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나란 인간은 참 변하지 않는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미 여러 면에서 변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 환경, 성격이라는 3가지 분류로 살펴본다면,
먼저 지금은 무려 27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를 가지고 있다. 나이라는 것은 단지 태어난날로부터 몇 년이 흘렀는가를 나타내기도하지만 그것보다는 이 사람이 얼마나 죽을 날에 가까워지는가 하는 것을 수치로 나타내주는 것이다. 참… 쓰고 나서도 우울하지 않을 수 없는 정의로군.

환경면에 있어서는 전보다 평균적인 삶의 질이 조금 더 높아졌다고 해야하는걸까? 질이라는 것의 기준이 모호해서 명확하게 어떤 점이 어떻게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의 생활과 비교해봤을때 지금의 삶은 여러 모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해있다. 이전의 월세 생활에서 전세로, 지금은 어렵게 마련한 자금들을 이용한

우리집

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좋아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부채들을 생각하면 그다지 나아졌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우리 가족은 화목하기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겠다.

철없던 고등학교 시절(17살 ~ 19살)의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됐는데, 오늘 그렇지도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낮에 당산에서 회의를 하고 나서 친구녀석이 “너 요즘 왜 이렇게 침체돼 있니?”라는 것이다.
스스로는 성격의 변화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여서인지 “그래?”라는 답변만 해 줬을 뿐이다.
단지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변한건가? 사람의 성격이라는거 나이 먹어서도 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 타인이 갑작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단숨에 – 변해 버린 것일까?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까 확실히 전보다 굉장히 차분해졌다. 사람이 결단을 하고 그것을 행하려고 할 때 변화되어버리는 것인가. 결단이라는 것은 목표가 있지 않더라도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 버릴 수 있는 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변하게 마련이라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변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좋지 않은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사람이 죽을 날이 가까워지면 갑자기 달라지게 된다는 생각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성격 변화라는 주제에 연관지어 성화라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성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믿기로 작정했을 때 긍정적으로 발전시켜나간다는 과정을 말하는데, 비난 받는 – 비그리스도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 그리스도인들은 완전히 성화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완전히 성화된 인간이 아닌 불완전 성화의 상태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것이다.

뭔가.. 꽤나 복잡해져버릴 것 같아서 이만 줄여야 겠다. 사실 좀 피곤하기 때문에 줄이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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