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한 단상

내 이상형이라고 하기에는 명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일단 함께 살아갈 반쪽은 기도 잘하고, 밥 잘 먹는 여자였으면 좋겠다.

일단 기도를 잘한다는 것은 방언을 한다는 것인데, 이제 일반적인 초신자나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미쳤다고 했던 방언을 말하는데, 방언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하는 필수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기도를 잘 한다는 것은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견을 여쭈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본인 역시 그런 면에서 자유롭지 못한 편인데, 꽤나 노력하고 있으니 반려자도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기도로 서로를 중보하면서 서로를 우선순위로 두기보다는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더 높이 두어 서로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 줄 수 있는 그런 관계이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교의 학과장으로 계신 분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분께서 신부감을 고르실 때 선택 기준 중에 하나이셨다는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밥을 잘 먹는 여자여야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이다. 이번 주 월요일에 마케팅 담당 교수님께서 강의 중에 어떤 여자를 이상형으로 두었냐고 물으시길래 “밥 잘먹는 여자요”라고 했더니, “돼지 키울 일 있냐?”고 하셨다. 그 상황에서 더 자세하게 말하고 따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고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밥을 잘 먹는다는 것은 결코 과도하게 먹는 식탐의 소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수님께서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셨던 것이라고 짧게 집고 넘어가겠다.

이런 여자를 구하는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큰데, 아버지께서 어머님을 선택하셨던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밥을 먹는 모습에서였다고 한다.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과감하게 잡수셨고, 그런 모습에 반하셨다고 한다. 어찌보면 이건 눈에 콩깎지가 콱~ 끼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했으리라고 설명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야리야리한 아가씨들보다 그렇게 건강하고 밥 잘먹는 모습이 더 좋으셨기 때문에 조금은 저돌적인 청혼을 하셨다고 한다.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밥 잘 먹으면 일단 건강은 따 놓은 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본인의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밥 잘 먹는 여인네들은 성격이 원만한 편이며 성격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본인이 원하는 여성상은 대략 저정도 뿐이다. 거기에 외모도 좀 받쳐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다지 외모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사귀어왔던 여성 동무들의 외모를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을 증명해 낼 수 있다.

최근에 와서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라는 식의 생각들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것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라는 설명보다는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고 설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개인과 개인이 사랑해서 시작되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집안과 집안이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내 이성 선택의 기준은 결국 집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를 가진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정도의 여성정도라면 어떤 여성이라도 – 상대 집안의 신앙과 불신앙 – 상관 없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신다. 문화적 충격에 민감하신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단 여기에서 우리 어머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님은 예수쟁이라는 – 기독교인을 이르는 당시의 털털한 표현 – 딱지를 달고 불교인 집안에 들어오셨다. 당연히 시누들이나 시부모님들로부터 엄청난 눈총을 받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어머님이 시집온다는 말에 집안에서는 “예수쟁이 며느리를 얻으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억지의 말도 나왔다고 한다. 사실 그 시대 상황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암 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의 변형 정도로 생각하고 말자. 그렇게 시집오셔서는 집안을 전도하시는데 20여년을 보내셨다. 이런 경험에 의해서 부모님들은 여자쪽의 집안도 모두 믿는 가정이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야할 것은 본인이 목회를 목표로 하고 있는 신학생이라는 것이다.

문화적 충돌이라는 것은 결코 우습게 볼 만한 일이 아니다. 문화적 충돌을 얕잡아 보는 것은 심지어 이혼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르게 하기도 한다. 단지 둘이 좋아서 결혼하는 것으로 결혼생활은 원만히 마무리 되지 않는다. 술, 제사, 기타 집안행사에 있어서 문화적인 차이를 통해 다투게 되고 그런 것들로 불화를 겪는 가정은 적지 않다. 그런 것들로 인해서 다른 기독교인들에게마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또 만약 잘 되지 않는 경우를 들어보자면 그 문제성은 더욱 심도를 가진다.

뭐.. 이런 저런것 다 따지다 보면 어떻게 연애를 하겠는가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나이에 이르르니 별 수 없다. 본인의 연애관은 일단 쿨하게 시작하고 맺음도 깔끔하게 하자는 것이다. 누군가 본인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일단 그 사람에게 확실히 말해둠으로써 더욱 깊어질 정으로 인해 상처가 커지는 것을 방지해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그 순간에는 상처가 될 것이지만, 그 이후에까지 방치해서 더 깊은 상처를 받게 하는 것보다는 낫다.

본인은 80년생(27세)이고 위로 6살 아래로 6살까지 커버 가능하다는 점을 기억하시고, 이 글을 읽는 분중에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기도 잘하고 밥 잘 먹는 여인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기 바란다. ^^ 소개가 아닌 자신이 그런 조건에 부합된다고 생각하시면 적극적으로 다가와 주시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 짓겠다.

“결혼에 대한 단상”의 2개의 생각

  1. 오호 위로 6살 아래로 6살! 이거 쫌 파격적이신데요! ㅎㅎ
    전 아래로는 한 살도 커버 못하겠음..-_-ㅋㅋ
    결혼관에 대해서 언젠가 저도 한번 써 보고 싶네요..:) 많이 공감돼요!

    1.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위아래로 12살이었드랬죠.
      그런데, 25살이 넘어가니까 10살 이상은 무리가 되더군요.
      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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