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이번 글은 내 어머님의 간증이다. 경험담이고,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하심과 실행하심에 대한 증거이다.
간증의 내용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셨다 로 마감된다.
이 글 역시 마찬가지이며, 읽고 싶으신 분들만 읽으시라.

여기서부터..
먼저 어머님께서 자라오신 환경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조부(여기에서의 호칭은 어머님 기준)께서 성당(천주교)을 다니셨고, 다른 가족들도 조부님을 따라 성당을 다니셨다고 한다. 8남매 가운데서 맏이셨고, 어머님 세대의 다른 어르신들처럼 딸에게는 지원을 굉장히 아끼셨기 때문에, 학교를 자비로 다니시지 않으시면 안되는 상황에서 대학을 국군간호사관학교에 입학하셨다.

고등학교 때에는 믿음이 없으신상태로 교회에 다니셨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사정은 마찬가지겠지만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처음 교회에 나간다는게 친구를 따라 나간케이스에 속하셨다. 그렇게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시고 대학교 1학년(20살)에 들어섰는데, 뭔가 세상에 의미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의 국군간호사관학교는 대구에 있었는데, 그런 이유로 전라도 학생들의 향우회가 조직되었고 그 사람들과 여기 저기 활동을 하기도 하고 등산도 다니고, 만남도 가지고 하셨단다. 그런데 그 향우회라는 것의 활동이 그런 활동들의 반복이었고, 그런것에 별 의미를 두지 않으셨던 어머님께서는 흥미를 잃으셨다고 한다.

군 교육 기관에서는 기숙사 생활을 기본으로 하고, 주말에는 외출이 가능했는데, 믿음이 그다지 확실하게 세워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에 열심을 가지시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 모습을 좋게 보셨단 당시의 어르신들(군목을 포함한 교회의 어르신들)께서는 교리 학습을 시키셨고, 그로 인해 세례를 받으시기에 이르셨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세례 전날인 토요일에 문득 생각하셨다고 한다. 믿음도 확실하지 않고, 세례를 받을 자격이 되는가라는 생각을 하고 그저 앉아서 기도(어머님께서 표현하시기로는 단지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정도)하고 계셨는데, 한 학년 선배(2학년)가 한 명 다가와서 주말인데 외출도 안 하고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했단다. 그래서 이러 저러해서 고민이라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네비게이토식 교리 교육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도 쉽게 확실한 믿음을 세우시게 되었는데, 어머님께서는 그 선배를 표현하시기를 하나님께서 가르치는 것에 준비된 영혼을 계획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 받으셨던 응답의 대략적인 내용은 큰 단체를 통해서 자비 부담 없이 선교에 쓰시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으로 교육기간을 마치고 마산으로 첫 발령을 받으셨는데, 학교에서만큼 열심으로 할 수 없는 여건들과 여러가지 이유들 때문에 믿음의 정도가 많이 떨어지셨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서 교회에서 부흥성회를 하게 되었는데, 당시 부흥강사님께서 방언으로 기도를 권하셨고, 예배 가운데 방언의 은사를 받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기도를 하면서 세계 선교를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에 응답을 받으셨는데, 당장 그것이 이루어지실 것으로 생각하시고 눈물로 기도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믿음이 전혀 없으셨던 아버지의 신앙상태와 태어난지 1년 정도 밖에 안된 본인과 갓 태어난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아버님은 건축토목기사로서 일을 하고 계셨고, 어머님은 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하셨기 때문에 의무 장교로 근무하셨기 때문에 서로 만날 시간이 거의 없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님을 따라 다녔던 두 아이들은 아버지의 얼굴에 낮설어 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이런 이유로 어머님은 대위 4년차에 전역하실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만 두시고 나서 아버님께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었다. 목회자로서의 부르심을 받으셨다.(이것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에 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서울의 큰교회의 부교역자로서 활동하시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서도 당시 선교에 활동적이었던 교회에 가서 교육도 받으시고, 알아보기도 하셨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막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부교역자로 활동하시던 교회에서 나와 본인이 중2때(15세, 1994년) 부천으로 개척하여 나오셨는데, 개척교회라는 것이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적지 않게 힘이 든다.

그렇게 2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셨단다. 이제 그 기도에 대해 별 희망을 가지고 있게 않게 될 즈음하여 어머님은 대방 제단이라는 곳을 알게 되셨고, 그 제단은 대한수도원과 연계된 기도 제단이었다. 그 제단을 통해 훈련을 약 4년 6개월 정도 받으셨단다.

그런데!
그렇게 짧지 않은 기간동안 훈련 받으시면서 들으셨을법도 한데, 한번도 졸업에 대해 들으시지 못하셨다고 한다. 3년 정도를 제단 지기로 활동하면 그 빡센 훈련의 강제적(?)의무가 해제되고 그와 동시에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제단에서 약 1개월 여간 활동하게 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와 유사한 시기에 아버님께서도 중국으로 선교를 다녀오시게 되는 길이 열리셨다.

오늘 오후 예배가 끝나고 광고겸 간증 시간이 있었는데, 아버님께서는 그동안 까맣게 잊고 계셨던 한 가지를 생각해 내셨다고 한다. 27년 전 믿음이 없던 시절의 어머님의 미친(당시에는 믿음이 없으셨기 때문에 시댁 식구들이 모두 미쳤다고 이혼하라고 까지 하셨다고 한다)소리를 말이다. 이제 곧 세계 선교를 하게 될 것이라는 미친 소리를 들으셨다고 한다.

어떠신가… 지금 당신의 모습을 살펴보라. 당장 응답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좌절해 있지는 않는가? 내 삶에 있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하심과 역사하심에 비추어 결단코 단언하건데, 결코 응답하시지 않으실 분이 아니다!

물론, 자기 욕심과 정욕을 위해 죄악된 것을 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으시리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단코 이루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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