터 주욱 읽다가 괜찮은 독자가 되어야 겠다부분을 발견했다.

필자는 독력이 매우 좋지 않은 편인데, 독력이라는 것은 책을 읽는 속도 뿐 아니라 내용 파악과도 연결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그냥 무슨 글자인 줄만 아는 정도로 읽는다면 금새 읽겠지만 그렇게 읽으면 책을 읽고 나서도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 전혀 파악이 되지 않는다. 책의 내용이 어떤 내용인가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읽으려면 속도는 고민이 될 정도로 느렸다. 지금도 그다지 빠르지는 않지만3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이후로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이처럼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하며 읽기 위해서는 집중해서 보게되는데 그래서인지 오탈자가 유독 많이 눈에 띈다.

전에 앤 시리즈를 읽으면서 오타를 몇 번인가 발견해서 출판사에 보내려고 시도는 했지만, 본문에 집중하며 읽는데 맥이 끊겨버리곤 해서 몇 번 적다가는 말았다. 그리고 또 적지 않게 된것은 이렇게 해서 이미 누군가가 보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보면 괜찮은 독자가 되기 위해서는 능력도 좀 필요하구나 싶다. 그리고 부지런하기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쿨하니님과 같은 사람이 있어서 세상은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1. 약 4회 정도[]
  2.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탈자를 신고하면 돈을 주기도 한단다[]
  3. 필자의 동생이나 학교 후배들 중에는 보통의 소설 한 권을 1시간에 독파가 가능, 물론 내용파악도 되는 읽기[]

순간 판단력

PS2 같은 게임을 하며 자란 아이들의 관심의 정도는 훨씬 더 짧아 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게임의 핵심은 순간적인 판단과 본능적인 반응이다.


Koreanjurist.com
에서 한 줄 포스팅의 힘? 에서 나오는 한 부분이다. 저 부분을 인용한 것은 순간적인 판단 이라는 부분 때문이다. 순간판단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본인의 성향을 설명할 때마다 들었어야 하는 것은 왜 순간 판단력이 떨어질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위의 a77ila님께서 들었던 대중연설에 대한 수업에서 세사미 스트리트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관심의 환기 주기가 7~8분 정도이고, PS2를 하고 자라는 사람들은 더 짧아질 것이라고 하셨는데, 필자는 주의 환기 주기와는 다른 생각을 해 본다.

다름아닌 순간판단력이다. 순간 판단력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 대해 순간적 판단 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필자는 한 문제를 두고 이리 저리 생각해보는 건 잘하지만 순간적으로 무슨 일을 판단해서 결론을 이끌어 내거나 선택하는 것은 잘 안된다. 순간 판단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필자를 우유부단한 사람이라고 정의해 버리도록 만든다. 그렇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필자는 적지 않이 우유부단한 인간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문제를 결정하기에 있어서 걸리는 시간은 상상을 월한다. 그래서 어느날인가 결심했다. 목숨에 관련된 일이 아니면 그저 먼저 생각 속에 들어오는 것으로 그 결정을 내리기로 말이다. 그게 필자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우유부단함이 그리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유부단한 것이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조차도 우유부단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그래서 애를 먹은 적이 여러번 있다. 학교에서 수업하는 중에 교수님께서 질문하신 내용에 대해 판단을 하는데 있어서 순간적인 백지상태로의 전환은 단지 판단력의 문제만은 아닐거라고 생각은 해 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단 순간적으로 판단 내릴 수 없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된다. 그 이전에도 순간판단력이 떨어져서 애를 먹고 있을 때 순간판단력을 기르고 싶었다. 그래서 이래저래 노력은 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위와 같은 해결방법으로는 문제가 깊어질 뿐이다.

앞의 인용문은 순간판단력이 게임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셈이다. 필자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서 잘 하지 않는다. 게임과 인연이 있었던 것은 컴퓨터를 처음 접했을 때의 지금 한창 고전게임으로 즐김을 당하고 있는 것들이나 고등학교때 한창 재미있게 했던 Command and Conquer뿐이었다. 그 외에는 그다지 게임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단순하게 즐길 수 있었던 Crazy Arcade BnB이다.

이 게임들을 즐기면서 줄곧 들었던 생각은 순간 판단력의 부재였다. 특히나 마지막으로 즐겼던 게임은 승패와 상관없이 사람들과 관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면서 사람들이 필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못해 나중에는 자기 편으로 편성하지 않으려고 피하는 모습까지 다양하게 경험했습니다.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고 파고들었다면 언젠가 그 게임에 대해서는 실력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순간판단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당연히 미지수이다.

순간판단력을 기를 수 있는 훈련 프로그램이 있다면 참여애 보고 싶다.

cansmile님의 미투데이 – 2007년 4월 25일

  • 어제 영작문 시험을 치르고 작성한 답안을 카메라로 찍어왔다. 확인하고 있다.. (털썩…) 오전 6시 50분
  • 태터데스크 베타테스터 모집에 응모합니다. 오후 6시 31분

이 글은 cansmile님의 미투데이 2007년 4월 25일 내용입니다.

태터데스크 베타테스터 모집에 응모합니다.

태터데스크는 내 블로그 첫페이지를 꾸밀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예쁜 방법 입니다.
태터툴즈의 태터데스크 베타테스터 모집에 응모하기 위한 포스트입니다

2주일 먼저 사용할 수 있는 타인과의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방법!

기대수명 62살

미니위니기대수명 테스트가 올라와서 다들 비만이라는 사람도 있어서 필자도 링크따라가서 한번 해 봤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당신은  비만 입니다.
당신의 기대 수명은  62 살입니다.
앞으로 34 년 남았습니다.
일(Day) 수는 대략 12,410 일 정도 남았습니다.

후…

감수성 회복

한번의 사건으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 강풀씨가 다음에 연재하기 시작한 그대를 사랑합니다 3화까지 보면서 눈물을 그렁였다.

눈물이 난 것은 몇 가지 사고를 동반했는데, 먼저 그 전에 3화의 내용을 간단히 적어보면서 이어나가겠다.

등장인물 김만석의 우유배달 시작 계기가 된 것이 된 것은 위암 말기였던 아내로부터 우유를 먹고 싶다는 소리를 들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그가 아내를 보내고 나서 귀가하는 길에 있던 우유 대리점에서의 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런데, 이 장면 전에 그가 그의 위암 말기였던 아내와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눈물을 그렁일 기운을 보였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먼저 필자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생각이 났고, 그 다음에는 나도 내 아내에게 저렇게 사랑해 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먼저 필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지만, 다른 가정에서 관찰되었던 아버지들과는 굉장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다. 다른 가족들의 세밀한 일상까지는 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아내사랑에 대한 표본은 단연 아버지다.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부부싸움을 하시는 순간에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하신다. 그 순간에도 어머니는 아버지의 꽃사슴이시자 코 끝부분까지 사랑스러울 수 있는 분이시다. 젊은 시절부터 싸우면서 그러셨다는 말씀을 믿을 수 있는것은 지금의 아버지의 모습과 과거의 아버지의 모습에서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으로부터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그런 사랑스러우시다는 행동과 말들이 일상이 되어있어서인지 인상적인 기억도 그와 관련된다.

필자의 가정 형편은 여전히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데, 작년엔가 냉장고가 고장났을 때의 일이다. 지금 쓰고 있는 냉장고는 그 때 산 것인데, 그 전에 쓰던 냉장고가 고장이 나버려서 안에 보관하고 있던 음식물들이 이상해져버렸다. 어머님은 새신부이던 시절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음식을 조리하는 것에 관심이 없으셨던데다가 간호장교라는 직업상의 이유로 살림을 제대로 하시지 못했다. 그런 어머니께서는 나름대로 살림에 대해서는 유독 자신감이 없으신데, 그런 중에 냉장고가 고장나서 음식물들이 상해가고 있다. 이것에 마음이 상하셔서 어머니는 눈물을 그렁이면서 아버지께 손내를 내보이셨던 모양이다. 이 문단 도입에서도 밝혔듯이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냉장고를 새로 살 여력은 당연히 되지 않았다. 필자 역시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그다지 살만하지 않았다. 그 때 아버지께서는 필자를 부르시면서 같이 나가자고 하셨다.
함께 나가서 중고품 상점을 찾아다녔다. 필자는 아버지께 여쭈었다. “아버지 어떻게 사시려구요. 냉장고 살 만한 돈 없잖아요.” 그러자 아버지는 “어쩔 수 없잖냐, (중략) 내 아내가 우는 걸 보고 있을 순 없어.”라고 대답하셨다. 웬지 아버지에 대해서는 인상적인 기억이 별로 없었는데, 이 사건만은 지금도 확연히 그 장면하나 하나까지 기억이 되고 있다.

다시 강풀씨의 새 연재물의 김만석씨의 얘기로 돌아가보자. 위암 판정을 받기 전에 김만석씨는 아내에 대해 매우 무뚝뚝한 행동으로 일관해 왔다. 그런 그가 아내의 위암판정 이후 대하게 되는 행동의 변화가 그 아내로하여금 행복을 느끼게 했다. 물론 사람의 성격에 따라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만 우리 시대에도 저런 분이 여전히 계시리라는 것은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없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랄뿐이다.

추가로 더 적어보자면 지금 심리학개론이라는 과목을 다시 들어보고 있는데, 그 과제를 하기 위해 책을 폈더니 사람이 스트레스 지수 순위표가 나왔다.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건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좀 놀랐다. 아니 어느정도 이해는 되지만 사람의 인생에서 이토록 큰 부분을 차지하는구나 싶었다.

Holmes의 사회 재적응 평가척도 중 1. 배우자 사망1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스트레스 이유중 가장 높은 것이 바로 배우자 사망이라는 점을 들어 김만석씨가 가졌을 충격은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건…. 그런거다… 웬지 눈물이 날만한 다른 이유가 생각이 나버렸다…

  1. 김청자, 장선철, 최세리, 김숙영, 심리학의 이해, 서울 : 2007, p. 322.[]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성교육

미디어몹에서 딱정벌레님께서 아드님의 성문제에 대한 글을 올리신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고, 4편까지 올라와 있는 것을 알고는 새벽에 중간시험 기간 공부 중에 짬을 내어 읽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성교육을 시킬까라는 질문에 대한 간접답변정도로 참고할 생각이었다.

관련글들 :: 중1 아들 성교육하기 #1, 중1 아들 성교육하기 #2, 중1 아들 성교육하기 #3 , 중1 아들 성교육하기 #4

필자는 아직 미혼인데다가, 아직 결혼 예정도 없는 총각이지만 성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꽤나 관심있게 지켜보는 편이다. 자녀라는 대상에 고정되지 않은 관심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여타 총각의 관심과는 또 다른 차별성을 가진다. 이 관심은 여타 총각들이 가질 수 있는 관심으로부터 발생되었지만 지금은 그것에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성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또 유지해내려고 하는 중이다.

쨌든 다시 딱정벌레님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아드님께서 PC로 컬러풀한 장면을 감상하는 것에 놀라시고 그것을 계기로 아들의 첫 경험(?)의 교사와의 관계가 자신의 그것과 다름 없음에 안심하시는 모습까지 잘 읽어내려갔다. 그 부분까지 읽어 내려오자 필자의 머리에서는 내 첫 경험은 어떻게 하게 되었는가로 생각이 이어졌다. 아! 라고 생각한 순간 잠시 잠간의 정적이 돌았다. 필자의 경험은 그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필자가 성에 대한 매체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2학년엔가 3학년엔가, 아니 4학년때 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께서 필자가 가지고 싶어하던 PC를 어디선가 구해오셨는데 그야말로 XT급 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 이상의 성능을 가진 PC가 사용되었던 시절이기는 했지만, 아버지께서는 집안 사정상 최신의 PC를 구매해주실 능력이 되지 않으셨다. 그렇기도 했지만 필자의 관련 지식은 그것으로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행복했다.

나도 PC가 생겼구나! 라고 생각하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다. PC를 들여오고나서 변화된 것은 활동이 전보다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과 PC화 동화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님께서는 항상 바쁘셔서 동네에서 어르신들이 필자와 동생만 보면 부모님을 욕하고 있을 정도로 꼬질 꼬질하고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랬기 때문에 더 PC에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PC와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곧 PC 통신과도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 PC 통신이 시작되었을 때는 관련법이 제대로 정립되어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말 그대로 통신은 무법천지였다. 뭐 그 나름의 서비스에서 정의하는 제한사항이나 그 비슷한 제지가 있을만한 짓을 초등학교 5학년엔가 6학년에는 해 본 기억이 없다. 그저 그 곳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은 초등학생이 접하기에는 아직도 부담스러움을 느낄만한 것들이었다.

먼저 첫 경험의 교사와의 관계는 나 자신이다.

흔히 친구들이 알려준 방법을 해보는 것으로서 그 친구는 선생님이 된다. 자위에 대해서만큼은 그가 나보다 먼저 알았기 때문에 성립될 수 있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딱정벌레님의 아들의 성 3번째 글의 댓글에 개인 경험이라는 분이 올려주셨던 내용처럼 필자는 누구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이미 어떤 자료를 접하기 전에 자위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당시에는 그것이 자위인줄 몰랐다. 성기가 손에 의해 자극을 받고 그를 통해 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자위생활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이 그다지 중독성을 가지지 않았다.

야설을 읽다 걸린것은 치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1

당시에는 케텔에서 하이텔로 바뀌고 난 뒤인것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개인이 인터넷 서버를 운영하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인터넷이 아니라 PC통신 서비스를 연결하기 위해 BBS 프로그램을 돌리기도 했다. 또한 Hitel 외에도 다른 경로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음성적인 방법으로 이런 저런 것들을 많이 구할 수 있었다. 속도와는 상관없이 음성적인 자료들은 어떻게해서든 수요자와 공급자가 있는 듯 하다. 야설은 그렇게 읽게 되었다. 사실 그 당시는 그림파일의 화질이나 수준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야설로 많은 부분을 충당할 수 밖에 없었다.

나름 소설의 형태로서 조잡하지 않았던 소설들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텍스트 파일을 읽다가는 부모님들께서 들어오시는 소리를 듣고는 정리도 않고 그냥 PC를 다운 시켜버렸다. 그리고는 기억에서 까맣게 지워져버렸다. 야설을 읽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전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굉장히 정색을 하시면서 필자를 부르셨다. 이게 뭐냐고 하시며 PC화면을 가리키셨다. 모니터에는 이전에 부모님께서 들어오셨을 때 놀래 정리하지 않았던 파일이 텍스트리더와 함께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물론 딱정벌레님의 아드님처럼 풀컬러판 화면은 아니었지만, 부모님들께서는 나름대로 충격을 받으셨다. 필자가 전에도 몇번인가 말했지만 아버지께서는 각목으로 필자를 다스리셨다. 그리고는 몇 대 맞을 것인지를 정하고 어머님은 잡으시고, 아버지는 때리셨다. 유일한 지원군인 할머님조차도 어디 나가신모양이었다. 그렇게 맞으니까 울게 되었고, 그것으로 부모님들은 이제 더 이상 야설은 안 읽는다는 약속을 받아 내셨다. 그 파일들을 제거되었다.

딱정벌레님의 글에는 필자의 부모님들께서 성에 대해 자유스러웠다고 댓글을 달아놨지만 초등학교 시절에서부터 자유롭게 해 주셨던 건 아니다. 그 후로 강압적이고 두려운 아버지는 어느새 필자의 친구와 같은 아버지로 변해계셨다. 어린시절 필자의 눈에 물을 만들게 했던 몽들이들은 이미 그 자리조차도 잃어버린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야설은 그만 읽었지만 자위행위만은 계속되었다.

한달에, 또 어떨 때는 2주일에 한번 정도로 자위행위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 서울에서 부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친구들이 돌려보는 만화책을 보게 되었다. 필자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골든보이(Golden Boy)이다. 원작 자체만으로도 좀 변태스러운 구석이 있는 만화인데, 그것을 또 다른 버전으로만든것이었다.

일본에서 만든것을 빨간모자 아저씨들이 수입해서 판매하는 것들이었다. 그것으로 다시 야설, 야사, 야동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고등학교를 정보산업고등학교를 들어갔고, 학교에서는 인터넷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친구들이 있을 수업시간이나 모든 수업이 끝난 직후에는 힘들었다. 혼자 있을 시간에 잠시 짬을 내어 보기도 하고 했다.

인터넷은 점차 학교에서 집으로 더 빠른 방식으로 지원되었고, 좀 더 쉬운 접근이 가능해졌다. 지금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지만, 야동, 야설, 야사는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허구적인것이라는 것과 보는 이로 하여금 더 흥분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과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전만큼 자주 접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필자가 중고등학생이라면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쉬이 접할 수 있는 것들을 아무런 비판의식이 없이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이유로 성에 대해서 무조건 혼내거나 금지시키는 것보다는 공개적으로 가르치고 유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 여기서 부모님들의 성에 대한 개방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어린 시절의 그런 사건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성적인 표현들에 대해 다른 부모님들이 그럴 것이라는 필자가 가진 기준보다 더 개방적이셨다고 생각된다. 중학생이던 동생과 필자 앞에서 ‘자지’라는 표현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셨던 것이다. 그저 고유명사를 말하는 것 뿐인데 그걸 천시하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이상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주말의 명화와 같은 장면에서 키스 장면이 나오면 보지 말라던가 하는 말보다는 그냥 뽀뽀하는 건데 뭐 어떻냐는 식으로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어머님께서는 간호장교 출신이시라서 의학적인 관련 지식을 말씀해 주시고는 했다. 물론 성관계나 직접적인 세세한 표현은 없었지만, 묻는 것에 대해서는 그대로 대답해 주셨다. 지금의 성에 대해 개방적인 생각과 굴절되지 않은 성 가치관은 부모님들의 이런 개방적인 행동에 의해 생겼다고 생각한다.

이것으로 성에 대한 관심, 처음의 경험에 대한 글을 마치려고 한다.

딱정벌레님의 연재는 계속되어 7편까지 나온것을 확인했지만, 개인적으로 약속드린 부분이라 미흡하나마 글을 남긴다.

  1. 히포크라테스가 정의한 기질 중 다혈질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행동력을 뛰어나지만 치밀함에 있어서는 우울질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두 기질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울질보다는 다혈질이 더 우세인 듯 하다.[]

블로그에 대한 애정..

그 이야기들은 자기가 다루고자 하는 글의 대상과 소재에 대한 애정으로 충만하다. 그래서 꽤 긴 글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긴 글들이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그 애정이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매혹일테다. 물론 그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이렇게
능수능란한, 그리고 담담한 듯 깊이 있는 글은 쉽게 만날 수 없다.

출처 : 민노씨네

자신이 글을 쓰는 대상과 소재에 대한 애정에 대해 민노씨께서 언급하셨다. 아거님의 포스팅에 대한 글에서 언급된 것인데, 아거님의 미닉스라는 블로거에 대해 리뷰한 글에 대한 포스팅이다.

민노씨께서 작성해 놓은 글들을 보아도 자신의 글감들에 들어간 정성들이 보인다. 물론 그가 칭찬해마지않는 아거님의 포스팅들도 마찬가지다. 그 자신의 생각들과 경험들을 적절한 표현들을 사용해 적어내려가는데 그것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그들이 필자의 앞에서 이야기해 주는 듯하다. 때론 온화한 모습으로, 때론 날카로운 모습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아두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자신의 글에 대한, 포스팅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아거님의 포스팅을 통해 알게 된 미닉스님의 글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링크 따라가 앉은채로 몇 시간1을 두고 그 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고, 심지어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애정을 가지고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애정을 한껏 담아 읽는 이로 하여금 같은, 또는 유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작성할 날이 오길 바라면서 작성해 본다.

  1. 몇 번인가 언급했지만, 필자의 독력은 정말 형편없는 수준이다. 미닉스님의 글 하나를 읽는데 30여분 이상을 족히 소비했다.[]

티스토리 초대장 좀 있어요~

최근에는 저도 그다지 열정적이지는 못한 블로거이지만, 그래도 초대해 드리면 띄엄띄엄이라도 사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전에 잘 가는 커뮤니티에 초대 메뉴가 있어서 초대해 드렸더니 2분이 사용하지 않아버리시더라구요.
다른분께 이미 받으신건지… 어쩐건지는 아직도 확인이 안되고 있지만 일단 초대해 드리면 나름 열정적으로 사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헤헤~

25장 남았어요~ ^^

얼마나 애 달을텐데!!

관련기사 : [`유괴 장난전화` 즉심으로 `엄벌`](종합)

장난전화는 정도를 떠나서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이다. 물론 필자도 그 흔한 장난전화 한번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위의 장난 전화는 그것의 수준과는 다르다.

부모들은 미치기 일보직전일텐데 아무리 심심하고 호기심이 충천하더라도 이런 일에 장난전화질이라니 철이 없어도 보통 없는게 아니다.

단순히 호기심으로 그쳤다면 좋았을 행동을 한 B군에 대해서 즉결심판으로 사회봉사활동 200시간 정도는 줘야하지 않을까? 좀 엉뚱한 듯하지만 장난전화로 녹음된 내용을 1년치를 죄~ 모아서 모두 듣게 하면 어떨까싶은 생각도 든다.

개념을 출장보낸 그에 비해 나이도 제법 든 40대 아저씨는 당췌 무슨 생각을 머리에 담고 사시는지 궁금하다.

휴~ 세상이란…

절대 297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오늘 고등학교 후배가 싸이월드에서 쪽지를 보내왔다. 이 후배는 차 매니아인데, 람보르기니를 실제로 봤고, 사진과 동영상도 차주의 허락을 받아 촬영해서 올려놨다는 내용이었다.

오늘 축하해주세요..^^; 축하받을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특종입니다.오늘 제가 주차하는 주차장에.람보르기니가 왔더군요.. ㅠ.ㅠ
정말 포스작살난다는 모터쇼에서나 봤는데. 오늘 실제로 보고 타보고 만져보고 그랬습니다. 오너분이랑 많은이야기도 나눴구요. 다들
궁금해하는거 가격이 8억이랍니다. ㅠ.ㅠ 그차를 타보고 만져보고 그랬네요. 걸윙도 실제로 작동해보고. ㅠ.ㅠ 최고에 날이였네요.
ㅠ.ㅠ 엔진소리도 작살나구요. 오너분이 사진도 허락하셔서 사진이랑 동영상이랑 올려놨습니다. 한번 보세요. 정말 포스가
작살입니다. 천천히 슬금슬금 가는데도.. ㅠ.ㅠ 그 뒷모습이란.. ㅠ.ㅠ 아~ 정말 죽입니다.. 번호판 따는데만도 8개월
걸렸다고 하던데. ㅠ.ㅠ 부럽기만 하네요.. 사진으로만 확인했던 차량을 실제로 보니깐. 정말 죽이더군요..^^;

가격이 8억이라는 소리에 흥미가 생겨 후배의 미니홈피에 방문했다. 그가 올려놓은 동영상이 최근 글 제일 위에 링크되어 있어서 재생을 시키려고 원안에 오른쪽 화살머리를 눌렀다. 그런데 다음 화면은 새 탭과 함께 성인 인증 화면이었다. 이상해서 다시 원래의 탭으로 가서 확인하였더니 오른쪽 위에 빨간원 안에 19라는 글자가 있었다.
1
일단 재생에만 신경쓰느라 제대로 확인이 안되었던 것이다. 조금 의아했지만 그래서 평소 하던대로 성인인증을 했다. 휴대폰을 이용하는방식으로 되어있었는데 인증번호를 넣으니 다음과 같은 화면이 나왔다.

이 화면1을 만나고 나니 좀 허탈한 기분도 들고 당황이 되었다. 일단 어떤 내용인지 확인하기 위해 원래의 탭으로 돌아가 동영상을 재생해 보았다. 동영상의 내용은 단순히 화면을 차량에 고정시키고 차주와 이야기를 나누는 후배의 목소리 뿐이었다.

여기서 발생되는 의문은 단순히 자동차를 찍었을 뿐인 동영상이 왜 19금 표시가 붙어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차량 하나 찍은걸로 19금이 붙는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나 후배가 19금 표시가 붙도록 설정하는 어떤 옵션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필자의 미니홈피로 돌아가서 확인을 해 보았지만 다음의 그림에서와 같은 화면만 있을 뿐이지 어떤 관련된 문구 또는 옵션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1

그렇다면 19금 표시는 올리는 사람이 아닌 Mncast에서 붙도록 만들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데, 과연 차량을 촬영한 영상이 19금 표시가 붙을 만한 것일까. 다음은 위의 성인인증 화면에 나오는 문구이다.

성인인증이란,

엠엔캐스트의 서비스 중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심의규정 및 청소년유해 매체물 기준에 따라, 청소년 유해정보로 구분되는 ‘성인 정보’들을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방지하는 절차입니다.2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일 경우 청소년에게 유해한 성인정보는 서비스에 노출되지 않으며, 성인임이 확인될 경우에만 성인 동영상 영상으로 설정된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문구를 보면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되어 있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19금 표시가 붙은 것에 대한 원인을 생각해보면
1. 차량이 8억이나 되는 고가의 외제차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유해하다고 판단
2. 제목이 죽인다 라는 문구가 들어가서 자동분류
3. 모든 동영상에 무조건 첨부되는 것
인데, 첫번째와 세번째는 억측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능성은 두 번째의 것으로 좁혀졌다. 죽인다는 말 때문에 이 동영상이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판단되어 19금 처리가 된 것인가!?

아 한가지 가능성이 더 추가 되었다 다음의 글의 5번항을 보면 성인 카테고리에 분류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다.

3. 성인인증 후 24시간 이내에 [쿠키 및 임시인터넷파일]을 삭제하면

성인 카테고리 동영상
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다시 인증을 하셔야 합니다.

[쿠기 및 임시인터넷파일]을 삭제하면 PC에 저장된 성인인증(실명인증) 정보가 담긴 파일이 손상 또는 삭제되면 성인인증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하므로 이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다시 인증 문제로 돌아가면 인증하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가. 싸이월드와 연계해서 다시 비밀번호를 치게 한다든지해서 확인하는 방법도 있는데, 왜 굳이 성인인증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상식 범위 안에서 돈 버는 방법을 생각해줬으면 한다. 엠앤케스트! 정말 실망이다.

참고로 엠앤케스트에서 성인인증에 대해 답변해 놓은 글이다.

성인인증 절차 이용안내 2007-03-16
안녕하세요. 엠엔캐스트 입니다.

성인 컨텐츠로 부터 대한민국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의무와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성인 컨텐츠를 볼 수 있는 성인의 볼 권리

이 두 가지 모두 충족시키기 위하여 실명인증을 통한 성인인증 시스템을 도입하였습니다.

하지만 기존 실명인증에서는 [주민등록번호 도용]이라는 또 다른 사례가 발생하여 그에 대한 강화 차원에서 모바일(휴대폰) 성인인증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엠엔캐스트에서 보다 강화된 휴대폰 성인인증(실명인증) 시스템에 대하여 아래 내용을 숙지하고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1. 모바일 성인인증에는 인증 수수료가 부과됩니다.

기존의 실명인증과는 달리, 본인 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본인의 모바일(휴대폰)을 이용하여 성인인증(실명인증)을 시행합니다. 이에 별도의 수수료가 부과되는데 1회 인증시 270원(부가세 10% 별도)의 수수료가 휴대폰 요금 청구서에 [모빌리언스 소액결제] 항목으로 부과됩니다.

2. 1회 성인인증으로 24시간 동안 성인 카테고리의 동영상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성인인증(실명인증) 1회로 한 대의 PC에서 24시간 동안 성인 카테고리의 동영상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성인인증(실명인증) 후 24시간이 지나면 인증된 정보는 PC에서 자동 삭제됩니다.

3. 성인인증 후 24시간 이내에 [쿠키 및 임시인터넷파일]을 삭제하면
성인 카테고리 동영상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다시 인증을 하셔야 합니다.

[쿠기 및 임시인터넷파일]을 삭제하면 PC에 저장된 성인인증(실명인증) 정보가 담긴 파일이 손상 또는 삭제되면 성인인증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하므로 이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4. 24시간 이상 성인인증은 할 수 없습니다.

성인인증(실명인증) 기능은 성인 카테고리 동영상에 대해서 청소년 보호와 성인의 볼 권리를 위한 서비스입니다.
PC방등의 공공장소에 위치한 PC도 청소년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성인인증 유효시간은 최대 24시간 입니다.

5. 인증이 완료되지 않는 경우에는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습니다.

성인인증(실명인증)절차가 완료되지 않는 경우에는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습니다.
완료되지 않고 수수료가 부과되었다면 1:1 문의를 통해 문의 해주시기 바랍니다.

6. 내가 올린 성인 동영상에 대해서는 별도의 인증절차 없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직접 등록한 성인관련 동영상은 별도의 인증절차 없이 이용가능하나 다른 사람이 등록한 동영상과 스크랩한 동영상은 성인인증(실명인증) 절차를 거친 후에 이용 가능합니다.

7. 성인인증(실명인증)에 발생한 수수료에 대해서 취소 또는 환불 받고 싶어요.

성인인증에 대한 취소 및 환볼은 엠엔캐스트의 1:1 문의로 사유와 휴대폰 번호를 함께 알려주시면 확인 후 바로 처리해 드립니다.

궁금한 사항 있으시면 1:1 문의를 통해 문의 해주세요.

 

출처 : mncast 이용안내 “성인인증 절차 이용안내”

이 페이지에서 확인한 것은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기 때문에 휴대폰 인증으로 바꾼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해가 안된다.
휴대폰도 동거하는 가족에 의해 도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1. 이미지는 자료 복원이 안되었다.[][][]
  2. 이미지가 유실되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이유

필자가 애니메이션을 보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는 아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행위로 재미를 얻는 것만으로는 그것을 볼 이유가 성립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인 듯하다. 고등학교때는 지금만큼 활발하게 보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더 있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일본어를 공부하기 위해서였고, 그림 공부를 더 하고 싶기도 했다. 영어를 공부하는데 생활영어가 많이 사용되는 시트콤을 보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과 같은 원리로 생각했고, 나름대로 추가적인 공부 없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알아듣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일본어는 성별에 따라서 사람의 성격에 따라서 쓰는 말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아듣는 것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일 뿐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말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전혀라고 표현한것은 확실하게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전혀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1

제대로 알고 있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하고 있지만 언어에 대해서 대충 쓰는 버릇은 영어에 있어서도 꽤나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외국인이 알아들으면 되는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그냥 되는대로 영어단어 몇 개 아는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활에 있어서 말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학문적인 자료들을 검색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구조를 알고 명확하게 해석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언어를 공부하기로 했는데 그나마 수준이 높은 편인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일본어는 언제 할거냐. 애니메이션은 왜 보는거냐. 그건 일본어도 언젠간 공부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일본어를 어떤 장면에서 어떤 말을 사용했는가를 상황에 맞춰 기억해 두면 나중에 일본어를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영어를 공부할 때도 영화를 보면서 내용과 함께 그 상황에 맞는 어휘나 문장의 사용등을 고려하면서 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언어와 관련된 하나의 이유는 구성방식을 통해서 말하는 방법을 배우려는 목적이라고 해 두고 싶다. 사건의 흐름대로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재미가 덜 하다.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재구성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재미 없어서 듣기가 괴롭도록 만드는 사람도 있다. 필자의 경우는 후자쪽에 가까운데, 전자 쪽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는 한 방편인것이다. 이야기의 재구성은 말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라는 재구성의 노력을 이끌어낸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또 한가지의 이유는 그림공부이다. 어린 시절부터 만드는 것에 재미를 은근하게 알고 자라왔고, 창작에 대한 괴로움과 기쁨은 필자에게는 남다르다. 위대한 음악가가 된다거나 미술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그런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마음속에 있는 머리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내서 현실화시킬 수 있는 실물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이어져내려오는 그림치의 기운을 극복하고 벌써 10여년째 낙서와 함께 그림실력을 키워가고 있다.

그렇다면 학원에 다니면서 제대로 배우면 되되 왜 혼자 낙서하면서 하려고 하느냐는 물음이 있을 수 있겠다. 그건 위의 문단에서도 말했지만 그쪽 방향으로 진출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취미로서의 활동이라고 해 두면 알아듣기 좋을거라고 생각한다.

일단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죽기전까지 혹은 애니메이션이 없어질 때까지 – 그런 날이 올까 – 계속 볼 생각이다.

  1. 이것은 0칼로리를 사용할 수 있는 범위랄까 그런것과 같은 원리다.[]

cansmile님의 미투데이 – 2007년 4월 20일

  • 남의 SMS메시지 글에서 500에러 해결되었다. 코디안님 감사해요! 오전 12시 5분
  • 매일 저녁 이 시간이면 고민이 시작된다. 이대로 공부를 이어가야할 것인가,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해야할 것인가. 오전 12시 12분
  • 하루가 지나고 나면 허탈감보다는 새로운 날에 대한 기대감이 차오른다. 또 새로운 날! 오전 1시 0분
  • 땡땡땡땡~ 이제 학교 갈 시간이다~ 고고싱! 오전 5시 33분
  • 오늘도 하루는 꽉 채워져간다. 십분의 일, 여백의 미학이랄까! 오후 10시 15분

이 글은 cansmile님의 미투데이 2007년 4월 20일 내용입니다.

cansmile님의 미투데이 – 2007년 4월 19일

이 글은 cansmile님의 미투데이 2007년 4월 19일 내용입니다.

맑은 고딕

블로그의 폰트를 맑은 고딕으로 죄다 바꾸어 버렸다. 이 글씨체에 대해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그리 심하게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일단 조금 더 운영해보고 읽으시는 분들의 불만의 댓글이 있으시면 즉시, 굵게 속성 먹이겠습니다.

cansmile님의 미투데이 – 2007년 4월 18일

  • 시험 공부 중간 쉼을 위해 들어온다는 핑계로 들어오고는 있지만…. 오전 12시 56분
  • 어느 편이 상처받아 돌아오는 곳일까. 두 편 모두 상처 받고 다른 편으로 가는 곳이 아닐까. 오후 3시 36분
  • 부끄 부끄… 낙장불입이라지만 지나면 별로 신경 안 쓰이겠지만,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요. 오후 3시 38분
  • 강의 녹음해서 방송하고 있다. 수업 같이 듣는 친구들아 우리 공부좀 하자. 오후 11시 30분

이 글은 cansmile님의 미투데이 2007년 4월 18일 내용입니다.

정치의 과정, 코리안 타임

정치의 과정은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 싸움의 연속이지만 그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루고자 하는 결과에 한발 더 다가가는
것, 그리고 결과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도 한발 다가가는 성과로서 받아들이고 이후 또 이와 같은
국가적 의제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그렇게 함께 노력해가야 될 일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비단 정치의 문제만 그런것은 아니다. 인간이 조직의 구성원으로 있는 집단은 위의 글에서 정치의 과정으로 설명되어진 상황은 벌어지게 마련이다. 그것이 인간이 살아온 방법이고, 지금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져 온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같은 과정은 인간 개인의 관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인간은 서로 대립하고 갈등을 겪고, 싸움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인간 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 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회피만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대립이나 갈등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격하지만 싸움을 통해 해결되어지는 것이 훨씬 서로를 위해 좋은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싸움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아시리라 생각된다.

필자 역시 매일의 삶에서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원만한 대인관계와 갈등과 대립의 관계를 겪으면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해야 할 말이 있을 때는 한다. 그 말을 했을 때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유지되지 않더라도 그 말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말한다. 그래야 듣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줄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우선순위의 정립이 옳바르게 되고, 조금 더 나아가 사회는 부정 부패를 더 친근하게 여기는 풍토로부터 조금이나마 더 멀어지는 발단이 되기 때문이다.

코리안 타임은 왜 생겨난 것일까. 빨리 빨리하려는 속성과는 달리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어디서부터 발생된 문제일까. 그것은 아마도 인간 상호간에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원만한 관계를 위한 묵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직 어설프게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혹은 어느 한 편이 불리한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묵인되기도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그 이후에 말은 해야한다. 물론 그 말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켜야 함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항상 철저히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은 그 말을 듣는 사람도 알 것이고 유쾌하진 않겠더라도 스스로를 바꾸려고 하는 노력의 원인으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의 과정으로 설명되어진 갈등과 대립, 싸움의 연속과 코리안 타임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사회에서 코리안 타임이 적용되지 않는 곳은 없다. 제 시간에 도착해야 겠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좀 늦어도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문제의 발단이다. 인간은 이토록 한 문제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거론하게 되면 갈등을 겪기도 하고 대립상태에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싸움도 필요하다. 그 사람과의 골을 내는 그런 싸움보다는 원만한 토의를 통해 상대방과 자신의 의견에 중간 즈음이라도 그것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코리안 타임은 심지어는 1시간 내외로 적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중간단계라면 그 시간의 반일테고 또 다음에 그 문제가 거론 되기 전에 그런 의견이 주고받아졌을 때는 의견을 최소한 나눈 사람들은 조금 긴장하여 약속시간을 어기지 않으려고 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일단 일반적인 수준에서 하는 말이다.

이 글에서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코리안 타임을 핑계로 약속시간에 늦지 말자는 것이다. 시작은 거창한 것처럼 청와대 블로그의 글까지 인용했지만, 일단 약속 시간에 늦는것은 그 후의 일정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1

  1. 물론 그런 코리안 타임까지 계산된 모임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대부분의 약속이 그런 시간을 제외하고 계획되어지기 때문이다.[]

cansmile님의 미투데이 – 2007년 4월 17일

  • 시험은 사람을 풰인화 시킨다. 오늘부터 난 풰인이다. ㅡㅡ! 오전 1시 34분
  • 생각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끝 없는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족쇄다. 오전 2시 10분
  • 재미있는 행동, 재수없는 행동, 경쟁사를 홈피로 만들어 놓기. 오전 2시 43분
  •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당신 자신이야! 오전 2시 52분
  • 이제 곧 쉬는 시간이 다가오네요.. 3시간의 휴식 시간 오전 4시 1분
  • 어랏~ 아직 시작 안 했네요? 유후~ 미투풰인들 잠 못 들어요~ ㅋㅋ 오전 5시 29분
  • 점검 전 마지막 댓글.. 후훗.. 오전 6시 24분
  • 그런데 이거 4시에 제 블로그로 내용전송하는 걸로 아는데, 기록이 안 되어있어요. 제 포스팅, 어딘가 방황하고 있는건가요? 오전 6시 31분
  • 아~ 밤을 샜는데도, 버스에서 잔게 큰 도움이… 사실은 커피믹스 2개를 한 컵에~ 털털~ 오전 10시 54분
  • 이제 제대로 되는군요. 왼쪽에 구분 아이콘! 새벽엔 왜 에러가 났을까요? 오전 10시 55분
  • 와~ 수업이 공강되었어요. 대신에 시험이 한 주 미뤄졌습니다. 오후 3시 45분
  • I’m going to study hard during two weeks. 오후 3시 52분
  • 바쁜 블로거들을 위해 태어났지만, 아무 것도 못하게 만든다. 미투데이.. 정말 미투만 하는 나날들이다.. 오후 5시 59분

이 글은 cansmile님의 미투데이 2007년 4월 17일 내용입니다.

cansmile님의 미투데이 – 2007년 4월 16일

  • 나도날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웬지 오늘부터 시험기간 모드 돌입이라서 몇 주 후에나 열혈 활동이 시작될 듯 하네요. 오후 9시 11분
  • meat2day 모임이 있었네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의무라는 말에 한표! 오후 10시 0분
  • 시스템 점검은 사람을 살려줍니다. 점검 시간이 잠을 청하도록 하기도 하니까요. 오후 10시 6분

이 글은 cansmile님의 미투데이 2007년 4월 16일 내용입니다.

자랑 거리

어르신들에게 자랑거리라는 것은 우리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다. 손자 손녀들에게서 받은 작은 선물, 자손들의 깜찍한 인사들도 자랑거리가 되기 마련이다.

필자의 할머니께서 다른 할머님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시다가는 옆에 계시는 할머니께서 물어오셨던 듯 하다. 그래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린 시절에 필자는 굉장한 장난꾸러기로서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만큼 굉장한 사고뭉치였다. 그래서 어린시절의 필자 손만 지나가면 뭐든 쉬이 망가지곤 하였다. 할머니께서 사용하시던 참빗도 그 대상에서 예외 일 수는 없었다. 사실 그 빗을 망가뜨리려는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닌데, 몇 번 빗고 하다보니 어느새 망가져 있었다. 그리고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었는데 할머니께서는 나름대로 이리 저리 구하려고 하셨었나보다.

어느새 빗을 망가뜨리고 나서 20여년의 시간이 지나고 필자는 군에 입대했고, 고참들과 함께 속초에 놀러가기로 했는데, 미시령으로 지나다가 관광상품을 파는 곳에서 참빗을 보고 기억해 냈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자주 쓰시던 참빗, 필자가 몇 번 빗어버리고는 망가져버린 참빗. 그래서 얼마후면 나갈 외박에 할머니께 선물해 드리기로 하고 구입했다.

그리고 며칠 후 외박기간에 할머니께 가서 짜잔~ 하고 선물해 드렸더니 아니 이걸 어디서 구했냐고 하시면서 놀라시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문득 생각나서 할머니께 선물해 드린거지만 할머니는 나름 그 이후로 주욱 찾으려고 하셨던 모양이었다. 그 옆에 계시던 할머님께서 종로에 가면 구할 수 있는 물건을 그리 어렵게 찾았냐고 타박하셨지만 할머니께서는 손자가 사다드린 그 빗으로 여전히 빗고 계신다. 그리고는 틈이 날 때마다 자랑스러워 하신다.

옆에 계시던 할머님 말씀처럼 종로 같은데 가서도 쉬이 구할 수 있는 물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흔해빠진 빗들일 지라도 손자로부터 받은 그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그 추억이 담긴 참빗을 사용하실 것이다.

참 빗

우울증 테스트

여러분도 이곳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내마음 고쳐 검진결과입니다.

진단내용

결과그래프

(%)

정신분열증

45

우울증

0

조울증

0

공황 장애

0

공포증

0

강박증

45

외상후 스트레스

0

범불안 장애

0

사회 공포증

0

신체화 장애

0

거식/폭식증

40

알콜 중독

0

불면증

0

스트레스

60

‘위험 없음'(0~24%)


현재로서는 해당 분야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어려움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언가 문제가 있을 땐 주변사람들과 의논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의논할 대상이 없을 때는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정신문제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경계 경보'(25~74%)


해당 분야의 정신장애를 의심할 수준은 아닙니다. 단지 당신의 몇 가지 상태는 진단을
받는 사람과 유사한 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일반인에 비해 정신적인 어려움이
높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어려움을 이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에는 적절한 상담을
통해 정신장애를 예방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정밀 진단 요망'(75~100%)


검진 결과 해당 분야의 진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경우는 해당분야의 장애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전문가의 세밀한 진단이 즉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곳에서 나타난
진단명이 모두 옳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때로는 다른 문제로 인해서 이런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의 상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은 내마음 고쳐의 전국 클리닉 검색을 통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는 고딩이었을지라도…

나에게는 기댈 곳이 필요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컴퓨터 말고는 아무런 생각도 필요하지 않았다. 오직 그것만이 필자에게는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분야였고, 미래라는 것을 꿈꿀 수 있는 분야였다. 그만큼 필자의 컴퓨터에 대한 의존도는 높았다. 의존도라기보다는 그것밖에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필자에게는 천사와도 같은 존재가 나타났다. 천사로밖에 설명 할 수 없는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피부는 백옥보다 더 하얗고 통통한 그녀의 모습에 마음까지 KTX로 질주해 왔다. 그리고는 3년을 좇아다녔다.

단지… 기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공인은 쉬운게 아니다.

슈퍼 쥬니어의 동해라는 친구가 중국 팬들이 있는 곳에서 욕설을 해서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동해라는 친구가 욕을 한 상황이 참 난감하다. 팬들이 경찰이 만들어 놓은 저지선을 뚫고 들어와서 쉬이 짜증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일반이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상황이고 말이지만, 공인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게다가 이게 동영상으로 촬영이 되어서 중국으로부터 한국까지 퍼져 왔다는게 또 문제다.

동해라는 친구가 그 상황이 있기 전에 개인적으로 심기가 불편했을 수도 있고 그 상황 자체가 그 친구의 기분을 나쁘게 했을 수도 있는데, 다시말하지만 공인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는 생각 밖에 안든다.

목사님을 비롯한 교회 직분을 맡은 사람도 말하자면 공인인데, 공인으로서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서는 성도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단지 마음 속에 저런 감정이나 생각이 들어서 저지시키는 수준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완전히 변화되어서 그런 마음이 아주 들지 않을 수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서 목회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나름 노력은 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공인으로서의 자세, 삶의 태도, 생각까지도 통제해야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 비로소 바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감성과 냉정

제목을 적으면서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작품의 느낌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글은 nonem_Blog에서 요즘 작업이라는 글을 보면서 필자에 대해 몇 자 끄적이려고 적었다.

필자는 어려서 눈물이 많았던 아이였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울 일이 많았는데, 그 때마다 부끄러움이나 스스럼 따위 없이 울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감성적이었다는 것의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런 상태로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었는데, 그 때는 –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 예능 계열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비록 집안 내력 상 예능에는 소질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림을 그린다던가 음악을 만든다던가 하는 것에의 관심은 그런 소질의 부재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만들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Dr. Halo라는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단지 끄적이던 것이 고등학교에서 이르러서는 포토샵으로 이러 저러한 작품(!)이라는 것을 만들기에 이르렀고, 지금도 그다지 특출나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학생들의 눈에는 괜찮아 보일 정도의 물건을 내놓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음악 분야에 있어서도 그랬는데, 중학교 때 미디의 존재를 알았지만 제반 장비를 마련하기에는 재정적 여건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기본 사운드 카드에 내장 되어 있는 것을 이용하는 프로그램만을 이용한 작곡이었다. 당시 컴포저라는 프로그램으로 마우스로 일일히 찍어 만들었던 음악들은 음악적 지식이 없었어도 나름의 감성을 표현한 작업들이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지만,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군에 입대하게 되면서 직책 상의 필요에 의해 그런 감성을 의도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게 되었다. 좀 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자리에 앉게 되면서 감성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서는 스스로도 놀랄만큼 냉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는데, 전 만큼이나 눈물이 나오지 않는것이다. 분명히 눈물을 흘려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종교적인 체험에서 그렇게 잘 나오던 눈물은 마치 가뭄이라도 난 것처럼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음악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어느새 마음 속에서 울려나던 멜로디들은 침묵을 이루었고 그래픽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도 전만큼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군을 전역한지 1년이 넘어가면서 전만큼은 아니지만 감성이 조금은 회복되어진 듯 하다. 마음 속을 울려주는 멜로디들은 여전히 울리지 않지만 이만큼이라도 회복되어진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 때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 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단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서 감성이 메말라 가는 것인가라는 질문도 던져보지만 그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과 비례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올 뿐이다. 다시 이전처럼 감성인으로 돌아가고 싶다.

경쟁력 만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문득 armarius: ex libris에서 빈털털이 세대라는 포스트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단지 개인의 경쟁력만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도구인가라는 거창해 보이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렇지 않다는게 필자의 결론이다. 개인의 경쟁력만으로는 그 삶의 질을 높일 수 없는 것이다. 유난히 필자의 주변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경우들에서 경쟁력 있는 개인이 집단의 무능력1으로 그 경쟁력이 묻혀지는 경우를 살펴왔기 때문이다. 개인의 경쟁력만으로는 그 개인이 속해 있는 집단을 변화시킬 수 없다.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만큼이나 힘든 것이다.

개인이 집단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개인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어야 하고 그 세력을 통해 집단이 변화되는 경우는 있겠지만 개인의 경쟁력만으로는 변화될 수 없다. 그렇다면 개인이 경쟁력과 함께 리더쉽2을 지니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과 개인만으로 성취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지 않나라는 질문이 따르게 된다.
개인이 리더쉽을 가지면 그 집단의 변화와 함께 개인의 삶의 질까지도 높일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건 리더쉽을 발휘 할 수 있을 때 얘기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리더쉽을 지닌 경쟁력 있는 개인은 묻혀버릴 수가 있다. 그런 개인은 또 다른 집단을 찾아가지만 그 집단 역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상사들이 있는 한 경쟁력있는 개인을 그 두각을 나타내기조차 힘들다. 수 년이나, 아니 수십년이나 지나서 그가 자리를 잡을 때 쯤이면 그는 이미 겁쟁이가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족과 남편 내지는 아내가 함께이기 때문에 자신이 이루어 놓은 기반을 잃지 않기 위해 겁쟁이가 되어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 두 번째의 질문에 대해 답해본다. 개인만으로 성취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지 않는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 수십년을 이 세상에서 살아왔지 않는가. 그런게 가능하다고 생각되는가. 개인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성취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나 되던가. 개인만으로 성취될 수 있는 일이 몇이나 되었다고 기억하는가.

필자가 좀 부정적인 시각만을 가지고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개인의 경쟁력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armarius에서 소개하는 책의 원서 또는 번역본을 읽어본 일이 없기 때문에 그 책이 주장하는 바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글을 읽으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들을 조금 더 해 봤다.

  1. 조금 다르게 말해 보자면 게으른 집단[]
  2. 여기서 말하는 리더쉽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이끄는 능력[]

나는 끝없이 나를 죽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 글은 누군가를 훈계하기 위함이나 가르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또한 본문에는 필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도록 만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바울(Paul)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했다. 필자 역시 스스로를 수 없이 죽이고 있다.1
자신을 죽이는 방법은 머리속에 있는 필자의 모습을 상상해 놓고 무언가 폭력적인 방법으로 죽인다.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은 실제 행동에 변화를 가져온다고는 할 수 없지만 스스로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가지도록 만들 수는 있다. 그런 상상을 하고 나면 조금 반성의 기미를 가지고 스스로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끝없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은 욕심을 가지는 건 인간의 기본 욕구일까. 그런 욕구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싶어하지 않은 인간도 있을까. 분명 있기는 할 것이다. 도저히 인간으로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단계까지 철저하게 내려간 그에게서는 그런 욕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부모님께서 목회자라는 것은 연단의 가장자리에서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했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는 이점을 가지게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 지인이 그런 상태2에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여태껏 연단 구경잘했으니 뭔가 잘난 소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둘 다 아니다. 연단의 가장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진지한 사고의 과정이 거쳐지지 않으면 그 연단의 가장자리에서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필자는 자신을 죽이는 행위를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사실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없다. 인간적인 사고로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게 된다. 영적인 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굳이 이득을 찾아본다면 조금 더 성화되어 있는 듯한 모습을 자신에게서 발견한다는 것일까. 이전 보다 조금, 아주 조금 더 성화되어 가는 단계의 일로에 놓여있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일까.

그 분도 마찬가지 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술도 마셔주고 하면서 자신에 대해 실망스러우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전에 그 분께 약속 드렸던 사랑 이야기 하나 해 드려야겠다. 사랑이야기라기 보다는 필자 인생의 단편이라고 표현해야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M_더보시게요?|접을까요?| 그녀와 난 동생의 소개로 만났다. 다시 말하면 그녀는 내 동생의 친구였던 셈이다. 그런 그녀는 필자와 진행되기 전의 어떤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필자의 기억속에는 동생이 소개 시켜준 뒤로부터의 기억밖에 없다. 왜냐하면 필자는 관심이 없는 것엔 철저히 뇌세포를 차단시키기 때문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필자와의 첫 만남은 내 동생이 입학했던 해인 2000년에 자기가 좋아하던 친구가 필자의 친구였던 모양인데, 그녀가 그 친구에게 전해달라고 십자가 팬던트를 줬던 경험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기억을 아무리 애써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지지가 않았다. 담아 두지 않았던 것은 찾아도 찾아지지 않는게 당연한 일이다.

쨌든 그녀와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과 사귀게 되는 수순과 기간을 훨씬 넘어설 정도로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물론 얼굴을 보지 않아도 동생이 소개시켜준 사람이기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었다고 할까.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로
여쭈었을 때 괜찮다는 응답이 왔었던 상대였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관계는 진행도 빨리
되는구나 싶었다.

당시 필자의 상황을 약술해보자면 당시 입대 후 자대에 배치받은지 1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리고 필자가 가장 힘들었던 교육담당관3을 맡기 직전에 사귀게 되었다. 동생에게 연락처를 받아서 연락을 취하고 사귀게 되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사귀었다.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 역시 필자를 사랑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가 이별선고를 하고 나서부터 발생한다. 이제 겨우 6개월여 밖에 사귀지 않았는데, 어제까지만해도 만남을 가지고 함께 외박4기간에 놀이동산에도 놀러갔던 그녀가 필자가 복귀하자 사랑한다면서 이별을 선고한다.

필자는 그녀에게 이별을 선고받기 전까지 이별하면서 상대방에게 우는 것을 찌질하다고 생각했다. 구차5하게 생각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전의 이별에서 헤어지자는 말을 들으면서도 하면서도 구차해지지 말자는 생각으로 쿨하게 헤어졌다. 하지만 그녀에게만은 그럴 수 없었다. 왜 사랑한다면서 떠나느냐 그러지 말자 하고 끊었지만 밤새도록 울면서 생각했다. 뭔가 내가 잘못한 게 있을까. 끝없이 생각해도 없었다. 며칠을 그녀에게 전화하고 문자도 보내봤지만 그녀는 그 후로 연락은 받았지만 다시 사귈 마음은 없다는 반응만 보일 뿐이었다.

그 때부터 필자는 비뚫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했는데, 하나님뜻이라고해서 만났는데 왜 이런 이별을 겪어야 했는지 끝없이 따지고 따졌다. 또 따지고 따졌다. 그렇지만 반응이 없으셨다. 무반응 대답도 없고 그랬다.

그래서 필자는 비뚫어지겠다고 했다. 건방지게도 하나님이란 존재를 부정하기로 했고, 갈 수 있을 때까지 가기로 했다. 인간이 끝이라고 느낄만큼 폐인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는 시작됐다. 교회는 가지 않았다. 고참들이 놀랄 행동을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술은 커녕 담배도 피우지 않았던 녀석이 대뜸 회식시간에 소주 한 잔 달라고 하니 얼마나 놀랄 일인가. 다들 아시겠지만 군대는 강압적인 명령체계와 상하관계가 또렷하기 때문에 고참의 말은 명령과 다름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하사(이등병)들은 고참이 술을 권하면 먹어야 했다. 하지만 필자는 초임하사시절 고참이 주는 술을 신학생이라는 이유로 받지 않았고, 그래서 괴롭힘도 많이 당했다. 그런 괴롭힘들을 겪으면서도 먹지 않았던 필자가 스스로 먹겠다고 한 것이다. 물론 그건은 소속한 부대 내에서 굉장한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는 휴가와 외박 기간에도 집에는 첫날과 마지막날 어떨 때는 집에 전혀 들리지 않고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시고 진탕 취하고 나이트에도 가고 단란한 곳에도 가고 그랬다. 물론 성적인 것에 있어서도 끝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one night stand도 서슴없이 했다. 그렇게 끝까지 가기로 했다. 그리고 자주하던 게임에서 만났던 아줌마와도 연애를 했다. 채팅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던 여자 아이는 돈을 뜯어내기위해 필자에게 접근하기도 해서 말하자면 원조교재 비슷한 것도 해 봤다. 참.. 인간이란 이렇게 유치하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며 전역이 다가왔다.

필자는 꽤나 술을 자주 마셨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당시에는 간부였기 때문에 군인이라고해도 돈을 벌었고 친구들과 함께 마시고 계산은 대부분 필자가 했다(ㅡ.,ㅡ) 1년여의 기간 동안에 그렇게 폐인이 되어있었다.그러면서도 그녀에 대한 마음은 쉬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녀를 어떻게해서든 잠시나마 취해서 잊어보려고 했지만 술은 취하지 않는다. 점점 술은 도수를 높여가고 나중에는 맥주나 소주는 마시지 않고 양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느새 폐인이 되어있었다. 체중은 100Kg에 가까워가고 있었고, 몇 년을 유지했던 착한 몸매는 망가져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생각은 어느새 술에 의지해 있었다. 하나님을 부정하더라도 일단은 인간으로서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나서 지난 1년을 되돌아봤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다만 그녀에 대한 증오심만 키워왔다.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된 감정은 이별을 기점으로 사랑한다며 떠나는 그녀에 대한 증오심으로 변했다.

운동을 시작했고,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생각은 정리되어 갔다. 뭔가 다른 집중할 거리를 찾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과도 좀 친해지고 어느새 전역의 시기가 다가왔다. 그러면서 정리되었던 것은 필자가 잘못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거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점차 하나님께 잘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는 복학했다. 한 학기를 보내고 나니 그녀가 같은 대학 대학원에 들어오면서 학부 조교를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는 한참을 망설였다. 그녀를 만나면 어떻게 하지 그냥 전처럼 인사해야할까 아니면 모른채해야할까. 그러는 사이에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역시나 자연스럽게 인사는 할 수 없었다. 애써 모른척하고 지나치고는 했다. 그렇게 한달여를 보내면서 이래서는 안되겠다싶어서 그녀가 일하는 조교사무실에 가서 어색하나마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헀다. 이런 저런 인사말을 주고 받은 후 침묵이 맴돌았는데, 그 순간이 왔다는 느낌이 되어 물어봤다.

왜… 왜 그 때 사랑한다면서 떠났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잠깐 그녀에 대해 적어보자면 그녀는 가족들 가운데 가장 믿음이 좋았고, 믿음의 호주로서 하나님앞에 바로서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마음의 안정을 위한 최고의 방법은 성경 묵상이며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표현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모의 길을 다짐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자의 동생을 통해 필자를 만나게 되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 때의 일에 대해 말해주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감동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녀 역시 필자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내려놓으라는 말씀을 하신것에 순종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게 맞는것이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그 때의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교육담당관을 맡기 직전에 그녀를 만났는데, 이 교육담당관이라는 자리는 실제적으로 비인가 자리인데, 부대의 특성상 부사관으로 한 자리 만든것이다. 실제로는 부대장인 중대장이 해야할 일을 분담할 수 있는 직책을 만든 것이다. 그런 자리에 하사6가 앉게 된 것이다. 한번도 해 본적도 없는 일을 맡게 되어서 그 직책을 수행하면서 하루에 잠을 1시간 이상 자 본 적이 몇 날이 안 되는듯 하다..
당연히 그렇게 부대에서 거의 사다시피

  1. 물론 실제로 죽이는 건 아니다. 자살의 의미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자살이지만 실제의 물리적인 몸을 손상하는 것은 아니다.[]
  2. 자신을 죽여야만 하는 상태[]
  3. 사실 이 직책은 중대급에서는 별도로 인가가 없어서 소대장의 임무지만, 부대 특성상 부사관이 맡고 있었다.[]
  4. 일반적으로 병사들이 가지는 휴가 같은 것[]
  5. 여기서 구차하다는 것은 없어보인다는 의미로 없어서 메달린다는 의미로 생각하시기 바란다.[]
  6. 부사관 신분 중 가장 낮은 계급[]

2007-04-07 플레이톡

01:11 이제야 집으로 들어왔어요`

12:39 오늘은 300님의 방송을 들으며 시작했습니다~

13:16 지금 밖이 꾸물꾸물한데, 우산을 안 들고 나가면 백방 비 맞겠죠? 그리구 봄인데 스웻종류 입고 나가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겠죠?

13:33 HAN님 제 out폴더에 친구수가 한 명 더 있는걸로 나와요~ ^^

15:02 여자후배랑 씨푸드 전문점 가구 있어여

17:25 근데 겁나비싸네요 ㄷㄷ

21:00 낮에 씨푸드 전문점 간 친구는 말 그대로 후배일 뿐입니다. 뭐.. 작업이고 뭐고 잘 될 수없는 케이스지요.

21:12 여자랑 식사하면 오빠되고 아빠되는건가요? 전 그럼 카사인건가요? 그런건가요? ㅡㅡ;;

21:21 하아~ 사실 그 여자후배한테 호감은 있습니다만, 사귀자고 할 만큼은 아니었던 거죠.. 제가 좋아하는 이상형은 조정린 같은 볼살에 통통하면 됩니다. 뚱뚱은 말구요..통통한 정도… 마른 여자들은 제가 어린시절부터 말랐던 영향인지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마른여자는 일단… 그래서 쇄골 보이는 사람들은 불쌍해 보여요… 쇄골에 호감을 가지지 않는다는거죠.

21:29 근 일주일간 온 방문자수를 한번에 갱신해버려주는군요

21:52 귓속말 이거 재미있어요~ ㅋㅋ… 비공개 글도 잇고..

22:05 지금부터는 미녀는 고롭데~ 볼거에혐~ 다음에 봐혐!

22:38 비항기 탈 때 휴대폰 사용하지 마삼~

22:52 하지 말라면 하는 당신을 사랑해효~♡

이 단어가 나에게 주는 의미…

in·car·na·tion n. [U.C]
1 육체화한 , 육체부여함;인간화;구체화모양;구체화, 실현
2 (성질·관념 의) 구체화으로서의 사람[사물], 화신of
   the poet as an incarnation of the spirit of the age 시대 정신 자체시인

3의학육아(肉芽) 발생
4신학】 [the Incarnation] 육신 《(神) 인간모습으로 나타나는

출처 : 나베르 딕티오나리(NAVER DICTIONARY)



의미라는 것은 사람에게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대단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내게 있어 의미라는 것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고 변하게 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그것과 상관 없는 곳에서 – 전혀 상관 없기에 더 의미 있게 다가온 – 그곳에서 발견했다.

성육신의 의미를 가진 단어 인카내이션… 성육신.. 나를 사랑하신 그 분께서 나를 위해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이번 주간은 천주교와 기독교에서 고난주간으로 보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인간이셨기 때문에 겪으셨던 고난…
그래.. 난 예수쟁이다… 그 누가 말했던 피와 뼈속까지 철저히 예수쟁이다.

인간이셨기 때문에 그 고난에 고통을 느끼셔야만 했던 그 분이셨다.

아직도 모르고 있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제 알 것일 당신이 기대됩니다.

2007-04-06 플레이톡

04:01 과제는 커녕 학교 총학 캠패인 포스터 때문에 밤 다 새버렸…;;;

06:12 이제 학교 갑니다. ㅋㅋ.. 1교시 수업.. ㄷㄷ

10:43 난 거주지역 부천… 도당으로 할까? ㅋㅋ

16:55 이햐~ 후배 놋북 보고 있는데, 이거 원… 상태 심각하네요… 밀어버리는게… ㅡㅡ;;;

17:03 와~ 이제 집에 간닷! 으흐흐흐…

수행평가의 이해와 오해

수행평가 정책이 학교현장에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우선 수행평가에 대한 교사들의 오해를 줄여야 한다.많은 교사들이 수행평가는 복잡하고 힘들며,수행평가의 결과가 반드시 성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번 특집에서는 교사들의 수행평가에 대한 개념상의 혼란을 줄이고 이해를 돕기 위해 수행평가의 의미를 정리한 글을 게재하였다. 또한 현재 수행평가와 관련하여 일선교사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10가지를 보여주고, 그 오해를 풀기위한 여러 방안들을 제시하였다. 이 글은 지난 8월6일 한국과학교육학회 하계 학술세미나에서 발표되었던 글 중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주 —

일반적으로 국가수준의 정책들이 성공적으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여러 종류의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 여러 조건 중에서 가장 본질적이면서 기초적인 조건이 바로 그 정책이 의미하는 바의 명료성이다. 만약 정책 그 자체의 의미가 명료하지 않다면 다른 여타의 조건이 다 갖추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정책은 자체의 모순이나 혼란에 빠져 성공적으로 시행될 수 없게 된다. 이는 인간의 모든 의도적 행동은 기본적으로 생각(이론)으로부터 발원하며, 생각이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정합된 체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행평가 정책이 현장에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따라서 수행평가라는 용어에 대한 개념의 명료화이다.
수행평가라는 개념의 의미가 불분명한 경우, 그러한 개념에 의거한 정책은 복잡한 현실에서 혼란과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현장에서 수행평가의 시행과 관련되어 제기되는 문제 중의 상당부분은 수행평가의 개념에 대한 혼란에 연유한다.
그러므로 수행평가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수행평가의 시행과 관련되는 사람들(정책입안자, 교육행정가, 교사, 학부모, 학생)간의 수행평가의 개념(의미)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일치된 견해를 공유하는 일이 필요하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수행평가의 의미에 대하여 가능한 한 자세히 밝혀 보고자 한다. 우선은 수행평가의 개념(의미)을 정리,
제시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수행평가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각종 유형의 평가 체제나 방법들이 수행평가의 개념과 어떻게
변별되는지를 기술한다. 다음에는 수행평가와 관련하여 잘못 이해되고 있는 여러 가지 사안들을 기술하고, 각각에 대하여 필자의
의견을 제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장학교에서 수행평가를 시행하는데에 발행할 수 있는 개념상의 혼란을 다소라도 제거하고자 한다.

수행평가의 이해

수행평가의 사전적 정의

모든 추상 개념들이 그렇듯이 수행평가라는 용어의 경우도 그 의미를 고정된 하나, 또는 몇개의 단어로 명료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언어로서 상정하는 의미는 불완전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복잡하고 추상적인 개념은 어차피 복잡하게 진술될 수밖에 없고, 그리하여 그 개념의 의미에 관한 사람들간의 완전한 일치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더구나 그 의미를 토대로 하여 집단적인 행위를 체계적으로 이루어내야 할 상황에서는 동일한 의미의 공유를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다. 그 하나의 방법이 우리가 사용하고자 하는 용어에 대한 일종의 사전적 정의들을 설정하고, 그 정의를 수용하는 일이다.

수행평가라는 용어는 일상적 용어가 아니므로 사전에 그 의미가 정의되어 있지 않다. 수행평가라는 용어는 현재 그 의미를 규정해 나가려는 학자들에 의하여 그 의미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수행평가에 대해서는 하나의 정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자들의 관점이나 강조점에 따라 그 정의는 달라진다. 그러나 물론 이러한 의미의 변용은 어느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정의는 더 이상 의사소통의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가 수집한 수행평가에
대한 정의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스티진스와 브리지포드(1982)는 수행평가를 “새로운 문제나 특정의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체계적 시도로서 실제 또는 모의상황에서 피평가자들이 나타내 보이는 반응들을 전문가인 평가자가 직접 관찰하고 판단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평가방식”이라고 정의한다. 하텔(1992)은 “피평가자들로 하여금 특정의 산출물을 만들어내거나 구체적인 활동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능력을 직접적으로 나타내 보일 것을 강조하는 평가방식”이 수행평가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편, 메렌스(1992)는 수행평가란 “피평가자의 반응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평가자의 관찰과 전문적인 판단을 특히 중시하는 평가방식”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국내 학자의 경우, 박도순(1995)은 수행평가를 “학생 개개인이 처한 ‘상황’이라는 요인을 고려하여 과제 수행과정과 결과에 대한 포괄적인 정보수집 방식”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백순근(1997)은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지식이나 기능을 나타낼 수 있도록 산출물을 만들어 내거나, 답을 작성(구성)하도록 요구하는 평가방식”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양길석(1999)은 “수행에 근거하여 관찰과 판단을 통해 이루어지는 평가”로 수행평가를 정의하고 이때 수행이란 의미를 “학습과제 및 문제 해결상황에서 학습자가 보여주는 구성적 반응으로서 관찰 가능한 학습자의 행동이나 학습의 산출물 및 그 기록물”이라고 부언 설명하고 있다.

위의 국외 학자들이나 국내 학자들의 정의에서 공통적으로 중시되는 개념들은 ‘과제의 수행’, ‘결과와 과정’, ‘직접적 관찰’, ‘전문적 판단’등이다. 따라서 필자는 수행평가의 핵심적 구성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 이러한 개념들을 종합하여 수행평가란 “평가자(교사)가 피평가자들(학습자)의 학습과제 수행과정이나 결과를 직접 관찰하고, 관찰 결과를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평가방식”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수행평가에 관한 정의는 위와 같이 평가의 대상(수행과정 및 결과가 평가의 대상이 됨), 평가하고자 하는 요소에 대한 측정의 방법(직접적 관찰), 측정결과에 대한 평가방식(전문적 판단) 등 수행평가 방식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들이 다른 종류의 평가방식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명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정의된다. 그러나 수행평가는 평가에 동원되는 구체적인 방법들의 범주를 구분함으로써 정의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방식은 물론 수행평가의 다른 중요한 의미들을 종합적으로 포괄하지는 못하지만 복잡한 수행평가의 의미를 간단하고 손쉽게 파악하게 하는 장점은 가지고 있다. 예컨대, 맥타이와 훼라라(1994)의 수행평가 개념도에 의하면 수행평가는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택형지필평가(진위형이나 배합형 포함)
이외의 다른 모든 방법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정의될 수 있다. 또한 그들의 개념도에 의하면 수행평가는 학생들의 선택적 반응 이외의 다른 종류의 반응들, 예컨대 학생들의 구성적 반응이나 특정 산출물, 학생의 특정활동이나 활동의 과정 등을 평가의 대상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평가를 수행평가라고 정의할 수 있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러한 정의는 수행평가의 본질적 요소들을 포괄적으로 진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정의만으로 수행평가를 정의하고자 한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복잡하고 추상적인 수행평가라는 개념을 쉽게 이해하는 안내적 기능은 잘 감당하는 정의이다. “선택형 평가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하는 평가”가 수행평가라고 한다면 수행평가는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 것인가! 물론 이러한 정의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수행평가의 중요한 부분을 상당 정도는 포함하고 있는 정의이므로, 일반인들에게 우선 간단하게 수행평가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정의로서는 큰 문제가 없는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평가의 방식(보다 엄격하는 측정의 방식)의 범주로 수행평가를 정의하는 것은 본질적인 정의방식은 아니다. 수행평가의 보다 본질적인 속성은 그것이 학생의 “구성적 반응”의 종류와 수준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는 점이다. [표 1]의 “구성적 반응”이란 항목 속에 제시된 각종 행위들이 구성적 반응들이다. 그리고 “특정 산출물”이나, “특정 활동”이라는 항목 속에 제시된 행위들도 실은 모두 구성적 반응들이다. 학생들이 연구보고서를 쓰는 것이나 무용을 하는 것, 그리고 토론을 하는 것 등은 모두 구성적 반응의 예들이다. 단지 구성적 반응의 예로서 그 종류나 수준이 다소 다른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구성적 반응이란 학생들이 학생 외부에 존재하는 인식의 대상(즉, 공부해야 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머리 속에 받아들여 기억해 놓았다가 다시 기억해 놓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식의 대상에 대한 다양한 지각적 내용들(혹은 정보)을 인식 주체자(학생)가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그들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유롭게 구성하여 외부로 방출해 보이는 반응을 의미한다. 최근의 보다 발전된 구성주의 인식론(constructivism)에 의하면 지식의 본질이나 생성과정에 대한 이해는 인식작용의 특징을 구성주의의 관점에 의하여 이해하려고 할 때에야 비로소 바르게 이해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수행평가가 재려고 하는 평가의 대상은 바로 이러한 의미의 학생들의 구성적 반응이다. 어떤 대상에 대하여 학생들이 지적으로 자유롭게 탐색, 추구하여 구성한 결과물, 즉 학생들의 구성적 반응을 토대로 하여 학생들의 성취의 종류나 수준, 또는 발달의 영역이나 수준을 평가하자는 것이다. 선택적 반응은 학생들로 하여금 특정 답지 중에서 어느 하나를 강제로 선택하게 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반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없다. 설사 머리 속으로는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구성된 결과에 대한 자유로운 표출은 억제되어 있다. 모든 구성의 결과는 외부의 타자가 이미 설정해 놓은 소위 ‘정답’이라는 선택지로 수렴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적극적 인식은 억제되고 수동적 인식만 장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평가에서는 평가의 대상이 기본적으로 학생의 구성적 반응이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만약 [표 1]에서 구성적 반응을 야기하는 것으로 설정된 평가(측정) 방법이 학생들의 구성적 반응을 유도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평가방법에 의한 평가를 수행평가라고 규정한 정의는 그 정도만큼 오류를 포함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표 1]에 의하면 단답형이나 완성형 평가방식에 의한 평가는 수행평가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단답형 문항이나 완성형 문항에 대하여 단 하나의 정답만이 있어
학생들이 이를 외워서 답한다면 그러한 평가는 수행평가의 범주에서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서술형이나 논술형 문항에 대하여 학생들이 미리 모범 답안을 외워 기계적으로 기술했다면 그러한 반응도 구성적 반응은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에 대한 평가는 역시 수행평가의 본질에서는 그만큼 이탈되어 있는 것이다.

수행평가와 유사한 용어와의 관계

수행평가라는 용어의 의미를 명료하게 하는 방법은 위에서와 같이 수행평가에 대한 정의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방법은 수행평가와 유사한 의미를 지니는 다른 종류의 용어들과의 관계를 분석해 보는 것이다. 본 글에서는 대안적 평가(alternative assessment), 진정한(참) 평가(authentic assessment), 역동적 평가(dynamic assessment), 직접적 평가(direct assessment)라는 용어들과의 차이를 기술함으로써 수행평가의 의미를 명료히 하고자 한다. 대안적 평가란 어느 특정한 평가 체제나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주류를 이루는 평가체제와 그 성질을 달리하는 평가체제를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 학교 사회에서 주로 사용하는 평가방법은 선택형 지필평가 방법이다. 따라서 객관식 선택형 평가방식이 아닌 평가방식은 대안적 평가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수행평가는 현재 현장에서 사용되는 주요 평가방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수행평가는 현재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선택형 평가방식에 대한 하나의 대안적 평가방법, 또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선택형 지필평가 방식도 미국의 경우 1940년도 도입의 초기 단계에서는 하나의 대안적 평가방법이었다고 한다.

진정한(참) 평가는 실제 상황에서 수행되는 행위를 토대로 하여 이루어지는 평가를 의미한다. 학생들의 수영능력을 평가하고자 할 때, 실제 수영장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수영을 하게 하고, 그 결과를 평가하는 경우, 그것은 참평가에 해당된다.
학생의 교통질서 의식이나 태도를 평가하고자 할 때 실제 거리에서 학생들이 하는 행위를 관찰함으로써 평가했다고 하면 이는 참평가라고 할 수 있다. 군인의 용기를 전쟁터에서 그가 수행하는 행위를 관찰함으로써 평가를 하는 경우, 이러한 평가 역시 참평가라고 할 수 있다. 수행평가는 참평가를 지향하는 평가이다. 그것은 참평가일 수도 있고, 참평가가 못되는 경우 참평가에 유사하려고 노력하는 평가이다. 영어의 말하기 평가에서 실제로 외국인과 말해야 하는 상황을 설정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이 말하는 능력을 평가하려는 수행평가는 거의 참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끼리 말하는 상황을 설정하고, 그 과정을 평가한다면 이는 참평가를 지향하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역동적 평가는 학생이 이미 학습한 학습의 결과나 이미 완료된 발달의 수준(또는 상황)보다는 학습의 과정 및 현재 진행 중인 발달 상황을 파악함으로써 학생이 미래에 나타내 보일 학습이나 발달의 가능성에 대한 전망을 중시하는 평가이다(한순미, 1999).
학생에게서 현재 발달하고 있는 능력이나 곧 발달할 가능성이 있는 능력들은 다른 학생들과의 ‘공동활동’ 상황에서 가장 잘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역동적 평가에서는 협동학습 상황을 특히 중시하고 이러한 상황 하에서 전개되는 교사와 학생간, 그리고 학생
상호간의 역동적인 관계를 평가의 대상으로 중시한다. 역동적 평가는 또한 학생들의 현재의 능력 뿐만 아니라 교사나 친구들과의 역동적 상호작용에 의하여 곧 발달하게 될 능력의 종류와 그 수준을 파악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발달의 과정, 즉 문제해결 전략의 사용과정이나 해결 전략의 발달 과정을 특히 중시하는 평가방식이다. 수행평가는 ‘과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역동적 평가와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역동적 평가가 학생의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평가에 보다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점에 비해 수행평가는 현재의 상태와 그것의 변화, 발달 과정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전자와는 구분된다.

직접적 평가는 평가하고자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나 국어에서 말하기 능력이나 체육에서 수영하는 능력을 지필검사를 통해서 한다면 이는 간접 평가이다. 도덕이나 윤리에서 학생들의 교통질서 의식을 평가하고자 할 때 지필검사로 평가한다면 이는 간접평가이다. 이러한 평가방법으로는 사실 우리가 재고자 하는 능력이나 태도를 제대로 잴 수가 없는 것이다. 수영실력은 수영장에서, 영어의 말하기 실력은 실제로 말을 하게 하는 상황에서, 교통질서 의식은 거리의 상황에서 재는 것이 직접 평가인 것이다. 수행평가는 가능한 한 직접적 평가를 지향한다. 직접적 평가가 가능하면 직접적 평가를 하되, 불가능한 경우는 가능한 한 평가하고자 하는 대상을 가장 타당하게 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직접적 접근을 시도하는 평가방식인 것이다.

수행평가와 유관한 평가관련 용어들과의 관계

수행평가의 의미를 가능한 한 명료하게 하기 위하여 위에서는 수행평가와 동의어로 이해하고 잘못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과 수행평가가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기술하였다. 이 부분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수행평가와 관계가 되는 여러 평가 관련 용어들이 수행평가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를 밝힘으로써 수행평가의 의미를 명료히 하고자 한다. 객관식 평가와 주관식 평가, 상대기준 평가와 절대기준 평가(목표지향 평가, 또는 준거지향 평가), 진단평가와 형성평가 그리고 총괄평가, 결과평가와 과정평가, 그리고 실기평가와 포트폴리오 평가 등이 수행평가와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기술한다.

가. 객관식 평가, 주관식 평가와 수행평가와의 관계

어떤 사람들은 평가의 종류를 객관식 평가, 주관식 평가, 그리고 수행평가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는 잘못된 구분이다. 객관식 평가란 동일 평가 대상에 대한 복수 평가자들의 평가(채점) 결과가 동일한 평가방식이다. 즉, 평가의 과정에서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평가방식이다. 객관식 평가에서는 또한 응답자의 주관적 반응이 대체로 억제된다. 객관식 평가에서 응답자는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가 없고 오직 출제자의 의도에 맞게, 그리고 출제자가 설정해 놓은 방식의 범위 내에서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가 있다. 객관식 평가의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사지선택형 평가방식(엄밀히는 측정방식)이다. 정답이 4가지 답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항에 대한 학생의 반응은 누가 채점하더라도 동일하게 나온다. 그리고 학생들은 4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이외의 어떠한 다른 방식으로도 반응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자신의 자유로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이러한 특징은 진위형(OX형)이나 연결형같은 형식도 마찬가지이다.

주관식 평가란 그 반대로 평가(채점)의 과정에서 평가자들의 개인적 생각이나 판단, 즉 주관이 포함되는 평가방식으로서, 학생의 동일반응에 대한 평가(채점)의 결과가 평가자마다 다르게 나오게 된다. 주관식 평가의 경우, 평가의 과정에 평가자의 주관이 포함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평가 문항에 대한 기계적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즉, 주관식 문항에서 요구되는 올바른 반응이란 획일적인 방식으로 정형화 되어질 수 없는 것들로서 개개의 반응에 대하여 평가자가 질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주관식 평가란 학생들이 자신의 주관적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도 있는 평가방식이다. 서술식이나 논술식 문항에 의한 평가방법이 대표적인 예이다. 수행평가는 주관식 평가방식을 택한다. 전술한 대로 수행평가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구성적 반응물(즉, 구성의 결과물)을 평가의 대상으로 한다. 자유롭게 구성되어 자유롭게 표현된, 그리하여 학생들의 주관이 듬뿍 배인 반응들은 주관적 평가로서만 타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 객관식 평가로는 학생들의 구성적 반응을 타당하게 측정, 평가할 수가 없다.

나. 상대기준 평가, 절대기준 평가와 수행평가와의 관계

상대기준 평가(Norm-referenced evaluation)는 교육성취도를 평가할 때에 “집단 내의 상대적인 서열(석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평가방식”으로서 선발, 분류, 배치상황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는 방식이다. 절대기준 평가(Criterion-referenced evaluation)는 학생들의 교과별 학업성취도를 평가할 때에 집단 내의 다른 학생들의 성취도와 비교하여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잘 설정된 교수·학습 목표를 준거(기준)로 하여 그 목표의 달성도를 평가하는 방식”을 의미한다(Nitko, 1984).

상대기준 평가에서는 한 학생의 성취 정도를 평가할 때, 집단 안의 다른 학생들과의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서 이루어짐으로 그의 성취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다른 학생들이 더 잘했다면 그의 성취는 낮은 것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절대기준 평가에서는 한 학생의 성취 정도를 다른 학생의 성취 정도와 비교함이 없이, 오직 사전에 설정된 기준(준거, 또는 목표)에만 비추어 평가하기 때문에 집단 내에서의 그의 상대적 성취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개인들은 오직 주어진 교수-학습 목표에 어느 정도나 도달했느냐를 중심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이러한 교수 – 학습 목표나 그 도달 정도에 대한 사전의 평가기준 체계는 일종의 절대성을 지닌다. 즉, 이미 설정된 준거나 기준은 그 기준이 적용된 집단의 성취 수준이나 유형에 상관없이 오로지 기준 자체의 의미에 의해서 집단 구성원을 평가하게 되는 일종의 절대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집단원 전체가 기준 미달이면 그 수에 관계없이 전원 모두 탈락, 또는 실격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절대기준 평가에서는 사전에 잘 정의된 교수-학습 목표를 기준으로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절대기준 평가를 목표지향 평가(Objective referenced evaluation)라고도 부르기도 한다(Gronlund & Linn, 1990).

상대기준 평가나 절대기준 평가는 교수-학습의 중간과정 단계에서 적용될 수도 있고, 최종 단계에서 적용될 수도 있다.
예컨대, 교수-학습의 중간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다음과 같은 평가 상황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즉, 학생들의 독후감 과제물을 사전에 명료하게 설정한 평가(채점)기준에 의하여 상, 중, 하로 평가하거나 10점을 만점으로 하여 점수를 매겼다면 이는 절대기준 평가의 적용이다. 그러나 30명이 한 집단일 때 독후감 과제물을 30등으로 구분했다면 이는 상대기준 평가를 적용한 셈이다. 이와 같은 경우, 과제물은 30등급으로 서열화해야 하는 상대기준 평가가 오히려 더 복잡하고 어려운 편이다. 그러나 절대기준 평가의 경우는 기준(준거)을 명시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

한 학기나 한 학년의 마지막 최종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평가의 상황은 다음과 같을 수 있다. 만약 중간과정에서 이루어진 평가의 결과들(상대평가이건 절대평가이건 관계없이)을 점수화하여 합산하고, 합산 결과를 토대로 하여 서열(석차)를 매긴다면 이는 상대기준 평가이다. 그러나 최종 평가단계에서 이루어질 등급화(상, 중, 하 또는 수, 우, 미, 양, 가 등의 다른 종류의 등급화)의 기준뿐 아니라 중간단계의 평가 결과들이 어떻게 종합되어 최종단계의 평가에 투입되는가에 대한 기준도 사전에 명료하게 설정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평가는 절대기준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수행평가는 상대기준 평가나 절대기준 평가와는 그 관심하는 측면이 다른 평가방식이다. 수행평가의 주요관심은 평가하고자 하는 대상의 성격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그러한 평가의 대상을 어떠한 방법으로 평가(측정)하느냐와 같은 종류의 문제에 관심을 두는 평가방식이다. 상대 또는 절대기준 평가는 평가(측정)의 결과를 어떠한 방식으로 등급화 또는 점수화하느냐(채점하느냐)의 차이에 따라 구분되는 평가방식이다. 상대평가는 서열(석차)이 점수가 되는 방식이고, 절대평가는 목표에의 도달 정도가 점수가 되는 평가방식이다. 수행평가의 결과는 상대기준 평가식으로 채점될 수도 있고, 절대기준 평가식으로 채점될 수도 있다. 위의 예처럼 학생들의 실험보고서는 사전에 잘 규정된 기준에 의한 등급이나 평어 등으로 점수화될 수도 있고(절대평가식), 사전에 명시된 기준없이 보고서들 상호간의 비교를 통한 서열로서 점수화될 수도 있다(상대평가식).

한편, 절대평가와 수행평가가 어떻게 관련되는지는 다음과 같다. 절대기준 평가에서는 교수·학습 목표들이 평가의 기준이 된다.
설정된 목표가 어느 정도나 달성되었는가를 밝히는 일을 평가의 목적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절대평가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교수·학습 목표 체계(우리는 그것을 성취기준이라고도 부른다)를 명료하게 설정하여야 한다. 그리고 설정된 목표들이 어느 정도나 어떻게 달성되었을 경우를 합격, 불합격, 또는 상, 중, 하라고 판정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도 사전에 잘 설정해 놓아야 한다.
이러한 의미의 판정을 위한 등급화 기준을 작성하는 일도 절대기준 평가에서는 중요한 부분이 된다. 여기에서 어느 목표(또는 목표 영역)에서 그 목표가 의미하는 바를 학생들이 어느 정도 성취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목표가 의미하는 바, 지식이나 능력 또는 태도 등이 측정(평가)되어야 한다. 이 때 어떤 방식으로 측정·평가하느냐의 문제에서 수행평가가 개입된다. 이때 목표가 의미하는 바를 사지선택형 지필 평가방식으로 측정할 것인가 아니면 논술형 평가방식으로 할 것인가 혹은 토론을 시키고 관찰을 통해서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후자의 방법들이 바로 수행평가식 방법인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평가를 절대평가와의 관점에서 본다면 수행평가는 “절대평가 체제를 구성하는 하나의 하위 영역인 ‘측정(평가)방법’이란 영역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인 것이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수행평가를 목표와 관련하여 정의한다면 “목표가 의미하는 바를 가장 타당하게 측정·평가하기 위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 진단, 형성, 총괄평가와 수행평가와의 관계

진단평가는 수업 시작 전 학생들의 출발점 행동을 파악하기 위한 평가활동이다. 진단평가의 결과는 그리하여 교사의 교수 계획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교사는 처음부터 진단평가의 결과를 고려하여 자신의 수업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이미 세운 계획을
수정하기도 한다. 수업 효과를 높이는데 진단평가는 기여하는 바가 크다. 형성평가는 수업의 과정에서 학생들의 수업 진행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평가활동이다. 형성평가의 결과는 교사들이 자신의 교수 행위를 수정하기 위한 기초 정보로서 활용된다. 교사들은 형성평가를 토대로 교수내용을 쉽게, 혹은 어렵게 수정하기도 하고 진도를 빠르게, 혹은 느리게 나가기도 한다. 형성평가는 교수의 효과를 높이는데 필수적인 장치로서 많은 평가관련 전문가들이 이를 강조하고 있다.

총괄평가는 한 단위의 수업이 끝난 후에, 한 단위의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설정된 수업 목표가 어느 정도나 달성되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평가활동이다. 이때 한 단위의 수업이란 한 단원의 수준에서부터, 한 학기, 또는 한 학년 전체일 수도 있다. 한 단위의 기간이 짧은 경우, 그러한 단위 수업에 대한 총괄평가의 성격은 진단평가나 형성평가에 접근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총괄평가의 주 목적은 평가의 결과가 교수·학습 과정에 환류되어 교수·학습의 질을 높이는 것보다는 일정 단위 시간에 걸친 교육행위의 효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는 데 있다. 수행평가와 이들 평가와의 관계는 간단하다. 수행평가는 이들 세 가지 유형의 평가들이 활용할 수 있는 평가(측정)의 방법 중의 하나이다. 즉, 진단평가를 수행 평가식으로 할 수 있다. 형성평가도, 그리고 총괄평가도 수행평가식으로 할 수 있다. 진단, 형성, 총괄평가를 시행할 때에 선택형 지필검사로 하지 않고, 수행평가와 관련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라. 결과평가, 과정평가와 수행평가와의 관계

일반적으로 수행평가는 학습의 결과보다는 학습의 과정에 대한 평가를 보다 중시하는 평가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수행평가를 강조할 때는 언제나 학습의 과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그러므로 결과평가나 과정평가의 의미와 그것이 수행평가와 어떻게 관련되는가를 밝히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결과평가는 학습의 결과를 평가하는 평가방식이고 과정평가는 학습의 과정을 평가하는 평가방식이다. 여기서 결과평가는 앞에서 기술한 총괄평가와 관련된다. 일정 시간의 단위 교수-학습 활동이 이루어진 다음에 그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평가가 총괄평가이므로 총괄평가에서는 학습의 결과가 평가의 핵심이 된다. 중간의 과정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인 결과가 좋았다면, 즉 과정에는 문제가 많았지만 최종단계에서 처음에 설정된 교수-학습 목표가 달성되었다면 그것으로써 족하다는 가정이 결과평가에는 깔려 있고, 이러한 가정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최종 결과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바람직한 결과는 대개 바람직한 과정의 산물인 경우가 많고, 과정에 충실하다는 것은 결과와 관계없이 의미있다는 점이 과정평가 설정의 근거가 된다. 특히 교수-학습 상황에서는 과정평가의 결과가 바로 교수-학습의 질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과정평가는 그대로 형성평가와 동일한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과정평가의 성격이나 의미를 좀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수학 문제해결 과제를 주었을 때 정답을 맞춘 것 못지 않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했을 때의 과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다. 과정은 다 옳았는데 마지막 답(결과)만 틀린 경우, 결과만 평가할 때는 완전히 틀린 것이 된다. 그러나 보다 타당한 평가는 이런 경우 과정을 고려하여 상당한 점수를 주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과정평가의 의미는 분명하며,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을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예컨대, 교사는 문제해결을 위한 계획수립 과정, 계획된 대로 조사활동을 수행해 나가는 과정, 보고서 작성 및 결과 보고과정과 토론 등 전 과정과 결과들을 평가해야 한다는 진술에서 의미되는 ‘과정’은 앞의 ‘과정’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이 경우, 문제해결의 전 과정을 평가한다는 것의 의미는 앞의 경우보다 분명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제기되는 ‘과정’이란 개념의 불명료성은 과정평가라는 평가행위에 혼란을 야기시킨다. 후자의 경우 ‘과정’이란, 문제의 제기에서부터 문제가 종결되기까지의 전 시간 동안에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활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경우 하나의 과정을 구성하는 시간적 단위는 몇 시간일 수도 있고, 몇 주간일 수도 있으며, 몇 달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적 단위 시간 안에서 발생하는 활동(행위)의 종류 역시 몇 가지 활동으로부터 수십 수백 가지 활동들로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과정’의 성격이 이와 같이 복잡한 경우 ‘과정평가’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으며, 만약 과정평가가 상식적으로 생각되는 것처럼 “전 과정”을 다 평가하는 것이라면 과정평가는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과정’을 시간적 개념으로 파악하자면 연속적이다. 그리고 활동으로 파악하자면 특종 활동들의 연결들이다. 연속적인 흐름의 모든 순간들이 다 평가의 대상은 결코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의 연속적 흐름으로서의 과정 중에서 ‘특정 순간’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활동들 모두가 다 평가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 ‘특정한 활동’들이 선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정평가라고 해서 ‘전 과정’을 다 평가한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과정 중 중요한 일부를 선택하여 평가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어떤 시간과 어떤 활동이 과연 평가의 대상이 되는가를 결정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과정을 구성하는 시간과 활동의 단위들을 얼마나 세밀하게 쪼개어 평가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인 것이다. 과정평가의 성격을 규정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과정평가의 결과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과정평가의 기본 성격을 형성평가적인 것으로만 한정한다면 과정평가의 결과는 어디까지나 교수-학습 과정의 개선을 위한 정보로서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행과 같이 과정평가를 중시한다는 전제 하에 여러 과정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점수화하여 총괄평가 점수에 포함시키는 것은 과정평가의 형성평가적, 성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개념적으로 과정평가의 정의를 형성평가적으로 내린다면 위와 같은 평가방식은 더 이상 과정평가가 아닌 것이다. 교수-학습의 여러 과정에서 평가를 하고 결과를 점수화하여 총괄평가에 포함시키는 것을 과정평가라고 볼 것인가 아니면 평가는 하되(이 경우 평가란 관찰하고 해석하며 판단하는 행위) 점수화하지는 않고 교수의 행위를 개선하기 위한 자료로서만 활용하는 것만을 과정평가라고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선택하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수행평가가 이러한 의미의 결과평가 또는 과정평가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는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즉, 수행평가는 하나의 측정·평가의 방법으로서 결과평가나 과정평가에 모두 관계된다. 수행평가는 결과평가의 하나의 방식으로서 채택될 수 있으며,
과정평가의 한 방법으로서 채택될 수도 있다. 수행평가가 결과평가나 과정평가를 다 포함하고, 특히 과정평가를 중시하는 평가방식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결과평가나 과정평가가 교육평가에서 다 중요한 평가의 방식들인데 그러한 평가를 시행하는 하나의
방식, 그러나 가장 중요한, 그래서 반드시 사용되어야 하는 평가방식이 수행평가인 것이다.

마. 실기평가 및 포트폴리오 평가와 수행평가와의 관계

실기평가만이 수행평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포트폴리오 평가만이 수행평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실기평가나 포트폴리오 평가와 수행평가와의 관계는 논의가 필요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즉, 실기평가나 포트폴리오 평가는 앞의 [표1]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수행평가의 기법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물론 포트폴리오 평가는 수행평가의 대표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수행평가는 아닌 것이다. 실기평가나 포트폴리오 평가를 했을 경우 모두 우리는 수행평가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수행평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전에도 학교 현장에서는 이미 교과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실기평가를 실시해 왔다. 그러므로 우리의 학교 현장에서는 이미 수행평가를 시행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수행평가란 것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실기평가를 해 왔음으로 우리는 이미 수행평가를 시행해 온 것이며, 따라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수행평가 문제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수행평가의 범위는 넓고 그 심도는 깊다. 극히 부분적이고 초보적인 수준의 수행평가도 있고, 전체적이고 본격적인 수준의 수행평가도 있다. 단순한 실기평가에 의한 수행평가는 전자에 해당되고, 복잡한 포트폴리오 평가에 의한 수행평가는 후자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우리가 해왔다는 수행평가는 극히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수행평가이었으나 앞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수행평가는 교육의 질적 향상에 의미있게 기여할 수 있는 수준높은 수행평가인 것이다.

수행평가에 대한 오해

현재 수행평가와 관련하여 현장의 많은 선생님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내용들을 10가지 정도로 정리하여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수행평가는 복잡하고 힘들어서 현재의 여건 하에서는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평가방식이다. 따라서 수행평가는 여건이 어느 정도 성숙한 다음에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오해

수행평가에 대한 위와 같은 생각은 현재 현장의 많은 선생님들이 가지고 계신 거의 보수적인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옳은 생각도 아니다. 부분적으로 옳고, 부분적으로 틀린 생각이다. 그러나 수행평가가
비교적 낮은 수준에서 부분적으로 시행될 수도 있는 평가방식이라면 위의 생각은 옳은 생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학교의 현장에서는 특정 교과목, 예컨대, 체육, 음악, 미술과 같은 교과에서는 이미 수행평가가 시행되어 왔으며, 그 이외의
교과에서도 교사에 따라서는 수행평가를 부분적으로 실천해 온 경우도 있다. 물론 그러한 수행평가가 완전한 수준에서 전면적으로 시행된 것은 아니지만 불완전한 상태로나마 이미 시행되어 왔다는 사실은 위의 생각이 반드시 옳은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수행평가를 완전한 수준에서, 그리고 전면적으로 시행하려고 한다면 현재의 여건에서는 그 실행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불완전한 수준에서, 그리고 부분적으로 시행하려고 한다면, 그 실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평가의 시행이 현재로서는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위의 생각은 잘못된 생각인 것이다. 수행평가의 실시와 관련하여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보다는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수행평가를 착실히 시행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수행평가의 시행을 보다 본격화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2.수행평가는 모든 학교에서,모든학년,모든교과, 그리고 교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내용 영역(모든 단원)에 대하여 시행되어야 한다는 오해

위에서 제시한 국가 문서들의 내용(“교과학습발달상황의 평가는 선택형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로 구분하여 실시한다”)에 의하면 수행평가는 일단 시행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즉, 모든 학교, 학년, 그리고 교과에서 수행평가를 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특정 교과의 모든 단원 영역에 대하여 수행평가를 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는 않다. 특정 교과의 어느 영역을, 어떠한 방법으로, 얼마나 자주 평가(수행평가)할 것이며, 수행평가의 세부기준(배점)이나 반영비율, 성적처리 방식과 결과의 활용방법 등은 모두 교과협의회에서 학교와 교과의 특성을 고려하여 자율적으로 계획하고, 단위 학교의 성적관리위원회와 학교장이 이를 단위학교의 실정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결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국가 수준에서는 수행평가 실시와 관련된 거의 대부분의 내용을 단위 학교에 위임한 셈이다. 물론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강제 의무사항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단위 학교에 위임되어 있다. 그리하여 여건이 어려운 학교에서는 최소로 할 수 있다. 예컨대, 여건이 가장 열악하여 한 교사가 약 1000명
정도의 학생에 대하여 수행평가를 하여야 할 경우, 1학기 또는 1년에 단 한 번만 가장 수월한 형식(단답형이나 완성형 또는 간단한 서술식 등으로)으로 수행평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이러한 형식적인 수행평가는 수행평가 본연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므로 보다 타당한 조치는 이러한 상황(수행평가가 의미있게 시행되는 일이 절대로 불가능한 상황)하에서는 수행평가를 시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정책을 공식화 하는 일이다.

3.모든 수행평가의 결과는 점수화되어 학생의 최종 성적을 산출하는데 포함되어냐 한다는 오해

평가의 결과를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 평가는 진단평가, 형성평가 그리고 총괄평가로 구분될 수 있으며 수행평가는 이 세 가지 평가 방식에 다 같이 사용될 수 있다고 전술한 바 있다. 모든 수행평가의 결과를 점수화하여 최종 성적을 산출하는데 사용한다는 것은 수행평가의 결과를 오로지 총괄평가의 성격으로만 사용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수행평가의 결과는 총괄평가뿐만 아니라 진단평가와 형성평가에도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다. 오히려 형성평가에 더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즉, 학생의 최종 성취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사의 진행되는 교수 행위와 학생의 진행되는 학습 행위를 보다 효율적인 방향으로 수정하는데 적절한 정보를 얻기 위한 평가, 즉 형성적 평가의 목적으로 더욱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점수화 하는 것, 그리고 점수화 하는 것만이 평가라고 잘못 인식하여 왔다. 따라서 점수화하지 않는 것은 평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물론 점수화하는 것이 평가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평가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또한 성적에 포함되지 않는
평가, 즉 학기말이나 학년말 성적 합산에 포함되지 않는 평가(점수화)는 평가가 아니거나 평가의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점수화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평가일 수 있고, 합산되지 않는(성적에 포함되지 않는) 점수화나 평가가 오히려 더 중요한 평가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 수행평가의 결과 역시 얼마든지 점수화되지 않을 수도 있고, 최종 성적에 포함되지 않는 형식으로 시행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러한 평가가 오히려 더 중요한 평가인 것이다. 수행평가의 결과를 어떠한
방식으로 점수화하는가는 학교의 결정에 달려 있는 문제이다.

4.수행평가는 결과보다는 오히려 과정을 더 중시하는 평가다. 그러므로 수행평가에서는 수업의 모든과정이 모두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오해

교육의 평가에서는 학업 성취의 결과를 평가하는 것도, 그리고 학업 성취의 과정을 평가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단지 과정에 대한 평가를 특히 중시하는 것은 그 동안 평가가 너무 결과에만 치우쳐 왔고, 과정에 대한 평가를 소홀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밀한 의미에서 ‘결과 평가’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의 일정한 시간 단위 안에서 이루어진 종결(결과)이라는 것은 그보다 긴 시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의 긴 과정의 특정부분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과평가는 어떤 의미에서는 과정평가의 한 부분이므로 이 두 종류의 평가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수행평가에서는 이 두 종류의 평가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수행평가에서는 결과보다도 과정이 더 중시된다는 믿음은 올바른 믿음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과정에 대한 평가는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과정에 대한 평가를 등한시했기 때문에 앞으로 과정에 대한 평가를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과정을 평가한다고 수업의 모든 과정을 다 평가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평가보다는 수업인 것이다. 수업의 결과와 과정을 바람직하게 운영해 나가기 위해서 평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가는 수업을 돕는다는 전제하에서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교육행위인 것으로서 평가를 위하여 수업을 희생한다는 명제는 성립될 수 없다. 앞장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과정이란 시간이나 활동의 연속적인 흐름이다. 시간이나 활동의 흐름 중에서 어느 순간, 어느 활동을, 그리고 어느 정도의 빈도를 평가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은 평가하는 주체가 결정해야 할 의사결정의 문제다. 그러므로 수행평가가 과정을 강조한다고 해서 수업의 모든 과정이 평가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5.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성적을 산출하기 위해서 지필식 평가와 수행평가를 병행해서 실시하여야 한다는 오해

이러한 생각은 두 가지 점에서 잘못된 생각이다. 첫째는 지필식 평가와 수행평가는 배타적으로 이분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필평가의 어느 형식, 예컨대 서술형이나 논술식 지필평가는 중요한 수행평가 방식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위와
같이 구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두 번째는 첫 번째 문제에 논리적으로 포함되는 문제로서 지필식 평가가 그 자체 내에 수행평가적 방식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지필식 평가만 하더라도 수행평가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별도의 다른 종류의 수행평가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선택형 지필검사를 평가방식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면, 이 방식은 우리의 정의상 수행평가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수행평가는 하여야 한다는 지침에 따라 선택형 지필검사 이외의 다른 종류의
수행평가 방식, 이를테면 서술형이나 논술형, 연구보고서나 실험결과물 제출, 포트 폴리오 방법 등을 사용하여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6.객관식 선택형 평가방식은 학교 교육적 상황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못한 평가방식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볼때 객관식 선택형 평가방식은 모두 수행평가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오해

그렇지 않다. 객관식 선택형 평가방식이 모든 상황에서 무조건 바람직하지 않은 평가방식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선택형 시험이 가장 적절한 평가방식일 수도 있다. 예컨대, 한 학기에 10권의 책을 다루고, 학기말 시험에 그 10권의 책 내용 전부에서 골고루 시험문제를 내며, 평가의 주 목적이 학생들이 그 10권의 책 내용 중 중요한 개념들이나 개념들 간의 관계를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 또는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라면 가장 타당하게 평가하는 방법은 선택형 평가방식인 것이다. 즉, 이러한 평가상황에서 중요한 평가의 대상은 ‘기억하고 있는 지식의 양과 종류’이다. 지식을 많이 기억한다는 것이 필요없는 일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물론 지식을 기억하는 것만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을 때는 문제가 있지만 지식의 기억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며, 따라서 그러한 성취 정도를 평가하는 것 또한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택형 시험을 전적으로 폐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닌 것이다. 선택형 시험이 필요한 경우는 선택형 시험으로, 수행평가 방식이 필요한 경우는 수행평가 방식으로 즉, 상황에 적절하게 평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바람직한 상태는 선택형 시험과 수행평가를 병행하는 것이다. 선택형만 고집하는 것도, 수행평가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도 바람직한 평가방법은 아닌 것이다.

7.수행평가는 기존의 평가와는 다른 새로운 평가가 법이라는 오해

최근에 수행평가라는 용어가 널리 확대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수행평가라는 평가방식은 기존의 평가방식과 완전히 새로운 어떤 또 하나의 새로운 평가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미 앞에서 전술한 바 대로 수행평가라는 용어는 최근에 새롭게 쓰이고 있으나 그 용어가 의미하는 종류의 평가기법은 특정 학교나 교과에서 그리고 특정 교사들에 의하여 이미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예컨대, 서술형, 논술형 평가는 수행평가의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평가방법은 수행평가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이전부터 우리의 학교 현장에서 이미 부분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행평가 방식의 일부 기법으로서 서술형, 논술형 평가 방법이 이미 사용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최근 시행하고자 하는 수행평가 방식에 새로운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수행평가적인 방법을 이미 사용해 오고 있기는 했지만 최근에 논의되는 수행평가 방식은 그 범위나 심도에 있어서 기존의 평가방식을 휠씬 초과하는 평가방식이다. 예를 들면 ‘포트폴리오식’ 평가방식은 수행평가의 대표적인 방법으로서 이러한 평가방법은 수행평가라는 용어가 새롭게 소개되면서 우리의 학교 현장에 도입된 평가방법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포트폴리오 방식만이 수행평가라고 말하기도 한다(물론 잘못된 생각이지만). 그리고 수행평가는 특히 과정을 중시하는 평가라는 점에서 기존의 평가방식과는 다른 것처럼 보이나 기존의 평가가 과정을 무시한 것은 전혀 아니다. 단지 우리가 실천의 과정에서 소홀히 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수행평가가 완전히 새로운 평가방식은 아니지만 수행평가라는 용어를 도입하면서 그에 따른 새로운 평가방법이 도입된 것은 사실이다.

8.수행평가는 어떠한 방법으로 시행이 되든 기존의 선택형 평가방식보다는 더 바람직하다는 오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잘못 이루어지거나(즉, 타당성이 결여되거나) 형식적으로 시행된 수행평가는 섬세하고 사려깊게 고안되어 실시된 선택형 평가방식보다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수행평가라고 해서 무조건 다 좋은 것은 아니며, 기존의 평가방식보다 더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좋은 평가, 바람직한 평가란 무엇보다도 우선 평가의 목적에 적합한 평가이어야 한다. 평가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면, 그것이 아무리 본격적인 수행평가 방식으로 평가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바람직한 평가는 아닌
것이다. 목적과 관련이 없거나, 혹은 목적과 관련이 잘못 맺어진 상태에서 이루어진 수행평가는 그렇지 않은 선택형 평가보다도 오히려 낮은 수준의 평가방식일 수 있다. 만약 어느 특정 교과서에서 평가의 중요한 목표가 학생들의 폭넓은 기본개념에 대한
이해라고 하면 이 경우는 선택형 시험이 평가방식으로서는 한 가지 제목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학생들의 생각을 전개해야 하는 논술형 방식보다는 더 타당하고 의미있는 평가방식인 것이다.

9.수행평가는 우리의 실정에 맞지 않는 외국의 평가 방법으로서 국가(교육부)가 이를 강제로 도입,적용하고 있는 것이라는 오해

전술한 바와 같이 수행평가를 본격적으로 완전한 수준에서 시행하려 한다면 우리의 현실 여건이 이를 감당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우리의 현재 여건 하에서는 수행평가를 전혀 실시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교육의 여건이 현재보다도 훨씬 열악한 지난 날에도 신념있는 교사들은 나름대로의 수행평가를 실시한 적이 있다. 사실 수행평가의 실시문제는 정도의 문제이지 양극 중의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식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평가가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오해이다. 수행평가가 외국에서 수입한 평가방식이라는 생각도 맞는 생각은 아니다. 우리의 경우, 고려나 이조 때부터 시험으로서 수행평가 방식이 사용되어 온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시를 짓거나,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등 문·무과 인재를 등용하기 위한 과거시험의 방식은 바로
수행평가 방식의 전형적인 예들이다(백순근,1999). 물론 수행평가라는 용어를 생성시키면서 평가와 관련되는 산만하고 광범위한 요소들을 체계화하여 우리의 평가관행을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서양의 교육 선진국들이었다.
그들은 객관식 선택형 평가방식만으로는 교육평가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철저히 느끼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못된 평가관행을 개정해야 한다는 절실한 인식이 있었다. 그 결과 그들은 비교적 오래 전부터 거의 모든 교육적 평가상황에서 수행평가 방식을 시행하였던 것이다. 수행평가의 적용이나 확대여부는 교육의 본질을 구현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보편적인 평가방식이지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변별적으로 선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10.수행평가의 비율은 높을수록 바람직하다는 오해

수행평가를 무조건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최근, 특히 시·도교육청 평가와 관련하여 수행평가의 비율은 높을수록 좋다는 생각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수행평가의 비율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시행의 비율이고, 다른 하나는 성적에의 반영비율이다. 이 두 종류 중 어느 경우도 수행평가의 비율이 높은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특히 수행평가 시행의 비율이 너무 높으면, 교사들에게는 물론 학생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된다. 특히 교사들이 경쟁적으로 수행평가 실시와
반영의 비율을 높인다면, 그리하여 학생들이 적정한 시간 내에 적정한 방법으로 수행평가적인 과제를 수행할 수 없게 된다면 이러한 종류의 수행평가는 결과적으로 오히려 반교육적 현상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된다. 학생들은 과제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 대신 하게 되고, 때로는 친구의 과제 수행물을 훔치거나 그대로 복사하거나, 혹은 여럿이 과제물을 서로 분담하여 하는 등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들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역효과가 순효과를 압도하게 된다. 또한 내실있는 수행평가를 제대로 하자면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많이 발생한다. 수행평가는 선택형에 비해서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장점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행평가는 도구개발이나 채점을 위한 노력, 시간, 경비가 많이 들며, 객관성과 신뢰성 확보가 어렵고, 개발된
검사의 반복 사용이 용이하지 않다(부재율,1999). 이외에도 수행평가를 실시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많은 난점을 포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행평가를 강조하는 이유는 지필식 선택형 평가만으로는 평가의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는 수행평가를 강조하는 것이지 모든 경우에, 그리고 학습의 모든 과정에서 수행평가만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른 모든 인간현상과 마찬가지로 수행평가의 경우도 현실과 여건에 적절해야 한다. 우선 교사가 수행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학생들이 할 만한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려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적으로는 아무리 바람직하다고 하더라도 비용,효과적인 측면에서 그 효율성이 너무 낮다면 이러한 평가방식을 무리하게 고집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언제나 적정의 수준, 중용을 찾는 지혜가 요청되는 것이다.

출처 : 허경철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요즘 하루 하루 플톡만..

별다른 로깅은 안 하고 플톡질만 해대고 있다.

플톡에서는 짧게 짧게 글을 적으면서 그 순간 순간 글이 올라와서 채팅과 유사하지만 또 다른 맛이 느껴진다.

그러나 저러나 과제때문에 죽을지경이다. 정신없는 하루하루의 과제 풀이들… 제대로 머리속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겠구… 하아~ 이따 아침에 일찍 나가야하는데…

2007-04-02 플레이톡

00:09 웬지 귀여운 플톡인들.. ㅋㅋ

00:12 자뻑도 좀 있으신 플톡인들.. ^^

00:13 그래도 사랑스러운 여러분들~ ㅋㅋ 사랑해효~♡

02:03 일러스트레이터 굉장한 말썽 중.. 같은 작업을 몇 번째 다시 하는 중

10:02 Good morning! 완전 지각해버려서 그냥 집에 있다는….

10:11 어랏… 친구 1명이 줄어들었습니다.. 아무래도 플톡에 적응 못하고 그냥 나가버리신듯..

12:06 난 좀 이상해..

12:49 갈비가 뭔지 아시는분? 답글은 귓속말로 해 주삼~ ㅋㅋ 정답자 발표는 오늘!!

12:52 갈비를 아무도 모르시네.. ㅋㅋ

12:54 뭐.. 다들 모르시니 어쩔 수 없이.. “갈수록 비호감”이라는 군요.. 어디선가 제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제게 그러더군요. “갈비 샘~~”(털썩~)

13:17 HAN님 이런 도배 방지도 좀 해야하지 않을까요? 너무 삭막해 지려나…?

16:16 전산실 PC에 마우스가 없어여.. ㅋㅋ

19:23 하아~ 집중 완전 안되여… 내일을 위한 초주검..

2007-04-01 플레이톡

00:52 와~ 저 투플남 됐어요. 근데 HAN님 여자에게는 투플녀 같은 멋진 말을 적어주시면서… 남자는!!! (털썩~)

00:59 여러분 라운지에 투데이 플토커가 누구로 나오시나요? (의심중..)

01:15 일찍 자고 싶었는데, 저녁에 동생 내외가 와서 밥 먹자고 하는 바람에 좀 먹어버려서 잠도 못 자고.. 참.. 그냥 자면 다 살로가는데.. 아웅…

01:48 워어~ 투플남도 필요 없었어… 일찍 자겠어요~

14:56 교회 다녀왔어요~ ^^

15:59 twittervision에 올라오기까지 약 1분 정도가 걸리는군요.

17:22 유후~ 황사가 내 차를 노랗게 만들었어~

17:30 플톡의 이미지는 가볍다, 그래서 편하고 좋다~

22:02 요즘들어 수염 자라는 속도가 더 빨라진 듯한 기분은.. 웬지.. 나쁘군요.

22:54 맨날 오는 사람들만 오구 말야!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