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함께하지 못하면..

어제(25일) 금요 철야 때 들었던 말씀 중에 기도와 함께 말씀이 마음에 있어야 한다는 설교를 들었다.
김충규 목사님께서 요한복음 15장 7절을 들어 “말씀과 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대언하셨는데, 먼저 본문을 살펴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7)
If you remain in me and my words remain in you, ask whatever you wish, and it will be given you. (John 15:7)

대부분의 사람 들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는 말씀에 주목한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란 대목이다. 하나님 안에 거하면서 구하면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시리라는 말씀이 아니라, 말씀을 마음에 품고, 새겨둠과 동시에 구하여야 우리가 구할 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영을 살리고, 기도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왜 들어주시지 않는 거지? 라고 하면서도 정작 그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에 소홀하기 마련이다.

얼마전에 있었던 전교인 수련회 때 봉사하던 청년들이 당회장 목사님과 대화할 일이 있었다. 그 때 목사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사는 일에 대해 매우 강조하셨는데, 기도로 구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직접 그 음성으로 응답해 주시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그런 것보다는 우리가 말씀을 읽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이 알아지는 것이다. 그 부분에서 아! 하고 깨달아졌다. 실제적으로 내 심령 가운데 아들아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신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심령가운데 깨달아지는 방식으로 내게 뜻을 밝히셨던 경우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내 생활 가운데는 말씀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못했다.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는 것은 뜨겁게 기도하는 그 순간 뿐이다. 그렇게 집회를 마치고 나면 일상생활로 들어서서 전혀 관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그 분의 음성을 듣기는 커녕 뜻하심조차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마음 속으로 꽤나 자주 주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대부분은 반향이 없다. 웬지 내 마음대로 떠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적도 적지 않다. 역시.. 삶이 말씀 가운데 있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리게 된다.

요즘 미니위니를 통해 알게된 리디의 생각하는 섬 바닷가에 자주 드나드는데, 그 곳 분들의 글들 가운데는 웬지 모를 위로가 있다. 다른 곳에서도 말씀을 인용한 글들을 읽을 수는 없지만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그것 과는 또 다른 감정이 일기 때문이다. 사실 다니는 여러 다른 곳들 중에는 그런 식(?)의 글들을 보기 힘들다. 대부분이 웹 개발 관련 페이지들이거나 관련 직종 사람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교회 관련된 곳에서는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ㅡㅡ;; 인터넷의 물결이 들어오기 전 크넷이라는 곳 이후에는 없었다고 기억된다.

쨌든, 목사님의 설교로 돌아가서, 이후의 인용되는 말씀들을 주욱 살펴보면

사도행전 6: 1~4 ::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시편 119 : 147~148 ::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에베소서 6 : 17~18 ::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요한복음 5 : 24~25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시편 119 : 50 ::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말씀들은 모두가

말씀

과 관련되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가지는 것은 명령이며 지켜 순종해 내야 할 부분이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말씀에 입각하고 체계적인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말씀위에 바로 서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충규 목사님의 설교는 유난히 – 다른 목사님들의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는 건 아니다 –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 귀에 그리고 마음에 잘 새길 수 있다고 느껴진다. 이런 것이 사람들이

자기에게 맞는

목사님을 찾아가는 이유일까? 그런 행동은 뭔가… 아니다라는 인상을 깊게 남기지만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말씀을 전하기 위한 일꾼으로서의 모델로 삼을 만하다고 생각되어진다.

“말씀이 함께하지 못하면..”의 2개의 생각

    1. 아~! 그 메인 화면에 있는 합성(변조) 포스터 말이로군요.
      ㅋㅋ

      리디님은 스타일이라는게 진짜 있는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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