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야고보서 3:1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중요한 것은 인내도 있지만, 그 무엇보다 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을 주일학교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아이들이 따라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선생의 자리에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과 행동을 가져야 하는 지에 대해 여러 모로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것은 비단 선생이라는 자리만 그런것이 아니다. 부모 역시 아이에게 있어 가르치는 자로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필자의 결혼한 친척누나가 콩을 어른이 되어서도 안 먹었는데, 아이들에게는 먹으라고 했다가 언젠가 한번은 아이가 엄마도 안 먹으면서 왜 나한테만 먹으라고 해 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행동은 아이들에게 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의 자리라는 것은 이보다 더 비중있는 책임감이 부여됩니다. 한 인간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가르치는 것인데, 가르치는 자로서 부도덕함으로 교회에서 누군가를 떠나가게 만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교회자체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교회의 영광은 세상의 죄를 책망하며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많이 세속화되어 있다. 진정으로 영광받아야 할 하나님이 영광을 받지 못하고 인간이 그 영광을 가로채고 있다. 권위주의적이고 전통만 강조하는 교회, 생활에 모범이 되지 못하는 인물들이 교회의 지도자로서 군림하고 있을 때 비판력이 강하고 양심이 예민한 교인들은 교회를 통해 아무런 은혜를 받을 수 없어 떠나게 된다. 그러므로 적어도 교회학교의 지도자와 교사들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하며 행동에서 항상 모범이 되어야 한다.1
- *. 양창삼 지음, 『교회행정학』, (서울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총무부, 1998), p. 106.[↩]
맞는 말씀입니다. 저희 가족 한 분도 신학대학원까지 갔다가 잘못된 모습에 실망해서 교회를 버리고 기독교 신앙도 버렸습니다.
전에 ‘사찰을 무너지게 해주시옵소서’라는 설교 동영상에 대해 변호해주셨지요?
그런데, 그 동영상 보고 기독교 포기한 분도 보았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솔직히 인정하고 고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치에 합당한 해명이 아닌, 잘못을 덮어주기 위한 변명은 더 큰 실망만 안겨줄 뿐이니까요.
하느님이 사찰을 쓸어버리지 않는데, 왜 인간이 하느님한테 주문을 합니까? 하느님이 무슨 웨이터일까요?
기도는 개인의 자유라지만, 그런 건 자유가 아니라 방종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