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기사 : 신도시 투기 잡은 나라가 어딨나 – 홍종학 교수 기고>
사실 리더의 자리는 소규모 집단에서조차도 아랫것들의 사정을 완전히 알 수 없는 자리임에 분명하다. 하물며 규모가 작은 그들 가운데서도 그러한데 나라의 리더인 대통령은 어떠할까.
홍종학 교수의 기고문에서 언급되었던 사전 검열이라는 단어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가장 크게 생각된 것이 군대의 문화에 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기업에 대한 것이다.
군대의 머리되시는 분들이 끝 없이 그들의 군에 대한 변화 노력을 내비추고 있음에도 쉬이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사악함을 보여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다만 그들에게 가리워진 진실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더들은 그 아래의 하급자들의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부분에 대해 왜곡된 보고를 받는다. 점차 올라갈 수록 그것은 더욱 심하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자신의 인생도 중요하지만 고쳐지지 않으면 안될 것에 대해 희생하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다른 사람에 의해 제제된다. 이 말들은 자신이 희생되지 않기 위해 숨기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죽지 않기 위해 방치 묵과 은닉해 버리고 나면 그것은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인사 진행에 문제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면 은닉하기는 군대와 매 한가지다. 친구들로부터 들려오는 기업 내부의 비리들을 듣고있노라면 적잖이 씁쓸할 뿐이다.
쨌든 이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리더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래 상황에 대해 어두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감… 의지와 상관없기 때문에 더 안타깝습니다.
역사에서 수많은 왕들이 그것으로 인해 잘못된 정치를 하기도 했지요. 중국의 환관정치, 대표적이지 않습니까?
리더는 언제든지 아래 사람들을 둘러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더 들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